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3화 (3/156)

〈 3화 〉 생존본능 (2)

* * *

골목에서의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호텔이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에 들어서자 지난 일주일동안의 무일푼 생활이 머리에 아른거렸다.

“하, 힘들었어.”

돈이 없어서 패스트푸드 가게 앞을 서성였던 기억.

처음으로 시도했던 텔레파시 공작이 무의미하게 끝나버렸던 기억.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며 하루종일 골목을 서성였던 기억.

적당한 타깃을 찾기 위해 멍하니 죽치고 앉아있던 기억.

돌이켜보면 하나도 좋은 기억이 없었다.

“에휴.”

암울했던 과거를 생각하며 한숨을 내쉰 나는, 옷을 정리한 직후 목욕을 위해 곧장 화장실로 들어갔다.

퍼시발 스미스의 몸이 되고 일주일.

원래의 자신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오랫동안 씻지 못했다.

그렇기에 호텔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찝찝한 기분이 가득했었지만, 욕조에서 느껴지는 미적지근한 물의 온도에 쌓여있던 불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낙원이 있다면 분명 그곳에는 욕조가 있을 것이다.

그런 기분이 들게 만드는 하루였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한다…….”

물의 온기에 들뜬 기분으로 앞으로의 미래를 고민해본다.

이능력배틀물 소설 ‘전쟁도시’의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은 도시의 치안대에 소속된 주인공이 여동생의 원수를 찾아나서는 내용이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범죄의 흔적들을 발견하면서 마주한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것은 덤이다.

주인공은 강력한 마법을 가지고 있는 6서클의 마법사이며, 그런 주인공과 대적하는 범죄자들도 대부분 상당한 실력자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작해야 3서클의 텔레파시 유저다.

가장 좋은 방법은 스토리라인에 엮이지 않는 것이겠지만, 인생이란 항상 계획대로만은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텔레파시 하나만 가지고 그들과 싸울게 아니라면 준비를 해놓을 필요가 있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앞으로의 미래와 몇몇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

그리고 애매한 성능의 텔레파시 능력이다.

텔레파시를 사용해 전투에서 직접적인 우위를 가져오기 힘든 이상, 어떻게든 직접 싸우는 것은 피해야만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나를 대신해 싸워줄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요컨대, 부하가 하나쯤 있으면 좋다는 뜻이었다.

“…….”

띵동. 띵동.

물속에 잠겨 한참동안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으면, 밖에서 벨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호텔 직원이라도 찾아온 것일까.

욕조를 가득 채운 목욕물은 이미 식어버린지 오래다.

굳이 이 이상으로 목욕을 하고 있을 이유도 없었기에, 욕실 밖으로 빠져나온 나는 가운을 입고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길래…….”

“안녕하세요.”

객실의 문을 열어젖힌 순간, 나는 곧바로 상황을 깨달았다.

눈높이가 맞지 않는 불청객이 찾아온 것이다.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리면, 머리 위에 고글을 쓰고 있는 잿빛 머리카락의 소녀가 보였다.

활동하기 편해보이는 소녀의 복장은 아무리 봐도 호텔의 직원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뭐야.”

갑작스러운 방문에 당황한 나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소녀가 손에 들려있던 봉투를 나에게 내밀어왔다.

살짝 두꺼운 느낌이 드는 봉투는 언뜻 보기에도 돈처럼 보였다.

“이거.”

“이거?”

“현상금 안받아가서 가져왔어요.”

“현상금? 무슨 현상금?”

“이 사람들 말이에요.”

소녀는 스마트폰 화면에 사진 하나를 띄워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녀에게서 스마트폰을 건네받은 나는 띄워진 화면을 집중해서 살펴보았다.

소녀가 내민 사진에는 익숙한 얼굴의 사람 세명이 찍혀있었다.

직전에 골목에서 만났던 3인조 강도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 적혀있는 글자, ‘WANTED ­ 1500 CREDITS’가 함께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제서야 소녀가 말했던 현상금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쓰러뜨린 3인조 일행에게는 현상금이 걸려있었던 것이다.

“뭐야? 치안대 소속이야? 현상금이란게 배달도 해줘?”

“그건 아니고, 그냥 현상금 사냥꾼인데요.”

현상금 사냥꾼.

‘전쟁도시’에는 현상금이 걸린 범죄자만을 쫓는 현상금 사냥꾼이 존재한다.

치안대에서 현상금을 거는 경우도 있고, 사설 조직에서 현상금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한탕을 노리는 일이라는 점이다.

간혹가다 별 볼일 없는 범죄자에게 현상금이 걸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현상금 자체가 얼마 되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의 소녀가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현상금을 건네주겠답시고 내 앞에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여기는 어떻게 찾아왔어?”

“이 사람들, 제가 쫓고 있던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래서, 내가 그냥 방치하고 오니까 대신 받아왔다?”

“그런 셈이죠.”

“그래, 알았어. 고마워.”

갑작스럽게 추가로 커다란 용돈이 생긴 기분이다.

나는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침대 위에 드러누우려는 찰나, 다시 벨이 울렸다.

띵동. 경쾌하게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다.

방금 전의 소녀가 아까와 같은 자세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뭔데.”

“현상금 안받아가서 가져왔어요.”

지금 내 손에는 방금전에 받은 현상금이 들려있다.

그렇다고 눈앞의 소녀가 다른 현상금을 봉투에 담아 가지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손에 들려있는 돈봉투를 흔들면서 소녀에게 말했다.

“방금 받았잖아.”

“네.”

“…….”

“…….”

“뭐.”

쾅.

나는 다시 문을 닫았다.

그 직후,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이전보다 격하게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나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었다.

잿빛 눈동자는 여전히 나와 돈봉투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현상금 안받아가서 가져왔어요.”

“알아.”

“네.”

“…….”

“…….”

“…….”

“……?”

길게 이어지는 침묵에 나는 혀를 차며 머리를 긁었다.

이쯤되니 이 현상금 사냥꾼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노리고 있던 사냥감을 눈앞에서 빼앗기고, 그 수당마저 전부 받아야할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자세히는 몰라도 주머니 상황이 그렇게까지 여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길에서 주운 지갑을 돌려주더라도 얼마정도는 나눠받는 것이 도의 아니던가.

한마디로 자신의 선의에 대한 보상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뭐, 큰돈 가져다 줬으니 식사라도 대접할까.”

“네. 좋아요.”

“……갈아입고 올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가운차림으로 내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객실의 문을 닫았다.

정답을 고른 모양이었는지, 이번에야말로 초인종이 울리는 일은 없었다.

* * * * * *

심야에 여는 가게라고 해봤자, 근처에 위치한 곳이라고는 24시간 영업의 패스트푸드점이 고작이였다.

이름 모를 불청객에게 대접하는 식사는 자연스럽게 햄버거로 결정되었다.

물론 햄버거라고 해서 결코 염가의 메뉴를 고른 것은 아니다.

패스트푸드점에 들어온 소녀는 혼자서 전부 먹겠다며 20크레딧 상당의 세트메뉴를 나에게 부탁해왔다.

나조차도 아직 못먹어본 호화로운 메뉴에 입맛을 다시면서, 나는 간단히 배를 채울만한 5크레딧짜리 세트메뉴 하나를 주문했다.

시간이 지나 주문한 햄버거가 쟁반에 담겨 나오자, 나와 소녀는 적당한 위치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아 착석했다.

“오늘은 신세를 졌어. 걔네한테 현상금이 걸려있는 줄은 몰랐거든.”

“괜찮아요. 결국 얻어먹게 됐으니까.”

“보니까 작정하고 현상금 사냥을 하는 모양이던데. 이름이 뭐지?”

“시넬 클로버블룸. 아쉽게도 그다지 유명한 편은 아니지만요.”

그렇게 말한 시넬은 포장지를 열어 곧바로 햄버거를 베어물었다.

음식이 나온 순간부터 시넬의 잿빛 눈동자는 나를 담아두고 있지 않았다.

혼자서 먹겠다고 세트메뉴를 시킨 말이 완전히 허언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시넬이 음식을 먹어치우는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잘 먹네. 평소에도 양이 제법 많은 편인가봐.”

“제 마법은 열량 소모가 심하거든요. 먹을 수 있을 때 보충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힘들어져요.”

“역시 마법사였나.”

하기야, 여자 혼자 현상금 사냥에 나서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래도 전투를 기본으로 상정하고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마법사가 아닌 이상에야 쉽사리 그런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네. 수준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요.”

“현상금 사냥꾼이면 아무래도 일이 험할텐데, 전투에 어느정도 자신이 있나보네.”

“보통 그런 부분에서는 별로 문제가 없어요. 문제가 있다면 다른 부분에서죠.”

“다른 부분?”

“자꾸 타겟을 놓쳐버려요.”

왠지 모르게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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