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생존본능 (4)
* * *
“금방 잡았네요. 훔쳐간 돈은 여기 있어요.”
시넬은 포상을 기다리는 듯한 눈빛으로 나에게 돈봉투를 내밀어왔다.
소매치기가 방금 전에 가져갔던 돈봉투가 틀림없었다.
나는 시넬의 손에 들려있는 돈봉투를 잠시동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우리 회사에서 일할 생각있나?”
방금 전에 보았던 시넬의 움직임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았다.
시넬 클로버블룸. 그녀는 내 생각보다도 더 전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직접 시넬을 상대로 마주한다면, 과연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장담하건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눈앞의 소녀를 자신의 경호원으로 고용하면 제법 든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스카웃인가요?”
“생각하고 있는게 맞을거야.”
“일단은 자유로운 편이 좋은데… 하나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요.”
“뭐가 궁금하지?”
자신이 들어갈 직장에 대해 궁금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연봉? 보디가드가 생기고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어느 정도는 맞춰줄 생각이 있다.
복지? 직원도 없고 근본도 없는 회사인만큼 어느 곳도 따라할 수 없는 저세상 복지가 가능하다.
과연 시넬은 무엇을 물어볼 것인가.
나는 긴장하며 시넬의 다음 말을 기다렸고, 돌아온 것은 상상 이상의 질문이었다.
“회사 이름이 뭔가요?”
“회사 이름?”
“들어간다면 적어도 이름은 들어본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요.”
이름은 들어본 회사여야한다는 조건에 나는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회사가 내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는데 이름같은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이름을 말한다고 해서 들어봤을 가능성은 더더욱 없을테고 말이다.
안타깝게도 시넬의 영입은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허탈한 기분이 들었던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들어봤을 리가 없을거야. 애초에 손님이 많은 곳이 아니니까.”
회사의 이름을 꺼내며 물어보았자 이상한 분위기가 되어버릴 것이 뻔했기에, 적당히 넘기는 것을 선택했다.
시넬 역시 별로 큰 관심은 없었는지 구태여 캐묻지는 않았다.
“그런가요?”
“아쉽게 됐네. 오랜만에 유능한 동료를 구하나 싶었는데.”
“유감이네요. 저는 아무나 데려갈 수 없는 엘리트 현상금 사냥꾼이라.”
엘리트라.
믿음직스럽지 못한 면이 더욱 커보이지만, 한정된 의미에서만 보자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나는 자화자찬하는 시넬의 모습을 보며 봉투 안에 남아있던 크레딧을 세었다.
지나치게 큰 돈은 아니라고 해도, 아직 안에는 상당한 금액이 남아있었다.
“현상금 좋아하나?”
“네, 좋아요.”
“내가 주는 현상금이야. 소매치기 잡느라 수고했어.”
나는 돈이 들어있는 봉투를 통째로 시넬에게 건넸다.
처음부터 시넬이 나에게 가져왔던 돈이다.
장물아비 제임스에게서 받은 돈이 많이 남아있는데다가, 미래에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준다면 크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러자 시넬은 눈을 크게 뜬 채로, 내가 내민 돈봉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깜빡. 깜빡.
갑작스럽게 큰 돈을 건네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모양인가.
눈동자를 분주하게 움직여 돈봉투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던 시넬이 물었다.
“전부 다 주는건가요?”
“혹시 금액이 마음에 안들어?”
“그럴리가요.”
허락을 받은 시넬의 손이 잽싸게 돈봉투를 채갔다.
어느정도 액수가 들어있는지는 본인도 가늠하고 있기 때문인지, 시넬은 굳이 금액을 세어보지 않고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돈을 받은 시넬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주머니를 어루만졌다.
물론 그녀를 지켜보던 내 입장에서는 그 모습이 마치 볼주머니에 씨앗을 가득 집어넣은 다람쥐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그럼 현상금도 냈으니, 하나만 부탁해도 되나?”
“물론이에요.”
“저거, 치안대까지 나 대신 옮겨줬으면 좋겠군.”
나는 허벅지를 감싸안은 채로 바닥을 뒹구는 소매치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소매치기에게 현상금이 걸려있는지도 아직 모를뿐더러, 있다고 해봤자 얼마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고작해야 그런 금액을 바라고서 치안대를 제 발로 찾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알겠어요.”
“그럼 나는 호텔로 돌아가야겠네. 치안대까지 고생해.”
시넬은 아무런 불만 없이 뒷처리를 받아들였다.
범죄자의 뒷처리도 다른 사람에게 맡겼겠다, 나는 곧장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깨끗하게 씻은데다가 배부르게 먹어서 그런지 슬슬 졸음이 밀려왔다.
그렇게 호텔을 향해 걸어가려는 찰나.
나는 뒤에서 옷깃을 잡아당기는 손길을 느끼고 발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면 아니나 다를까, 시넬이 옷을 붙잡은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현상금이 있으면 어떻게 할까요?”
“…….”
“어떻게 할까요?”
“……너 다 가져.”
“퍼시발 씨는 아량이 넓은 사람이에요.”
역시나 돈 문제였다.
* * * * * *
이런 몸이 되어버리기 전에, 어머니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무인도에 떨어져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사람이라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는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제법 탁월한 편이었다.
물론 항상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지간하면 중간정도는 되는 선택지를 고르고는 했다.
그리고 주변에서는 그것을 일컬어 잔머리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출중한 임기응변을 잔머리라고 부르기에는, 자기 자신이 조금 안타까운 사람처럼 보이는 기분이 들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스스로의 실전 테크닉에 다른 이름을 붙였다.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생존본능’이라고.
“누구를 찾으십니까?”
내가 오늘 외곽지구에 위치한 4층규모의 건물을 찾은 것도 그 일환이었다.
크로스 네트워크.
거창한 이름을 가진 이 회사는 사람과 사람을 중계해주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곳이었다.
용병과 의뢰자를 연결해주는 것은 기본인데다, 필요하다면 정보상인이나 그보다 위험한 인물과 이어주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에 애매하게 걸쳐있는 곳이 바로 이 크로스 네트워크였다.
“리만을 불러줬으면 좋겠군.”
“리만님 말씀이시죠? 혹시 사전에 예약이 되어있으신가요?”
“따로 잡아둔 예약은 없어.”
“예약이 없으시군요. 알겠습니다.”
내가 오늘 이곳을 찾아온 이유.
그것은 이 크로스 네트워크에 입주해있는 리만이라는 남자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데스크를 맡고 있던 접수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화기를 들어 어딘가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리만 녀석에게 직접 일정을 확인하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리만은 크로스 네트워크 안에서도 제법 인지도가 있는 정보상인이다.
아마도 다른 일정이 잡혀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일정이 많아 만남이 어렵겠네요.”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기다리는거야 별로 상관없는데.”
“급한 일이시면 조수분께서 응대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안내해 드릴까요?”
리만의 조수가 나온다라.
리만이 이끄는 사무소의 규모가 결코 작은 편은 아니었다.
조수라고 한다면 리만의 정보와도 어느정도 연결이 되어있을테니, 그리 나쁜 선택지는 아닌 것 같았다.
따지고보면 리만에게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게 하지. 어디로 가면 되지?”
“지금 등록해드렸습니다. B24 접견실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상대가 너무 인기가 많아도 골치아프군.”
나는 접수원에게서 카드키를 받아들고서 발걸음을 옮겼다.
접견실의 앞에 붙어있는 알파벳은 접견실이 위치하고 있는 층수를 나타낸다.
A01 접견실이라면 1층으로, B01 접견실이라면 2층으로, C01 접견실이라면 3층으로 가야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카드키에 적혀있는 B24 접견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에 가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B24 접견실의 앞에 도착한 내가 카드를 가져다대자, 가벼운 기계음이 흘러나오며 문이 열렸다.
접견실의 안에는 퀭한 눈동자로 앉아있는 정장차림의 남자가 있었다.
“젊은 손님이군.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야.”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일이기는 하지.”
남자의 맞은편에는 비어있는 의자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것을 끌어다가 자리에 앉고서, 남자의 말에 대꾸했다.
전쟁도시의 정보상인이라는 족속들은 기본적으로 거친 편이었다.
시도때도 없이 위험한 손님들이 찾아오는데다가, 그에 대한 기싸움이 실적으로 이어지니까 말이다.
물론 이곳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크로스 네트워크에서 바로 개입할 것이다.
“무슨 정보를 원하지?”
나에 대한 간단한 탐색을 마친 남자가 곧장 용건을 물어왔다.
하지만 내가 오늘 이곳을 찾아온 목적은 원하는 정보를 사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오히려 리만에게 정보를 팔기 위해서 이곳에 찾아온 것이었다.
정보상인들은 때때로 중요한 정보를 매입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원하는 정보는 없어. 나는 단지 정보를 팔러 왔을 뿐이니까.”
“정보? 확실히 우리는 정보를 매입하기도 하지. 어떤 정보를 팔려는거지?”
내가 팔려는 정보.
그것은 이 도시와 내 앞길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정보였다.
“퍼시발 스미스의 정보를 팔겠다.”
“퍼시발 스미스……. 잠깐, 그 이전에 당신 이름이 뭔데.”
“퍼시발 스미스.”
이야기를 들은 남자의 눈이 멍해졌다.
“미친놈이야?”
“그런 셈이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