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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4화 (4/156)

〈 4화 〉 생존본능 (3)

* * *

하기야, 여자 혼자 현상금 사냥에 나서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래도 전투를 기본으로 상정하고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마법사가 아닌 이상에야 쉽사리 그런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네. 수준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요.”

“현상금 사냥꾼이면 아무래도 일이 험할텐데, 전투에 어느정도 자신이 있나보네.”

“보통 그런 부분에서는 별로 문제가 없어요. 문제가 있다면 다른 부분에서죠.”

“다른 부분?”

“자꾸 타겟을 놓쳐버려요.”

왠지 모르게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깐 만났을 뿐인데도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정을 읽어내기도 힘든 부류였다.

시넬이 계속 타겟을 놓치는 이유에는 틀림없이 저 골치아픈 성격이 한몫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뭐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추적쪽이 문제네요. 속도에야 자신이 있지만, 흔적을 쫓는 일에는 별로 익숙하지 않다보니.”

“그야, 추적이 동반되는 일이니만큼 쉽지 않겠지.”

“워낙 잘 도망치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래서 매번 골머리를 썩고 있어요. 냠.”

수북히 쌓여있던 세트메뉴가 어느새 절반 가까이 사라져있었다.

먹는 양도 양이지만, 그 속도도 어마무시했다.

시넬의 체구를 보면 대체 어디로 저만한 양이 들어가는 공간이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서서히 자취를 감춰가는 세트메뉴를 보며 내가 말했다.

“식비가 적게 나오는 편은 아니겠는데.”

“가능하면 저렴한 음식들로 배나 채우는 편이에요.”

“감당하려면 수배범들을 열심히 잡아야겠어. 보통 범죄자를 잡으면 얼마나 나오는 편이지?”

“저렴한 녀석들은 1000크레딧 정도. 물론 거물을 잡으면 더 많이 나오지만요. 혹시 보고싶나요?”

“궁금하긴 해.”

“여기에 있어요.”

스마트폰을 꺼내 무언가 화면을 띄운 시넬이 나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현상수배가 걸려있는 범죄자들을 모아놓은 리스트였다.

화면을 내리며 명단을 하나씩 살펴보면, 범죄의 심각성이나 범죄자의 위험성에 따라 각자 다른 등급이 매겨져있었다.

네자리 수의 크레딧이 걸려있는 3급 수배범부터, 현상금이 보통 1만 크레딧을 호가하는 2급 수배범, 리스트의 위쪽에는 평균적인 현상금이 3만~5만 크레딧에 이르는 1급 수배범이 적혀있었다.

리스트의 최상단에 위치한 특급 수배범의 경우에는 그 현상금이 10만 크레딧을 넘어서고 있었다.

위로 갈수록 악랄하고 위험한 범죄자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리스크를 짊어지는 만큼 버는 구조였다.

“특급은 현상금이 어마어마한데.”

“숨기도 잘 숨고, 싸우기도 잘 싸우지만요.”

“그래도 잡으면 한동안은 여유롭지 않아?”

“그러게요. 언젠가는 잡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특급 수배범.

이들은 원작소설에서도 자주 보이는 범죄자들이다.

특급 수배범들은 비상한 머리나 상당한 전투능력을 이용해 작중에서 성가신 일을 벌이고는 했다.

물론 대부분은 주인공과 싸우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손에 쓰러지거나, 치안대에 제압되어 끌려가는 결말을 맞이하지만 말이다.

“노력하면 잡겠지. 언젠가는 말이야.”

원작에 등장한다는 이야기는 그에 대한 서술이 존재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소속집단. 전투수준. 행동특성.

내가 이들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결코 적지 않았다.

언젠가 적당한 수준의 세력이 모인다면 사냥에 나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10만 크레딧이 잠시동안 눈앞에 아른거렸다.

“꽤나 자신감 넘치시네요.”

“패기없는 녀석은 잡아먹히기 딱 좋은 도시야. 특히나 이 외곽지구는 말이야.”

“그러면 그, 어… 이름이 뭐였죠.”

“퍼시발 스미스.”

“그럼 퍼시발 씨는 무슨 일을 하시나요?”

현재 직업을 묻는 시넬의 질문에 조금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내 직업을 묻는다면 백수에다가 사기꾼에 가까웠다.

하지만 현상금 사냥꾼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머리를 조금 굴리다가, 그나마 둘러대기 쉬워보이는 이야기를 골라 갖다붙였다.

“나? 나야 사업을 하고 있지.”

“그럼 사장님이네요. 무슨 사업인가요?”

“정보상인.”

“정보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반응이 좋았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강해지는 정보를 팔아넘기고서 금과 보석을 얻은 것이 아니던가.

열성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넬의 눈동자를 보면서, 나는 식어버린 버거를 베어물었다.

* * * * * *

“덕분에 배부르게 먹었네요.”

호텔 근처에 위치한 패스트푸드 가게의 입구.

예상보다 빠르게 세트메뉴를 해치운 시넬은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먹어치우고서야 식사를 마쳤다.

그렇게 식판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오면, 들어올 때와 별로 다를게 없는 어두운 길목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저녁이라기엔 너무 늦은시간이었으니 야식이라고 부르는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호텔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자, 옆에 있던 시넬이 나를 따라 걸어왔다.

“시넬이라고 했지. 집은 여기에서 먼 편이야?”

“그렇게 멀진 않아요. 평범하게 걸어간다면 30분 정도려나요.”

“생각보다 가까운 모양이네.”

그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다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시넬은 범죄자도 혼자서 때려잡는 현상금 사냥꾼이다.

그에 반해 나는 눈앞의 소녀조차 제대로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몸이었다.

내 주제에 누가 누구를 걱정하고 있는건지 모를 일이었다.

“……?”

툭.

실없는 고민을 머릿속으로 하고 있던 도중, 나는 갑작스럽게 전해지는 충격에 걸음을 멈춰세웠다.

누군가 나와 시넬 사이를 부딪히며 지나간 것이다.

어깨를 스친 후드차림의 남자는 잠시 나를 힐끗 돌아보더니, 이내 한마디를 내뱉고는 다시 걸어갔다.

“실례.”

어디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분주해보이는 발걸음이었다.

자신의 앞을 지나가 골목길에 접어드는 남자를 바라보던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서야 문제를 깨달았다.

주머니에 마땅히 있어야 할 물건이 사라진 것이다.

“……도둑이었군.”

가지고 있던 얄팍한 봉투와 그 안에 들어있는 크레딧이 사라졌다.

다행히 한쪽 주머니만 털어간 모양인지, 반대편에 들어있던 대량의 크레딧은 무사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오기 전에 시넬에게 받았던 현상금 전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심기가 불편해져왔다.

갖고 있던 크레딧에 비해 얼마 되지 않는다고는 해도 돈은 돈이다.

그나마 적게 잃어버렸다고 해서 납득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에 걸음을 맞춰 걸어가던 시넬이 나에게 물었다.

“소매치기인가요?”

“그런 것 같은데.”

내가 위치한 외곽지구는 원래부터 악명이 자자한 도시 안에서도 치안이 안좋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그야 겉으로 보기에도 범죄자와 현상금 사냥꾼이 판치는 공간이다.

소매치기가 빈번하게 튀어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방금 마주한 녀석에게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시넬은 손가락으로 고글 끝을 밀어올리면서 말했다.

“제가 잡아올게요.”

“뭐?”

“혹시 현상범일지도 모르니까요. [헤이스트].”

그렇게 말한 시넬이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헤이스트. 신체의 시간을 왜곡시켜 빠르게 움직이는 마법이다.

소매치기의 뒤를 쫓아 전력질주하는 시넬의 모습은 눈으로 쫓기 힘들정도로 재빠른 모습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어째서 그녀가 자신의 마법이 열량소비가 심하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왜곡된 시간으로 인해 신체의 대사주기가 짧아지는 만큼, 열량의 소모 역시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나 역시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최대한 빠르게 달려가면서 시넬을 쫓았다.

“시넬! 시넬 클로버블룸……!”

소매치기와 시넬, 양쪽 다 시야에서 벗어나 골목에 들어선 상태였다.

다리를 재촉한 내가 시넬이 사라진 골목길에 접어들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기억하기에는 충분히 인상적인 소리다.

당연하게도 목소리의 주인은 방금 전에 마주친 소매치기였다.

“아악! 내 다리!”

그는 자신의 다리를 붙잡은 채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붙잡고 있는 다리에서 보이는 붉은 상처로 인해, 나는 소매치기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소매치기의 옆에선 피가 묻은 나이프를 정리하고 있는 시넬의 모습이 보였다.

비범하다고 해야 할까. 그게 아니라면 과격하다고 해야 할까.

시넬 자신의 외견이나 성격과는 다르게 내용물이 현상금 사냥꾼인 것만은 틀림이 없어보였다.

“금방 잡았네요. 훔쳐간 돈은 여기 있어요.”

시넬은 포상을 기다리는 듯한 눈빛으로 나에게 돈봉투를 내밀어왔다.

소매치기가 방금 전에 가져갔던 돈봉투가 틀림없었다.

나는 시넬의 손에 들려있는 돈봉투를 잠시동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우리 회사에서 일할 생각있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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