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떠돌이들-154화 (154/178)

〈 154화 〉 피어싱 (3)

* * *

"괜찮으신가요?"

"조금 찌릿찌릿하기는 한데."

나유는 제 가슴에 달린 유두링을 튕기며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당분간 조심이야 해야겠지만 아스터가 치료를 했으니 감염 우려는 아마도 없지 않을까.

"나중에 가면 아픈 느낌은 전혀 없지 싶어. 어색한 건 뭐어... 차차 적응되겠지. 그나저나 너 아니었으면 진짜 어떡할 뻔했냐."

"과찬이세요. 신성력을 이런 곳에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 혹시 교리 위반이야?"

"아니요."

피어싱 뚫는 데에 신성력을 이용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 교회법 위반은 아니었지만 느낌이 이상하긴 이상했다. 신성하고 고아한 힘을 저속한 것에 쓰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 다행이네. 그것보다 아스터 너. 손놀림 장난 아니던데?"

"네, 네?"

"아니지. 손만 잘 썼나. 혀도 잘 쓰고. 우와... 꼭 여자랑 해 본 사람처럼."

"그, 그, 그런! 아니에요!"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소리를 치고 그래."

얼굴이 빨개진 채로 항변하는 아스터와 시원스레 웃는 나유. 방금 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만 했으면서 막상 끝나고 나니 때아닌 부끄러움이 내려앉은 모양이었다.

"그냥 그렇게 하면 좀 더 편하지 않을까 하고..."

"응. 맞아. 그냥 바늘부터 갖다 댔으면 무진장 아팠을걸. 그런데 진짜 뭐야? 어디서 연습이라도 한 거야?"

"흠, 흠! 그냥... 아우... 밤에 저 혼자 하다보니..."

"오."

"다른 분들께 말씀하시면 안 돼요! 지, 진짜로 죽어버릴지도 몰라요..."

"그럼 안 되겠네. 아스터가 죽으면 큰일이니까. 그나저나 사제도 자위를 하는구나."

수치와 죄책감이 뒤섞인 표정. 아스터는 손으로 두 뺨을 감쌌다.

"권장하지는 않지만... 요새 창공 님이 안아주시질 않았으니까요..."

"그렇구나."

나유도 이쯤에 이르러선 웃기만 할 수 없었다. 임신 초기인 아린이야 그렇다 치고 그녀와 아스터도 창공과 잠자리를 가진 지 오래됐다는 건 분명 문제였다.

"사실 말이지. 내가 전에 이런 걸 봤었거든."

"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아스터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륀이 한밤중에 알몸으로 개목줄을 차고 산책을 나섰다는 것. 창공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보통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차마 그런 일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아스터는 충격과 공포로 멍하니 나유를 바라봤다.

"그래서 내가 걔 머리를 좀 쳐 주면서... 아스터? 야, 아스터."

"...아! 네... 에..."

"아무튼 그래도 네 가족이라서 심한 말은 못 하겠는데 어우... 그거 보고 진짜 얘는 좀 정상이 아니라고 그 생각이 딱 들더라고. 다음에 한 대 빨면서 내가 본 게 맞기는 한 건지 곰곰이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니까? 세상에, 그렇게 하는데 창공이가 안 넘어가고 배겨?"

"그렇죠. 그렇죠. 언니가 비겁한 수단으로 창공 님을 유혹했으니까요. 그분께는 아무 잘못 없어요."

이렇게 두 여인은 륀이라는 공적에 대한 적의를 불태우며 전의를 날카롭게 벼렸다. 적대적 경쟁자가 앞서나가는데 아무것도 못 하고 바라만 보는 건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뭔가 신선한 자극이 필요해. 애완동물처럼 목줄도 차서 개처럼 구는 여자가 있는데 우리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던 거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 설마 저희도 목줄을..."

"그건 아니야. 이미 륀이 써먹었잖아. 우리가 해도 효과가 없어."

"으음... 혹시 따로 생각이 있으신가요?"

"있지."

나유는 초조한 아스터에게 비장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가 함께 창공일 상대하는 거야."

"...이해가 잘."

"그러니까 오늘 밤 같이 가자는 거지. 가서 같이 유혹하자고. 잠도 같이 자고."

"네...?"

난교 제의. 아스터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린다. 그녀가 창공 일행에 들어와서 새롭게 배운 성 지식이 이제껏 배운 성 지식을 뛰어넘는 수준이니... 난교라는 게 이론적으로는 몰라도 실질적으로 가능할 거라고 생각조차 못 해본 그녀로선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긴 나유도 아린과 함께 쓰리썸을 했을 때엔 잠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으니 성직자인 아스터는 오죽하겠는가.

"아무 걱정 하지 마. 난 아린이랑도 해 본 적 있으니까."

"엣, 네? 아, 아린 님과 함께... 창공 님을?"

"아 그렇다니까? 그때 창공이도 좋아서 죽으려고 했다고. 근데 내 생각엔 아린이가 그때 임신한 것 같아. 으이구..."

"아니 그게."

"어쨌든 이 방법밖에는 없어. 아스터. 우리가 가면 창공이는 무조건 수락이야. 진짜 이건 남자라면 거절할 수가 없다니까?"

확답은 주지 않지만 기색으로 보건대 아스터는 심히 갈등을 하고 있었다. 이제 필요한 건 딱 하나. 쐐기타.

"잘 생각해. 우리가 오늘 안 가면 륀이 또다시 이기는 거야. 장담할게. 이 피어싱 원래 륀에게 달려고 창공이가 가져온 거라니까?"

"으으읏...!"

잠시 머리를 숙인 채 골똘히 생각하던 아스터가 다시 고개를 들자... 그녀의 얼굴은 결의에 가득 차 있었다.

"하, 하죠! 어떻게든 창공 님의 시선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 대답만 기다렸다구.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게 살짝 분하기는 하지만 아스터 너라면..."

"저도 열심히 도울게요! ...그런데 어떻게 하죠?"

"그냥 가서 따먹히면 되는데?"

"따, 따먹히... 다니..."

* * *

저녁 식사 후, 창공은 제 방 침대에 누워 손가락에 담배를 끼우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지금 당장 피우고는 싶은데 자칫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다. 피를 토하는 순간에 누군가 그의 방에 찾아온다면 병세를 들키게 되니까.

륀이 들어온다면야 아무 상관 없지만 그녀는 점심 이후로 주욱 부재중이었다. 우체국에 가서 편지만 부치면 되는데 뭐가 이리 오래 걸리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총명한 여자가 아닌가. 알아서 잘 하리라는 생각에 딱히 걱정은 들지 않았다.

따라서 아마도 피어싱을 가져갔으리라 추측되는 나유가 결국에는 찾아오지 않을까. 식사를 할 때에도 륀이 없는걸 보고 신난 표정을 지었으니 더욱 오늘 밤을 노릴 것이었다.

어떻게 했을까. 세 개를 다 달았을까, 아니면 유두링만 달았을까. 혹은 겁이 나서 하나도 못 달았을 수도 있다. 분명한 건 그녀가 창공을 찾아올 거라는 사실.

'뭔 의무방어전도 아니고.'

하지만 그가 누굴 탓할 수는 없다. 계속해서 륀만 상대하기로 결정한 건 다름 아닌 창공 자신이었으니까. 이런 날이 찾아오게 될 거라고 예상이야 했었지만 그게 하필 오늘이 될 줄은 몰랐었다.

그래도 의무방어전이라는 말과 달리 귀찮거나 꺼려지지는 않는다. 나유는 매력적인 여자였고 그녀가 몸이 달아 스스로 달려든다면 좋은 일이니까. 실제로 갑작스레 생긴 병만 아니었어도 매일매일 돌려가며 여인들을 취했을 것이다.

노크 소리가 들린 건 창공의 생각이 그쯤에 이른 때였다.

"창공아. 나윤데."

"들어와."

놀랄 것도 없는 나유의 방문. 생각대로 일이 흘러가는데 놀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의 생각에서 빗나간 게 있었으니, 아스터의 등장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래."

창공은 순식간에 자초지종을 파악했다. 아마 나유는 피어싱을 달았으며, 아스터의 도움을 받았을 거라고. 그리고 그 보답으로 오늘 쓰리썸을 제안했을 거라고 말이다. 괜찮은 생각이었다. 혼자서 다는 것보다는 남이 달아주는 게 나을 테니. 륀에게는 스스로 달게 할 생각이었지만.

"나유야."

"응."

"네가 가져갔지?"

"...에헤헤."

긴 말은 필요 없었다. 이제 와선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사실. 나유는 멋쩍은 웃음소리만을 흘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멋대로 가져간 건 미안한데, 그게 그러니까."

"잘했어."

"어?"

"항상 스스로 노력해야지. 안 그래? 그래서 다 달았어?"

"으응..."

그는 속으로 감탄했다. 정말로 세 개를 다 달았단 말인가. 아무리 아스터의 도움이 있었더라도 클리토리스에 구멍을 뚫는 건 꽤나 두려웠을 텐데.

아무래도 나유는 창공의 생각보다 더 독한 마음을 품은 모양이었다.

"돌려달라는 말도 못 하게 내가 다 달아버렸지."

"벗어 봐."

창공의 말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옷을 벗기 시작하는 나유. 옷자락이 몸을 스치는 소리. 브래지어의 후크가 풀리는 소리. 팬티가 다리 안쪽의 부드러운 살을 타고 내려가는 소리.

그리고 드러난 풍경. 나유의 먹음직한 두 알가슴 끝, 반짝이는 두 개의 고리.

다리 사이 은밀한 부분에 더는 숨을 수 없도록 클리토리스를 붙잡는 고리.

대체로 적극적이었던 나유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지 두 팔을 딱 붙인 몸을 슬며시 비틀었지만 필사적으로 가리는 것을 참고 있었다. 창공이 충분히 그녀를 감상할 수 있도록.

"어, 어때? 널 위해서 준비했는데. 마음에 들어?"

"나유야."

그는 오랜만에 정말로 흥분되는 느낌이었다. 여자를 완전히 정복했다는 이 느낌. 그를 위해서 몸에, 그것도 소중한 곳에 피어싱을 달게 했다는 이 느낌.

정말로 최고의 여자였다. 이제 창공의 머릿속에는 아무래도 륀이 다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따윈 날아가고 없었다. 비록 우연이었지만, 필연처럼 잘 어울렸다.

"오늘 개처럼 따먹을 테니까 각오해."

"응."

"제발 그만해달라고 빌어도 안 멈출 거야."

"응... 고마워..."

나유는 날아갈 듯한 기분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환호했다. 간헐적으로 느껴졌던 고통이나 어색함 따윈 이제 없다. 좋은 시험 점수를 받은 뒤에 그동안의 노력이 힘들기는커녕 보람차게 느껴지듯, 창공의 총애를 얻을 수 있다면 피어싱 따윈 이제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아스터. 너는 어떻게 해 줄까."

"저, 저는..."

물론 아스터도 찾아온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다.

"창공 님께서 만족하실 때까지 마음껏 범해주세요... 용서를 빌어도... 제발 쉬게 해달라고 애원해도... 제 몸은 오로지 창공 님을 위해서 준비됐으니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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