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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떠돌이들-171화 (171/178)

〈 171화 〉 남겨진 사람들 (4)

* * *

기도를 얼마나 드렸는지 모르겠네요.

하루 세 번 아침 점심 저녁으로 드려야 하는 정규 기도 이외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눈물이 나오면, 눈물이 그치면 기도를 드렸어요.

처음에는 그랬답니다. 창공 님의 영혼이 편안히 휴식을 취하시도록, 슬픔 속에 잠긴 분들이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제 마음 또한 슬픔과 고통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기도를 드렸답니다.

그렇지만... 수십수백 번을 반복한 끝에 결국 무엇을 위하여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어버렸어요.

신께선 답하지 않는다. 우리가 기도로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물음뿐이다.

신학생 생활을 하며 수없이 들었고, 사제 서품 이후에도 수많은 일과 맞닥뜨리며 경험적으로 깨닫게 된 말. 분명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너무나 당연하여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이 경구가, 너무나도 애달프게 느껴졌기 때문이랍니다.

이 세상에서 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는 그 누구도 신의 뜻은 알 수 없다. 단지 그분의 한없이 선한 마음을 믿고 또 믿는 수밖에는 없다.

실로 이 세상 모든 곳에 그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으니, 공경하고 또 공경하며 그분의 말씀을 널리 퍼뜨리고 실천하라.

저는 계속해서 똑같은 질문을 드리고 있네요.

이것이 과연 당신의 뜻이라면, 도대체 무엇을 이루기 위해 창공 님을 데려가신 건가요?

그분의 죽음으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지나요? 신이시여. 한낱 인간으로서는 헤아릴 수조차 없는, 당신의 창대한 계획 속에서 창공 님의 죽음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되나요?

신이시여. 당신의 뜻 아래 일어나는 일들을 거부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에게는 너무나 슬프고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남겨진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지아비를 잃은 여인과 아버지를 잃은 아이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갈기갈기 찢긴 제 마음은 어떻게 다시 기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신이시여. 당신께서는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자에게만 시련을 내린다 하셨습니다.

경전에 따르면 야로는 당신께서 내리신 시련으로 온갖 질병에 걸리고, 가족을 잃고, 친구들을 잃고, 가진 바 재산과 인망을 잃고 이 세상 바닥의 바닥까지 떨어졌을 때에도 믿음을 잃지 않았지요.

신학생 시절 야로가 받은 고난의 가짓수를 전부 세어 보니 무려 백일흔 다섯 가지나 되었다 하였습니다. 저는 그 수와, 고통의 크기에 놀라면서도 당신께서 시련을 내리신다면 야로처럼 굳건히 버텨내리라 다짐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되고 보니 태양과, 달과, 별이 모두 한 번에 빛을 잃은 것만 같습니다. 단 하나의 시련으로도 천지가 모두 암흑에 갇혔사온데 어찌 감내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만 싶습니다.

신이시여. 단 하나의 시련으로도 온 세상이 고통에 가득 차 혼돈의 대지로 변모한 것만 같습니다. 저의 고통보다도, 창공 님께서 받았을 고통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 감히 눈을 뜰 수조차 없습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세상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정처 없이 다이셀리시아를 떠돌고, 벗어날 수 없는 질병에 걸리고, 마침내 차디찬 땅에 몸을 눕히게 되셨으니. 신이시여, 한낱 인간의 몸에 너무나 많은 고통을 내리셨나이다.

사랑조차 남에게 양보하던 여인은, 환희로 번쩍이던 여인은 끝내 빛을 잃고 거무칙칙한 마른 고목이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신이시여, 단 하나만을 바랐던 여인에게서 모든 것을 가져가셨나이다.

남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던 사내는, 실은 모두를 버팀목으로 삼아 그 자신을 지지하고 있었으니, 이제 그중 제일가는 것이 쓰러지고 말았으니, 신이시여, 그는 기어이 무너지고 말았나이다.

푸르고 푸르던 여인은, 뱃속에 생명을 품은 여인은, 슬픔과 비탄 속에 잠겨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있사온데, 신이시여. 그 여인이 무슨 죄가 있어 이러한 지옥 속에서 남은 생을 보내야 하는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나이다.

뒤에서 모두를 묵묵히 받쳐 주던 사내는, 소심하되 따스하고 부드럽되 부러짐 없던 사내마저 텅 빈 껍데기요, 먼지 뒤집어쓴 인형이 되었으니, 신이시여. 가엾고 지친 영혼을 더욱 그렇게 만드셨나이다.

그리고... 그리고...

저희 자매는 끝내 갈라서고 말았으며, 사랑과 신의 대신 의혹과 질투로 서로를 대하게 되었사온데, 이제 정인의 총애를 다툴 수도 없는 외로운 몸만 남았으니 이것이 저희에게 내리신 벌인가 하나이다.

저의 고통이 너무나도 깊어 끝 간 데 없으니, 부디 제 인생에서 남아있는 행복이 있다면 그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저는 도탄 속에 살다 죽게 하소서.

지금 제게 벌어진 일이 저의 죄과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면, 저들의 짐까지 저에게 짊어지게 하소서. 저들은 이미 충분히 고통받았나이다. 이미 충분히 슬퍼했나이다. 오직 저만을 당신의 도구로 쓰시고 뜻한 바를 이루시오소서.

이제 저는 남은 삶을 그분의 아이와 아이의 어머니를 위해 온전히 바치고자 하니, 이를 이기적인 바람이라 생각지 마시고 속죄의 길이라 생각해 주시오소서.

또한 그분의 지친 영혼이 무사히 하늘 위로 올라가 무한한 행복 속에서 영생을 살게 하여 주신다면 저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나이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모든 것에 당신의 권세가 미침이니,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또 빌겠나이다...

"제발..."

눈을 떴어요.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저를 비추고 있지만,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것은 몸이 고장 난 탓일까요, 마음이 고장 난 탓일까요.

추락하는 창공 님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합니다. 조각칼로 눈 위에 새긴 것처럼. 죽는 날까지, 죽어서도 지워지지 않을 모습입니다.

그다지도 슬픈 이별을 하게 될 줄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저의 사랑을 드릴 것을, 조금이라도 더 사랑한다 말씀드릴 것을 모든 게 후회스럽기만 하네요.

"창공 님..."

그분의 이름을 부르니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물로 지새웠기에 이제 더는 눈물이 나오지 않을 줄로 알았는데, 아직까지도 눈물이 나옵니다. 어쩌면 눈물은 끝나고 피가 눈에 맺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결국 저는 침대 위에 엎어지고 말았어요. 시간이 지나면 이 고통마저 잊혀지게 될까요? 시간이 지나면 창공 님에 대한 기억마저 흐려지게 될까요? 그렇게 되면 저는 덜 고통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싫어요... 잊고 싶지 않아... 얼굴도, 모습도 흐려지잖아요... 따듯한 품도, 손길도... 흐으으윽... 흥크윽... 으흐으으으..."

* * *

떠났다.

나유 언니가 떠났다. 이곳에는 있을 자리가 없다고. 오빠와의 기억이 남은 곳은 너무나 슬프고 아프다고. 오빠를 지키지 못한 자신은 이런 곳에 있어선 안 된다며, 저 먼 곳으로 떠나겠다며. 그렇게.

택이 오빠도 떠났다. 그런 언니를 혼자 내버려 둘 수 없다며. 어떻게든 설득해서 붙들어 놓겠다며. 정작 그렇게 말하는 자기 눈빛도 그다지 생기 있어 보이진 않았는데.

히사시 오빠도 떠났다. 어떻게든 임산부인 나를 지켜주겠다던 약속을 깨게 되어 미안하다면서. 그런 약속이 있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떠나라고 했다.

내 의견은 중요치 않았겠지만.

사실 모두가 어떤 이성적인 사고에 의해 판단을 내린 일은 아닐 테지. 비탄과 괴로움 속에서, 이 현실로부터 조금이라도 도피하기 위해 제일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떠나는 거다. 본능적으로.

그래서 가라고 했다.

어차피 약속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아스터 씨가, 교수님이 남겠다고 했지만 잘 모르겠다.

이젠 몰라도 되는 곳으로 향할 참이니까.

"거칠어..."

굵고 튼튼한 밧줄. 피부와 와닿는 느낌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라기보단, 나쁘다. 까슬까슬, 따끔따끔.

그래도 상관없다.

밧줄 끝 올가미를 이리저리 통과시키고, 머리 위로 던져 들보에 걸쳤다.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생각해 본 뒤의 일이기에 튼튼하게 고정되었다. 잡아당겨도 아무렇지 않다.

뭐... 키 150을 살짝 넘기는 정도. 몸도 빼빼 말랐으니 내가 매달리는 정도로는 부러지지 않겠지.

높이를 조절하고, 의자 위에 올라가 올가미를 두 손으로 붙잡아 본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는데. 대저 삶이란 행복도 있고 아픔도 있으니, 행복할 땐 웃고 슬픈 땐 울면서 내일을 기다리면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슬플 땐 그에게 위로를 하고, 내가 슬픈 땐 사랑하는 사람이 날 위로해 준다면 미지의 인생 따위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과 달리 현실은 잔혹하다. 이제 이 세상에 희망은 없다.

서서히 올가미를 당겼다. 위아래로 살짝 길쭉한 타원형의 밧줄이 내 눈앞으로 천천히 다가온다.

"미안해요."

...

"잘 있어요."

발로 의자를 걷어차기 전, 밧줄에 무게를 완전히 싣기 전, 그것이 목에 걸리기 전, 눈을 감기 전에 마지막으로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시야에 담았다.

싸늘한 방. 아무도 없다. 오빠는 없다. 부모님도 없다. 몇 안 되는 친구들도 없다.

택이 오빠, 히사시 오빠, 나유 언니, 교수님, 아스터 씨도 없다. 내 한심한 죽음에 참관인은 필요 없다.

아니.

한 명 있었다.

"아...?"

내가 있었다. 웃음 짓는 내가. 지금의 나와는 달리 활짝 웃음 짓는 내가. 무언가를 품에 안고, 그것을 내려다보며.

아니.

두 명이었다.

"아..."

하늘이를 품에 안은 내가 있었다. 난 뭔가에 홀린 것처럼 의자 위에서 조심스레 내려와 나와 하늘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면, 있던 곳으로. 이제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사실 있을 리 만무했다. 나는 여기 있고, 하늘이는 뱃속에 있으니까.

뱃속에.

뱃속에.

"내, 내가... 내가..."

고개를 돌리니 방 한가운데 놓인 의자, 들보에 매달려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올가미가 보였다.

내가 지금 뭘 하려고 한 거지?

"미안... 해..."

누구에게?

"하늘아... 미안, 미안해... 엄마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내가. 지금. 뭘. 하려고. 한. 거지.

"미안해... 미안해, 하늘아...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엄마가아아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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