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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파트너 (36/112)

36. 파트너2022.02.02.

165508800554.jpg“머리가 고장 났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16550880055407.jpg“……네?”

놀란 겨울의 동공이 거칠게 뒤흔들렸다.

165508800554.jpg“제 시어미도 못 알아보는 걸 보니 말이야.”

유서진은 빨간 입술을 늘어뜨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일순 가슴이 섬뜩해진 겨울의 등 뒤로 식은땀 한줄기가 흘렀다.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시후의 새어머니, 유서진. 어렸을 때 몇 번 본적이 있었지만, 속절없이 흐른 세월 탓에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165508800554.jpg“아직도 기억이 안 돌아왔니?”

지금껏 기억을 잃었다는 걸 가까스로 숨기고 지내왔는데, 들통나는 건 한순간이었다. 퍼석하게 마른 입술을 달싹이던 겨울이 할 말을 잃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건 시후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듯 고객인 척 접근해 직장까지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대체 사고 이후 전화 한통 없다가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뭘까.

165508800554.jpg“뭘 그렇게 보니? 내가 찾아온게 아니꼬운가.”

밀려오는 당혹감을 가까스로 수습한 겨울이 차분하게 숨을 삼켰다. 침착하자고 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며 아득히 멀어지는 정신을 부여잡았다. 떨리는 입술을 열어 더듬더듬 한마디를 뱉었다.

16550880055407.jpg“……저기, 고객님.”

165508800554.jpg“저기?”

서진은 냉랭하게 코웃음 쳤다.

165508800554.jpg“못 배운 티를 내도 유분수지. 친정에서 시어미를 그렇게 부르라고 가르치디?”

16550880055407.jpg“……아니, 갑자기 친정 얘기는 왜…….”

165508800554.jpg“이거 봐.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아주 말 끝나기가 무섭게 말대꾸.”

베드에서 몸을 일으킨 서진이 타월을 어깨에 두르며 눈을 날카롭게 떴다.

165508800554.jpg“넌 기억도 안 나겠지만, 시후가 짝 안 맞는 결혼 하겠다고 할 때 유일하게 반대 안 한 사람이 나야. 그건 아니?”

16550880055407.jpg“…….”

165508800554.jpg“넌 나 덕분에 꼴에 신데렐라 될 수 있었던 거야. 고마워해야 해.”

16550880055407.jpg“……죄송하지만, 고객님 말씀처럼 전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서요. 감사하지 않습니다.”

발끈한 겨울이 뒤틀리는 성미를 참지 못하고 받아치자 서진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붉은 입술이 헛숨을 터뜨리더니 일기죽거렸다.

165508800554.jpg“당돌한 것…… 내가 네 시어미라고 말하지 않았니?”

16550880055407.jpg“네, 고객님.”

165508800554.jpg“이게…….”

하, 서진이 냉랭하게 혀를 찼다.

165508800554.jpg“알려줘도 꼬박꼬박 고객님이라고 부르네?”

16550880055407.jpg“이곳은 고객님들께서 테라피를 받는 휴식 공간입니다. 고객님께서는 90분 타임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을 받고 계신 중이시고요.”

165508800554.jpg“뭐야?”

16550880055407.jpg“관리를 받으러 오셨으니 클레르를 떠나실 때까지는 저에게 고객님이십니다.”

165508800554.jpg“하…… 이게 아주 제대로 돌았네?”

두 눈을 번뜩인 서진이 겨울의 한쪽 어깨를 툭 밀쳤다.

165508800554.jpg“너 실성했니? 이젠 눈에 뵈는 것도 없나 보지?”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느낀 겨울이 어깨를 틀고 따뜻한 온열 수건에 손을 묻었다.

16550880055407.jpg“다시 베드에 엎드려 누워주세요. 관리 이어서 도와드리겠습니다.”

165508800554.jpg“얘. 대답 안 해?”

16550880055407.jpg“압 조절이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세요.”

철저하게 무시하고 할 말만 하는 겨울에 꼭지가 돈 서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16550880055407.jpg“아……!”

겨울은 자신의 손목을 거칠게 휘어잡는 억센 손길을 느끼고 미간을 좁혔다. 뭔 힘이 이렇게…….

165508800554.jpg“너…….”

가느다란 손목을 부러뜨릴 듯 잡은 서진이 흉흉한 눈빛으로 겨울을 쏘아보았다.

165508800554.jpg“결혼하기 전에 나와 쓴 계약서도 싸그리 잊어버렸니?”

16550880055407.jpg“그게 무슨…….”

165508800554.jpg“피임하는 조건으로 네가 나한테 얼마나 뜯어갔는지. 기억 안 나지, 너?”

……이게 무슨 말이야, 대체?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말에 겨울의 동공이 가늘게 떨렸다.

165508800554.jpg“기억 못 한다고 발뺌할 생각이니?”

16550880055407.jpg“…….”

165508800554.jpg“머리가 고장 났어도 계약은 지켜야지. 애 들어서지 않게 피임 똑바로 하고, 혹시라도 임신하거든 시후 모르게 지울 생각해.”

겨울의 입술이 가늘게 경련했다. 고막을 무례하게 찔러오는 폭언은 상상 이상의 수위였다. 아무리 시후의 친어머니가 아니라지만, 며느리의 직장까지 찾아와서 임신하지 말라고 협박하는 것은 보통 비상식적인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애가 생기면 남편 모르게 낙태를 하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165508800554.jpg“뭐, 어차피. 내가 보기에는 너, 얼마 안 가 버려질 것 같지만 말이야.”

16550880055407.jpg“……네?”

165508800554.jpg“너희 잠자리는 하긴 하니?”

16550880055407.jpg“…….”

165508800554.jpg“얘기 들어보니까, 당장 내일 있을 자선 파티에도 시후가 너 말고 민주를 파트너로 데려간다는 것 같던데. 꼴에 남편 단속도 못 하고…….”

겨울의 눈꺼풀이 하릴없이 흔들렸다. 쯧쯧 혀를 차던 서진이 베드에서 내려와 골반을 짚고 섰다.

16550880055407.jpg‘……민주?’

그 이름이라면 명실상부 현재 대한민국에서 탑급의 인기를 자랑하는 배우 오민주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예전에 시후의 휴대전화로 오민주에게 전화가 걸려왔었고, 그는 대학교 동창이라고 말했었다.

165508800554.jpg“뭐, 나로서는 지금이 딱 좋아. 그냥 티끌처럼 그 애 옆에 계속 달라붙어 있어. 애만 갖지 말고.”

16550880055407.jpg“……제가 무슨 오점이라도 된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165508800554.jpg“그럼 아니니?”

콧방귀를 뀌며 묻는 말에 겨울은 차마 대답할 길을 잃어버렸다. 강시후의 옆에는 오민주처럼 대단하고 잘난 여자들이 한 트럭은 즐비해 있을 터였다. 반면 겨울은 가진 거라고는 몸뚱이밖에 없었고, 그런 자신이 남들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는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강시후의 인생의 치명적인 오탈자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울컥 감정이 치받쳐 올라오고 겨울은 두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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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진은 관리를 끝까지 받지도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클레르를 떠났다. 혹시나 다른 직원들이나 고객들에게 제 사라진 기억과 관련하여 쓸데없이 말을 떠들고 갈까 걱정했지만, 그녀는 불행 중 다행히도 별다른 말 없이 뒤를 돌았다.

16550880055407.jpg“하아…….”

긴장이 풀린 겨울은 직원 대기실로 들어와 뒤늦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느닷없이 길을 걷다가 벼락이라도 맞은 기분이었다. 너무 놀라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으나 다음 예약 손님이 오기까지는 30분도 채 남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정신을 다잡기 위해 머리를 턴 겨울이 손에 들린 서류 봉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서진이 떠나기 전 주고 간 물건이었다. 천천히 봉투를 연 겨울은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계약서 한 장을 꺼내 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계약서에는 피임을 철저히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조항부터 만에 하나 임신이 되면 시후에게 알리지 않고 임신중절수술을 해야 한다는 조항까지 빼곡히 적혀 있다. 그리고 그 계약서에는 겨울의 사인이 분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16550880055407.jpg“아무리 봐도 내 사인이 맞는 것 같은데…….”

대체 과거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이따위 계약서에 사인을 한 거지? 강시후 몰래 유서진과 단둘이 계약한 거겠지? 아니, 근데 정말 내가 이 계약서에 동의하고 사인한 건 맞을까? 혹시 유서진이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걸 빌미로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속이 답답하고 혼란스러웠으나 진실은 오리무중이었다.

16550880055407.jpg‘게다가, 만약 이 계약서가 정말 내가 동의해서 쓴 거라면…….’

과거의 겨울은 시후를 속이고 결혼한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16550880055407.jpg“하……. 모르겠다.”

한숨만 깊어지는 순간이었다. *** 시후는 데리러 오겠다고 했던 약속대로 겨울의 퇴근 시간에 맞춰 클레르에 도착했다. 말없이 차를 탄 겨울은 침몰하는 기분을 누르지 못해 표정 관리가 어려웠다.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겨울의 얼굴을 흘끗 본 시후가 기어를 바꾸며 물었다.

16550880194831.jpg“오늘 클레르에서 무슨 일 있었어?”

16550880055407.jpg“……아니. 별로. 왜?”

16550880194831.jpg“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

16550880055407.jpg“음, 조금 진상 고객이 있었거든.”

겨울은 유서진이 클레르까지 찾아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유서진과 했다는 계약의 진위여부를 알기 전까지는 시후에게 이 일과 관련하여 말을 아끼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16550880194831.jpg“피곤할 텐데 잠깐이라도 눈 좀 붙일래?”

평소보다 배는 힘들어 보이는 겨울의 눈치를 살짝 살핀 시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차를 느리게 몰았다. 집으로 가는 동안만이라도 그녀가 편안하기를 바랐다.

16550880055407.jpg“아니야. 어차피 10분이면 도착하잖아.”

그렇게 말하며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문득 시후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진동했다. 겨울이 흘끗 눈동자를 굴렸다. 네비게이션화면과 블루투스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겨울은 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오민주]. 일전에도 그의 차를 타고 있었을 때 오민주에게 전화가 걸려왔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그녀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평소에도 자주 전화를 하는 사이인가보지? 겨울은 묘하게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초조함이 밀려오고, 유서진이 했던 말이 자꾸만 떠올라 겨울을 숨막히게 했다.

165508800554.jpg‘얘기 들어보니까, 당장 내일 있을 자선파티에도 시후가 너 말고 민주를 파트너로 데려간다는 것 같던데.’

……공식적인 행사 자리에 아내인 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동행한다니. 아무리 곧 이혼할 예정이라지만 이상하게 속이 상하고 기분이 뒤틀렸다.

16550880055407.jpg“받아, 전화.”

16550880194831.jpg“됐어.”

16550880055407.jpg“받으라니까?”

16550880194831.jpg“왜 그래?”

16550880055407.jpg“그냥 빨리 받아, 좀. 끊어지겠네.”

괜히 툴툴거리며 짜증을 내자 시후가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겨울은 그런 그를 외면하고 창문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길쭉한 손가락이 액정 화면을 한 번 터치하자 꾀꼬리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16550880309361.jpg-어, 시후야!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아!

애교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에 겨울의 입가가 미세하게 경련했다. 괜히 탑배우가 아니라는 듯, 오민주는 얼굴만 예쁜게 아니라 목소리까지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 했다.

16550880194831.jpg“왜 전화했는데.”

16550880309361.jpg-어, 다른게 아니라 나…….

관심 없는 척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겨울은 저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운 상태였다. 그러나 민주가 뒷말을 채 잇기도 전에 시후가 이어폰을 끼는 바람에 통화내용을 엿들을 수 없었다.

16550880194831.jpg“그래. 용건 끝났으면 끊는다.”

전화는 30초도 채 이어지지 않고 곧바로 끊어졌다. 시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부드럽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빨간 불 앞에 정차했다.

16550880194831.jpg“미안. 잠깐 시끄러웠지.”

겨울은 자그마하게 고개를 젓고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묘하게 심란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없었다. ……무슨 대화를 했을까, 내일 자선 파티에 관한 얘기를 했을까? 통화 내용을 전혀 들을 수 없었던 겨울은 속이 체한 듯 답답했다. ***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는데, 시후는 뒷좌석에서 명품 브랜드의 로고가 박힌 쇼핑백을 여러 개 꺼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겨울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16550880055407.jpg“백화점 다녀왔어?”

16550880194831.jpg“응. 내일 행사 때문에 사야할 게 있어서.”

내일 행사라 함은 자선 파티를 말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쇼핑백이 모두 여성복으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라는 걸 눈치챈 겨울은 본능적으로 저 옷의 주인이 오민주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상하게 자꾸 울컥 감정이 올라와 입술을 깨물고 가까스로 삭혔다.

16550880055407.jpg‘내가 왜 이러지…….’

아무리 지금은 부부라지만, 다음 주면 이혼서류를 제출하러 갈 사이였다. 머지않아 이혼할 볼품없는 아내보다는 잘나가는 연예인 친구를 파트너로 데려가는 게 시후의 입장에서도 옳을 터였다. 다 아는데…… 기분이 이유없이 울적했다. 겨울은 살짝 시큰거리는 눈을 감았다 뜨며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시후의 손가락을 가만히 내다보았다. 문이 열리고 겨울은 빠르게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뒤에서 다시금 시후의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모르게 고개 돌린 겨울은 물끄러미 전화를 받는 시후를 바라보았다.

16550880194831.jpg“오민주. 또 왜.”

또, 또 오민주. 도무지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아 겨울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팍 구겼다. 그 무너진 표정을 시후에게 들킨 겨울이 움찔하며 뒤를 돌았다. 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오민주의 통화 목소리가 들려왔다.

16550880309361.jpg-응, 시후야! 내일 자선 파티 때 입고갈 드레스 때문에 전화했는데, 파트너끼리 드레스 코드는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가 스피커폰을 누른 것이었다. 신이 난 민주의 목소리에 괜히 울컥한 겨울이 입술을 꼭 깨물었다.

16550880309361.jpg-파티 전에 잠깐 만나자. 오전에 시간 돼?

16550880194831.jpg“자선 파티?”

민주의 물음에 시후가 나직하게 되물었다.

16550880194831.jpg“내가 너하고 자선 파티 간다고 말한 적이 있나?”

16550880309361.jpg-……어? 그게 무슨 말이야?

16550880194831.jpg“말 그대로야. 내일 너하고 파트너 할 생각 없다고.”

시후의 말에 놀란 겨울의 눈이 고요하게 커졌다. 수화기 너머로는 곧바로 민주의 당황이 읽혔다.

16550880309361.jpg-지금까지 태림에서 열리는 자선 파티는 매년 나랑 파트너 해왔잖아? 나 없이 자선 파티를 가겠다고? 파트너 필참 파티인데, 그럼 누굴 데려갈 건데? 네 와이프?

16550880194831.jpg“그건 네가 알 바 아니고. 할 말 없으면 끊는다.”

매정하게 전화를 끊은 시후를 겨울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민주랑 같이 자선파티에 가지 않는다고? 그럼 대체 누구랑 갈 생각인 거야?

16550880055407.jpg“……왜 갑자기 스피커폰으로 통화하고 그래?”

16550880194831.jpg“네가 전화 내용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시후가 낮게 웃으며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겨울이 어리숙하게 입술을 벌렸다.

16550880055407.jpg“……들어보니, 내일 어디서 행사가 있나봐?”

16550880194831.jpg“응. 내일 태림그룹에서 주최하는 자선 파티가 있는데, 투자 받고 있는 곳이라 참석해야 할 것 같아.”

16550880055407.jpg“근데 왜 오민주 씨랑 같이 안 가?”

16550880194831.jpg“넌 내가 걔랑 같이 갔으면 좋겠어?”

시후가 역으로 물어오자 살짝 당황한 겨울이 어수선하게 시선을 돌렸다.

16550880055407.jpg“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흘끗 시후를 본 겨울이 은근슬쩍 뒷말을 덧붙였다.

16550880055407.jpg“그럼 누구랑 갈건데? 파트너 필참 파티라며.”

혹시 비서……? 일전에 한 번 집 앞에서 마주쳤던 긴 생머리의 여자 비서를 떠올린 겨울이 야트막한 숨을 삼켰다.

16550880194831.jpg“아니.”

시후가 픽 웃음을 터뜨리며 겨울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느긋한 걸음이 밀착해오자 겨울이 두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16550880194831.jpg“우리 그래도 아직 부부인데…….”

낮은 음성이 겨울의 고막을 뜨겁게 달구었다.

16550880194831.jpg“하나뿐인 아내 두고 내가 누구랑 파트너를 해.”

낯간지러운 말에 겨울의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상상도 못한 말에 겨울이 주춤 고개를 내리자 시후가 나지막이 웃으며 손에 들린 쇼핑백을 한아름 안겨주었다.

16550880194831.jpg“네 거야.”

얼떨결에 받아든 겨울이 고개를 꺾어 시후를 올려다보았다.

16550880194831.jpg“너한테 어울릴 것 같은 걸로 샀어.”

비스듬히 맞물리는 시선에 겨울의 가슴이 서서히 고동쳤다. 시후는 겨울의 턱을 부드럽게 잡고 가까이 다가갔다. 길게 찢어진 눈매가 반달처럼 부드럽게 휘었다.

16550880194831.jpg“내일 나와 파트너 해 줄래?”

무더운 숨결이 입술 앞에서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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