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암흑상인 (4)
* * *
시넬의 헤이스트도 지면위에서 움직일 경우에나 우위가 성립한다.
시넬에게 지시를 내린 나는 최대한 몸을 뒤틀었다.
명령을 받은 시넬이 반대편을 향해 달려나가고, 가까스로 몸을 움직인 내 총구가 위태로운 자세로 레넌을 겨눴다.
5미터. 4미터. 3미터.
권총을 들고 있던 팔이 서서히 저려오기 시작한다.
정글도를 겨누던 레넌과 시선이 교차한 순간.
나는 조심스럽게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성이 울려퍼지며 탄환이 레넌의 옆을 스쳐지나간다.
“……!”
불안정한 자세로 겨냥해서 그런지, 안타깝게도 조준이 정확하지 못했다.
다만 위협사격으로서는 어느정도 효과가 있었다.
스쳐지나간 탄환에 놀란 레넌이 저도 모르게 뒤로 몇발자국 물러난 것이다.
그 약간의 틈을 타서, 나는 빠르게 벽을 걷어차 몸을 반대쪽으로 밀어냈다.
들어올 때보다 약간 느린 속도로 몸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하……. 놀랐잖아, 진짜.”
총성에 놀랐던 레넌은 금방 정신을 차리고서, 내 사선에서 완전히 빗겨난 채 이동하기 시작했다.
누워있는 채로 밀려나는 자세에서 나는 정확하게 조준하기가 힘들었다.
녀석도 내 사격이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해한 모양이었다.
“사장님!”
때마침 골목의 반대편에서 단검을 뽑아든 시넬이 나타났다.
레넌의 앞과 뒤. 양쪽이 전부 아군으로 막혀있는 상황이다.
“윽. 상황이 귀찮게 됐네…….”
주위를 둘러보며 고민하던 레넌은 근처에 있던 남자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촤악!
움츠러든 남자의 팔을 정글칼이 옅게 스쳐지나가며, 터져나온 피가 바닥을 타고 미끄러졌다.
“끄아아악!”
“도망가더라도 하나는 죽이고 가주마!”
그 직후 칼을 든 레넌이 반대쪽 벽에 붙어 달려왔다.
시넬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서, 길을 틀어막은 시넬을 대신해 이쪽을 돌파할 모양이었다.
한눈에 보고서 어느 쪽이 더 약한지 알아보다니.
역시 습격할 대상을 잘 고르는 강도 전문가의 안목이었다.
철컥.
나는 다시 한 번 권총을 조준했다.
내가 어디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특수요원도 아니고, 이 자세에서 맞출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레넌이 작정하고 공격하려는 이상, 나도 그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
“후우…….”
돌파하기 위해 다가오는 레넌과 내가 직선상에서 마주하기 직전.
나는 재빠르게 방아쇠를 당겨 총을 격발했다.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타앙! 탕!
탕! 타앙! 탕! 탕! 투두두두두!
“으악, 씨발! 저게 뭐야!”
계속되는 총소리에 레넌이 나를 지나쳐 다급하게 골목 밖으로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다.
격발음만 들어서는 눈깜짝할 사이에 20발 이상을 쏘아내는 마법의 권총이다.
눈먼 총알이 하나만 몸에 맞더라도 치명적일 것이다.
나같아도 도망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녀석이 이곳을 벗어난 순간 그리스의 지속시간이 끝난 것인지, 자리에서 일어나는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쫓을까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시넬이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팔을 붙잡고 쓰러진 중년과 레넌이 사라진 골목길을 번갈아보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레넌을 잡기 위해서 이곳에 찾아온거지만, 굳이 지금 당장 녀석을 쫓을 필요는 없어보였다.
어차피 이번 작전은 어느정도 시넬과 합을 맞추려는 목적이 컸다.
녀석을 잡는 것은 그리스에 대한 대책을 생각하고 난 이후에 실행해도 상관이 없었다.
“아니, 됐어. 녀석을 쫓는건 다음 일이다.”
대상과의 마찰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마법.
조금이라도 마법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순간, 일련의 행동 자체가 자유롭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다음번에 레넌을 찾아올 때는 무언가 대책이라도 마련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나는 레넌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고서, 팔을 붙잡은 채로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갔다.
레넌의 정글칼에 베인 남자의 팔뚝에서 계속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지혈은 필요해보였다.
“아으, 끄으으윽…….”
“시넬. 단검 좀 빌렸으면 하는군.”
“여기에 있어요.”
시넬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단검을 나에게 넘겼다.
단검을 쥐자 낯선 무게감이 손 안을 감돌았다.
무기를 보는 안목은 없지만, 상당히 괜찮은 장비처럼 보였다.
“잠깐 실례좀 하지.”
지익.
나는 시넬에게서 받은 단검을 이용해 남자의 옷을 조금 잘라내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붕대삼아 베여나간 팔에 단단히 묶었다.
상처에 묶인 천에 피가 흘러나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이전보다는 통증이 조금 가신 것인지, 남자가 고개를 들고서 감사인사를 표해왔다.
“가, 감사합니다…….”
“몸은 괜찮나?”
“괜찮…습니다.”
“괜찮다니 다행이군. 여기서 나가면 바로 병원에 가보는게 좋을거야.”
비쩍마른 체형에 안경을 쓴 초췌한 얼굴.
남자의 모습은 어떻게보아도 전투와는 큰 인연이 없어보였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상당히 힘들어보이는 모습이었다.
물론 나도 전투와 연이 많은 사람은 아니라지만,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손을 자신의 옷에 문지른 남자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저는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선임연구원, 윌슨 엘데어입니다.”
“퍼시발 스미스다. 레서트 인더스트리라. 좋은 곳에 다니는군.”
레서트 인더스트리.
이 도시와 용병기업에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군수산업체다.
기본적인 총기부터 시작해서 맞춤제작 냉병기, 대 마법사용 탄환 등 다양한 것들을 제작하는 곳이었다.
자체적으로 보유한 보안병력도 질이 좋은 편이라서 작품 내내 주인공이 경계해야 하는 기업들 중 하나였다.
“과찬입니다.”
“그런데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연구원이 이런 곳에 무슨 일이지?”
“이 근처에서 받아야만 하는 물건이 있어, 제가 어쩔 수 없이 오게 되었습니다만… 하마터면 안좋은 일이 생길뻔 했네요.”
도시의 기업들은 뒤가 구린 일을 제법 많이한다.
도시 최대의 군수산업체인 레서트 인더스트리라고 해서, 그러한 일을 하지 않을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남자의 손을 붙잡아 일으켰다.
“고생이 많았군. 조심해서 돌아가라.”
“저 때문에 놓친거 같아서 죄송하군요.”
“별로 신경 쓸 일은 아니야. 어차피 녀석은 이 근처에서 계속 맴돌테니, 다음에 와서 잡으면 그만이니까.”
“제 명함입니다. 혹시나 제가 도울일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연락하셔도 됩니다.”
“받아두도록 하지.”
윌슨이 건네어 온 명함을 받아 지갑에 집어넣었다.
레서트 인더스트리와 선이 있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특히나 이 도시에서 미스릴이 들어간 물건을 취급하는 것은 오직 녀석들 뿐이었다.
극히 소량의 미스릴을 구매하는데에도 말도 안되는 액수의 크레딧이 들어간다.
그만큼 미스릴은 굉장히 중요한 전략물자였다.
“언젠가 꼭 이 은혜를 갚겠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든든하겠군.”
악수를 하고서 떠나는 윌슨의 뒤를 바라보았다.
그는 품속에 있는 상자를 여전히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 * * * * *
시넬과 함께 저녁을 먹고 사무실에 돌아오자, 어느덧 어둑해진 하늘이 우리를 반겼다.
일과의 대부분을 사무실에서 보냈던 평소와는 다르게, 오늘은 밖에서 많은 시간을 움직여서일까.
하루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 기분이다.
사무실의 불을 켜고 안에 들어온 나는 시넬을 향해 말했다.
“오늘 일과는 끝이다. 퇴근해도 좋아.”
“퇴근이요?”
“그래.”
“…….”
“무슨 문제라도 있나?”
퇴근하라는 말을 들은 시넬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무언가 고민이라도 있는 것일까.
내 앞에서 가만히 서있던 시넬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들어갈게요.”
“잘 들어가고, 내일 다시 보도록 하지.”
자신의 짐을 챙긴 시넬이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시넬이 나가자 나는 외투를 벗어 비어있던 의자에 집어던지고서, 적당히 커다란 소파에 드러누웠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모셔온 가죽소파다.
등에서 전해지는 안락함이 굉장히 기분좋았다.
“후… 오늘 하루도 끝났나.”
오늘 하루도 별 문제없이 지나갔다.
물론 생명의 위협이 전혀 없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슬아슬한 긴장감은 나쁘지 않은 감각이었다.
경계하지 않는 초식동물은 포식자에게 잡아먹힌다.
이런 전투경험은 어느정도 만들어둬서 손해볼 것이 없었다.
“TV나 좀 보다가 잘까.”
나는 테이블에 놓여있던 리모컨에 손을 뻗었다.
착, 손에 감긴 리모컨의 감촉이 익숙하다.
전원을 눌러 TV를 키면 정규뉴스가 나를 맞이했다.
소파와 마찬가지로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간신히 건져온 대화면 TV는 볼때마다 참 만족스러운 물건 중 하나였다.
“오늘의 뉴스입니다. 레서트 인더스트리가…….”
“흐음…….”
“제임스! 나를 버리는 건가요!”
멍하니 TV를 바라보다가 채널을 돌린다.
뉴스. 드라마. 스포츠. 드라마.
오늘따라 어디를 보아도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한참동안 멍때리면서 TV를 바라보던 나는 이내 전원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의 냉장고에 쳐박아둔 맥주캔이 하나 있다.
그거라도 마시고 잠에 들면 썩 나쁜 기분은 아닐 것이다.
끼익.
나는 사무실에 있던 냉장고에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안을 뒤져 시원하게 보관되어있던 맥주캔을 꺼내려는 찰나, 무언가의 기척을 감지하고 몸을 멈춰세웠다.
“…….”
타닥, 탁.
끼이이이이익.
아무도 없을 복도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맥주캔을 쥐려던 손이 순식간에 긴장하며, 심장의 고동소리가 귀를 통해 전해져왔다.
“설마…….”
이 건물의 2층에 찾아올 사람은 자신과 시넬 이외에 없다.
혹시나 자신을 노린 암살자라도 찾아온 것일까.
지금까지 벌였던 행동중에 원한을 살만한 행동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시넬을 퇴근시킨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무기가 필요했다.
끼이익.
냉장고 문을 다시 닫은 나는 외투에서 조용히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사무실의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고, 이내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재빠르게 총구를 겨누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사장님?”
커다란 캐리어에 기대어 나를 바라보는 시넬이 있었다.
사무실에 찾아온 것은 다행히도 암살자가 아니라 시넬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것도 잠시, 나는 시넬에게 겨누고 있던 총구를 내리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거기서 뭐하고 있지?”
“아, 사장님…….”
“퇴근한지는 꽤 지났을텐데.”
“출근시간까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음……?”
돌아온 대답은 뜻밖의 내용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