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강철의 암살자 (1)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물병원의 병원비는 만만치 않았다.
까망이는 병원에 입원했고, 나는 상당한 액수의 크레딧을 시넬에게 선지급했으며, 시넬은 그 대부분을 까망이의 병원비로 사용했다.
이 말도 안되는 연쇄덕분에 나는 빚이라는 이름으로 시넬 클로버블룸을 부하로 묶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잔혹하고 위험한 도시에서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을 얻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갑작스럽게 많은 빚을 진 시넬은 지금의 상황에 불만을 가지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었다.
지금도 시넬은 내 옆에서 만족스러운 얼굴로 걷고 있었으니까.
“까망이가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그래. 다행히 최악은 면한 것 같았지.”
아무리 봐도 무사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까망이에 대한 시넬의 마음만큼은 진심인 것처럼 보였다.
그게 아니라면 적지 않은 금액의 돈을 써가면서까지 길고양이를 살리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크레딧의 자리수를 세는데 미쳐있는 크로스 네트워크의 용병들보다는 어느정도 신용할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중에 집으로 데려올 때가 기대되네요. 까망이가 좋아하겠죠?”
“키울 돈은 충분히 모아놨고?”
“아…….”
돈 이야기가 나오자 시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야 그렇겠지.
애초부터 돈을 별로 가지고 있지 못한데다가, 방금 대부분의 월급을 고양이의 치료비로 탕진했으니까.
그럼에도 돈이 남아있다면 내가 이 녀석에게 사기당한 것이다.
“고양이를 키우는데는 돈이 많이들텐데.”
“어쩔 수 없네요. 돈이 없으면 제가 까망이랑 같이 길거리에서 사는 수밖에…….”
노숙자라도 될 생각인가.
보면 볼수록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르는 성격이다.
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나는 그녀의 입을 틀어막을 생각으로 일에 관한 화두를 꺼냈다.
“너무 걱정하진 마라. 일을 잘하면 인센티브가 나갈테니까.”
“정말인가요?”
“내가 허언이나 늘어놓는 사람처럼 보이나?”
그렇게 보이는게 정상이다.
여기에 와서 내뱉은 거짓말이 얼마나 되는지, 벌써 스스로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버렸으니까.
그럼에도 시넬은 고개를 저으며 내 이야기를 부정해주었다.
“아니요. 사장님은 좋은 사람이니까요. 열심히 할게요.”
“좋은 마음가짐이야.”
“그런데 앞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경호업무. 나를 호위하는게 네 일이야.”
소설, ‘전쟁도시’의 세계는 투쟁과 선혈, 암투와 배신이 난무하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격동의 파도에서 나같은 무명 엑스트라가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세력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세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돈이 있어야 강자들을 거느릴 수 있고, 강한 힘이 있어야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속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자신을 보다 커다란 위험속으로 밀어넣는 것 뿐이었다.
요컨데 나는 도시의 외곽지구에서 다가올 위협들로부터 나를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장님을 지키는건가요?”
“그래. 목숨이 위험하다 싶으면 지키는거고, 무력이 필요하다 싶으면 대신 싸워주는거지.”
“알겠어요. 나쁘지 않은 일이네요.”
일의 대부분은 단순히 나를 따라다니는 것 뿐이다.
시넬의 반응을 보건데 앞으로 맡을 일에 대해 크게 불만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휴대전화를 열어 전화번호부를 켜서는, 그것을 시넬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일은 내일부터다. 연락처를 적어놓으면, 사무실의 위치를 보내주도록 하지.”
이 도시에 하루 이틀만 머물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고 호텔들을 전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확실히 정착할 공간을 구해야만 했다.
* * * * * *
다행히 적당한 사무실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크기는 적당히 크고, 월세는 저렴하며, 아무도 찾아올 것 같지 않은 구석에 위치한 건물의 2층.
나는 그런 곳에 있는 사무실 하나를 인수했다.
가구를 적당히 배치한다면 거주용도로도 손색이 없어보였다.
가능하다면 크로스 네트워크에 입주하는 것도 좋겠지만, 완전히 정보상의 일에 전념하려는 생각은 아니었기에 크게 상관은 없었다.
“사무실이 생각보다 넓네요.”
“일을 하다보면 사람이 늘어날테니까. 아무래도 큰게 좋지.”
철컥.
닦지않은 유리창 너머로 사무실을 바라보는 시넬을 떼어내면서, 나는 열쇠로 사무실의 문을 잠궜다.
기다리던 시넬도 찾아왔겠다.
지금부터 계획해둔 일을 처리하기 위해 밖으로 외출할 생각이었다.
시넬은 문을 잠그는 내 모습을 보면서 물었다.
“문을 잠그면 손님이 못들어오지 않을까요.”
“내가 없는데 과연 손님이 의미가 있을까.”
“……그런가요. 일리가 있네요.”
“이만 출발하지. 일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어차피 제대로 영업할 생각도 없다.
회사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내가 거둔 사람들을 묶어놓기 위한 표면적인 수단에 불과했다.
필요하다면 합법적인 사업체가 아니라 이름뿐인 조직이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나는 시넬을 대동하고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장님.”
“뭔가 물어보고 싶은거라도 있나?”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건가요?”
“지금부터 벨리언트라는 이름의 조직을 찾아갈 계획이야.”
외곽지구에는 여러가지 이권을 놓고 싸우는 범죄조직들이 많다.
오늘 찾아갈 벨리언트 역시 그런 조직들 중에 하나였다.
그것도 전쟁도시의 초장부터 등장해 주인공이 앞으로 어떤 싸움을 치뤄나갈지 알려주는 역할을 맡는 조직 말이다.
호텔에 있는 동안 작중의 시간대를 확인한 나는 벨리언트를 이용해 돈을 벌 계획을 세워두었다.
“벨리언트.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11구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녀석들이지. 보스는 제법 야망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만한 능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군.”
물론 벨리언트가 주인공과 싸우는 것은 아니고, 정확히는 주인공 일행이 싸우게 될 범죄자에게 당하는 역할을 맡는다.
지금 시점의 벨리언트는 경쟁조직에서 보낸 청부업자에 의해 간부 하나를 잃어버린 상태다.
벨리언트의 간부를 죽인 이는 뒷세계에서 ‘철갑’이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데이거스 필립.
그에 화가 난 벨리언트의 보스, 미스터 트릴로는 현재 자신의 오른팔을 암살한 그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엔 미스터 트릴로마저 철갑에게 암살당하게 되면서, 기둥을 잃어버린 조직 전체가 맥없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런 미스터 트릴로에게 작중에서 보았던 데이거스에 대한 정보를 팔 생각이었다.
“역시 정보상인…….”
“아마 전투는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어느정도 기싸움이 필요할테니 마음의 준비는 해두는게 좋을거야.”
“알겠어요.”
말은 이렇게 해도 나 역시 긴장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위험한 상대를 두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게 스스로의 정신건강에 썩 좋은 일은 아니었으니까.
움직이지 않는 자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도시에 잡아먹힌다.
그러니 호랑이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 자신도 강인한 호랑이가 되어야만 했다.
11구역에 도착하고서도 한참을 걷자, 소총을 든 남자 여럿이 건물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작중에서 보았던 벨리언트의 묘사와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이곳이 목적지임을 확인한 나는 시넬과 함께 보초를 서고 있는 남자들의 앞으로 걸어갔다.
“멈춰라. 너는 누구냐.”
보초를 서고 있던 남자 하나가 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허튼 수작을 부렸다가는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듯한 기세다.
그에 나는 최대한 여유로운 모습을 가장하며 남자에게 말했다.
“떠돌이 정보상.”
“무슨 용건으로 찾아왔지?”
“미스터 트릴로를 불러줘. 그와 할말이 있다.”
“보스와는 아무나 만날 수 없다.”
“철갑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전해.”
이야기를 들은 남자는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미스터 트릴로가 눈에 불을 켜고 찾는 암살자에 대한 정보다.
이런 거대한 미끼에 그가 넘어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던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나와서는, 나와 시넬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위험이 될만한 무기들만 맡아둔 후에 들여보내주겠다.”
“좋아. 얼마든지 내어주지.”
“그쪽의 여자도 마찬가지다.”
“시넬. 가지고 있는 무기를 넘겨.”
조직의 간부가 암살당한 직후다.
무기를 지닌 채로 안에 들어가게 해줄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내 지시에 시넬 역시 아쉬운 표정으로 나이프를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총과 단검을 맡은 남자는 탐지기로 보이는 물건을 우리에게 가까이대고 움직이더니, 이내 보초들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들어가라. 보스께서 기다리신다.”
“그래.”
입구를 가로막던 보초들이 비켜서자, 나와 시넬은 건물의 안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투박한 디자인을 한 건물의 내부.
거대한 홀의 한가운데에 부하들을 세워놓은 채로 의자에 앉아 담배를 태우는 중년인의 모습이 보였다.
미스터 트릴로. 벨리언트의 무법자들을 이끄는 보스다.
중후한 눈빛을 나에게 보낸 미스터 트릴로는 들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비며 물었다.
“너는 누구냐.”
정체를 묻는 간단한 질문이다.
나는 미스터 트릴로의 맞은 편에 위치한 의자에 앉으며 답했다.
“퍼시발 스미스.”
아무도 모를 내 이름 여섯자.
그것을 듣기 무섭게 미스터 트릴로의 뒤에 있던 부하들이 소란스러워졌다.
“퍼시발 스미스?”
“그게 누구야?”
“이럴수가. 암흑상인 퍼시발 스미스잖아?”
“암흑상인?”
“뭐야, 유명한 놈이야?”
“세기의 정보상인 퍼시발이 여기에 찾아오다니.”
“암흑상인 퍼시발 스미스……. 그는 아무에게나 정보를 팔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흠, 좋아. 알아주는군.”
왜냐면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나는 거만한 얼굴로 미스터 트릴로를 바라보았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헛소리에 정신이 나간 그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제법 유명한 모양이군. 좋아, 어디 이야기를 들어주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