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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14화 (14/156)

〈 14화 〉 암흑상인 (3)

* * *

브라이언으로부터 레넌에 대한 정보를 사들인 직후.

나는 8구역으로 찾아와 그 주변의 거리를 돌고 있었다.

외곽구역은 도시의 심부에 비해 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악질인 곳이 있다.

낙후된 시설. 처참한 위생. 높은 범죄율.

이 모든 타이틀을 쥐고 있는 것이 도시에서도 최악이라 불리고 있는 8구역이었다.

“전에 왔던 곳이네요. 오늘은 무슨 일로 오신건가요?”

“레넌 시리우스. 강도상해로 수배된 현상범의 위치를 찾기 위해서.”

“현상범…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신거군요.”

아쉽게도 정보상인의 정보는 거기까지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철갑의 경우 작품에 거주하던 위치가 나왔기에 알고 있었지만, 이 빙판이라 불리는 현상범은 ‘전쟁도시’ 내에서도 아예 언급이 없던 인물이다.

단번에 거주지를 특정하거나 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보상인을 통하더라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이 근처에서 녀석이 여러차례 발견되었다는 사실 뿐.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직접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거기까지는 모르겠군. 애초에 정보상들이 2급 수배범 집주소까지 캘 정도로 여유로운 족속들이 아니라서.”

“그러면…….”

“탐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느냐.

당연히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레넌의 흔적을 사람들에게 수소문하고, 직접 의심가는 장소를 찾아보는 것이다.

이른바 탐문이라는 행위였다.

“탐문이군요.”

“그래. 탐문이야말로 수배범에 가까워지는 방법이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시넬을 보자니 옛날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의 나는 잠시동안 탐정놀이를 동경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 행하려는 일도 엄밀히 따져보자면 어느정도는 사립탐정과 비슷한 것이 아니던가.

가슴 속 깊은곳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기분이 든다.

“탐문이라…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무얼, 보면 알거다.”

8구역이라고 하더라도 번화가쯤 되면 제법 사람이 몰린다.

우선은 아무나 붙잡고 레넌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었다.

나는 근처에서 지나가던 사람을 하나 불러세웠다.

브라이언에게 받았던 레넌의 나이와 비슷해보이는 청년이었다.

“잠깐 하나 묻지.”

“뭐야. 바쁘니까 말걸지마.”

청년은 잠시 멈춰서 나와 시넬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뱉고는 떠나갔다.

“…….”

“……다음엔 잘 될거에요.”

청년이 떠나가자 시넬이 위로의 말을 건네왔다.

내가 생각하던 탐문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가슴속의 로망이 뒤틀리는 기분이 든다.

애초에 이렇게 하나씩 물어보려고 생각한게 잘못된걸지도 모른다.

8구역의 인간군상이 대강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시넬.”

“네, 사장님.”

“이 방식은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다. 다른 방식으로 가는게 낫겠군.”

나는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제법 많은 인파가 번화가를 지나가며 움직이고 있었다.

레넌이 이 사이에 섞여서 지나가더라도, 그것을 보고서 알아챌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했다.

적당한 방법을 고안해낸 나는 주변을 지나가는 인파에 텔레파시를 사용했다.

­ “레넌 시리우스.”

사람은 자기 이름을 들으면 무의식중에 반응한다.

본인을 부르는 말이 아니어도, 잘 아는 이름이라면 한차례 정도는 반응하기 마련이다.

의식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은 그렇다.

“흠…….”

번화가를 채운 인파의 한구석.

거기에서도 유난히 민감한 모습을 보이는 중년 남성이 존재했다.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반응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 사람의 반응은 다른 이들보다 정도가 심했다.

하지만 나이대를 보건데 레넌 본인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크게 움찔거렸던 중년인을 향해 다가갔고,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이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다시 길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내가 걷는 속도를 올려 중년인의 곁에 달라붙자, 그는 그제서야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뭐 하나 물어보지.”

“길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레넌 시리우스. 이만한 칼을 가지고 있는 젊은 강도를 본 적이 있나? 머리카락은 금색이고, 키는 이정도 되는 모양이군.”

내 질문을 들은 중년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중년인은 무언가에 분노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혹은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굳은 얼굴로 나에게 되물었다.

“……녀석은 왜 찾으시는 겁니까?”

“우리가 그 친구한테 좀 볼일이 있거든. 물론 그 친구에겐 안좋은 방향으로 말이야.”

“저, 정말입니까?”

이야기를 들은 중년인이 이번에는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해되지 않는 변화에 나는 그에게 물었다.

“녀석과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아까 골목에서 녀석을 마주했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 치안대에 찾아가려는 참이었습니다.”

“그렇군. 우리가 너덜너덜하게 만들어서 치안대에 보내줄테니, 어디에서 만났는지 좀 알려주면 좋겠는데.”

“저쪽, 저쪽으로 가시면 자그마한 골목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다행히도 단번에 정답을 찾은 모양이었다.

맺힌 것이 많았던 모양인지, 그는 최대한 상세하게 레넌과 마주했던 장소를 말해주기 시작했다.

물론 그 뒤에는 지나친 사족이 붙어있었다.

대부분은 레넌에 대한 욕이었다.

* * * * * *

“레넌을 봤다는 장소가 이 근처였나.”

중년인에게 레넌에 대한 힌트를 얻은 나는, 현재 레넌이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장소를 찾아나섰다.

번화가에서 조금 나가면 보이는 복잡한 골목길.

미로같은 골목의 사방에는 골목이라기엔 좀 커보이는 공간들이 다수 존재했다.

글자. 인물. 페인트.

으슥한 뒷골목에서 자주 보이는 모습이다.

사방에 지저분한 흔적이 가득한 그래피티 아트들의 사이를 걷다보면, 골목의 끝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나는 시넬에게 손짓해 그녀를 멈춰세우고선, 조용히 소리가 나는 골목을 들여다보았다.

모퉁이의 너머,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가진거만 다 주면 된다니까?”

“이, 이건 안됩니다! 제 물건이 아니라구요!”

“아저씨 물건인지 아닌지가 뭐가 중요해. 내가 갖겠다는데.”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금발의 청년.

한손에는 길이가 짧은 정글칼을 가지고 있고, 다른 손으로는 벽을 짚은 채 지나가던 남자를 위협하고 있었다.

레넌 시리우스.

자료에서 보았던 2급 수배자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안된다고…요! 이거 회사 물건이라서, 건드리면 당신이……!”

“회사가 아저씨 목숨보다 중요해?”

“그건…….”

“아니면 어디 손목이라도 하나 떼줘야 하나.”

눈앞의 남자 역시 아까의 중년인과 같은 상황에 처한 모양이었다.

8구역은 전반적으로 치안대의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이런 으슥한 골목길에서 벌어지는 범죄라고 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알아채기에는 제법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든 다음, 시넬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반대편으로 돌아가서 둘러싸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이런 골목에서 총을 잘못쐈다간 시넬이 맞을 확률이 높다.

은밀하게. 소리가 나지 않도록.

숨을 죽이며 모퉁이 너머로 이동한 나는 레넌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

첫번째 탄환으로 레넌을 제압한다면 더할나위 없다.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있던 순간이었다.

레넌이 잠시 이쪽 방향을 바라보더니, 순식간에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스(Grease)]!”

“허……?”

위태롭게 서있던 몸이 균형을 잃어버린다.

총을 겨눈 몸뚱이의 사선이 위로 올라가는 순간, 무게중심이 뒤로 넘어가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스. 물체의 마찰을 제어하는 간단한 마법.

마찰을 잃어버린 바닥으로 인해 신발이 접지력을 상실했고, 균형을 잃은 몸이 버티지 못하고 뒤로 넘어진 것이다.

그리스가 가져오는 문제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사라진 마찰과 넘어질 때의 에너지로 인해 몸이 바닥을 타고 레넌쪽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치안대냐? 아니면 현상금 사냥꾼?”

“이런, 몸이……!”

“아무래도 상관없어. 다 죽여버리면 되니까.”

자세를 교정하려고 해도 바닥을 온전하게 짚을 수가 없다.

바닥을 짚은 손이 무너져내리고, 레넌과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진다.

레넌은 들고 있던 정글칼을 나에게 겨누며 웃었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다.

이대로 녀석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면 정글칼에 난자당할 뿐이다.

“시넬! 반대편으로 돌아가라!”

“하지만…….”

“이 방향에서 걸어가봤자 미끄러질 뿐이야!”

시넬의 헤이스트도 지면위에서 움직일 경우에나 우위가 성립한다.

시넬에게 지시를 내린 나는 최대한 몸을 뒤틀었다.

명령을 받은 시넬이 반대편을 향해 달려나가고, 가까스로 몸을 움직인 내 총구가 위태로운 자세로 레넌을 겨눴다.

5미터. 4미터. 3미터.

권총을 들고 있던 팔이 서서히 저려오기 시작한다.

정글도를 겨누던 레넌과 시선이 교차한 순간.

나는 조심스럽게 방아쇠를 당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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