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 남겨진 사람들 (3)
* * *
머리가 아프다.
믿고 있던 동생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아마도 죽었겠지. 상식적으로 그 높이에서 떨어지고 어떻게 살아남았겠나.
창공은 딱히 인간적이진 않았다. 같이 일하다가 언제고 퇴근 후에 한잔하러 나가고 싶어지는 그런 인물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믿음직했다. 어떤 위기 상황에 빠져도, 난관에 부딪혀도 걔를 바라보며 답을 요구하면 길이 나왔으니까. 나 같은 놈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사람이었다. 만나서 좋은 동생이었다.
이제 없지만. 그래, 모든 문제는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이제 창공은 없다. 그 사실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도대체 내 앞에 벌어진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씨이발... 창공아...
형은 벌써부터 너 없으니까 뒤질라 그런다...
"떠날래."
"떠나다니."
대체 내가 어쩌면 좋지?
네가 없어져서 삶의 희망 따위 전부 잃어버린 듯한 나유를, 영혼은 빠져나가고 흐느적대는 몸만 남은 나유를 어쩌면 좋으냔 말이다.
"이제... 이제 여기 있고 싶지 않아."
"나유야."
"없어, 없다고. 어딜 둘러봐도 창공이가 안 보여. 너무 아파. 응...? 내가 바란 건 그냥 옆에 있는 거였는데... 왜 그것도 안 된다는 거야? 세상, 세상이... 세상이 왜 이래...?"
흐느끼는 나유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나도 힘든데 더 힘든 남을 돕는 것쯤이야 많이 해봤으니 상관없지만... 이건...
"엄마 아빠 얼굴은 사진에서밖에 안 보이고... 그거 그거면 됐는데... 슬프지만 그거면 됐는데... 창공이는 어디서 봐야 해? 꿈속에서? 그건 싫어... 왜, 왜, 왜...! 이건 아니잖아...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나유야. 일단 진정하자... 응?"
내 스스로가 역겨울 지경이다. 이런 말밖에 해줄 수 없어서. 대가릴 좀 굴려봐, 어택 이 새끼야. 뭐 그럴듯한 말이라도 만들어 보라고.
"어, 어어, 어떻게...? 죽었어... 죽었다구... 너무 아파... 아파서 죽을 것 같은데... 내 심장이 찢어져도 다시는 창공이를 볼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프다고... 으흐흐흑..."
"하..."
진정하자. 일단 나부터 진정해야지 남을 진정시킬 거 아니냐.
그런데 진정시킨 다음엔?
다음엔 뭘 해야 좋지?
당장 우린 어디로 가야 하지?
내가 그동안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다녔단 말야? 동생에게 모든 짐을 다 떠넘기고, 난 그냥 가이드 따라 유람하듯 다녔다고? 형이라는 새끼가 동생한테 의존만 하면서 꼴에 연장자라고 몇 마디씩 지껄였다고?
도대체 나란 놈은 얼마나 역겨운 새끼인가.
"떠날... 거야..."
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허공만 바라봤다. 이젠 모르겠다. 지구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그 이전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차라리 탄광에서 맞아죽는 게 나았을 텐데.
"어딘가. 죽음과 가까운 곳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칼을 휘두르는 것밖엔 없잖아. 아무 생각 없이... 그럴 수 있는 곳으로. 어딘가엔 그런 곳이 있을 거야."
"위험해."
반사적으로 아무 의미 없는 말도 내뱉고.
"상관없어. 아니, 오히려 좋아. 사후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창공이와 만나지 못한다 해도 좋아. 적어도... 삶보다 고통스럽지는 않을 테니까."
"..."
"오빠. 나를 봐."
나유의 말을 무의식적으로 따랐다. 다시 마주한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하얗게, 하얗다기보단 창백하게 표백되어 있었다. 생기와 활기 넘치던 나유는 이제 없다.
"떠날래. 이십 년 조금 넘게 살았어. 짧은 인생일지도 몰라. 그치만 외로움 속에서 지낸 이십 년이라면 충분히 길었다고 생각해. 적어도 마지막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나 떠날래."
기어이 난 깨달았다.
말릴 수 없을 거라고. 나로선.
"그렇게 해..."
"아린이에겐... 미안하다고... ...내가 말해야겠지...? 많이... 슬플 텐데. 아스터도..."
"이해할 테니 걱정하지 마."
"킥... 나 같은 이기적인 년 이해할 필요 하나도 없는데."
이걸로 괜찮은 건가? 그냥 이렇게 나유를 보내줘도 괜찮은 건가?
죽겠다잖아. 죽으러 간다잖아. 좀 말려봐야 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어떻게 하녀고? 씨발, 너란 새끼는 그런 새끼지.
골치 아픈 일, 책임지는 일은 하기 싫어서 앞으로는 안 나서고, 어떤 빡대가리라도 다 할 수 있는 그런 마음 편한 일이나 맡으려고 하지.
머리 쓰는 복잡한 일은 자기보다 더 똑똑하고 믿음직한 누구한테 맡겨 두고, 넌 뒤에서 꿀이나 빨면서 재는 거야. '여긴 내가 나설 곳인가? 아니면 나서지 말아야 할 곳인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꼴을 보라고. 뭐가 되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뻔한 말이나 지껄일 거면 왜 살아있지? 차라리 죽을 자리 찾아간다는 나유가 백 배는 낫다. 적어도 쟤는 뭘 해야 할지 알고 있잖아.
씨발, 내일 밥을 처먹을지 빵을 처먹을지도 모르는 새끼랑은 다르게.
...
과연 그럴까?
내 스스로 결정해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나유야."
"응...?"
하나 있잖아.
"떠나. 떠나는 건 좋은데... 나도 좀 따라가자."
"...오빠가 왜?"
"창공이는 떠났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내 말에 나유가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이전 너도 떠난다고 하네. 그래. 그건 네 마음이야. 이 개 같은 세상, 희망이 없다면 죽는 건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어. 근데... 빌어먹을, 네가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두면, 난 정말로 창공이한테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는 병신 같은 형이 되어버릴 것 같다고."
"..."
"그러니까 내 말은... 한 번 같이 가보자는 거지. 거기가 어딘지는 몰라도."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오빠는 아린이를 지켜."
"너도 나한텐 지켜야 할 대상이야."
둘 다 그렇다. 둘 다 지켜야지. 내가 제일 연장자니까.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이제까지 난 둘 다 고르지 못하고 병신같이 가운데에서 입바른 말이나 해댔다.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라며.
하지만 저번에, 아린이가 임신 사실을 고백했을 때 깨달았다. 그런 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뭔가를 선택하면, 다른 무언가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모두를 커버할 수는 없으니까.
그럼 하나라도 확실하게 지키겠다. 이 세상엔 더 이상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며, 죽을 자리를 찾아간다며 일행을 떠나려는 나유를 따라가겠다.
이 길의 끝에 나유의 선택지가 정말로 죽음밖에는 없다면, 그 선택대로 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내가 함께 하겠다.
이게 내가 선택한 길이다.
* * *
"그럼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깜짝 놀랐다.
아니지... 내 말에 내가 놀라면 어쩌자는 거냐.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긴 하다만.
"야, 히사시. 이거 장난 아니야."
"저도 장난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지만, 그래도 진심이다. 진심이었기에, 형님의 말에 단호하게 반박했다.
"히사시 오빠는 또 왜...?"
남 상의 빨개진 눈동자. 마주하기 어렵다. 그 동그란 눈동자에는 의문과 의혹이 서려있다. 하긴 나 같은 겁쟁이가 갑자기 내뱉었으니 그저 기분 따라 한 말이라 의심받아도 할 말은 없다.
아니. 할 말이 왜 없어.
"이번에는 앞에 있는 사람이 되어 보려고요."
"앞에 있는 사람..."
"전 그동안 늘 뒤에 있는 사람이었죠. 밥이나 하고, 잡일이나 하면서. 네 여성들 중 셋은 무기를 들고 앞에 나가 싸우고, 김 상도 악기를 잡고 멋지게 마력이 담긴 연주를 했습니다. 전 그동안 뭘 했을까요? 일곱 명 중에서 유일하게 뒤에 숨어있는 사람이었던 말입니다."
"야. 우리들 중 그 누구도 너보고 비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없어. 밥하는 게 어때서. 군대에서도 조리병들 보고 비겁하게 밥이나 한다고 하는 놈 있을 것 같아? 싸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마."
"형님이야 그렇겠죠. 다른 분들도 그럴 테죠. 문제는 접니다. 저."
서 상의 죽음 뒤로 안개가 잔뜩 끼어 흐리던 머릿속이 차차 개이는 기분이다. 인정받고 싶던 남자는 이제 없다. 그러나, 아직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나 스스로 인정받을 사람이 되자. 뭐라도 하자.
"저 스스로 인정할, 이 고다 히사시가 스스로 남자라고 자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단 말입니다, 저는. 탄광에서 비겁하게 앞잡이가 되거나, 남들은 다 목숨 걸고 싸우는데 혼자 단검 붙잡고 벌벌 떠는 그런 일 말고요."
마치 비타의 지하 동굴에서 있었던 일처럼. 마나로 빛나는 프라이팬이라니, 얼마나 우스웠나. 하지만 난 그게 너무 감격스러웠다.
이제야 나도 싸울 수 있다고. 이제 나도 당당한 전투원이라고.
적당하게 학교를 나와, 적당하게 자취하며, 적당하게 어디 미용실에 취직해서 적당하게 손님들 머리를 자르며 몇 푼은 저금하고 몇 푼은 쓰고...
그런 인생도 나쁘진 않겠지. 그렇지만 어디엔가는 더 빛날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지금이야말로 그 길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저까지 떠나버리면 김 상의 곁에는 륀 상과 아스터 상... 둘뿐이겠군요. 제대로 사과드릴 생각입니다. 사과는 드리겠지만... 저도 남자란 말입니다."
내가 이렇게 격정적으로 말했던 마지막 때가 언제였지?
어쩌면 인생 처음일지도 모른다.
"모든 걸 다 잃고 죽을 자리 찾으러 가겠다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못 본 체하고 뒤에 남아서... 이번에도 뒤에 남아서 기다리기는 싫습니다."
"히사시. 네가 가서 뭘 하려고."
"뭐라도 하겠지요!"
'내가 저기에 가서 뭘 하겠느냐.', '더 능력 있는 남에게 맡기고 난 남겨진 일이나 하면 된다'.
이런 생각들이 지금의 날 만들었다. 그저 주어진 일이나 성실하게 하면 그게 정답일 줄 알고.
그런데 그게 성실한 건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그럼 반대로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은 성실한 일인가?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형님과 남 상을 따라간다면 내게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이. 내가 진정한 나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
사실 거창한 말 따윈 다 필요 없다. 그냥 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나와 같이 생사고락을 함께 해 온 사람이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는 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