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Clover Bloom (4)
* * *
스피넬과의 만남 이후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블랙마켓에서의 일정은 별다른 문제 없이 흘러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긍정적인 이야기는 스피넬이 내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나를 처리할 생각이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나에 대한 처분을 나중으로 보류했다.
내가 그녀에게 했던 말대로 계승자의 눈치를 본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스피넬 자신이 결사의 일을 처리하는데 내가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스피넬 클로버블룸은 나를 계속 지켜보겠다고 말하고선, 블랙마켓을 떠나는 나와 시넬을 배웅했다.
물론 시넬은 마켓을 떠나 사무실에 돌아올 때까지 퉁명스러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
두 사람이 남아있는 사무실.
휴대전화를 이용해 저녁에 먹을 음식들을 주문하고 있으면,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는 시넬의 모습이 계속해서 눈에 밟혔다.
분명히 블랙마켓에서 있었던 스피넬과의 일이 원인일 것이다.
시넬과 스피넬의 사이가 좋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스피넬의 동생. 그리고 나의 조수, 시넬 클로버블룸.
나는 아직 그녀의 사정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어설프게 시넬의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보다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시넬.”
“네, 사장님.”
“방금 피자를 시켰다.”
“……피자인가요.”
피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시넬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역시 울적해진 기분은 피자따위로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음 주제를 꺼냈다.
“통상적인 피자보다 2배나 비싼 프리미엄 피자다.”
“……프리미엄 피자군요.”
“물론 사이드 메뉴인 스파게티도 시켰다.”
“……스파게티인가요.”
“게다가 프렌치프라이도 같이 주문했다.”
“……콜라는 안오나요.”
“흐음…….”
아무래도 괜한 걱정을 한 모양이다.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의자에 드러누웠다.
의자의 등받이가 기울어지며 사무실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천장. 그리고 촘촘하게 수놓아진 전등.
텔레파시 마법 하나만을 가지고 이곳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새삼스럽게 느끼는 거지만, 짧은 시간동안 참 많은 것을 이뤄내었다.
위대한 암흑상인, 퍼시발 스미스.
뒷받침할 증거도, 내세울 업적도 없는 그것이 지금 자신의 이름이었다.
“시넬.”
“네.”
“나는 정보상인이다.”
“알고 있어요.”
“그리고 사람의 정보를 듣는걸 아주 좋아하지.”
“네.”
“그러니 말하고 싶은게 있다면 얼마든지 털어놔라. 뭐라도 들어줄테니.”
“……그런가요.”
끼이익.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코를 찌르는 피자냄새와 함께, 피자를 들고 찾아온 배달원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배달원에게 다가가 음식값을 내밀었다.
그는 영수증에 적힌 금액을 확인하더니, 이내 나에게 피자를 내밀며 감사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묵직한 음식의 감각이 손을 통해 전해져온다.
78크레딧. 둘만의 화려한 만찬을 만드는데는 괜찮은 금액이다.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경첩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배달원이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나는 도착한 음식들을 테이블에 늘어놓고선 시넬의 맞은 편에 자리를 잡았다.
“피자는 좋아하나?”
“싫어하지는 않아요.”
“그럼 맛있게 먹지.”
음식의 포장을 풀고서 안에 있던 피자를 집어든다.
그리고는 따끈따끈한 피자를 한입 베어먹고 시넬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손으로 피자를 집어든 시넬이 자그마한 입으로 피자를 베어물었다.
시넬의 손에 들려있던 피자는 순식간에 그녀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속도였다.
어느새 피자 조각 하나를 전부 먹어치운 시넬이 기름이 묻어 번들거리는 입술로 입을 열었다.
“맛있네요.”
“그래. 많이 먹도록.”
“네.”
“내가 먹을 양은 남겨놓고.”
치익. 김빠지는 소리를 내며 맥주캔을 열었다.
기름진 피자의 여운을 맥주로 씻어내고 있으면, 앞에서 피자를 먹던 시넬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잠시동안의 침묵.
그 이후에 시넬이 피자를 내려놓고서 말했다.
“사장님.”
“왜 그러지?”
“사장님은 대단한 정보상인이니까, 이건 전부, 혹시나 해서 하는 이야기에요.”
“……물론이다.”
이제서야 고민을 이야기할 결심이 선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콜라를 한모금 마신 시넬은 내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서 이야기했다.
“스피넬은 제 언니에요.”
“알고 있다.”
“그리고 제가 봐왔던 스피넬은… 어렸을 때부터 뭐든 잘했어요.”
“마법에 대한 이해가 괜히 빠른건 아닌 모양이군.”
“그래서 저는 단 한번도 스피넬을 실력으로 이겨본 적이 없어요.”
마천루의 마법사는 불세출의 천재다.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내면의 진리’에 가까워졌으며, 그 결과 6서클의 대마법사가 되어 이 도시를 뒤흔들고 있다.
마법에 대한 이해도 역시 높은 편이었기에, 대마법사가 되기 전부터 그녀의 마법으로 치안대를 농락하고 다녔다.
계승자가 스피넬을 결사에 거두어들인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저는 그런 스피넬이 좋았어요. 무척이나 상냥하고 자랑스러운, 그런 가족이었으니까.”
“음.”
“사고가 나면서 집이 어려워지고 둘만이 남게 되었을 때도, 그 순간이 영원히 계속될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그런가.”
“하지만 어느 순간, 스피넬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정확히는 부모님의 빚을 받아내겠다고 사람들이 찾아온 이후부터.”
시넬의 말이 이어질 수록, 이야기가 점점 파탄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이야기 속 ‘전쟁도시’는 결코 모두가 행복한 곳이 아니다.
범죄자가 있으면 어딘가엔 피해자가 있고,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어딘가엔 불행한 사람이 있다.
안타깝게도 시넬은 후자였던 모양이다.
“그 사람들은 부모님의 빚에 이자가 붙었다면서 말도 안되는 금액을 이야기했어요.”
“…….”
“스피넬은 저한테 괜찮다면서, 현상금 사냥꾼 일을 하면서 갚으려고 했지만… 그때부터 서서히 돈에 집착하기 시작하더니…….”
“범죄자가 되어버렸군.”
“맞아요. 결국에는 전부 다 죽여버리고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렸어요.”
누구나 마음속에 자그마한 어둠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천재인 스피넬이라고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을 죽이는 감각에 서서히 익숙해진다.
사람을 휘두르는 자신의 마법에 더욱 도취되어 간다.
그런식으로 사람은 조금씩 자신의 안에 있던 악의에 집어삼켜지는 것이다.
“하지만 제가 더욱 더 강해지고, 스피넬이 만족할만큼 많은 돈을 벌게 된다면. 그때는 분명 억지로라도 스피넬을 되돌릴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시넬과 스피넬의 과거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시넬에게서 눈을 돌리고서, 잠시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처음부터 방향이 잘못되어있는 노력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있자니, 달밤의 마력에 뒤섞여 이상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좋은 꿈이군. 응원하도록 하지.”
손에 들린 맥주캔을 비워버리고서 내려놓았다.
지금의 나는 타인의 이야기를 지켜보기만 하던 독자가 아니다.
자기 자신과 주변사람의 이야기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등장인물이었다.
험한 세상일지라도 나와 동료들에게는 해피엔딩을 선사하자.
그러한 결의가 마음속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저는 월급을 많이 받고 싶어요.”
“푸흡…….”
그리고는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콜록, 콜록.
목구멍을 넘어가던 맥주가 역류하며 사레가 들렸다.
한참을 콜록이며 기침을 하고 있으면, 티슈를 가져다 준 시넬이 내 등을 두드렸다.
나는 티슈로 입을 막아내고서 간신히 상태를 진정시켰다.
“괜찮으신가요?”
“그래.”
“멀쩡하신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걱정해줘서 고맙군.”
안타까운 사연이라고 생각하던 마음이 심연으로 내려앉았다.
가슴아픈 이야기의 끝에 월급을 많이달라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앞에서 밀려오던 감동이 사라지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이게 사장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인가.
무언가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 기분이다.
“사장님.”
기침이 완전히 잦아들자 등을 두드리던 시넬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피자와 같이 주문한 프렌치프라이를 하나 입에 가져가면서, 정신을 차리고 있던 나에게 말을 걸었다.
“듣고 있다.”
“하나에 하나. 대가없는 정보는 없는게 정보상인의 원칙이잖아요.”
“그런 원칙이 있지.”
“그러니 이제는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스피넬에게 말했던 것을 나에게 그대로 돌려주는 시넬이었다.
물론 그녀는 정보상인도 아니고, 정보 하나에 다른 하나를 답해주는 것도 정확한 원칙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시넬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의 이야기는 전부 끝마쳤으니, 이제는 내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뜻이었다.
“시넬.”
“네.”
“나는 피자를 샀다.”
“…….”
“정보료는 이미 지불했군.”
시넬의 무뚝뚝한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딱히 할 이야기가 없었다.
무얼 말하겠는가.
내 이야기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거짓말인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