〈 138화 〉 녹색 사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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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전 비타에 소규모 해군 기지가 설치된 적이 있었으나, 결국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이 땅에 영구적인 정착지를 지으려는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말인즉슨, 큰 어선이 접안할 만한 시설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는 뜻이다.
따라서 일행이 탄 어선은 비타 근처에 묘박했고, 단정 하나를 내려 비타로 들어가야 했다.
"그럼 2주 뒤에 보도록 합시다! 이 위치에 나와 있어야 하오!"
"수고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2주 뒤에 보도록 하죠."
등대도 없고 통신 시설 따위는 더더욱 없으니 미리 돌아갈 날짜를 정해두어야 했다. 일행에게 주어진 시간은 2주. 그동안 이 넓은 섬에서 뭔가 의미 있는 것을 찾는 게 목적이다.
안 그래도 사람이 없는 섬이다. 단정마저 떠난 해변가에는 고요만이 가득하다.
"열대 섬이라는 느낌이군요!"
주위를 둘러보던 히사시가 풍광에 감탄했다. 푸르게 반짝이는 바닷물과 좌우로 펼쳐진 하얀 백사장. 그리고 저 뒤로 펼쳐진 울창한 녹림. 여행사 광고에 나올 법한 전형적인 열대의 모습이다.
"몰디브 한 잔 땡기네."
"뭐라고?"
"모히또 한 잔 땡긴다고.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야?"
나유는 뻔뻔하게 말실수를 넘기며 창공에게 질문했다. 모든 일행의 시선이 그에게 쏠린다.
"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알펜시아에서 찾은 기록에 따르면... 비타에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구멍이 있다고 하더라고. 글쎄, 전설이기는 하지만 전설이라는 건 사실 여부를 떠나서 반드시 어떤 근거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거야."
그랬다. 본래 전설이라 함은 사람들이 기괴한 자연 현상이나 자연물 그 자체, 혹은 어느 집단의 내력을 토대로 만드는 이야기다. 슬픈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동상이 있다고 치자. 그 경우, 전설의 존재는 동상의 존재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전설 따위를 믿든 믿지 않든 관계없이.
"음, 원래 우리 마법사들은 허무맹랑한 전설은 믿지 않지만 말이지. 어차피 만들어진 이야기니까. 하지만 뭐, 이 비타 같은 섬에 그런 전설이 만들어진 이유는 반드시 존재하기는 할 거야. 문제라고 한다면 그 근거가 정말로 별거 아닐지도 모른다는 거."
"확인해 봐야지."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이 비타를 고작 일곱 명의 인원으로 2주 안에 전부 둘러본다는 건 말이 안 돼. 게다가 저 너머의 숲은... 아마 책에서만 보던 정글이라는 식생인 것 같은데. 저 안에 과연 뭐가 있을지 나로서도 전혀..."
사실 지구인이라고 별반 다를 바야 없겠지만 다이셀리시아 사람들에게 정글은 특히 생소한 식생이었다. 인류의 생활권과 정글 지대가 전혀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비슷한 위도, 혹은 더 낮은 위도에 위치하는 생활권도 많았지만 온대 기후거나 아예 사막 기후를 띄었다.
어쩌면 그러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관념과 막연한 두려움이 저 안에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전설을 만들어 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경우, 일행이 이곳에 발을 들인 건 완전한 뻘짓인 셈이다.
"네 말이 맞아."
창공도 륀의 말을 선선히 인정했다.
"사실 그 전설이 정말로 별거 아닐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보거든. 그래서 2주로 기간을 잡기도 한 거고. 말하자면 눈 감고 화살을 쏘는 격이야. 맞으면 좋고, 안 맞으면 어쩔 수 없고."
"하지만 확인 안 하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조금 찝찝한?"
"말이 안 되는 전설이지만 그렇게 치면 다이셀리시아에 있는 우리 존재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 결론적으로, 우리가 찾아야 할 건 수상쩍어 보이는 무언가야. 아무거나 다 좋아. 특이한 지형일 수도 있고, 자연 현상일 수도 있어. 그도 아니라면 고대 문명의 흔적일 수도 있지."
"마지막일 가능성은 정말로 거의 없지만. 이곳에 인류가 정착해 살았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거든. 살기에 적합하지도 않고. 으음... 벌써부터 땀이 나네."
륀의 말대로 열대 지방의 태양빛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햇볕은 무지막지한 기세로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그뿐인가. 공기는 눅눅하고 찐득해서 숨쉬기가 답답하기까지.
"일단 저 정글 안으로 들어가자."
"창공아."
"어, 형. 왜요."
"임시 거주지도 만들어야 하는데, 해변가? 아니면 정글 안?"
"정글 안에서 자는 건 어지간하면 피하는 게 좋겠죠. 이따가 저녁때쯤 되면 다 같이 잘 곳을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일단 지금은 저 안으로 들어가 보고."
"으음."
정글.
무지막지한 햇빛과 무지막지한 강우량으로 식물들이 무지막지한 생장을 보이는 곳. 나름 생명이 약동하는 곳이라고 사람 살기에 의외로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인간이 초식동물도 아니고 풀만 뜯어먹고 살 수가 있는가. 심지어 이곳의 풀들은 뜯어먹을 수 있는 풀도 아니다. 태반은 의미 없는 풀이요, 나머지 태반은 독초.
거기에 온갖 위협적인 짐승들과 독을 가진 생물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 제대로 수색을 하려면 해변으로 돌아갈 것 없이 야영지도 정글 내에 설치하고 2주 내내 뺑뺑이를 돌아가 마지막 날 해변으로 나가는 게 좋겠지만, 창공이 망설임 없이 그렇게 대답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귀는 소리. 바람에 풀 흔들리는 소리. 벌레 우는소리.
정글 안은 생각보다 어두컴컴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는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미친 듯이 생장한 나무들이 거대한 이파리로 햇빛을 죄다 가린 탓이었다.
"찝찝. 찝찝. 나 죽어..."
그렇게 30분 정도 걸었을까. 나유가 앓는 소리를 했다. 높은 기온과 습도로 인한 불쾌지수에 안 그래도 구체적인 목적지가 정해지지도 않았고 찾는 게 어떻게 생긴 건지도 모른다는 애매모호함이 끼얹어져서 고생이 배가 된 탓이다.
"창공아. 쉬었다 가는 게 낫겠다."
"30분밖에 안 됐는데... 내가 누굴 탓해. 그러죠."
창공은 드물게도 마음속으로 깊은 반성을 했다. 정글 탐험은 그의 생각보다 몇 배는 더 힘든 과업이었다. 찾으면 좋고 아니면 말자는 식으로 온 비타였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다들 평소보다 참을성이 떨어진 것 같았다.
그나마 간편하게 차려입은 나유나 히사시, 륀은 나은 편. 어택이야 통풍은 안 되고 열은 열대로 먹는 군복 차림이지만 강인한 신체를 가지고 있으니 버틸 만은 하다.
문제는 아린과 아스터였다. 얇은 옷이기는 해도 긴팔에 긴 바지인데다 임산부라 체력이 빠르게 떨어졌고, 특히 아스터는 목까지 덮는 두꺼운 사제복 때문에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목마르다고 마구 들이키지 말고 아껴서 마셔."
결국 해줄 수 있는 조언이라고는 이런 것뿐. 대책 없이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 하는 시기가 오고야 말았다.
"하아... 하아... 후우우..."
나무에 몸을 기댄 아스터의 머리칼에서 후두둑, 거리는 소리와 함께 땀방울이 비 오듯 쏟아진다. 창공은 정말 심각한 표정으로 일행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좋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 간다면 전부 탈진한다는 미래밖엔 남지 않는다.
"륀. 나 좀 보자."
"어? 어... 응."
보아하니 그녀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그는 그런 륀을 데리고 풀숲 너머로 이동했다.
"주인님, 괜찮으신가요? 숨은..."
"괜찮아."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걱정하는 말부터 꺼내는 륀. 이런 때에 그마저 쓰러지면 정말로 방법이 없다.
"고온다습한 곳이 의외로 내 폐에는 잘 먹히나 보네. 여기서 우리 둘이 집 짓고 살까?"
"웃기지도 않는 농담 마세요. ...하아."
그녀는 자신의 가슴에 머무는 창공의 시선을 느끼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땀에 축축하게 절은 그녀의 드레스 셔츠. 그 너머로 하얀 브래지어가 드러나 있다.
"그러고 싶으세요? 이런 때에?"
"나도 내가 우스워."
말뿐만이 아니라는 듯 그가 작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지구에 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왕성해진 성욕 탓이다. 그럼에도 최대한 절제하고는 있었지만, 본다고 닳는 건 아니지 않는가.
"제 몸을 원하시면 이따가 밤에 얼마든지 봉사해 드릴 테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주인님. 이래서는 안 돼요. 다들 뭘 찾기도 전에 지쳐서 쓰러질 거예요."
"나도 그게 걱정이야. 내가 우리 한계를 너무 높게 잡았어. 아니면 이 땅을 너무 우습게 봤거나. 요새 자꾸 실수만 하는 것 같단 말이지."
"제가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저도 안일했어요."
창공 스스로가 확실하게 자각하고 있진 않았지만 온갖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륀의 존재는 큰 도움이 되었다.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실수를 노출시켜선 안 된다는... 끝없는 칼날 위를 걸었던 그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휴식을 가지는 때를 제공했으니까.
"어쨌든 난 우리가 한 실수에 대해서 곱씹으면서 우울에 빠질 생각은 없어.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일단 해변으로 철수할까?"
"으음... 한 시간 정도만 더 나아가는 건 어떨까요? 힘들긴 하지만 첫날부터 여기서 멈춰 버리면 앞으로는 더 힘들어질 수 있어요. 심적으로."
"그 말도 일리가 있네. 지도는 그리고 있어?"
륀은 고개를 끄덕였다. 창공의 지시에 따라 수첩에다가 간략한 지도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인상적인 지형지물과 방위, 나아간 시간 등을 기록하며.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될진 미지수였지만.
"하지만 어렵네요. 정글 안으로 들어오니 다 똑같은 곳 같아서... 마법 생물학이나 마법 약초학 교수가 여기 왔다면 더 도움이 됐을지도요."
"어쩔 수 없잖아, 그건. 아무튼 좋아. 1시간만 더 전진하자. 뭐가 나오면 좋겠지만 안 나와도 어쩔 수 없지. 아, 그리고..."
"후읏?!"
창공은 아무런 전조 없이 륀의 스커트 속에 손을 넣어 그녀의 다리 사이 균열을 따라 훑어 올렸다. 이윽고 손가락이 입 앞에 들이밀어지고, 륀은 반사적으로 혀를 내밀어 그것을 깨끗이 청소했다.
"지금처럼 꼼꼼하게 빨 준비하고 있어."
"녜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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