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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21화 (21/156)

〈 21화 〉 Clover Bloom (5)

* * *

“…….”

잠에서 깨어난 나는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지난 밤에 제법 으스스한 악몽을 꾸었다.

악몽이라고 해도 꿈의 내용이 자세하게 기억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괴물에게 붙잡혀 움직이지 못했던 장면만은 머릿속을 선명하게 맴돌고 있었다.

거기에 어젯밤의 숙취가 남아있는 것인지 몸 전체가 무거웠다.

세수를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싶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이불을 걷었다.

“으음…….”

침대를 뒤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내자, 내 몸을 강하게 끌어안고 있는 시넬의 모습이 보였다.

평소에 쓰던 고글을 벗어놓은 시넬은 나에게 찰싹 달라붙은 채로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자신이 왜 간밤에 괴물에게 붙잡혀있던 꿈을 꾸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잠을 자는 내내 시넬에게 이런식으로 붙잡혀 있었다면, 오히려 악몽을 꾸지 않는 편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하…….”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의 옆에 착 붙어서 자고있던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대단한 아가씨였다.

손을 뻗어서는 자고있는 시넬의 볼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손가락에 붙잡힌 말랑한 볼이 크게 늘어나며, 편안하게 잠을 자던 시넬이 눈을 떴다.

“아으……?”

“시넬.”

“……사장님?”

나는 시넬의 볼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으면서 말했다.

“일어났냐.”

“네엡.”

“여기는 내 침대다. 안 그런가?”

“맞아요.”

“그런데 이 상황은 대체 뭐지?”

짧은 침묵.

시넬의 눈이 이불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는 골똘히 생각하는 것인지 잠시동안 시선을 움직이다가, 이내 나를 바라보고선 입을 열었다.

“어젯밤은 날씨가 조금 추웠어요.”

“그래서?”

“날씨가 추웠어요.”

“…….”

날씨가 추워서 내 침대로 기어들어왔다는 말인가.

그래. 날씨가 추우면 이불이 필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래도 보통은 덮을 이불을 찾아보거나, 이불 대신에 사용할 물건을 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런데 왜 소파를 놔두고 내 침대위로 기어들어온 것일까.

의문을 가지고 시넬을 바라보자, 돌아오는 대답은 이전과 같았다.

“날씨가 추웠어요.”

“……그래.”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한지는 모르겠지만, 물어본다고 결론이 나는 이야기가 아닌 것만은 분명해보였다.

나는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세정을 위해 구석에 비치해두었던 샴푸와 비누를 집어들었다.

“씻으러 가시나요?”

“너도 준비해둬라. 아침 먹고 밖으로 나갈테니까.”

“밖으로 나가는군요.”

“너한테 줄 선물을 살 생각이다.”

선물이라는 말에 시넬이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선물을 준다니까 기뻐하는건지, 아니면 왜 선물을 주는지 모르겠다는건지.

여전히 그 속내를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시넬은 근처에 있던 이불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올려 나를 바라보았다.

“선물……. 무슨 선물인가요.”

“글쎄. 정확히 뭘 선물하게 될지는 가봐야 알겠지. 하지만, 너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다.”

“저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요?”

“그렇지. 시넬, 너는 네가 어디에 있던지, 내가 너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광범위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텔레파시 마법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마법의 적용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시넬에게 지속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이 가능했다.

시넬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질문에 긍정했다.

“네. 사장님의 마법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역은 힘들겠지.”

“그렇네요.”

“그러니 나와 연락할 수단을 하나 마련해둘 생각이다.”

나와 시넬의 거리가 조금 멀어지더라도, 내가 시넬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어떨까.

모든 상황에서 나와 시넬이 붙어있을 수만은 없다.

단독행동중인 시넬이 나에게 보고를 해야만 하는 상황은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시넬의 위치를 원격으로 확인하며, 재빠르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물건을 시넬에게 쥐어줄 생각이었다.

“블랙마켓에 가시나요?”

“그런 장비들은 가격이 꽤 나가는 편이지. 오래 쓸 생각이면 확실한 곳에서 사는 편이 좋을거다.”

“그럼…….”

“중심구역에 있는 백화점에 갈 생각이다.”

레서트 인더스트리는 화기 이외에도 다양한 품목을 취급한다.

그리고 그것들 중 민간인들에게도 통용될 수 있을만한 물건을 백화점에 납품하고 있기도 했다.

무기가 필요한게 아니라면 블랙마켓보다는 백화점에 찾아가는 편이 품질면에서는 확실했다.

“백화점이라… 오랜만에 듣는 말이네요.”

“알아들었으면 빨리 준비해라.”

백화점에 찾아갈 생각을 하니, 머릿속을 잠시 스쳐지나가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나는 테이블에 놓여있던 휴대전화에 손을 뻗어 오늘의 날짜를 확인했다.

다행히 작중에서 벌어졌던 백화점 습격사건까지는 아직 기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오늘 우리가 움직이더라도 사건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 * * * * *

어둠이 드리워진 골목길.

그 안에서 조용히 벽에 기대어 있던 캘빈이 눈을 떴다.

세간에서 그를 보고 이르는 말은 ‘폭주전차 캘빈’.

특수제작한 풀플레이트 아머를 둘러입고 움직이는 그는 뒷세계에서도 제법 인지도가 있는 수배범이었다.

그리고 그런 캘빈의 앞에는 가면을 쓴 손님 하나가 서있었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캘빈은 가면을 쓴 남자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모른다. 얼굴도 모른다.

그럼에도 눈앞의 남자는 캘빈의 고객이었다.

그는 언제나 거액의 선금을 내밀며 캘빈의 팀에 일을 맡겼고, 성공적으로 일을 끝마치면 어마어마한 보수를 지급했다.

가면을 쓴 남자가 제법 수상하기는 하지만, 애초에 도시의 뒷골목은 하나같이 수상한 인간들 투성이였다.

돈만 제대로 지급한다면 캘빈으로서는 트집잡을 이유가 없었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손님의 얼굴이 궁금해지는 것을 억누른 채, 캘빈은 가면을 쓰고 있는 손님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무슨 일로 연락했지?”

“급한 성격이군요.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눠도 좋을텐데 말이죠.”

가면을 쓴 남자가 우스꽝스러운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캘빈의 눈에는 가면 너머 남자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면을 마주하고 있는 캘빈은 어째서인지 눈앞의 손님이 자신을 비웃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다.

돈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저 가면에 주먹을 한차례 쳐박았을 것이다.

“나는 말재간이 없는 편이라서 말이야. 각자 용건만 말하고 헤어지는게 제일 깔끔하지 않나?”

“그렇게 살면 재미없지 않습니까? 캘빈, 당신은 조금 더 사람들과 어울리는 편이 좋겠군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오래 얘기하는 취미는 없어.”

“신뢰받고 있지 못하다니 슬픈 이야기로군요. 뭐, 좋습니다. 그럼 당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남자는 그 직후 품속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 펼쳐보였다.

남자가 펼친 종이에는 은백색의 귀고리 하나가 인쇄되어 있었다.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사실을 제외하면 단순히 평범한 귀고리처럼 보였다.

캘빈은 남자가 펼친 종이를 보며 그에게 말했다.

“뭐지? 귀고리처럼 보이는데.”

“귀고리가 맞습니다. 다만 평범한 귀고리는 아니죠.”

“평범한 귀고리가 아니라고?”

“이건 미스릴을 섞어 만든 귀고리입니다.”

미스릴. 작은 조각조차 어마어마한 가격을 호가하는 금속.

남자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은 캘빈의 표정이 굳었다.

미스릴은 장신구로 가공해도 충분할만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 진정한 가치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렇기에 캘빈은 미스릴로 귀고리 따위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스릴이 들어간 귀고리? 어떤 정신나간 녀석이 그런 물건을 만들어?”

“글쎄요. 세상에 돈이 썩어나는 인간은 제법 많은 편입니다. 분명 이런 방식으로 부를 과시하고 싶은 사람도 어딘가에는 있겠죠.”

“그래서 우리보고 이 물건을 가져오라는 이야기인가?”

“슬슬 익숙해져서 그런지 이야기를 빠르게 알아듣는군요. 맞습니다. 그게 제가 이번에 당신들에게 맡길 일입니다.”

미스릴이 들어간 귀고리를 가져와라.

남자의 의뢰를 들은 캘빈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평소에 남자가 주던 보수는 결코 적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가져와야 하는 물건이 미스릴이라고 한다면, 보수를 제외하고서라도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상당했다.

굳이 남자에게 넘기지 않더라도 찾는 이가 많은 물건이다.

정보와 탈취 가능성만 확실하다면 캘빈 자신에게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물건은 어디에 있지?”

“3구역에 있는 백화점의 금고에 있습니다. 물론 그보다 자세한 위치는 저도 모릅니다.”

“물건이 나올때까지 백화점을 뒤지고 있으란 소리인가?”

“하지만 물건만 찾아낸다면 더할나위없이 좋은 기회가 되겠죠. 당연히 값은 확실하게 쳐드릴겁니다.”

“보수 문제가 아니다. 중심구역은 리스크가 너무 커.”

“축성가와 당신이 함께 움직인다면, 치안대를 따돌리는게 완전히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

일생일대의 기회.

리스크를 짊어지고 단번에 인생을 역전할 것인가, 일을 포기하고 눈앞의 손님마저 놓쳐버릴 것인가.

고민하던 캘빈은 이내 굳은 결심을 하고서 남자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줄 수 있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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