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암흑상인 (5)
* * *
“거기서 뭐하고 있지?”
“아, 사장님…….”
“퇴근한지는 꽤 지났을텐데.”
“출근시간까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음……?”
돌아온 대답은 뜻밖의 내용이었다.
방금 퇴근했는데 굳이 출근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있나.
상황을 이해못한 내가 시넬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 시넬은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했다.
“월세를 못내서, 집에서 쫓겨났어요…….”
나는 그제서야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시넬은 나에게서 가불받은 월급의 대부분을 지난번에 까망이의 치료비로 사용했다.
그리고 까망이는 아직까지도 동물병원에 입원해있는 상태다.
월세를 낼 돈이 없는 것도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결국에는 캣맘이 아니라 본인이 길고양이가 되어버린 시넬이었다.
“보증금은? 애초에 한 달 정도는 기다려달라고 해도 되지않나?”
“보증금은 얼마 안되는데, 월세를 네 달 밀렸어요.”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한 달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시넬이 자신의 잘못을 이실직고했다.
나와 일하기 전의 시넬은 확실히 돈 문제로 크게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전부터 월세를 밀리기 시작했다면, 이제와서 집에서 쫓겨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날씨가 추운데 고생이 많겠군.”
“네.”
“집이 구해질 때까지 조금 더 고생하고.”
“…….”
날씨가 슬슬 쌀쌀해져간다.
집 밖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복도에서 고독한 하루를 보낼 시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는 그대로 뒤를 돌아 사무실에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시넬이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멈춰세웠다.
“사장님.”
“왜.”
“월세를 못내서 집에서 쫓겨났어요.”
“그래. 고생해라.”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게 내 일은 아니었다.
나는 시넬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다시 뒤를 돌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내 옷깃을 놓지 않았다.
“……사장님.”
“어.”
“월세를 못내서, 집에서 쫓겨났어요.”
“그래…….”
“사장님.”
“…….”
“월세를 못내서… 집에서 쫓겨났어요.”
“……나도 알아.”
옷깃을 쥔 시넬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사장님. 월세를 못내서…….”
“……짐은 그게 전부야?”
“네.”
끄덕, 끄덕.
시넬이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나는 시넬의 뒤에 있던 캐리어를 집어들고서, 사무실 안쪽으로 끌고 들어가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들어와라.”
암살자보다는 시넬이 몰래 찾아온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내용물이 별로 없는 것인지, 시넬의 캐리어는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끌고온 캐리어를 한쪽에 세워둔 나는 냉장고에 다가가 맥주캔을 다시 꺼내들었다.
어느덧 조심스럽게 들어온 시넬이 소파에 자리를 잡고있었다.
시넬의 바로 옆에 앉은 나는 캔을 따고 한모금 마신 후에, 옆자리에 있던 시넬을 바라보았다.
“…….”
“까망이는 어떻게 됐지?”
“다음주에 데려오기로 했어요.”
“거의 다 나은 모양이군.”
“네에.”
무릎을 끌어안고서 고개를 푹 숙인 시넬을 바라본다.
시넬 클로버블룸.
그녀는 항상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서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부 다 하는 사람이다.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지만 싫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부분이 어느정도 귀여운 면도 있다는 생각이다.
“시넬.”
“네, 사장님.”
“너는 내 보디가드다.”
“네.”
“그러니까, 항상 내 곁에서 나를 지켜라. 잠을 자는 순간까지도.”
“사장님, 그 말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일은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야기의 종막까지 언제나 함께 해줄 사람으로서, 시넬을 믿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시넬이 옆에 있으면 든든하기도 했다.
혹시나 누군가 나를 노리고서 사무실에 찾아왔을 때, 시넬이 곧장 도와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이것은 미래를 위한 선택이다.
“야근수당은 주지 않겠다.”
“…….”
“대신 이 소파에서 잘 권리를 주마. 침대는 안된다.”
그녀가 막무가내인 것이 하루이틀 일도 아니다.
당분간 사무실에서 같이 지낸다고 해서 딱히 문제가 될 것도 없었다.
“야근이었나요?”
“그래. 하지만 돈은 더 주지 않겠다.”
“……악덕, 사장님이네요.”
그렇게 말하는 시넬의 얼굴에서는 조금의 불만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맥주캔을 들지 않은 손으로 시넬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이곳에 오고서 하루하루가 소란스러움의 연속이다.
내일은 어떤 하루가 찾아올까.
피로감이 뒤섞인 미소를 내비치며 맥주를 마셨다.
* * * * * *
“일어나셨나요.”
“……음.”
잠에서 깨면 언제나 마주하던 햇살을 대신해, 일찍 일어난 시넬이 내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암. 가벼운 하품을 내뱉으며 간이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보는게 고글을 벗은 시넬의 모습이라니.
뭔가 좀 색다른 기분이다.
“출근했어요.”
“그래, 수고했다.”
나는 시넬의 농담 겸 진담을 받아주고서 화장실에 찾아갔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화장실.
세면대에 붙어있는 거울을 보면 아침이 되어 헝클어진 자신의 연갈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쏴아아. 물을 틀어 간단히 세수를 하고서, 마개조한 호스를 이용해 혼자만의 넓은 화장실에서 여유롭게 몸을 씻는다.
물론 아무도 오지 않는 화장실을 청소할 청소부가 있을 리 없으니, 화장실 청소 역시 온전히 자신의 몫이었다.
살이 에일듯이 차가운 물을 이용해 몸을 씻어내고 나면, 목에서 절로 기침이 튀어나왔다.
“콜록, 콜록…….”
샤워를 끝마친 나는 옷을 챙겨입고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간질거리는 목을 가까스로 가다듬으면, 사무실의 구석에서 앞치마를 두른 시넬의 모습이 보였다.
시넬은 가스버너와 냄비를 앞에 두고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시넬을 향해 다가가며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 뭐하는 중이지.”
“신세를 졌으니 아침이라도 대접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아. 요리를 하기 위해서 앞치마를 두른건가.”
“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고개를 들어 냄비안의 내용물을 확인해본다.
아무것도 없는 냄비 안에서 뜨거운 물이 끓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물이 끓는 냄비의 바로 옆에, 뚜껑이 열려 있는 컵라면 두 개가 자리잡고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채로 라면 물을 끓인다라.
과연 라면에 넣을 뜨거운 물을 끓이는데 앞치마까지 준비할 필요가 있나 의문이 들었다.
애초에 이렇게 만들면 요리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하지 않은가.
“내용물이 컵라면인데.”
“행사할 때 1+1으로 저렴하게 산 비상식량이에요.”
“비상식량?”
“특별히 사장님을 위해… 계란도 넣어드릴게요.”
엄청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잡고 있지만, 실상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내용뿐이다.
나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내며 멍하니 시넬의 요리를 지켜보았다.
그로부터 10분 후.
앞치마를 벗은 시넬이 양손에 컵라면을 들고 테이블을 향해 다가왔다.
“……수고했다, 시넬.”
무언가 격려의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고개를 끄덕인 시넬은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아 컵라면 뚜껑을 열었다.
나 역시 라면 뚜껑을 열어, 김이 서린 라면을 한 젓가락 집어들었다.
후끈한 열기와 함께 목을 타고 넘어가는 라면의 맛은, 생각보다 훨씬 맛이 없었다.
인스턴트 푸드라고 해도 급이 있는 법이다.
어디서 이런 저가형 라면을 공수해온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맛은 괜찮으신가요?”
“맛없어.”
“네에…….”
“기 죽을 필요 없다. 어차피 네가 만든 요리도 아닌데.”
“그런가요.”
움직이지 않는 입꼬리에서도 수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시넬은 지금 실망하고 있었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이해는 갔다.
눈앞에 내놓은 라면은 시넬이 지금 당장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였을 것이다.
이럴 때는 우리 회사만의 직원복지를 내세우는게 나아보였다.
“시넬.”
“네, 사장님.”
“이제 이런거 먹지마라. 점심에는 햄버거나 먹지. 메뉴를 여럿 주문하더라도 신경쓰지 않겠다.”
“점심은 햄버거인가요……!”
점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시넬의 눈이 반짝였다.
평소에도 나보다 더 많은 양을 먹어치우는 시넬이다.
고작 라면 하나가지고 배가 찰 리 없었다.
점심이나 배불리 먹여두고서 레넌과의 싸움을 준비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래. 햄버거를 먹은 다음에는, 어제 놓쳤던 빙판을 잡는데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는게 좋겠군.”
“따로 필요한 물건이 있나요?”
“마법이 걸린 대상의 마찰력을 줄인다. 상당히 까다로운 능력이라서 그런지, 몸을 움직이는 부류와는 상성이 좋지 않아.”
“그러면…….”
“너라고 해도 몸을 제대로 가누는게 힘들거다. 정확히는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한, 제대로 몸을 가누는 것이 어려워지지.”
레넌 시리우스가 가지고 있는 마법, 그리스.
그리스가 걸려있는 영역 안에서는 어떤 도구를 준비해도 제대로 서있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공중에 떠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무언가의 대책이 필요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레넌에게 우리와 같은 패널티를 짊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우선은 그를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그러니 거기에 대한 대비를 하려는거다.”
“역시 암흑상인…….”
“…….”
시넬의 말을 듣고 조용히 젓가락을 다시 들었다.
시간이 흘러도. 무슨 일이 생겨도.
지금의 나는 암흑상인 퍼시발 스미스인 모양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