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떠돌이들-153화 (153/178)

〈 153화 〉 피어싱 (2)

* * *

"요새 너무 허술해졌네."

잠에서 깬 창공은 선반 위에 올려두었던 피어싱이 사라진 걸 확인하고 탄식했다. 원래 이토록 허술하고 무방비한 자신이 아니었건만, 쏟아지는 피로와 졸음을 참지 못하고 정리를 나중으로 미룬 대가였다.

하지만 탄식과 후회는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법. 재빠르게 냉정을 되찾은 그는 다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누가 피어싱을 가져갔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일단 종업원은 제외. 이제까지 묵은 여관이 꽤 되었지만 체크아웃 이전까지 방을 정리하러 들어오는 종업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마 장기 투숙을 한다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일행인데, 남자 둘도 제외해야 한다. 어택이 피어싱을 보았다면 헛웃음을 짓거나 혀를 차고 말지 가져갈 리가 없고, 히사시는 당당하게 그런 걸 가져갈 사람이 못된다.

륀? 조교 받은 뒤로 부쩍 피학성이 증가한 륀이라면 겉으로야 어떻든 내심 기뻐했을 수도 있지만 창공이 직접 달아주는 걸 기다렸을 것이다. 마조 성향을 충족하는 데엔 그편이 더 좋을 테니.

아스터는... 히사시와 비슷하게, 아니. 히사시보다 더욱 남의 물건에 손을 댈 사람이 아니다. 애초에 피어싱을 보고선 그 용도를 짐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아마 이런 걸 사람에게 다느냐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 함부로 남의 물건에 손 안 대는 거야 대다수의 사람이 그렇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해 보면 아린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창공을 깨워서 어떻게 이런 거에 손을 댈 생각을 하냐고 귀찮게 굴면 몰라도.

'걔는 진짜로 그랬을지도 몰라.'

소거법에 의해 도출된 최종 결론. 창공은 아마도 나유가 피어싱을 가져갔을 거라는 추측에 도달하게 되었다. 다른 여자들을 배려하는 것 같으면서도 질투하는 마음을 품는 나유. 충동적인 면까지 갖춘 나유라면 가져갔어도 이상하지 않다.

아마도 자신을 품어달라 이야기하러 찾아왔을 거고, 그러다가 선반 위에 놓인 피어싱을 발견했을 터. 그걸 본 나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내가 륀에게 피어싱을 달려 한다고 생각했겠지.'

그리고 그건 사실이기도 했다. 안 그래도 륀에게 밀려 한동안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나유의 마음은 상당히 복잡했으리라. 결국 말없이 피어싱을 가져가 버린 게 아닐까.

이제 남은 마지막 문제. 나유는 피어싱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

'재밌겠네.'

머리가 맑아진 창공은 다시 눈을 붙여 잠을 청했다. 아직 저녁식사 시간까지는 조금 남아있었다.

* * *

"으으으... 쪼만한 게 사람 무섭게 만드네."

욕실 안. 바닥에 주저앉은 채 피어싱을 집어 든 나유는 긴장되는 표정으로 그것을 노려보았다. 동그란 금속 재질의 링. 중간에 분리된 부분이 있다. 아마 구멍을 뚫은 다음 이 부분을 벌려서 넣으라는 것이리라.

링은 꽤나 신축성이 있어 양쪽으로 잡고 벌리면 꽤나 쉽게 벌려졌다. 일단 넣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세 개 중 큰 두 개는 유두에 꽂는 것일 테고, 진짜 곤란한 건 마지막 하나. 애매하게 작은 크기의 링.

'아마 거기겠지?'

나유는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내려다보았다. 다리 사이. 여자의 소중한 곳. 지금은 안쪽에 숨어있지만, 음순을 벌리고 살살 자극하면 톡 튀어나오는 그것.

'그게... 가능해?'

바늘로 구멍을 뚫기에는 너무 민감하고 연약한 부위가 아닐까. 어떻게 단 다음에도 문제다. 섣불리 달고 다니다가 잘못 걸리면 찢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은 나유가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아무리 과감한 그녀라도 역시 쉽지 않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해서 칼을 든 적을 상대로는 용감하게 맞설 수 있어도, 작은 바늘로 제 몸을 찌르는 건 너무나 꺼려졌다.

"우으으... 일단 가슴에라도 달아야지..."

손가락을 들어 젖꼭지를 살살 자극한다. 굳이 창공의 손길이라고 상상할 필요도 없었다. 선천적인 기질에 더해 창공에게 꾸준히 개발 받으며 감도가 잔뜩 올라가 있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유의 유두는 꼿꼿하게 머리를 치켜들었다.

왼손으로 가슴을 붙잡아 고정하고, 오른손으로는 피어싱 기구를 집어 들어 갖다 댄다. 바늘 달린 집게 사이에 위태롭게 고개를 내민 유두. 당장에라도 구멍을 뚫을 듯 손가락이 움찔거렸지만 결국 바늘은 살을 찌르지 못했다.

"후우우우..."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건만, 나유의 목 근처에서 배어 나온 땀 한 방울이 매끈한 피부를 타고 둥그런 두 가슴 사이를 흘렀다.

"못 하겠어어..."

그녀는 기구를 내려놓고 우는소리를 냈다. 륀에게 창공을 더 빼앗기긴 싫었고, 자기가 피어싱을 달아서 창공을 기쁘게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무섭고 아픈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나 혼자서는 아무래도 안 돼.'

결국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그것도 금방 답이 나왔다. 다시 옷을 차려입고 욕실에서 나온 나유는 아린이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방을 나섰다.

목표는 아스터의 방. 헛기침을 하고 문을 두드리니 상냥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린다.

"네, 들어오세요... 아. 나유 님."

"안녕..."

언제나 그렇듯, 아스터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미소로 나유를 맞이했다. 이렇게 나오니 죄를 짓는 느낌이라, 나유는 선 채로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뭔가 말씀하실 게 있으신가요? 편하게 하세요. 여건만 된다면 커피를 한 잔 대접해 드렸을 텐데..."

"앗, 아니야. 괜찮아. 그냥 부탁을 좀... 하려고."

그러나 어떻게든 말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닌가. 이대로 우물쭈물 대며 이야기를 돌리고 돌리는 건 나유의 성격이 아니었다. 미숙하고 거칠어도 정면돌파. 제일 자신 있는 방법은 그것뿐.

"부탁이요?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요."

"음... 이게 뭔지 알아?"

아스터에게 내민 그녀의 손바닥 위엔 당연히 동그란 피어싱이 있었다. 부끄러움에 살짝 얼굴을 붉힌 나유와는 달리, 아스터는 그저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다.

"반지라고 하기엔 너무 작고. 귀걸이... 인가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휴우우우... 이게 뭐냐면."

차근차근 설명을 하는 나유. 아스터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세상에...! 그런 게 있단 말인가요? 어머... 어쩜 이럴 수가... 아뇨아뇨. 나유 님을 책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고요."

"괜찮아.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어쨌든 난 이걸 달고 싶어. 안 그러면 륀이 달게 될 테니까."

"네?"

륀 이야기가 나오자 살짝 얼굴을 굳힌 아스터가 다시 한번 피어싱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언니가 이걸... 이걸 말인가요. 설마 창공 님의 총애를 독차지하려고 이런 방법을?"

"이미 독차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도와드릴게요."

그녀는 나유의 손을 꼭 붙잡고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창공 님 곁에 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나유 님이세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 기뻐요. 자, 옷을 벗고 침대에 편하게 누워주세요."

"고맙다고... 해야 하나? 음, 고마워."

"제가 감사하답니다. 절 이렇게까지 믿어 주셔서요."

이렇게까지 된 이상 낙장 불입. 그래도 최후의 최후까지 망설이는 마음이 남아있던 나유는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뭐랄까. 같이 목욕도 한 사인데 이렇게 벗으려니 뭔가 부끄럽네. ...어?"

별생각 없이 던전 한 마디에 단추를 끄르고 옷을 벗기 시작하는 아스터. 오히려 나유보다 먼저 알몸이 되고 말았다.

"이젠 괜찮으시죠?"

"난 가끔 네가 무서워..."

"네?"

"아니. 아무것도."

나유는 옷을 벗으면서 은근슬쩍 아스터의 몸을 살폈다. 자신보다 한 단계 더 큰 가슴. 머리와 어깨를 부드럽게 잇는 하얀 목. 부드러운 허리선과 아랫배에 새겨진 문신. 빛나는 몸에서는 아름다움에, 문신에서는 신비로운 음란함이.

본인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겠지만 성녀의 신비로움과 창녀의 천박함이 동시에 깃든 몸이다. 평소 자신의 몸에 자신이 있는 나유였지만 이렇게 아스터를 마주하니 어딘가 자신이 볼품없게만 느껴졌다.

'역시 답은 피어싱이야.'

어쩌면 이게 좋은 기회일 수도 있었다. 케이크 위의 체리처럼 매력 포인트를 더해주는 효과가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게다가 피어싱을 가지고 있던 건 창공 자신이었으니 싫어할 리가 없다.

그렇게 나유는 다시 한번 마음을 굳히며 침대에 똑바로 누웠다.

"긴장 푸세요. 힘이 들어가면 더 아프답니다."

일말의 부끄러움을 간직한 나유와는 달리 아스터는 사명감에 불타는 눈빛으로 나유의 위에 올라탔다. 위치만 보면 여성상위 체위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아스터 자신에겐 그저 편한 자세를 잡는 것일 뿐이다.

그녀의 따스한 손이 나유의 어깨를 슬며시 주무르더니 점점 아래로 타고 내려와 가슴에 닿았다.

"아름다우세요."

"그, 그런가...? 난 네가 더 부러운데."

"크기가 전부가 아닌 셈이죠."

이윽고 가슴을 부드럽게 주무르는 아스터의 손길. 상냥함에서 나온 편안함이 나유의 몸을 감싸고, 같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슬며시 피어오르는 쾌락이 저 안쪽부터 천천히 달구었다.

"편안하게... 힘을 빼고..."

"후우..."

이제 손가락은 젖꼭지를 톡, 톡, 건드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던 움직임은 갈수록 대담해져 살며시 잡아당기고 비틀기도 했다.

"눈을 감아주실래요? 제게 몸을 맡겨주세요."

"응."

따듯했다. 단지 가슴을 주물러질 뿐인데도. 심지어 같은 성별에게. 창공처럼 작정하고 나유를 흥분시키려는 손길이 아니라 긴장을 풀어주려는 손길이라 그런지 성적 흥분은 최소한으로 억제되었다. 분명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유두를 괴롭히던 아스터의 손가락은 점차 세기를 더해갔다. 꾸욱 꼬집고, 쭉 잡아당기고, 딱밤을 때리듯 튕기기도 하고...

고통은 갑자기 찾아왔다.

"흐으으으읏...!"

가슴 끝에서 느껴진 갑작스러운 격통에 나유가 순간적으로 허리를 짓쳐올렸지만 아스터의 엉덩이가 상냥하게 짓눌렀다. 뜨거운 느낌. 상처를 헤집는 금속의 차가운 느낌. 그리고 하얀 빛과 함께 다시 따스한 느낌.

고통은 순식간이었고 생각보다는 참을 만했다. 나유도, 아스터도 몰랐지만 피어싱 자체가 굵은 종류가 아니었다.

"잘하셨어요. 반대편도 곧 할게요."

"응..."

두 번째 고통은 훨씬 익숙하게 다가왔다. 치료를 끝낸 다음에도 한동안 나유의 가슴을 주무르며 쾌감으로 고통을 덮으려 노력하던 아스터는 손짓을 멈추었다.

"가슴은 끝났어요. 한 번 보실래요?"

"...으아아."

자신의 젖꼭지에 링이 달려있는 모습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너무나 음란하고 천박하게 보이기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마 닳고 닳은 여자라 생각하지 않을까.

'뭐 어때.'

그래도 어차피 창공에게만 허락한 몸이었으니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별 상관은 없었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이물감이 살짝 느껴졌고 고통의 잔향도 남아있지만 어쨌든 해냈다는 게 중요했다.

"예뻐?"

"그럼요. 창공 님께서도 틀림없이 기뻐하실 거예요."

그녀들은 잠시 동안 성공을 자축했지만 이제 큰 난관이 하나 남아있었다. 클리링. 제일 민감한 그곳에 구멍을 뚫고 피어싱을 달아야 한다.

"음... 괜찮으시죠?"

"어쩔 수 없잖아. 여기까지 왔는데. 널 믿어."

"절 믿어주시니... 보답해야겠죠.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이미 가슴도 주물러진 참이지만 음부를 자세히 보이는 건 다른 문제였다. 가랑이 사이에 닿는 아스터의 뜨거운 숨결과 대음순을 벌리는 손길. 나유는 눈을 감고 눈꺼풀의 어둠으로 부끄러움을 덮으려 노력했다.

"흐아앗?!"

클리토리스에 닿는 따스하고 축축한 느낌. 아스터는 지금 나유에게 커닐링구스를 하고 있었다.

"불편하신가요?"

"아, 아니... 조금 놀라서. 계속해 줄래?"

"네."

자꾸만 나유의 허리가 들썩거렸다. 이번에는 고통 때문이 아니라 쾌락 때문에. 물론 창공에게 안길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쾌락은 쾌락이었다.

"흐읏, 응읏... 흐응..."

어느덧 무아지경에 빠져든 나유는 제 손으로 가슴에 달린 피어싱을 매만지며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금속 고리가 달린 유두는 전보다 더욱 민감해진 느낌이다. 살짝 만지고 잡아당기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서 자꾸만 폭죽이 터졌다.

질구에서 끈적한 애액이 흘러나와 침대보에 스며들고 있었지만 나유는 그것도 모른 채로 자위에 열중했다. 자위하는 여인과 여인의 음핵을 상냥하게 자극하는 아스터. 때가 무르익었음을 직감한 그녀는 조심스레 피어싱 기구를 집어 들었다.

"........!"

울러펴지던 쾌락의 교향곡이 일순간 정지하고 싸하고 서늘한 고통이 다리 사이에서 느껴졌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정도로 무겁게 몸을 짓누르는 고통. 유두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자그맣게 발작하는 사람처럼 몸을 들썩이던 나유는 잠시 후에야 진정할 수 있었다. 마치 영겁의 시간이 흐른 듯했지만 실은 채 30초도 지나지 않았다.

"다... 끝났어요. 수고하셨습니다."

본래 모습을 감추고 있던 나유의 클리토리스는 피어싱에 꿰어진 채 음순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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