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떠돌이들-162화 (162/178)

〈 162화 〉 드러남 (4)

* * *

모든 사람은 죽는다. 오빠는 사람이다. 오빠는 죽는다.

너무 간단하고 당연해서 부정할 생각도 없다. 그래. 오빠는 태어난 이상 죽는 사람이다.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그런데 그게 왜 지금이어야 하나.

"..."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방 안에서, 난 오빠를 말없이 응시했다. 오빠는 입을 다물고 천장을 쳐다보고 있다. 싸늘하다. 이곳은. 이게 죽음의 온도인가. 죽음의 느낌일까. 스무 살 남자와 열아홉 살 여자가 함께 있는 방 같지 않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 방구석에 있는 의자를 집어 들고 침대 옆에 놓았다. 스쳐 지나가는 바닥의 나무 장판. 새겨진 무늬들. 시야에 와닿는 느낌이 어색하다.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아니라 화면 너머의 장면을 보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다. 모든 게. 죽어? 누가? 오빠가? 저승사자가 찾아와도 말없이 노려보는 걸로 내쫓을 것만 같던 오빠가?

의자에 앉는다. 살며시, 정말 살며시 앉았는데 털썩 주저앉는 느낌이 났다.

오빠는, 이때까지도, 날 바라보지 않는다.

시체처럼 누워서, 위를, 내 얼굴이 아닌,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곧 마주하게 될 모습이 마치 이렇게 생겼다고 알려주는 느낌이다.

아니, 그럴 리 없어. 이렇게 건강한데.

어쩌면 이 모든 건 질 나쁜 장난이 아닐까? 그냥, 내가 너무 미워서. 구실만 있으면 건방지게 구는 내가 너무 짜증 나서. 하늘이를 낳겠다는 내 결심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런 장난을 치는 게 아닐까?

유머감각 따위 한 스푼만큼도 가지지 못한 오빠지만, 뒤틀린 성격과 밑바닥에 남아있는 장난기를 싹싹 긁어모아 만든 깜짝 이벤트가 아닐까?

아니, 그래야만 한다. 오빠가 죽다니, 내 곁을 떠난다니 말도 안 돼. 그건, 그런 건 있을 수 없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아린아."

오빠의 목소리. 메말랐지만, 그래도 내겐 목마른 사람에게 주어진 한 방울의 물처럼 달콤했다. 살아있다. 오빠가 살아있다는 증거. 내게 말을 걸어주잖아.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지 말고. 난 박물관 전시품이 아니니까."

오빠다. 이건 분명 오빠다. 저 쓸데없는 사족과, 냉소적인 말투. 아직 살아있어. 오빠는. 차갑지만, 따스하게.

"그... 역시 거짓말이죠?"

"..."

"있잖아요, 그러고 싶을 때. 이유 없이 못된 장난치고 싶은 그런 때. 이해해요. 저도 가끔 그런 때 있으니까. 광산에서 다 같이 일했는데 오빠만 병에 걸리다니, 그것도 건강한 오빠만 병에 걸리다니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말이 안 되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저는 못 속여요. 헤헤..."

"..."

"처음에는 속을 뻔했는데, 그래도 저는 못 속이죠. 잊었어요? 저도 오빠처럼 서울대라고요. 머리 좋은 거라면 오빠한테도 안 뒤지는데 너무 무시당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 살짝 나쁜데요. 그래도 솔직하게 사과하면 용서할게요. 제 뱃속에 하늘이도 있는데 너무 놀라게 하면."

"아린아."

오빠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평소의 그 무감각하면서 싸늘한 시선을 내게 꽂았다. 평소와 똑닮은 그 느낌에 안도하면서도, 뭔가 다른 게 느껴져 몸이 일순간 움찔거렸다.

"헛소리나 할 거면 나가."

"아..."

아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없어.

...

정말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게 아니라?

아직 대상 영속성이 채 형성되지 못한 어린아이들처럼, 숨바꼭질을 하며 눈만 가리면 자기도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어린아이들처럼 속이는 게 아니라.

끔찍하고 도움 안 되는, 한없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자기 기만을 이용해 현실에서 도피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 으, 아..."

눈물이 흘렀다. 얼어붙은 듯 차가운 눈물이.

받아들인다는 게,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게 이제껏 살면서 이렇게나 무서운 행위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절대로 꺾이지 않을 거라는 다짐이 얼마나 무의미한 다짐이었는지 몰랐다.

이제는 알겠다.

"왜, 왜...? 왜요? 대체 왜...?"

나는 질문했다. 오빠에게... 정확히는 세상에.

왜 오빠가 죽어야만 하냐고. 다른 사람들은 걸리지도 않은 폐병에 걸려 죽어야만 하냐고.

오빠는 그런 나를 보기도 싫은 건지 내 시선을 피하고 있다. 아니, 내 시선이 오빠에게 닿지 않는다. 흐리다. 보이는 모든 게. 눈을 가득 덮은 눈물로 들어오는 상은, 너무나 물렁물렁해서 물을 끼얹은 그림처럼 어설프고 엉망진창이었다.

"왜...?"

세상은 잔인하다.

열아홉 살 엄마의 말에도 아무 응답이 없으니까.

홀로 울어도, 질문해도 대답 없는 세상. 그런 사람들을 위해 변호사가 되기로 했건만, 나를 위한 변호사는 한 명도 없구나.

또 다른 세상인 오빠조차.

'이래선 안 돼!'

눈물을 닦는다. 닦아도 끊임없이 흐르지만, 마를 때까지 닦는다. 마음을 다잡는다. 나는 보호막이다. 외롭고 지친 사람들의 보호막이다.

보호막에겐 보호막이 없는 법.

"언제... 언제부터 알았어요?"

"한 달이 조금 넘었을걸."

조금 전보다는 나은 질문이었는지, 오빠는 바로 대답했다.

"그럼... 내가 하늘이를 가졌다고 했을 때는 이미..."

"알고 있었어."

"그래서 그렇게... 말한 거였어요? 오빠가 곧..."

"아니. 멀쩡했어도 지우라고 했을 거야."

"...하늘이가 들어요."

"이 시기에는 아직 아니야."

싸늘하고, 무정하고, 화가 치밀 정도로 남을 배려하지 않는 말투.

그래도 좋았다. 그런 오빠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까. 그래서 좋았다. 이젠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를 이 시간이라.

"오빠는 그런 말이 좋아서 그렇게 하는 건가요, 아니면 원래부터 그런 식으로밖에 말하지 못하는 건가요?"

"그럼 너는 원래부터 남의 말에 트집 잡기밖에 못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냐?"

"됐어요! 오빠 같은 사람 만난 내 잘못이지."

"알면 됐어."

되긴 뭐가 돼.

엄마가 미안해, 하늘아. 이런 사람이 네 아빠라서.

"...교수님은 병에 대해서 원래부터 알고 있었죠?"

"내가 처음 말한 사람이었으니까."

"왜 다른 사람들에겐 숨겼는데요? 이제라도 알았으면 되지 않았냐느니 그런 말 말구요."

"잘 알고 있네.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잖아."

"바보 멍청이."

"넌 항상 한 마디도 안 지려고 그러지?"

"비판은 비판당하는 사람보다 비판하는 사람을 더 잘 반영한다던데요."

"네 입에서 나온 말이라 그런지 정말 신뢰가 가네."

앓느니 죽지.

"이제 내가 말하지 않은 이유를 알겠냐?"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날까 봐?"

"너만 해도 벌써 날 살아서 움직이는 시체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아니."

"아니라고 하지 마. 상상은 했지만 역시 직접 당해보니 정말 짜증 나고 불쾌한 일이야."

결국 그 멍청하고 쪼잔한 자존심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거다. 다른 사람들에게 걱정 받기 싫어서, 도움받기 싫어서.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서.

도대체 왜?

오빠. 아플 때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요. 내가 불편하면 도움받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요. 오빠가 이렇게 쓰러지면 오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슬퍼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게 왜 싫은데요? 대체 왜?

말이 목구멍 밑까지 차올랐지만 난 끝내 그것을 내뱉지 않았다. 의미 없는 질문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륀은 날 귀찮게 안 하고 필요할 때 날 지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다른 사람들한테 티도 안 내고. 실제로도 그랬잖아. 오늘부터는 그것마저 불가능해졌지만."

"이제부턴 어떻게 할 생각이죠?"

"아무래도 륀은 날 공기 좋고 물 좋은 자기 고향에 처박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거기 가서 요양이라도 하면서 내 목숨줄을 붙들고 있을 생각이겠지. 그런데 그렇게는 안 하려고."

"그렇게 해요."

딱 잘라 말했다.

"쉬어요. 편하게. 아스터 씨도 있고, 교수님은 똑똑하시니까 오빠 병에 대해서 연구하면 뭔가 성과가 있겠죠. 오빠뿐만이 아니라 우리 전부 좀 쉴 필요가 있어요. 그렇게 해요. 고향이라는 곳이 산골짜기든 해변가든 가서 쉬어요. 적어도 동굴이나 흙길 위보단 낫겠죠."

"거기서 박제된 표본 꼴이 돼서 서서히 죽어가라고?"

"아직 죽는다고 정해진 건 아니잖아요."

"정해졌어."

"오빠... 오빠... 오빠...!"

결국 눈물이 터졌다. 뜨거운 뭔가가 기도를 타고 넘어와 목이 메고, 차분하던 내 목소리는 울부짖는 애원으로 변했다. 어두컴컴. 빛 하나도 없는 밤길을 걷는 공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오빠가 없어? 없다고?

"제발 좀 그렇게 해요! 오빠를 위해서 그렇게 해 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그냥 그렇게 해요! 제발! 제발 좀! 내가 보기 싫으면 난 보이지 않는 곳에 조용히 박혀 있을게요! 하늘이가 싫으면 책임지라는 말 따위 안 할 테니까 제발 그렇게 해요! 돈도 필요 없어! 그냥 좀... 그냥! 제발!"

이불을 헤쳐 오빠의 손을 부여잡고, 거기에 얼굴을 비볐다. 축축하다. 내 눈물 때문이다.

이 손이 식는다니, 딱딱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않게 된다니, 믿을 수 없다. 이렇게, 이렇게나 느낌이 생생한데. 분명 살아있는데. 살아있는데 죽는다니.

"딱 이십 년만... 하늘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만... 살아있겠다고 약속해 줘요..."

"..."

"어려워, 어려워요...? 그럼... 그럼 십 년만... 아빠 얼굴은 확실히 알고 있어야죠. 네?"

"..."

"십 년도 안 되면 오 년은 어때요...? 오빠랑 제 자식이니까 분명 머리도 좋겠죠... 오, 오 년이면... 아빠 얼굴부터 목소리까진 충분히 기억하고도 남을 테니까..."

"..."

"앗, 미안해요. 미안해요... 제가 욕심부렸죠... 삼 년. 아, 아니. 이 년만. 그 정도면 젖은 충분히 뗄 테니까. 괜찮아요... 오빠 보고 뭐 하라고는 안 할게요. 그냥 있어주기만 하면..."

"..."

"아니면... 정말 아니면... 그냥... 하늘이가 세상으로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제발요..."

대답은 없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