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강철의 암살자 (5)
* * *
총성을 만들어내 한차례 페인트를 준다.
그와 동시에 생긴 자그마한 빈틈.
첫번째 총성을 들은 데이거스가 움찔거리며 건틀릿을 움직이는 동시에, 내 총은 그보다 살짝 옆을 노리고 쏘아졌다.
“크악……!”
달려나가던 데이거스가 어깨를 붙잡고 비틀거렸다.
이중음과 함께 쏘아져나간 총은 데이거스의 왼팔에 보기 좋게 명중했다.
급소에 맞추지 못해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었지만, 어느정도 행동을 억제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나는 다음 공격을 위해 기둥사이로 위치를 옮겼고, 한차례 비틀거린 데이거스는 다시 앞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 다음에 이어지는 공격을 감안하고서라도, 치안대의 시야에서 가능한 빨리 벗어나려는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내 역할은 시간끌기에 불과했다.
“슬슬 시간이 됐을텐데.”
타닥, 타다닥.
멀리서부터 경쾌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고글을 착용한 채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소녀.
잿빛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달려오는 소녀의 정체는 시넬이었다.
“……사장님?”
“시넬. 녀석을 처리해.”
내 시야를 지나쳐가던 시넬의 눈동자가 나를 마주한다.
끄덕. 신호를 알아들은 시넬이 허벅지에서 단검을 뽑아들었다.
휘릭. 허공에서 돌아간 단검을 시넬이 낚아채며, 무서운 속도로 데이거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으, 윽……! 아까 쫓아오던 그 여자군!”
“…….”
탕! 타앙!
당황한 데이거스가 시넬을 향해 총을 쏘지만, 시넬은 간단히 고개를 꺾는 것으로 날아오던 탄환들을 피해냈다.
도망 갈 곳 없는 골목사이의 직선.
허공에 잿빛의 궤적을 그려내며 내달린 시넬이 순식간에 상대에게 달라붙었다.
근거리에서 휘둘러진 단검의 맹렬한 일격.
카가가가각!
다급하게 건틀릿을 들어올린 데이거스의 철판을 시넬의 단검이 긁고 지나갔다.
“[샤프니스]!”
단검을 막아낸 데이거스가 비어있던 주먹을 뻗어 시넬을 공격하려 하지만, 시넬의 발차기가 그의 복부에 명중하는 것이 더 빨랐다.
한순간에 이루어진 반격.
반응할 수 없는 속도로 데이거스를 걷어찬 시넬은 빠르게 단검을 되돌리고는, 이내 아래로 내려찍었다.
푹!
단검이 내려찍힌 어깨에서 피가 튀어오르며, 데이거스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신음을 내질렀다.
“끄윽, 끄아아……!”
들고 있던 총을 놓친 채로 바닥을 나뒹구는 데이거스.
바닥에 떨어진 데이거스의 권총을 발로 걷어찬 시넬은, 그 직후 끼고있던 장갑으로 자신의 얼굴에 튄 피를 닦아내었다.
데이거스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제압까지 끝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마법도 이런 상태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을 터.
어느정도 상황이 정리되었다고 판단한 나는 권총을 품속에 집어넣고서 건물의 아래로 걸어내려갔다.
데이거스를 쓰러뜨린 시넬이 피가 묻은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고생했다, 시넬.”
“네. 그런데 아까의 목소리는…….”
“거기에 대해선 조금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지. 지금은 이 녀석과 마무리할 일이 남아있으니까.”
청부업자, 철갑 데이거스.
원래대로라면 녀석의 소재지를 말해주는 것까지가 나의 일이다.
그러나 데이거스가 예상외의 분전을 보여준 탓에, 생각보다 힘을 빼는 일이 되어버렸다.
분명 시넬이 없었다면 이렇게 녀석을 붙잡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몸을 휘감고 있던 전투의 긴장감이 서서히 사그라든다.
나는 조금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서 데이거스에게 다가갔다.
“끄윽…….”
“피차 고생이 많군, 데이거스.”
“미스터 트릴로의… 윽, 사냥개인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군. 나는 녀석들의 동료가 아니야.”
데이거스가 의아해하는 얼굴을 하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벨리언트와 같이 있었으니 그런 오해를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 뭐냐.”
“너같은 녀석들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이지.”
“…….”
“괜히 도망쳐서 시간만 버렸잖아.”
데이거스와 관련된 작전을 지휘하던 리암이 녀석에게 당했다.
도망쳤던 데이거스도 다시 잡았으니, 이제 미스터 트릴로에게 대신 연락해 잔금을 받아낼 차례였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그리고선 미스터 트릴로에게 연락을 하려는 찰나, 무언가 이상한 감각을 느끼고서 멈춰섰다.
철컥.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피부를 통해 전해져왔다.
옆에서 나를 지키고 서있던 시넬에게로 시선을 돌리면, 단검을 든 시넬이 당황한 눈초리로 내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 무기를 버리고 멈춰서.”
“시넬. 내 뒤에 누가 있지?”
“치안대가 왔네요.”
치안대.
그 이름을 듣자마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벨리언트가 제법 화려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치안대에서 이렇게 빨리 나타날줄은 몰랐다.
아니, 사이렌이 울리는 소리는 전혀 듣지 못했다.
아마도 근처에 있던 치안대원들이 우연히 우리를 발견하고 찾아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휴대전화의 화면을 꺼놓은 채, 내 뒤에 있을 치안대원을 향해 물었다.
“혹시 뒤를 돌아봐도 되나?”
“양손을 들어올린다면.”
“그렇게 하지.”
목덜미에 닿던 총구의 감촉이 사라졌다.
양손을 위로 들어올리고서,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본다.
그곳에는 수첩을 펼친 채 나에게 총을 겨누고 선 금발의 소녀와,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보였다.
이 도시에서 검은 머리카락은 결코 흔한 색이 아니다.
특히나 목에 두터운 머플러를 두르고 있는 남자의 옷차림은 더욱 그러했다.
기억속의 누군가가 떠오른 나는 이들을 떠보듯이 어떤 이름을 입밖으로 중얼거렸다.
“네이 테르도스.”
“……나를 알아?”
내 말에 반응하는 그녀를 보고서 나는 두 사람의 정체를 확신했다.
작품의 메인 히로인, 네이 테르도스.
그렇다면 그녀의 뒤에 선 남자는 ‘전쟁도시’의 주인공인 어셔 헤이즈일 터였다.
어셔는 자신의 목에 차고 있는 억제장치를 가리기 위해 두터운 머플러를 코트 위로 두르고 다닌다.
저런 독특한 조합이 이 도시에 결코 흔할 리가 없었다.
근처에 있던 치안대원이 찾아왔을거라는 내 짐작이 맞았던 것이다.
“글쎄.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게 아닐지도 모르지.”
“지금 나랑 말장난을 하자는거야?”
“지금 그게 중요한가?”
“그럼 뭐가 중요하다는 건데.”
“치안대가 나를 아무런 이유 없이 위협하고 있다는게 더 중요한거지.”
살며시 손을 내리며 어깨를 으쓱여보인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데이거스가 현상범인만큼, 내가 현상금 사냥꾼의 시늉을 하면 어느정도 해결은 될 터였다.
중요한 것은 고객인 미스터 트릴로의 이야기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벨리언트는 범죄조직이니 치안대와 엮이면 골치아파진다.
아직 돈을 다 받지도 못했는데 문제가 생기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너, 정체가 뭐야.”
총을 고쳐잡은 네이가 내 정체를 물어왔다.
나는 대화사이에 텔레파시를 섞어넣을 준비를 하면서 그녀에게 답했다.
“퍼시발 스미스.”
“퍼시발 스미스?”
“그래, 나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텔레파시를 사용하려던 순간.
시야가 순식간에 어둠에 뒤덮였다.
무엇이 일어났는지 깨달은 것은 어셔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였다.
“멈춰라. 개수작을 부리면 바로 죽여버리겠다.”
순식간에 내 앞으로 이동해온 어셔의 손바닥이 얼굴의 바로 앞에 놓인 것이다.
어셔는 아직 내 마법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다만 내가 마법을 쓰려던 것을 포착하고는 미리 움직인 모양이었다.
주인공이기에 가능한 기예다.
그것을 본 나는 다시 양손을 들어올렸다.
내가 아니라 시넬이 상대라고 하더라도, 마법의 발동속도자체가 어셔쪽이 우위에 있었다.
일단 ‘전쟁도시’는 먼치킨 소설이니까 말이다.
“잠깐. 치안대와 싸울 생각은 없어.”
“뭘 하려던거지?”
“그냥 설명을 좀 보태려던거다.”
“그럼 저 뒤에 있는 여자는?”
손바닥을 걷은 어셔가 눈짓으로 내 뒤를 가리켰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본 나는 단검을 들고 움직이려던 시넬의 모습을 확인했다.
치안대가 상대여도 고용주를 지키기 위해 열심인 시넬이었다.
그 모습에 살짝 흐뭇함을 느끼면서, 어셔를 안심시키기 위해 시넬에게 명령을 내렸다.
“시넬. 멈춰서.”
“네.”
시넬은 들고 있던 단검을 집어넣었다.
그럼에도 어셔는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 뒤를 바라보았다.
이 장소에 있던 것은 나와 시넬만이 아니다.
내 뒤에는 어깨를 붙잡은 채로 바닥을 나뒹굴던 데이거스도 함께 있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던 시야 너머로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난 데이거스의 모습을 확인했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데이거스는 곧장 우리를 피해 좁은 골목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소란을 틈타 이 자리를 벗어나려는 생각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어셔 헤이즈를 상대로 도망가는 것은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쯧.”
블링크.
짧은 순간 자리에서 사라진 어셔는 데이거스의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틈을 노리고 달려가던 데이거스의 머리를 붙잡았다.
“멈추라고 했을텐데.”
에어리어 바인딩.
작중의 어셔 헤이즈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술이다.
주변의 공간째로 붙들어 블링크를 사용한 어셔는 손에 들려있던 데이거스의 머리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그 모습을 본 네이가 한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셔. 어지간하면 죽이지 말라고 했잖아.”
탄식과도 같이 흘러나오는 네이의 목소리.
이곳에 오기 전, 소설속에서 익히 보았던 그 장면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정말로 소설속에 들어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