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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17화 (17/156)

〈 17화 〉 Clover Bloom (1)

* * *

8구역에 위치한 패스트푸드 전문점.

조금은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빠져나오자, 뒤따라 나온 시넬이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먹었더니 배부르네요.”

“빈말로도 조금 먹었다고 하긴 힘들겠군.”

45크레딧.

나는 손에 들린 영수증을 구겨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마음놓고 주문하게 했더니 생각보다 금액이 크게 나왔다.

물론 시넬의 먹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인지, 나와 시넬의 식사는 거의 비슷한 시간에 끝을 맺었다.

그래도 만족하는 시넬의 모습을 보니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이제 어디로 가나요?”

식사도 마쳤으니 이제 원래 계획대로 움직일 차례다.

그리스 마법에 대항할 준비물을 구하고 빙판을 잡아낸다.

거기까지가 오늘의 일정이었다.

“지금부터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갈 생각이다.”

“필요한 물건?”

“어느정도 머릿속에 그려둔 그림이 있으니까, 이제 그게 맞는지 실험해봐야겠지.”

필요한 물건이라고 해봤자 그리 거창한 물건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을만한, 정말로 간단한 물건이었으니까.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어지간해선 있을만한 가게였다.

그렇게 길을 걸으며 건널목을 세 번 건너고, 모퉁이를 돌았을 즈음.

나는 목표로 하던 물건을 팔고 있을 것처럼 보이는 가게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문구점이네요.”

“그래. 필요한 물건은 여기에 있다.”

“문구점에서 물건을 구하는건가요?”

“아무래도 여기서 사는게 빠르겠지.”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변을 가득 채운 장난감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의 한가운데에는 의자를 놓고 앉아있는 청년이 TV를 보며 자리하고 있었다.

청년은 가게에 들어온 우리를 발견하고는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어서오세요.”

“찾는 물건이 있다.”

“어떤 물건을 찾으시죠?”

“구슬들이 모여있는 곳에 안내해줬으면 좋겠군.”

청년은 의외라는 모습으로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난잡하게 늘어선 장난감들을 피해 우리를 이끌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여기에 있군.”

각양각색의 물건이 들어차있는 매대의 사이.

가게의 한구석에 다양한 색상의 구슬들이 모여있는 공간이 있었다.

한껏 쌓여있는 구슬주머니에 손을 뻗어 그것을 만져보고 있으면, 옆에 있던 시넬이 나에게 물었다.

“필요한 물건이 구슬인가요?”

“녀석 혼자만이 그리스 마법의 영향을 받지 않아. 하지만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물건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걸 좀 많이 사면, 재밌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실전에서 써먹으려면 꽤나 많은 양의 구슬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구슬이 담겨 있는 상자 전체를 집어들었다.

매대에 있던 구슬을 통째로 들고 계산대에 가자, 청년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전부 다 구매하시려구요?”

“좀 많이 필요해서 말이야. 비닐봉지도 하나 챙겨줬으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12크레딧 입니다.”

삑. 삐빅.

결제를 마친 청년이 나에게 비닐봉지를 하나 꺼내어 건네주었다.

구매한 구슬들은 전부 뜯어서 비닐봉지 안에 몰아넣었다.

“이만 나가보지.”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한 묶음씩 들었을 때는 무겁지 않던 구슬이, 비닐봉지 하나에 모여 들어가자 팔에서 상당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시넬이 나보다 전투에 능하다고 해서, 그녀가 나보다 체력상의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구슬을 들고가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어야만 했다.

나는 묵직한 무게감이 전해져오는 비닐봉지를 챙겨 가게를 나서면서 말했다.

“준비는 다 끝났다. 이제 녀석을 찾으면 되겠군.”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신건가요?”

“머리를 굴리면 하나쯤은 방법이 나오겠지.”

그런 녀석들의 행동반경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이 8구역 안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마 지난번에 마주했던 골목에 들어가는 일만은 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머릿속으로 녀석의 행선지를 하나씩 그려나간다.

레넌이 대놓고 활동하기 힘든 곳을 제외하고서, 기억속의 지도를 하나씩 수정해나갔다.

대략적인 목적지가 정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가자, 시넬.”

처음으로 시넬과 벌이는 현상금 사냥이다.

오늘 레넌을 찾지 못한다면, 내일 다시 녀석을 찾으면 그만이었다.

나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레넌이 있을만한 장소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 * *

빙판, 레넌 시리우스.

2급 수배범이 되어 전단지에 그려진 자신의 얼굴에 청년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전단지를 찢어버렸다.

8구역을 배회하는 레넌은 원래 용병을 꿈꾸던 청년이었다.

마법을 손에 넣어 인스턴트 메이지가 되었던데다가, 어릴 때부터 뒷골목을 전전하며 싸우는 법을 몸에 익혔다.

하지만 크로스 네트워크의 유명한 기업체들은 한결같이 레넌을 회사에 받아주지 않았다.

분명히 레넌의 그리스 마법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레넌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레넌 스스로가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주자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저지른 살인은 자신을 비웃던 용병 두 사람을 베어버린 일이었다.

‘사, 살려줘…….’

‘…….’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꼴사납게 바닥을 뒹구는 용병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우스운 것이었다.

보아라. 내가 이들보다도 훨씬 더 우월하지 않은가.

당시에는 그런 생각만이 레넌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물론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고 해서, 레넌의 인생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수중에 생활할 돈은 없고, 기업으로부터 블랙마켓에 현상금이 걸렸으며, 결국에는 쫓기는 신세까지 되었다.

이후에는 돈이 없어 정글칼을 들고 강도짓을 시작했다.

“200크레딧. 뭐야, 얼마 없잖아.”

강도짓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일정하지 않다.

돈을 벌어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바닥이 났고, 치안대가 오면 부리나케 도망쳐야만 했다.

어쩌다가 현상금 사냥꾼들이 찾아오면 그 날은 정말 목숨을 걸고 전투를 치뤄야만 했다.

바로 어제 2인조의 현상금 사냥꾼과 전투를 벌였던 것처럼 말이다.

“저… 이제 가봐도 될까요?”

“꺼져.”

돈을 챙긴 레넌이 눈앞의 남자에게 말했다.

레넌이 정글칼을 치우자 남자는 죽어라 달려 골목길을 벗어났다.

그렇게 남자를 보낸 레넌은 주머니에 들어간 돈의 감촉을 느끼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도 현상금 사냥꾼들이 레넌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8구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닌다고 하지만, 같은 곳을 거닐다가 마주할 확률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러니 한동안은 어제 갔던 장소에 발을 들이지 않을 계획이었다.

“하루만이군. 레넌 시리우스.”

“너희는…….”

하지만 현실은 그런 레넌의 생각과는 달랐다.

골목의 모퉁이를 지나는 레넌의 눈앞에 익숙한 얼굴의 두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비닐봉지를 들고 있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하나. 그리고 그보다는 체구가 작은 소녀가 하나.

퍼시발 스미스와 그의 경호원인 시넬이었다.

현상금 사냥꾼들과 마주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동선을 바꾼 레넌이었지만, 결국에는 이런식으로 마주치게 되었다.

레넌은 곧장 정글칼을 들어올리고서 눈앞의 사냥꾼들을 노려보았다.

“또 보네, 너희들. 도대체 왜 나한테 관심이 많은거냐?”

“범죄자를 쫓는 이유가 하나밖에 더 있나?”

“설마 정의감에 쫓는다는 소리를 하는건 아니겠지?”

“글쎄. 어지간하면 현상금을 보고서 움직이겠지.”

역시나 이유는 돈이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현상금 사냥꾼이나 할걸.

그런 자그마한 후회가 잠시동안 레넌의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러나 레넌은 빠르게 머리속에서 상념을 지워버리고서, 눈앞의 적들에게 집중했다.

지금의 자신은 블랙마켓의 근처에만 가도 사냥꾼들에게 쫓기는 먹잇감에 불과했다.

이제와서 후회해봤자 시간낭비였다.

“……뭐, 됐어. 쫓아오는 녀석들은 다 죽여버리고, 가지고 있는 물건이나 털면 되겠지.”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

“나를 비웃던 사람들은 많았지만, 결국에는 전부 들개의 밥으로 전락했거든. 과연 너희라고 해서 예외겠어?”

“그런가. 그런 너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

말을 마친 퍼시발이 코트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의 손에 붙잡힌 검은색의 형체.

반쯤 열린 코트 속에서 움직이는 권총의 모습이 레넌의 눈에 들어왔다.

품속에서 총을 꺼내려는 움직임에 레넌은 앞으로 달려나가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검을 든 손에서 밝은 마력광이 터져나오며, 물리법칙을 비틀어내는 기적의 힘이 주위를 휘감았다.

“[그리스].”

“……시넬!”

극단적으로 대상의 마찰력을 줄여버리는 마법.

주위의 지면이 그리스 마법의 효과를 받으며, 레넌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두 발로 서있을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시넬은 재빨리 뒤로 물러서 그리스의 영향권을 벗어났지만,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퍼시발은 균형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퍼시발이 들고 있던 봉지의 내용물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륵.

수많은 구슬들이 밖으로 흘러나오며 마찰을 잃어버린 바닥을 굴러다녔다.

파랑. 빨강. 초록. 보라.

형형색색의 구슬이 벽에 부딪히고, 서로간에 충돌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길목 전체로 확산했다.

마찰을 잃어버린 바닥에서 움직이는 구슬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별 시덥잖은 장난감을 다 들고오셨구만!”

레넌은 퍼져나가는 구슬들을 무시하고 넘어진 퍼시발을 향해 달렸다.

레넌의 신발에 부딪히는 구슬들이 사방으로 퍼지며 튀어나간다.

그렇게 튕겨져나간 수많은 구슬들 중 하나는 벽에 부딪혀 레넌의 신발 아래로 되돌아왔다.

퍼시발을 노리고 달려가던 레넌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대로 발을 내딛였다.

“아……!”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마찰을 잃은 구슬이 미끌어지며, 앞으로 돌진하던 레넌이 신체의 균형을 잃어버렸다.

구슬을 밟고 넘어져 바닥을 뒹구는 짧은 순간.

벽면을 밟고 도약해 다가오는 잿빛머리의 소녀가 레넌의 시야에 들어왔다.

레넌을 향해 날아드는 소녀의 손에는 날카로운 단검이 들려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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