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 카운트 다운 (67/112)


67. 카운트 다운
2022.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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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되돌리면.’

누가 들으면 미쳤다며 비웃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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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하는 여자를 보고 싶은 간절함이 도를 지나쳐, 비현실적인 생각에라도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 거라고.

하지만 지금 시후는 아주 작은 확률이라도 붙잡아야 할 만큼 간절했다.

겨울이 없는 세상을 숨 쉬고 살아가는 것만큼 잔혹하고 비참한 형벌은 없었으니까.

목숨을 바쳐 저를 구해준 겨울의 희생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제 앞으로의 생은 그 미미한 확률에 전부를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시후는 곧바로 한국에서 이루었던 모든 것을 버리고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수소문 끝에 미국에서는 시간여행장치에 관한 연구가 이미 비밀 연구 조직 ‘TMRO’에서 극비 프로젝트로 한창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 재산을 투자해 연구 조직에 뛰어든 시후는 두문불출하며 밤낮없이 미친 사람처럼 개발에 몰두했다.

그렇게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TMRO 프로젝트에 참여한 지 어느덧 햇수로 8년이 되는 해, 드디어 한 타임머신 모델에서 유의미한 성과가 도출되어 설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시범적으로 개발된 모델을 실제로 가동하였을 때, 정말 이론대로 과거나 미래로 향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이러한 타임머신의 개발이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지면 세계적으로 극심한 혼란을 빚을 게 틀림없었기에, 언론에는 타임머신의 연구에 대한 성과가 전혀 공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극비로 진행된 연구였기에 관계자들 외에는 개발된 타임머신 모델을 실험해볼 수 있는 대상자가 없었고, 그 누구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에 뛰어들고자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후는 달랐다.

숨을 쉬고 있는 이유가 오직 겨울을 살리는 것, 단 하나뿐인 그에게 두려움이란 없었다.

영영 다시는 눈을 뜰 수 없을지도 모르는 무자비한 확률에 시후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던지기로 했다.

그러나 가동하기 전 시후가 직면한 현실적인 애로 사항은 많았다.

첫째, 현재 설계된 타임머신의 시범모델을 가동할 수 있는 횟수는 최대 4번이라는 점.

둘째,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시간을 정확히 지정할 수 없었고, 최대한 미세하고 가깝게 조절해도 오차범위가 가히 20년은 된다는 점.

셋째, 이론상으로는 미래의 사람이 과거의 자기 자신과 만나면 시공간이 왜곡돼서 오류가 초래된다는 점.

넷째, 타임머신 시범모델의 에너지의 총량을 고려하였을 때 과거에 머물 수 있는 최대 시간은 약 두 달이라는 점.

이 모든 위험 부담을 안고, 죽음마저도 각오한 시후는 연구소의 한국지사로 향해 시범모델을 가동했다.

모든 걸 운명에 맡긴 채, 지그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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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사적으로 눈을 뜨자 빛이 쏟아지며 섬광이 점멸했다.

암전되었던 시야가 선명해지며 막혔던 숨이 단번에 확 트였다.

거칠게 숨을 토해내며 주변을 돌아보자 평화롭게 떠들며 공원을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다급하게 두 손으로 제 몸을 더듬어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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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왜곡이나 변형 없이 멀쩡하다는 걸 확인하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흘렀다.

무사히 시간을 이동한 걸 확인했으니, 정확한 현재 시각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곧바로 주변을 둘러보고 현재 시각을 확인하니 대략 20년 전으로 돌아온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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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서서히 빠르게 뛰기 시작한 심장이 곧 터질 것처럼 박동했다.

지금 두 발을 딛고 있는 이 세계에는 겨울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파고든 탓이었다.

들뜨는 흥분과 알 수 없는 고양감으로 자꾸만 거칠어지는 호흡을 가까스로 다스린 시후는 홀린 듯 무작정 겨울의 고등학교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무려 8년째였다.

그 긴 세월 동안 수백 번 수천 번도 넘게 겨울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떠올렸었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으나 볼 수 없었던 그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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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하얗고 자그마한 얼굴, 고양이처럼 새초롬한 눈매, 붉고 작은 입술…….

교복을 입은 채 고등학교의 뒤뜰에서 화단에 물을 주고 있는 열일곱 살의 겨울을 마주한 순간, 울컥한 시후의 두 눈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꿈에서도 그렸던 얼굴에 심장이 격렬하게 반응하며 욱신거렸다.

……정말 과거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지난 세월이 머릿속에 다시금 흐르고 북받친 시후는 저도 모르게 성큼성큼 다가가 겨울을 두 팔로 꽉 터뜨릴 것처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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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야……!”

어린 겨울은 놀란 듯 어깨를 흠칫 떨며 소리쳤다. 그 작은 몸을 끌어안자 시후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입술을 깨물었다.

이 여린 몸을 놓아주면 또다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 그녀를 품에 안은 손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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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후?”

그리고 그런 시후의 정신을 차리게 한 것은 앙칼진 겨울의 목소리였다.

그 음성에 퍼뜩 정신을 차린 시후가 황급하게 겨울을 놓고 뒤를 돌았다.

그녀를 보자마자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던 자신을 행동을 후회하며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겨울의 미래를 완전히 바꾸려면 사고로부터 최대한 가까운 시점으로 다시 이동해야만 했다. 그 전에 겨울에게 정체를 들켜서는 안 되기에 얼굴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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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여긴 왜 온 거야?”

싸늘하게 묻는 음성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시후가 입술을 깨물었다.

……널 살리기 위해.

다시 한번 너와 만나 생을 살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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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자는 건데. 할 말 있으면 해.”

겨울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이자 시후는 고개를 더욱 숙이며 입술을 달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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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 할 말.”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하게 답하려고 했으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떨림은 시후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시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당장에라도 겨울을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단 한마디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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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중에 봐.”

……우리, 미래에서 다시 만나.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억제한 시후는 억지로 다리를 움직여 자리를 떴다.

지난 7년, 하루에도 수없이 그렸던 겨울을 정말 다시 만나게 되니 온몸의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그녀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선명해지고,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 움켜쥔 시후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저릿한 눈가로 열기가 번지고 운명에 몸을 맡겼다.

부디 이번에는 사고가 일어난 시점의 직전으로 이동할 수 있기를…….

두 번째로 모델을 가동하여 도착한 시간은 무려 27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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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잘못 찾아왔다.”

시후는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열 살짜리 겨울을 보며 낮게 읊조렸다.

심지어는 시후와 겨울이 처음 만났던 12살 때보다도 더 어린 나이로 잘못 찾아온 것이다.

당연히 지금 눈앞의 10살 꼬마 겨울은 시후가 누군지 조차도 모를 터였다.

작게 한숨 쉬자 겨울이 시후에게 관심을 보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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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누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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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내일모레 마흔이었으니 아저씨는 아저씨였으나, 겨울에게 그 소리를 듣자 새삼스럽게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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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아니야. 차라리 삼촌이라고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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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요, 삼촌.”

겨울은 해맑게 웃으며 흙이 묻은 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자 하얀 헤어밴드가 정수리에서 미끄러져 얼굴로 흘러 겨울의 눈을 가렸다.

그 모습을 애틋하게 보며 허리를 숙인 시후가 겨울의 헤어밴드를 도로 반듯하게 끼워주었다.

작은 손에 덕지덕지 묻은 흙먼지도 전부 털어준 시후가 무릎을 굽혀 겨울과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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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하고는 말하지 말라고 장모님…… 아니, 어머니가 그러지 않으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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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어요. 근데 삼촌은 나쁜 사람 같지 않은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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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니.

난 너에게 아주 나쁜 사람이야.

네 미래를 망쳐놓고, 목숨을 앗아간 거나 다름없는 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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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모르는 사람이 말 걸면 조심해야 해.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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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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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다…….”

겨울의 머리를 쓰다듬은 시후가 씁쓸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때, 저 멀리서 겨울의 어머니, 혜숙이 의심을 가득 품은 표정으로 다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지금의 자신보다도 젊은 나이의 장모님을 보며 서둘러 뒤를 돈 시후가 겨울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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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기다릴게.”

악연이든 인연이든…….

우리는 곧 만나게 될 거야.

모델을 세 번째로 다시 가동하기 전, 시후는 잠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껏 시후는 무작정 과거로 돌아가 겨울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만 했을 뿐, 그녀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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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나 같은 놈과 엮이지 않도록…….

멀리 떠나라고 하는 게 좋겠지.

작게 한숨 쉰 시후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또한…….

그녀가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미래에 세상을 떠나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다른 이유를 들어 둘러대는 게 나으리라 판단했다.

세 번째 모델을 가동할 때부터, 시후는 제 정체를 숨기기 위해 모자와 마스크, 선글라스, 음성변조기를 동원했다.

곧바로 가동하여 도착한 시간은 9년 전, 겨울의 동생 이경과 교통사고가 났었던 날의 아침이었다.

당시 본가에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던 겨울의 집 근처의 편의점에서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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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 날씨 좋네.”

웃으며 속삭이는 겨울을 뒤에서 몰래 바라보던 시후가 나지막한 소리로 그녀를 멈춰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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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제 말에 뒤를 돌아본 겨울의 얼굴에 시후의 가슴이 일렁였다.

제 기억 속 겨울과 한치의 다름도 없는 모습에 심장이 빠르게 뛰고 호흡이 가빠졌다.

또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가까스로 누르고 할 말 만을 퉁명스레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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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단속 좀 하지 그래. 조만간 사고 한번 칠 텐데.”

……이 한마디로 모든 게 해결되면 좋을 텐데.

네가 나를 다시는 만날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시후는 조금 겁먹은 듯한 겨울을 두고 뒤를 돌았다.

이제 마지막 기회만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동하면 그때부터 약 60일간 과거에 체류할 수 있었다.

시후는 어떤 과거에 도달하더라도 무조건 그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겨울을 반드시 살리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도착한 시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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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6일…….”

8년 전이었다.

겨울이 숨을 거두기 약 5개월 전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굳게 결심한 시후는 더 이상 제 감정을 겨울에게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8년 뒤, 2030년에서 너와 나는 이혼하게 되고…….

그 이유는 서로 죽일 듯이 싸우며 미워하다가 정이 다 떨어진 탓이고.

그러니까 우린 진작부터 이혼했어야 했다며.

억지로 만들어낸 거짓을 스스로도 머릿속에 세뇌하고 또 세뇌했다.

겨울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냉정해야만 했다.

그렇게 애절한 감정을 숨긴 채…….

겨울에게 미래를 안겨주기 위한,

60일간의 운명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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