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암흑상인 (2)
* * *
아침에 눈을 뜨면 귓가에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사무실의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이 벌써 오늘 하루가 시작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정보상인 퍼시발 스미스의 일과는 간단하다.
사장실의 구석에 박아둔 간이침대에서 눈을 뜨고, 2층에 자리한 공용화장실에서 세수를 한다.
2층 전체가 같이 쓰는 화장실이지만, 이런 외곽의 건물에 입주한 사무실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결국에는 나 혼자 2층 화장실을 독점하는 셈이었다.
“……널널해서 좋구만.”
그리고는 아침에 출근한 시넬과 함께 모닝커피를 마시며 중고거래 사이트에 들어가면 아침 일정은 끝이었다.
물론 커피는 내 돈으로 샀다.
시넬에게 돈이 없기도 하고, 이른바 직원 복지라는 것으로 해두었다.
“사장님.”
“음. 무슨 일이지.”
“궁금한게 하나 있어요.”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가구들을 하나씩 보고 있으면, 조심스럽게 체리에이드를 아껴마시던 시넬이 나를 보며 물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시넬이 나에게 궁금한 이야기라.
그러고보니 슬슬 물어볼 때가 되기는 했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던 만큼, 시넬이 물어볼만한 이야기는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궁금한거라면 어떤거지?”
“어제의 목소리는 어떻게 하신건가요?”
데이거스와 벌였던 추격전에서 나는 시넬에게 텔레파시를 사용했다.
시넬이 그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단순전투에서의 활용이라면 몰라도, 텔레파시는 전략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히 괜찮은 능력이었다.
그러니 다른 이들에게라면 그 존재를 비밀로 하는게 맞았다.
하지만 그 상대가 동료라면, 어느 정도 확실하게 자신의 마법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하는 필요성이 있었다.
텔레파시의 유용성은 아군에게 사용할 때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 누구도 도청할 수 없는 일방향의 비밀통신.
자리에 있는 다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서, 부하들에게 비밀스럽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다.
“시넬.”
“네.”
나는 시넬을 바라보며 마력회로를 움직였다.
3서클의 미약한 마력이 고정되어있는 회로를 따라 내달리며, 눈앞에 있는 시넬의 청각을 속이기 시작했다.
“나는 일정거리 안에서.”
“자신의 의사를 원격으로 전달할 수 있다.”
“당연히 이 사실은 밖에서 비밀로 해야겠지만 말이야.”
동시에 들려오는 여러가지 목소리에 놀란 시넬.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요구를 받아들였다.
어제 시넬이 보여주었던 태도를 떠올려보면, 나름대로 믿을 수 있는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이에요.”
“믿을 수 있는 부하에게만 말해주는 이야기다.”
“그런가요?”
“나는 내 사람을 아끼는 편이다. 훌륭한 인재에게 충성심이 있다면, 더 좋은 복지와 더 많은 돈으로 보답할 생각이지.”
“더 많은 돈…….”
앞에 이야기는 안들리는 모양이다.
피식. 저도 모르게 기운빠지는 웃음소리를 내며, 나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속이 보이는 시넬이었다.
그래도 정직해서 다루기 편하다는 것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돈 이야기도 좋지. 나도 돈은 좋아하니까.”
“사장님은 이미 돈이 많잖아요.”
“그걸로도 부족해. 지금은 무력에 투자해 돈을 벌어들이는 시대니까. 세컨더리비트나 나이트테일 기사단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지.”
이 도시는 음모와 혈투가 가득한 정글과도 같은 곳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동료를 모아야만 한다.
그리고 더 많은 동료를 모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역시, 지금보다도 더욱 많은 돈이었다.
“다들 한번쯤은 들어본 회사들이네요.”
“그래, 유명한 회사들이야. 그만큼 이용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는 회사들이기도 하고.”
돈이 많으면 급한 경우에 저런 기업체에서 사람을 끌어다 쓰는 일도 가능하다.
돈과 무력. 그것만이 이 도시의 진리였다.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넘긴 나는 블랙마켓에서 제공하는 현상수배자 목록을 띄웠다.
오늘은 그 피같은 돈을 비싼곳에 좀 써볼 생각이다.
“빙판. 레넌 시리우스. 이 녀석으로 할까.”
보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시작은 빙판이라는 특이한 별명이 붙은 수배범부터였다.
* * * * * *
크로스 네트워크에는 유명한 정보상이 두 명 있다.
하나는 명실상히 최고라고 부를 수 있는 천리안의 리만.
다른 하나는 리만에게 밀려서 언제나 2위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주정뱅이 잭슨.
물론 크로스 네트워크에 소속되어있는 정보상의 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지만, 어디에서나 대중적으로 알아주는 정보상은 이 둘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정보를 사기 위해 크로스 네트워크에 찾아왔다.
거래를 할 상대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리만 캐버런트 쪽이다.
물론 리만의 경우에는 언제나 예약자로 가득 차있어, 이번에도 리만의 조수를 만나야만 했다.
“제법 오랜만이야.”
B16 접견실.
지난번과 다른 장소에 카드키를 가져다 대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 사무실의 것보다 비싸보이는 테이블의 너머, 지난번에도 마주했던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그대로 앉아있었다.
“…….”
“뭐, 그동안 잘 지내셨나.”
남자는 두 눈을 큼지막히 뜬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침묵. 대답이 없는 짧은 시간의 정적이 이어진다.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것인지, 남자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뭘 어떻게 한거야……?”
10크레딧을 주며 위조된 신상을 비웃었던 그다.
그랬던 남자가 이번에는 내 눈치를 살피면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번 거래가 잘풀리는데에는 이 남자가 지대한 공헌을 했을 터.
나는 맞은편의 의자를 끌어다 앉고서는, 한껏 거만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별거 아니야. 그냥, 내가 좀 잘났을 뿐이지.”
“미치겠네, 진짜. 암흑상인이라는 이름은 또 뭔데.”
“…….”
“형씨가 대단한 사람인줄 알았으면, 내가 그렇게 안보냈지.”
여전히 적응이 안되는 별명이다.
한숨을 가볍게 내쉬며 머리를 환기한다.
얼굴에서 올라오던 열기가 한순간에 가시고, 머리가 조금 차분해진 기분이 들었다.
빠르게 머리를 식힌 나는 눈앞의 브라이언에게 말했다.
“이렇게 보는 것도 인연인데, 거래에 앞서 하나 물어보지.”
“뭘 물어보려고.”
“이름이 뭐지?”
리만과는 자주 마주할 수 없다.
거기에는 리만이 제법 인기있는 사람이라는 문제도 있고, 리만같은 정보상과 자주 마주할 수록 이쪽의 정보가 빠져나간다는 리스크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적당히 어수룩하지만 제법 경험도 있는데다가, 그 리만의 밑에서 정보를 다루어왔다.
자잘한 정보를 구하기 위해 자주 만나기에는 적합한 상대였다.
“……브라이언. 브라이언 레일.”
“브라이언이라. 앞으로 자주 봤으면 좋겠군.”
“이번에는 정보를 사러 온건가?”
“그래. 이번에는 고객으로 온거다.”
그 말을 들은 브라이언이 고개를 저었다.
실적이 있으면 그에게도 나쁜 일이 아닐테니 반길 줄 알았건만, 의외의 반응이었다.
거절의 의사를 표한 브라이언은 곧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다면 자주 보기는 힘들거야. 내가 리만의 정보를 파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야.”
“은퇴하는건가?”
“그건 아니고, 이제 사무소에서 독립할 예정이니까.”
왜 거절하는가 했는데, 리만의 사무소를 그만두는 것이 그 원인이었다.
“그런가. 크로스 네트워크에 입주할 생각인가보지?”
“아니. 크로스 네트워크에 들어갈 돈은 없어. 그냥 어디 한구석에 사무실이라도 차릴 생각이야.”
“자신있는 분야라도 있나?”
“뒷골목의 사정에 대해서는 제법 밝은 편이야. 애초에 나고 자라기를 그렇게 살아오기도 했고.”
“그럼 자주 보겠군. 굳이 리만의 정보가 필요한건 아니니까, 언제 한 번 찾아가도록 하지.”
내 말을 들은 브라이언이 조금 놀란 모습을 보였다.
리만이 아니라 자신과 거래를 하고 싶어할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리만이 아니라 나를 보겠다고?”
“리만같은 프로들은 무의식중에 상대의 정보를 채가는 습성이 있지. 자네라면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은데?”
“무, 물론이지.”
“그럼 그걸로 됐어. 이제 이곳에 온 목적이나 이야기하지.”
이제 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였다.
내가 이번에 크로스 네트워크에서 사려는 정보는 하나다.
빙판, 레넌 시리우스.
2급 수배범인 그에 대한 정보를 이곳에서 구매하려는 것이다.
“오늘은 정보를 원해서 찾아왔다면서. 무슨 정보를 원하는거지?”
“레넌 시리우스.”
“레넌 시리우스. 수배범인 모양인데. 어디보자, 빙판이라고 불리고 있네.”
가지고 있던 태블릿을 이용해 무언가를 찾던 브라이언이 손을 멈춰세웠다.
내가 원하던 정보를 찾은 모양이었다.
“얼마지?”
“3천 크레딧. 미리 말해두지만 할부는 받지 않아.”
“필요 없어.”
나는 품속에서 돈봉투 세 개를 꺼내 브라이언에게 내밀었다.
혹시 몰라서 다섯 개를 준비해왔는데, 아무래도 전부 필요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돈을 챙겨 집어넣은 브라이언은 태블릿을 조작하며 나에게 물었다.
“구두랑 서면중에 어느쪽이 좋지?”
“그냥 입으로 전해줘도 돼. 어차피 대단한 녀석도 아니니까.”
“그럼 그렇게하지. 레넌 시리우스. 23세. 8구역의 고아원 출신이군. 3서클의 마법사면서, 강도상해로 치안대에 수배되어 도주 중.”
“그리고?”
“그리고… 이 녀석은 마법이 좀 특이한데?”
마법이 특이하다.
브라이언의 대답에 나는 기대감을 가지고 되물었다.
“뭘 쓰지?”
“그리스(Grease).”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