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 남겨진 사람들
* * *
할 일을 다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그것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웃음소리를 남기고 떠나간 프리그가 어디로 향했는지에 대해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확히는, 그럴 수 없었다.
믿지 못할 광경. 서창공이, 등에 칼을 맞고,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몇 명인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간절한 목소리와 마음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섯 사람이 순식간에 절벽 끝자락으로 달려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아찔하게 높은 절벽. 땅이 뚝 끊긴 자리 저 밑에는 거센 급류가 흐른다. 급류 외엔 보이지 않는다. 가령 떠내려가는 사람 같은.
"창공아아아아! 창공아아아! 대답해애애애!"
나유가 목놓아 외쳤으나 대답은 없었다. 오히려 절벽과 절벽 사이를 타고 애타는 외침만 메아리쳐, 찾는 대상이 이미 사라졌음을... 혹은 대답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빠, 빨리... 빨리요..."
말을 자꾸만 더듬거리는 아스터. 입술이 파들파들 떨리고, 어금니가 부딪히며 딱딱, 소리를 낸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녀에게 무어라 하지 못했다.
"찾아야, 찾아야 해요... 빨리...!"
그래. 찾아야 했다. 저 아래로 추락한,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서창공이라는 남자를.
하지만 어떻게?
찾아야 한다는 건 알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엄청난 급류다. 하류로 떠내려갔을 텐데, 그들이 저 물가로 내려가 수색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또, 그때쯤이면 창공은 대체 어디까지 떠내려갔을까.
아니, 애초에 살아나 있을 것인가. 등 전체를 가로질러 난 깊은 검상. 절벽 위에서의 추락. 급류. 저온. 약해진 몸.
찾는다?
무엇을?
"오빠... 아... 아아아..."
"김 상!"
히사시가 급격히 무너지는 아린의 몸을 부축했다. 정신을 잃은 사람의 몸은 너무나 무거웠다. 그토록 가벼운 아린조차. 절망의 무게가 더해진 탓일까.
"..."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는ㅡ빛을 잃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ㅡ사람도 있었다. 륀 퐁파두르. 세기의 천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이럴 시간 없다고! 빨리 움직여야 돼! 창공이가 떠내려갔다니까? 택이 오빠! 뭐하고 있어!"
"나유야."
"내가 뭐! 아 빨리이! 야, 이 미친년아!"
짜아악!
날카로운 소리. 륀의 고개가 세차게 돌아갔다. 하나 나유의 매서운 손길에도 불구하고, 륀은 도무지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빨리 안 움직여? 마법인지 뭔지 좀 써 봐!"
"나, 난... 그러니까..."
"쓸모없는 병신아!"
짜아악!
이번엔 그녀의 고개가 반대로 돌아갔다.
"아스터! 너라도 따라와!"
"아아... 제발... 아, 신이시여..."
머리가 떨어져 나간 몸이 이러할까. 단지 한 사람 사라졌을 뿐인데, 기능이 정지해버렸다. 먼저 달음박질해 사라진 나유와 아스터를 제외하면 이 자리에 남은 모두가, 몸은 무기력하고 머리도 멍했다.
바보처럼 한 가지 생각밖엔 할 수 없다.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어쩌면 나유와 아스터도 머리 잘린 몸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지 머리가 잘리기 전, 최후의 전기신호를 받아 마지막으로 파닥거리는 몸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창공아아아아아...!"
어미가 잃어버린 자식을 찾듯 애타는 목소리.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아련한 세월의 밑바닥을 뚫고 올라온 색깔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남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퍼뜩, 깨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에 망치를 맞은 것처럼.
'젠장, 씨발... 이러면 안 돼.'
어택이 주위를 둘러봤다.
'창공이가 없으면 나라도 정신 차려야지. 정신 차려, 이 병신 같은 놈아!'
허벅지를 주먹으로 한 대 내리친 그는 히사시에게서 아린을 건네받아 안아들었다.
"히사시... 륀! 빨리 가자. 시간이 없어."
"형님. 서 상은 사, 사, 살아 있..."
"살아있을 거니까 빨리 가야 해! 정신 차려! 륀! 쓸만한 마법은?"
"...일단 물가까지 내려가야 해."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죽음의 예감과 냄새. 그 지독한 감상을 애써 흩어놓으며, 그들은 왔던 길을 되짚어 달렸다. 기절한 아린을 싸늘한 마차에 눕히고, 방금 전까지는 오르막길이었던 내리막길을 간다. 저 앞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나유의 목소리를 길잡이 삼아.
지체한 시간. 달리는 속도. 물살의 속도.
셋을 가늠한다면.
'살이었어!'
그렇게 뿌리치고 내팽개치는데도 독처럼 스며든다. 창공의 죽음에 대해. 언젠가 죽을 거라고,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고 얼마 전에 고백을 들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 순간까지는 창공이 필요했다. 아직까지는.
'살아있어야 돼!'
그래서 어택은 끊임없이 부정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창공이 무사히 구출된다면, 다시 일행의 하나로 복귀한다면, 정말 성심성의껏 그를 돕겠다고. 이제까지 그러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창공이 죽어야만 하는 그날까지 그러겠다고.
일행의 연장자로서 자기보다 어린 동생에게 의존한다는 자괴감 따윈지 뭔지,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은 결정할 수 없었다. 여건이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할 순 있어도, 일행을 이끌 수 없었다.
그래야만 한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그렇게 될 수 있기까지는 창공이 필요했다. 그를 위해서, 어택 자신을 위해서, 모두를 위해서. 지금은 창공이 필요했다.
'비겁한 새끼라고 욕해도 좋으니까 제발 살아만 있어라! 아직은 아니야. 이렇게는 안 돼.'
시간이 간다. 시간이 가는 만큼 희망도 사라진다. 아직 수색을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벌써부터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애써 붙잡아 보고, 사라짐을 부정해 봐도 그렇다.
'죽어...? 주인... 그 남자가... 그가... 죽는다고...? 이렇게?'
륀도 좀처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 이 모든 상황이 불쾌한 유머처럼 느껴진다. 은근히 자신을 비꼬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자신은 화낼 수도 없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 서창공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정결을 짓밟고, 정신을 무너뜨리고, 긍지를 더럽힌 서창공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그는 죽을 병에 걸렸고, 가장 먼저 륀에게 고백하지 않았던가.
기쁨 한 숟갈. 슬픔 한 사발. 절망 한 방울.
륀은 이것을 사랑이라 불렀다. 그녀를 처음으로 안은 남자에 대한, 노예로서 주인님에 대한 사랑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것은 얼추 맞아 보였다.
한데... 갑자기 알 수가 없었다. 한바탕 꿈에서 깬 기분. 꿀 때는 분명 좋았고, 느낌도 남아 있는데, 깨어난 지금은 어떤 내용이었는지 알 수 없는 꿈을.
반면 히사시는 지독한 현실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오만하고, 차갑고, 계산적인 남자. 하지만 그렇기에 리더로서 선 남자. 서창공.
분명 첫 만남은 그리 좋지 못했다. 노예주들에게 붙어먹은 배신자와 노예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했을까. 실제로 창공은 탈출 과정에서 그를 탄광에 버리고 가려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히사시는 창공을 미워하지 못했다. 대놓고 차갑게 대하고,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위험분자 취급하고, 무기를 잡지 않았던 아린과 함께 무능한 밥벌레로 대접을 받았음에도.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 한심할 정도로 물러터진 성정 때문에. 대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성실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최소한 1인분만 하자고.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일. 필요하지만 화려하지는 않은 일. 그렇게 차근차근하다가 보면, 언젠가 창공이라는 남자가 자신을 인정해 줄 거라고. 그는 무정하되 무감각한 남자는 아니었으니까.
창공은 일행을 더 나은 길로, 미래로 이끌었다. 히사시는 그런 창공의 옆에서 생각했다. 이 남자와 함께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그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절망했었다. 하지만 이내 털어버렸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서창공이라는 남자라면 그깟 병도 털어내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하잘것없는 병이라고 비웃으며,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앞에 보여줄 거라고.
'서 상... 무적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불패가 아니면 어때요. 이 파티는 서 상이 아니면 안 되는데. 당신 이런 곳에서 쓰러질 남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쓰러져서는 안 되는 남자 아닙니까...!'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지 않아야 할 텐데, 아직까지 대답은 없었다.
쏴아아
어떻게 여기까지 내려왔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렸는지 알 길이 없다. 단지 그들은 거기에 있었다. 물살의 폭은 대략 13m 정도. 그러나 감히 저편으로 건너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물살이 거칠고 빠르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고꾸라져 물에 빠질 테고, 그렇게 되면 곳곳에 튀어나온 바위에 세게 부딪혀... 절명한다.
설령 창공이 물에 떨어졌을 때까지 살아있었다 가정해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것도 등을 깊게 베인 몸으로?
"창공아아아! 제발 대답해! 제발!"
"창공 니이이임! 어디 계세요! 창공 님!"
이 급류에선 씻어낼 수 없는 불길한 냄새가 났다. 나유와 아스터의 애타는 외침으로도 그것을 덮을 수 없었다.
몸에서 힘이 빠졌다. 찾을 엄두도 나지 않는다. 바닥에 주저앉아, 흐르는 물길만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아... 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찢어지는 비명소리. 엎드려서 주먹으로 땅을 치는 나유.
"으아아아아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