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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난 겨울이 좋아 (59/112)


59. 난 겨울이 좋아
2022.04.24.


겨울은 묘하게 가슴을 눌러오는 죄책감을 떨칠 수 없었다.

치가 떨릴 만큼 오민주가 싫고 미웠으나, 모든 걸 잃은 여자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며 시후에게 잘 좀 말해달라던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결국 떨리는 입술을 벌린 겨울이 정돈되지 않은 목소리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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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진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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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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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그 여자가 하는 말 신뢰하지도 않았고…… 타격도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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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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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내가 겪은 거 아니면 이젠 아무것도 믿지 않기로 했어. 그러니까, 오빠. 그냥 오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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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복은 절대 없어. 네가 하는 말이어도.”

그 말에 겨울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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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모델은 어차피 조만간 교체할 생각이었어. 사생활 문제가 너무 많아서 언제 터질지 몰라 위험 부담이 있었으니까.”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달래는 말이란 걸 누가 모를까.

작게 한숨 쉰 겨울이 호흡을 고르며 테이블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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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와서 음식은 안 시키고 대화만 하는 것도 실례지. 뭐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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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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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코스로 적당히 시킬게.”

지금 기분으로는 뭘 먹어도 체할 것 같았지만 시후가 저를 위해 행동했다는 걸 알기에 묵묵히 그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직원을 호출한 시후는 룸 안으로 들어온 여성에게 코스 요리와 간단히 곁들일 와인을 주문했다.

겨울은 어쩐지 그가 낯설게 느껴져서 흘끗 시후를 바라보며 물잔으로 입술을 축였다.

곧이어 먹음직스러운 코스 요리가 차례로 서빙되고 겨울은 먹는 동안에도 내내 도둑처럼 시후를 훔쳐보았다.

그 끈질긴 시선을 느꼈는지 시후가 숨소리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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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렇게 빤히 봐?”

다정하게 웃으며 응시하는 눈동자에서는 당장에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그 온기를 오롯하게 받은 겨울의 가슴이 조금씩 빠르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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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가끔 오빠가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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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와인으로 입을 축인 시후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비스듬히 틀며 되물었다.

겨울은 머릿속에서 자꾸만 재생되는 민주의 우는 얼굴 때문에, 명치에 무언가가 걸린 듯 속이 답답했다.

그녀의 얼굴이 꼭 어렸을 때 시후의 말에 상처를 받아 울던 제 모습과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어린 시절, 시후에게는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는 걸 이제는 똑똑히 안다.

하지만…….

넥스트 게임즈의 창업 멤버이자 대학 동창이라고 했던 오민주에게 그렇게 한순간 등 돌리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서늘해지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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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무서워.”

……언젠가 또다시 나에게 등 돌리고,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날 멀게 바라볼까 봐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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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하나만 바라보고, 너만 사랑하는데 왜.”

시후가 겨울을 뚫어지게 주시하며 와인 잔을 기울였다.

붉은색의 액체가 시후의 입술을 적시며 들어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겨울은 입술이 마르는 기분을 느꼈다.

……도무지 물어볼 자신이 없었다.

오민주의 말이 정말 전부 거짓이 맞냐고.

쇼윈도 부부였다는 것, 명목뿐인 가짜 결혼이었다는 것…….

그리고 오민주와 몸을 섞었다는 것까지.

전부 거짓이 맞는지 묻고 싶었지만 애써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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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여전히 우리 사이에는 믿음이 부족하다.

나는 아직 그를 온전히 신뢰할 수 없고, 그도 나를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믿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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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생각이 너무 많아.”

겨울의 복잡한 사고를 가르는 것은 낮은 음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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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비울 수도 있어야지. 안 그래?”

단정한 입꼬리가 올라서는 것을 바라보며 겨울이 흐리게 미소 지었다.

……그래, 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어쨌든 지금 이 남자는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를 좋아하고 있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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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수요일에 같이 여행이라도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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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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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쉬는 날이잖아. 나도 그날 휴가 내려고 하는데.”

시후가 소리 없이 젓가락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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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아침에 출발해서 1박하고 목요일에 아침에 서울 올라오는 걸로 하자. 어때?”

단정한 손목의 경로를 바라보던 겨울의 표정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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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수요일?’

그날은 11월 30일, 그리고 그다음 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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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엄청난 사실을 깨달은 겨울이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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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여행 가자.”

그날은 무조건 시후가 원하는 대로 전부 해 주어야 하는 날이었다.

서둘러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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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여행을 가기로 약속한 수요일이 되었다.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준비를 한 겨울과 시후는 곧바로 차에 올라탔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스포츠카가 이제야 제 옷을 입은 듯 시원스럽게 나아갔다.

조수석에 앉아 창문을 조금 내린 겨울이 신이 나서 기분 좋게 어깨를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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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오늘 날씨 좋다! 간만에 하늘 진짜 맑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시야를 메우자 절로 기분이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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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차 위에 열어줘. 뚜껑!”

어린 시절처럼 해맑게 웃으며 한껏 신이 난 겨울이 귀여워 시후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졌다.

12월을 앞둔 한겨울이었지만 시후는 겨울이 원하는 대로 버튼을 꾹 눌러 주었다.

머리 위를 덮고 있던 막이 사라지고 시원한 공기가 정면에서부터 달려와 겨울의 하얀 피부를 흠뻑 적셨다.

얼마 가지 않아 콧물을 훌쩍거리는 겨울을 흘끗 본 시후가 곧바로 버튼 위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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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깐, 잠깐. 닫지 마! 10분만 열어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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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또 감기 걸려서 쓰러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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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즐겨야지!”

서둘러 시후의 손을 잡아 만류한 겨울이 까르르 웃으며 두 팔을 번쩍 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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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너한테 운전을 맡겼어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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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손잡고 지옥 가자고?”

장롱면허였던 겨울은 얼마 전부터 퇴근 후 거의 매일 시후에게 운전 연수를 받기 시작했다.

이제 웬만한 도로는 어설프게나마 나다닐 수 있었으나 고속도로까지는 아직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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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있으면 지옥에 떨어져도 좋아.”

그 말에 겨울이 두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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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뚜껑 닫자. 너무 느끼하고 썰렁해서 추워졌어.”

두 손을 모아 새하얀 입김을 불어 넣은 겨울이 질색하며 몸서리쳤다.

시후가 낮게 웃으며 겨울의 왼손을 슬며시 붙잡고는 속도를 높였다.

***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점심 식사로 회를 먹은 뒤 겨울 바다를 보기 위해 해안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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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경치 너무 예쁘다!”

푸른빛을 자랑하는 영롱한 바다를 보자 평소보다 배는 들뜬 겨울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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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이거 봐. 물색 진짜 맑아. 한강 똥물이랑은 차원이 다르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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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바다는 비교하는 것부터가 잘못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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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누가 몰라서 그래?”

으휴, 이상한 소리를 낸 겨울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시후가 픽 웃음을 흘리자 겨울이 자그마한 손을 뻗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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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와, 오빠.”

부드럽게 잡고 끌어당기는 손길에 심쿵 당한 시후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맘껏 설레기도 전에 겨울은 그대로 시후를 확 끌어서 파도 쪽으로 마구 밀어버렸다.

무방비했던 거대한 육체는 여린 힘에도 저 멀리 밀려나고 결국 출렁이는 파도를 침범했다.

차가운 겨울 바다에 발이 흠뻑 젖어 버린 시후가 아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시선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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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도전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건가?”

씩 올라가는 입꼬리에 불안감이 밀려온 겨울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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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야. 뭘 그렇게까지…… 꺅!”

뒷말을 채 잇기도 전에 겨울의 두 발이 공중에 떴다.

겨울을 번쩍 안아 올린 시후가 파도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자 기겁한 겨울이 황급히 시후의 목덜미를 붙잡고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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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오빠! 알았어! 안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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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내 철칙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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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겨울이야, 겨울! 나 얼어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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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너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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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게 아니고……!”

버둥거리는 겨울이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은 시후가 옅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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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뽀해주면 봐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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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하게,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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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으면 말고.”

다시 성큼성큼 바다로 향하자 겨울이 시후의 등을 다급하게 투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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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잠깐만! 스톱!”

창피해진 겨울이 입술을 꼬물거리다가 눈을 질끈 감고 시후의 볼에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었다.

그제야 만족스럽게 웃은 시후가 겨울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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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좋은데 좀 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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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러자.”

시후는 겨울의 손을 부드럽게 쥐어 제 주머니 안으로 밀어 넣었다.

좁은 공간에서 두 손가락이 넝쿨처럼 뒤엉키고 겨울은 새삼스럽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느끼며 작게 미소 지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겨울과 시후는 유려한 해안선을 따라 천천히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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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내 어디가 좋아?”

문득 물어오는 말에 시후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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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기습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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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내 어디가 제일 좋냐고. 이거 유부남답게 대답 잘해야 해.”

장난스럽게 뒷말을 덧붙인 겨울의 웃음소리가 고막을 함빡 적셨다.

그 기분 좋은 선율을 음미하며 시후가 제 손안에 감긴 겨울의 보들보들한 손을 엄지로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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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이야. 네가 어디가 그렇게 예뻐서 내가 반했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대답에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민 겨울이 가늘어진 눈으로 시후를 올려다보았다.

손을 뻗어 그 눈 아래를 가볍게 쓸어내린 시후가 나지막하게 입술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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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눈은 예쁘고, 코도 사랑스럽고…… 입도 작아서 귀엽네.”

길쭉한 검지로 코를 살짝 찍고 내려간 손이 앵두처럼 탐스러운 입술을 톡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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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냥 다 좋아.”

하얗게 뱉어진 입김이 겨울의 심장에 다가와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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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 발끝까지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내 맘에 쏙 들어서.”

겨울의 심장이 조금씩 빠르게 콩닥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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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은데, 그래도 굳이 하나 고르자면…….”

간질간질한 기분에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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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웃을 때가 제일 예뻐.”

시후는 겨울의 투명하고 말간 미소를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했다.

반달처럼 부드럽게 휘는 눈꼬리도,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자그마한 입술도, 햇살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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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미소에 반했잖아.”

진솔한 속삭임에 겨울의 가슴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배시시 웃음을 터뜨린 겨울의 뺨이 조금 붉게 물들었다.

그 불그스름한 광대에 차가운 눈송이가 키스하듯이 사뿐히 내려앉자 겨울의 눈이 커다랗게 뜨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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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눈이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한껏 꺾은 겨울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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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첫눈이야! 이거 첫눈 맞지, 오빠?”

다사로운 눈웃음이 방긋하고 열리고, 겨울은 양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꾸밈없는 천진난만한 표정을 보니 꼭 소년 소녀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로 몰래 짝사랑하며 밤마다 잠 못 이루었던, 그 설레고 두근거리던 시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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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벌써 첫눈이네.”

생에 단 하나뿐인 첫사랑과 함께 첫눈을 맞는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벅차올랐다.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을 수 없었던 시후는 자신이 이렇게 웃음이 헤픈 남자였나 돌이켜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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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겨울은 갑자기 목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섬유의 감촉에 움찔했다.

뒤에서 가까이 다가온 시후가 제 머플러를 풀어 겨울의 목에 부드럽게 감아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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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오빠도 춥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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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감기 걸리는 것보다는 나아.”

픽 웃음을 흘린 시후가 빨갛게 물든 겨울의 코를 장난스럽게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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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는 루돌프처럼 빨개져서는.”

그런 모습까지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당장에라도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았다.

간질거리는 제 코를 살짝 문지른 겨울이 헤헤 소리 내서 웃었다.

그 달콤한 미소가 방아쇠가 되어 시후의 이성을 완전히 어지럽게 만들었다.

멈춰선 시후가 제 코트를 열어 그대로 겨울을 뒤에서 끌어안아 여린 육체를 꽁꽁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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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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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추울 것 같아서.”

오로지 겨울만을 향하는 까만 눈동자가 계절과 어울리지 않게 따뜻했다.

겨울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등 뒤로 전해지는 시후의 딱딱하고 생생한 근육의 감촉과 더불어, 묵직하게 들려오는 심장 소리에 불에 덴 듯 몸이 달아올랐다.

맞닿은 체온에서 뜨거운 기운이 끓어오르고 겨울의 귀뺨은 순식간에 핑크빛이 되었다.

어쩐지 부끄러워진 겨울이 어수선하게 동공을 굴리며 아무렇게나 입술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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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확실히 겨울은 겨울이네. 눈도 오고 이렇게 추운 거 보면.”

작게 웃으며 시후에게로 고개를 돌린 순간 흠칫한 겨울이 숨을 훅 들이켰다.

생각보다 시후의 얼굴이 너무 가까운 곳에 있었던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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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단정한 입꼬리가 곱게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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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겨울이 좋아.”

동굴처럼 그윽하고 낮은 남자의 저음이 귓가에 달콤하게 맴돌았다.

그 진중하고 깊은 눈을 바라보는 겨울의 동공이 가냘프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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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도 사계절 중에 제일 좋아해.”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자그마하게 중얼거리자 시후가 비스듬히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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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순식간에 겨울에게 밀려오는 입술이 끈적하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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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좋다고.”

뒷머리를 확 끌어당긴 시후가 고개를 틀며 겨울의 입술을 단번에 삼켰다.

심장을 헤집는 뜨거운 숨결에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이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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