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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22화 (22/156)

〈 22화 〉 미로 (1)

* * *

중심지구와 가까운 3구역은 이 도시의 화려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들 중 하나다.

끝을 모르는 마천루가 사방에 늘어서있고, 수많은 인파가 거리에 북적거리며, 하늘에는 가지각색의 전광판이 빛나고 있다.

그리고 그런 3구역의 안에서도 가장 중심에 위치한 백화점이 바로 오늘의 목적지였다.

나와 함께 백화점의 안에 들어선 시넬은 호기심에 반짝이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비싸보이는 물건뿐이네요…….”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백화점을 둘러보던 시넬이 말했다.

시넬은 줄곧 유복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왔다.

평소부터 월세를 내는 것조차 힘들어 허덕이던 그녀에게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취미가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런 취미가 있다면 분명 내가 시넬에게 속고있는 것이다.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대부분 근처에서 구매하는 것이 가능할테니, 구태여 중심지구에 자주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혹시 갖고싶은 물건이라도 있나?”

“저게 갖고싶네요.”

나는 시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거기에는 커다랗게 세워져있는 캣타워의 모습이 보였다.

시넬과 캣타워를 번갈아 바라보던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표정을 지으며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다.

“아무래도 없는 모양이군.”

“……사장님.”

“구하려는 물건은 윗층에 있다.”

부드럽게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외곽지구에 있던 그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윗층으로 올라가면, 한층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전자제품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도시와 도시 밖에서 잘나가는 전자회사들의 신형 전자제품들이 한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내가 오늘 찾고 있던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제품들도 존재하고 있었다.

레서트 인더스트리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가벼운 옷차림의 청년과 정장을 입은 경호원이 내 앞을 스쳐지나갔다.

“…….”

내 앞을 지나가던 경호원이 잠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날개를 꿰뚫은 검이 새겨진 뱃지를 정장의 윗쪽에 달고 있었다.

짧은 시간동안 나를 바라보던 경호원은 이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시야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청년과 경호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이트테일 기사단이군.”

날개를 꿰뚫은 검.

도시에서 저 문양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는 드문 편이다.

그것이 나이트테일 기사단을 상징하는 문양이기 때문이었다.

나이트테일 기사단은 도시 내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전투인력들을 가지고 있는 경호회사다.

오죽하면 나이트테일 본사 근처에서는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나이트테일이요?”

“요인경호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지. 수준이 검증된 녀석들만 경호인력으로 고용하는 곳 말이다.”

“들어본 적이 있어요.”

오죽하면 도시의 치안대를 믿는 것보다 나이트테일을 믿는 편이 확실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당연히 나이트테일의 보안 서비스도 아무나 신청할 수는 없었다.

나이트테일의 경호원이 뒤따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방금 전에 지나간 청년이 제법 귀한 신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었다.

우리가 거주하던 외곽지구와는 많이 다른 곳이기 때문에, 방금 지나간 청년같은 이들이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멀어져가는 청년의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마저 발걸음을 옮겼다.

“왠만하면 얽히지 않는 편이 좋다. 신용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녀석들이기에, 수틀리면 치안대와 싸우기도 하니까.”

“그게 좋겠네요.”

“말 그대로 경호에 미친 녀석들이지.”

터벅, 터벅.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로고가 걸려있는 곳이었다.

탐험용품. 통신용품. 가지각색의 이름이 붙은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전자장비들이 주변에 늘어서 있었다.

장비들 중에 저렴한 것은 수백 크레딧부터, 비싼 것은 수만 크레딧을 넘어서는 물건도 있었다.

나와 시넬이 장비를 둘러보기 시작하자, 근처에 있던 직원 하나가 다가와 우리를 맞이했다.

“레서트 인더스트리입니다. 찾으시는 물건이 계신가요?”

“휴대성이 좋은 통신기기를 찾고 있다. 기왕이면 위치추적도 가능했으면 좋겠군.”

“통신기기를 찾고 계시군요. 그렇다면 이쪽 매대를 살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렇게 하지.”

점원이 안내해준 매대에는 여러가지 종류의 통신장비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제법 크기가 커다란 위성통신 장비부터 시작해, 소형이지만 장거리 통신이 가능한 무전기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존재했다.

나는 매대에 늘어서있는 각양각색의 물건들을 바라보다가, 그중에서도 한구석에 자리한 자그마한 기기들을 발견했다.

지속적으로 위치추적 신호를 발산한다고 적혀있는 소형의 이어셋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어셋이네요.”

“배터리 타임이 76시간이라. 상당히 긴 편인데.”

“자그마한 물건인데 도움이 될까요.”

나는 이어셋이 들어간 상자들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목덜미 근처의 머리카락을 넘겨서, 시넬의 귀에 가까이 가져다대었다.

시넬의 고글과 색상을 맞춘 물건이다.

포장을 벗겨 귀에 꽂으면 제법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잘 어울리는군.”

“……그런가요.”

왠지 모르게 시넬의 귀가 약간 달아오른 기분이 들었다.

나는 들고 있던 물건을 흔들며 다시 점원을 불러들였다.

가까이 다가온 점원은 제품이 가지고 있는 장점부터 시작해, 상세한 사용방법을 나에게 일러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단말기를 구입해 채널을 연결하면 이어셋의 현재 위치를 나에게 중계해주는 모양이었다.

단말기의 경우에는 7천 크레딧. 그 이외의 물건은 하나에 5천 크레딧이었다.

들어가는 비용이 결코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자신과 시넬의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발전을 위한 투자없이는 결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는 법이었다.

“계산하도록 하지.”

나는 적색과 녹색, 그리고 흑색의 이어셋을 집어들었다.

하나는 시넬이 사용할 물건이다.

그리고 나머지 둘은 당분간 임시용으로 사용할 자신과 미래의 부하직원을 위한 것이었다.

내가 가져온 상품들을 받아든 점원은 그것을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이용해주세요.”

장비들에 대한 구매비용은 도합 2만 2천 크레딧이 나왔다.

당연히 단말기를 포함한 가격이었다.

나는 이어셋에 대한 결제를 마치자마자 포장을 뜯어 하나를 시넬에게 건넸다.

시넬은 녹색의 이어셋을 받아들고 잠시 살펴보더니, 이내 그것을 귀에 꽂아넣어 착용감을 확인했다.

“잘 맞는 것 같네요.”

“앞으로 밖에 나설때면 들고 다니도록. 사무실에 있을 때 충전하는 것도 잊지말고.”

“네.”

지금 당장 장비를 사용할만큼 급한 용건은 없었다.

따로 구입한 단말기와 채널을 연결하는 일은 나중에 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이어셋을 착용한 시넬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나머지 물건들이 들어있는 가방을 들어올렸다.

퍼시발의 몸이 되고서 처음으로 찾아온 백화점이다.

이 세계의 백화점이 어떤 모습인지 구경하는 것도 좋고,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는 고급 음식들을 먹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오늘 하루동안 시넬을 데리고 조금 더 주변을 돌아보며 백화점을 즐겨볼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어셔. 내가 누누히 말하지만…….”

그러나 나는 뜻밖의 인물을 마주하고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찬란하게 흩날리는 금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눈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소녀의 정체는 나와 시넬이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바로 앞을 지나가던 그녀 역시 나를 발견한 것인지, 곧바로 자리에 멈춰서 나를 바라보았다.

“너…….”

네이 테르도스.

치안대 소속의 특수감시관이 이곳에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녀의 뒤에는 작품의 주인공, 어셔 헤이즈가 불만가득한 얼굴로 서있는 채였다.

눈을 마주치자 어셔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훑어보고 지나갔다.

“기가막힌 우연이군. 이런 곳에서 만날줄이야.”

“여기에는 무슨 일로 온거야?”

당황해하는 얼굴의 네이에게 말을 걸면, 정신을 차린 그녀가 침착한 모습을 보이며 나에게 물었다.

무슨 용건으로 백화점에 찾아왔냐는 질문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멍청한 질문이기도 했다.

“내가 백화점에 찾아올 일이 하나말고 더 있나 모르겠군. 당연히 쇼핑이 목적이다.”

“윽.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쪽이야말로 여기에는 무슨 목적이지?”

“치안대의 사정이야. 너에게 알려줄 이유는 없어.”

나는 네이의 말을 듣기 무섭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품속의 내용과 사건의 시간대가 어긋나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사방에서 화재를 알리는 경보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귀를 찢을듯이 울려퍼지는 소음속에서 어셔가 네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네이! 뒤로 물러서!”

“어셔……?”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콘크리트 벽이 네이가 있던 자리에서부터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솟아오른 두터운 벽은 이내 천장까지 도달해 길을 완전히 틀어막았다.

다행히도 한박자 빠르게 블링크를 사용한 어셔 덕분에 네이가 짓뭉개지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지면에서 올라오는 콘크리트 벽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쿵. 쿵. 쿵. 쿵.

연달아 올라오는 콘크리트 벽들이 건물 내의 구획을 나누며 미로의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네이. 몸은 괜찮은건가.”

“나는 괜찮아. 그런데 지금 일어나는 일은…….”

이런 방식으로 공간을 폐쇄하는 마법사는 하나뿐이다.

축성가 니콜라스.

‘스톤 월’을 사용하는 4서클의 인스턴트 메이지.

백화점 습격사건의 범인 중 하나였던 그가 이곳에 있는 것이다.

“……귀찮은 일이 벌어졌군.”

정말 재수없게도 우리는 백화점 습격사건에 휘말린 모양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어셔와 네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축성가 니콜라스. 그리고 폭주전차 캘빈.

이 2인조 습격자들은 전투에 ‘무기를 활용하는’ 마법사 대부분과 지나치게 상성이 좋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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