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떠돌이들-144화 (144/178)

〈 144화 〉 고향과 가장 가까운 곳 (4)

* * *

"으아아, 목 아프다."

한참 동안 천장을 올려다보며 반짝이는 별ㅡ혹은 별처럼 생긴 무언가ㅡ들을 바라보던 나유가 목을 주무르며 신음을 토해냈다. 분명 아름다운 광경이기는 했다. 인적 드문 산골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게다가 이상하기 짝이 없는 것이, 저 별이 도대체 어디에 박혀있는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보기로는 손만 뻗으면 천장에 닿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치려니 그 천장이라는 게 보이지 않는다. 륀의 지팡이가 사방을 비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신기하긴 했지만 그저 거기까지. 결과적으로는 천장 높이가 얼마나 되고 저 반짝이는 건 과연 무엇인지에 관한 사실은 일행들에게 아무 쓸모도 없는 지식이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중요한 사실은 국적이 다른 사람들 간에 의사소통이 잘, 혹은 아예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으며 어떻게든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원래 이때쯤 자려고 했는데."

생각 정리를 끝낸 창공이 일행들에게 지금부터의 방침을 말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알아들을 수 없더라도 일단은.

"일단 저 앞에 공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번 가 보죠."

"음... 창공아. 만약에 우리 계속 이러면 어떡하지? 대화가 안 통하니까. 아니, 어쩌면 이 섬을 나가서도."

"글쎄요. 그럴 걱정은 없지 싶은데."

어택이 제시한 의견도 가능성은 있다. 이세계인들과의 의사소통 능력의 완전 상실. 그러나 창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정말 그렇더라도 여기에서 궁상떨 필요까지야 있겠는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데.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로 말이 잘 통했는데 여기 떨어지고 나서 이렇게 됐다면... 이 공간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겠죠. 그러니까 여기만 벗어난다면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난."

아마도.

라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는다. 어쨌거나 그의 이야기는 일행들ㅡ적어도 한국말을 알아듣는ㅡ에게 꽤나 그럴듯하게 다가왔다. 혹은 그렇게 하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는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아린은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어택과 나유는 제발 그렇게 좀 되어 달라는 듯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히사시와 퐁파두르 쌍둥이는 의문을 표할 뿐.

"그럼 방금 대형으로. 륀. 앞장서."

"Donc nous partons maintenant. Tu me dis de me tenir devant comme je le faisais avant, n'est­ce pas ? Je vais faire comme tu dis."

무어라 길게 말은 했지만 손짓 덕분에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륀은 창공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고 출발할 준비를 했다. 히사시에겐 아린이 통역을 했고, 아스터는 눈치껏 자기 위치에 끼어들었다.

갑작스럽지만 다시 행군이 시작되었다. 양쪽 벽면은 떨어지기 전 동굴 벽과 흡사했다. 회색빛 칙칙한 바위로 된 벽면. 다만 그 높이를 알 수 없는 천장만큼은 계속 그들의 머리 위에 떠있었다. 바로 위에서 은하수가 흐른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보면 낭만적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은 그닥 낭만적이지 않았다.

분열된 의사소통체계. 미지의 공간에서 출구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다는 불안감. 좁고 어두컴컴한 장소가 주는 특유의 압박.

창공이 재빠르게 출발 지시를 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이런 부정적인 요인들은 하나하나씩 쌓여서 결국에는 터지기 직전의 폭탄이 된다. 작은 불씨 하나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는 그런.

이런 곳에서 그와 같은 폭발이 일어난다면... 결코 재밌지는 않을 터다.

"..."

길은 쭉 일직선이었다. 계속 같은 곳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게 아니라는 유일한 증거는 옆으로 계속 스쳐 지나가는 벽면뿐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선두에 선 륀이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Attends une seconde!"

"뭐야!"

"앞에 뭐 있어?"

어두컴컴하고 좁은 통로에서의 적습. 혹시나 그런 것 때문에 륀이 멈추지 않았을까 생각한 일행이 소리를 지르며 싸울 준비를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참 무안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그러자 륀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뒤돌아서 손을 흔들었다.

"Non! non! J'ai fait quelque chose que j'aurais un peu mal compris."

"뭐라는 거야?"

"잘못 봤다고 이야기하는 거 아니야?"

"...sœur?"

"Aster."

그쯤에서 쌍둥이는 저희들끼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바라보고 있노라니 참... 미묘한 광경이다. 일행이었고 지금도 일행인데 이렇게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Je ne suis pas sûr car je n'ai pas de compétences en arpentage, mais peut­être que ce passage est légèrement incliné."

"Ah, bon?

"C'est subtilement différent de marcher sur un terrain plat."

"Donc ce que tu dis c'est..."

"Il y a fort à parier que nous allons dans le bon sens."

"Alors Disons Monsieur Tchan gon."

"Oui. Je le pense aussi."

서로 의논이 끝났는지 그녀들은 손짓으로 창공을 불렀다. 사실 간다고 해서 무슨 이야기가 통하는 것도 아니고 회의적인 기분이긴 했지만 오라는데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슨 일이야?"

하여 그는 알아듣든 말든 꿋꿋하게 한국어를 내뱉었다. 어차피 륀도 예상했는지 말로 하는 대신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손짓으로 이제까지 걸어온 쪽과 앞으로 걸어갈 쪽을 쭉 잇는 선을 그리더니, 수첩 위에 비스듬한 사선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 옆에 동그라미. 사선 아래에 평행선을 그리더니 엑스.

"기울어져 있다는 건가? 그럼 이쪽 길이 맞다는 거야?"

"Oui!"

창공이 앞쪽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이자 륀도 마주 끄덕였다. 서로 제대로 알아들은 건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라면 통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며 다시 출발 지시를 내렸다.

"오빠. 교수님이 뭐래요?"

"오르막길이라고 하더라. 아마도. 그럼 우리가 가는 방향이 맞을 거야. 계속 아래로 내려온 거 아니야. 위로 올라가야지."

그들은 미세한 기대감을 품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속으로는 이 길이 맞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런 바람이 어딘가에 닿은 것일까.

체감이 되는 듯 마는 듯 했던 경사는 어느 순간부터 눈에 띄게 높아졌다. 딱 봐도 오르막길일 정도로. 축 처져있던 일행의 어깨에 힘이 돌아오고, 얼굴에는 화색이 돈다. 천장의 별은 그들을 축복하듯 더욱 밝게 빛났다.

수많은 별들이 일행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간다. 하얗게 빛나는, 때로는 빨갛게 빛나는, 때로는 파랗게 빛나는...

그리고 어느 순간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 다들 같은 방향을, 같은 것을 바라보며.

"...뭔가 저거 되게 정감 가지 않아?"

"美しい色ですね!"

"Belle..."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그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빛. 그 빛은 머리 위에 무수히 박힌 별빛 중 하나에 불과했다. 빛무리를, 은하수를 이룬 단 하나의 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에선 알 수 없는 매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도대체 어째서인진 알 수 없었지만 눈을 떼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렇게 하염없이 바라본다.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쳐다볼 기세로.

창공의 말이 없었더라면 정말로 그리되었을지도 모른다.

"출발! 다들 눈 떼요!"

"...앗."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계속 올라가죠! 조금만 더 가면 다시 말이 통할지도 모르는데."

일행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계속 나아갔다. 그중에는 떨어지는 게 아쉬운지 계속 뒤돌아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 거스를 수는 없었다.

오르막은 점점 심해졌다. 점점, 점점. 이대로라면 뒤로 고꾸라질 정도로 기울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 거짓말처럼 오르막이 끝났다.

동시에 뭔가가 변했다.

아니, 변한 느낌이 들었다.

온도? 공기? 분위기?

뭐라 확실히 말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일행은 묘한 긴장감과 기대에 싸여 있었다. 어쩌면 간절히 바라던 그 일이 지금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흠! 흠흠!"

모든 시선이 헛기침을 한 아스터에게 집중된다.

"정말 아름다운 별이었죠..."

"이유는 모르겠는데 말야."

이어지는 창공의 대답. 눈만 꿈뻑거리며 서로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환호성을 질렀다.

"돼, 됐다아!"

"돌아왔다! 돌아왔다고!"

어지간한 창공도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끌어안는 아스터를 마주 안아주었다. 무슨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서로 얼싸안으며 환호하는 일행들. 언어의 극복이라는 건 이토록 기쁜 일이다.

비록 잠시 동안이지만 서로는 서로에게 별과 같은 존재였다. 분명 존재는 느낄 수 있지만 닿을 수도,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별처럼 아름다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별빛에는 의지할 수가 없는데.

그 빛이 설령 모두의 시선을 잠시 잡아끌었던...

지구에서 흘러나오는 빛이었다 해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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