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미로 (2)
* * *
“……귀찮은 일이 벌어졌군.”
정말 재수없게도 우리는 백화점 습격사건에 휘말린 모양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어셔와 네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축성가 니콜라스. 그리고 폭주전차 캘빈.
이 2인조 습격자들은 전투에 ‘무기를 활용하는’ 마법사 대부분과 지나치게 상성이 좋지 않았다.
“사장님. 어떻게 해야할까요.”
옆에 있던 시넬이 갑작스럽게 생겨난 콘크리트 벽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제법 두께가 있어보이는 벽이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면 반드시 저 벽을 파괴해야만 하지만, 어지간한 충격량으로는 균열을 만들어내는 것조차 힘들다.
아무리 시넬이 헤이스트를 사용하는 4서클의 마법사라고 해도, 속도가 빨라지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굳이 뭘 하려는 생각은 없다.”
“사장님?”
“어차피 우리와는 상성이 좋지 않아. 저기 있는 치안대 사람들에게 얌전히 맡겨두는게 좋을거다.”
시넬에게 답을 들려준 나는 근처에 있던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축성가라 불리는 니콜라스는 자신의 마법을 통해 자유롭게 벽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벽은 총알로도 뚫을 수 없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힘을 써야만 했다.
게다가 어떻게든 이 벽을 지나간다고 해도, 그 너머의 어딘가에는 폭주전차라고 불리는 캘빈이 버티고 있다.
적어도 이 건물 안에서 나와 시넬 두 사람이 니콜라스를 쫓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가요. 아쉽네요.”
시넬 역시 내 의도를 이해한 것인지, 움직이는 것을 포기하고 내 옆에 자리잡았다.
우리가 치안대도 아니고 모든 일에 직접 나서서 해결할 필요는 없다.
백화점 습격사건은 작중에서도 어셔와 네이만으로 해결이 가능했던 사건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저쪽에 있는 치안대원들은 생각이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이상입니다. 가능한 신속한 지원을 요청합니다.”
어셔의 옆에서 이쪽을 힐끔거리던 네이가 무전기를 내리고 곧바로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네이를 붙잡고 있던 어셔 역시 네이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녀는 내 바로 앞에서 멈춰서고선,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거기, 암흑상인.”
“무슨 용건이지?”
“말하는걸 들어보니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모양이네?”
아무래도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서 무언가 깨달은 모양이었다.
백화점 습격사건에 대한 정보들은 굳이 숨길만한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네이가 그걸 엿들었다고 해도 아무런 상관은 없었다.
오히려 잘만 이용한다면 네이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것도 어렵지 않아보였다.
평범한 치안대원의 임금으로는 정보료를 지불하기 힘들겠지만, 네이 테르도스는 도시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가의 아가씨다.
조금 무리를 한다면 정보료를 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래. 알고 있지.”
“내가 치안대라는건 알고 있을거아냐. 사건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면 고맙겠어.”
네이의 말을 들은 나는 코웃음을 쳤다.
설마 치안대가 협조를 요청하는데 거절하진 않으리라고 생각하는걸까.
이 도시에서 치안대가 가지는 위상을 생각하면, 그녀의 제안은 상당히 우스운 이야기였다.
“……지금 무료로 달라는건가?”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던 모양인지, 네이는 인상을 쓰며 나를 노려보았다.
도시를 지키겠다는 숭고한 사명으로 치안대에 들어간 그녀다.
네이 테르도스의 사고방식으로는 이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안전이 달려있는 일이야.”
“정보상인이란건 그 목숨마저 내걸고서 돈을 버는 직업이다.”
“돈이 그렇게 좋아? 다른 사람이 죽어나도 상관없을 정도로?”
“뭐라 욕하던지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나는 대가없이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다.”
물론 내 정보가 없어도 두 사람은 문제없이 이 사건을 끝낼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상당한 고역을 치르게 될 뿐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은 네이의 시선이 내 손바닥으로 향했다.
“알았어. 얼마야.”
“8만이다.”
“8만?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거야?”
8만이라는 가격을 들은 네이는 기겁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8만 크레딧. 지금의 네이가 적당히 무리해야만 지불할 수 있는 액수다.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다가, 내가 어떤 정보를 줄지도 모르는데 굳이 사비까지 들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설득할 카드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손가락 여덟개를 펴보인 나는 웃으면서 네이를 바라보았다.
“8만이 뭐가 아쉽지? 미스릴이 범죄자들의 손에 넘어갈지도 모르는 일인데.”
“너…….”
“서비스를 주자면, 이번 범죄의 목적은 미스릴의 탈취에 있다. 미스릴이 어떤 물건인지는 너희가 더 잘 알겠지.”
“…….”
미스릴이라는 말을 들은 네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내가 네이를 향해 던진 미끼에 낚인 것은 의외로 다른 사람이었다.
어셔 헤이즈.
네이의 뒤에 서있던 주인공이 그녀의 앞으로 나선 것이다.
“암흑상인이라고 했던가.”
“그래.”
“상당히 희귀한 부류의 마법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군. 아마도… 미래를 알아내는 것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마법이겠지.”
어셔는 자기가 뒤따라다니는 아가씨마냥 얼빵한 녀석이 아니다.
작중에서도 그는 지나치게 감이 좋은 편이었다.
내가 가진 마법을 정확히 맞춘 것은 아니었지만, 정보의 출처를 의심하는 그의 태도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며 어셔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지?”
“정보상인이 취득하는 정보에도 순서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수집하는 정보 안에서도 우선순위가 존재하지. 녀석들과 한패가 아닌 이상, 너는 제법 특별한 마법을 갖고 있는 모양이군.”
“글쎄. 뭘 원하고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넘어갈 생각인건가. 뭐,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그걸로 좋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을테니까.”
말을 마친 어셔는 네이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는 곧장 그녀에게 말했다.
“네이. 이 녀석에게 정보를 사라.”
나를 의심하던 그가 네이에게 정보를 살 것을 종용했다.
직전과는 정반대인 어셔의 태도에 네이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셔……. 네 돈이 아니라고 너무 함부로 말하는거 아니야?”
“정말로 미스릴이 이곳에 있다면, 8만 크레딧 이상으로 골치아파지는건 치안대쪽일텐데.”
“읏…….”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지도록 하지.”
“……알았어. 8만을 줄게.”
어셔의 설득에 네이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이는 어셔를 깊게 신뢰하고 있다.
어지간한 설득보다는 어셔가 짧게 조언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어셔 덕분에 8만 크레딧을 벌어들이게 되었다지만, 나를 의심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니 떨떠름한 기분이 드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대금은 지금 낼 수 있나?”
“지금 당장은 힘들어. 돌아가서 낼테니 우선 협조부터 해줘.”
“설마 치안대원이 돈을 떼먹지는 않을테니, 일단은 믿도록 하지.”
네이의 성격상 떼먹지는 않을 것이다.
돈에 대한 확답도 받았으니 이제는 정보를 건네주면 끝이었다.
톡, 톡.
옆에 있던 가방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생각을 정리한다.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가.
잠시동안 말을 가다듬은 나는 네이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정보를 알려주지. 하나는 5서클의 스트렝스 유저. 폭주전차라는…….”
“아니. 암흑상인, 네가 직접 안내해라.”
하지만 그런 내 말은 어셔에 의해 곧바로 끊겼다.
어셔는 나로부터 상대에 대한 정보를 듣기보다는, 내가 직접 안내하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
“지금 나보고 직접 싸우라는건가?”
“너희는 현상금 사냥꾼도 병행하는거 아니었나?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군. 8만 크레딧의 값어치정도는 해라.”
“8만 크레딧에 목숨까지 넘겨줄 생각은 없는데.”
“……녀석들은 내가 상대하도록 하지. 그냥 안내만 해라.”
어차피 녀석들을 잡기 위해서는 어셔의 존재가 필수불가결하다.
그가 책임지고 전면에 나서 싸운다고 한다면, 이들과 동행해서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혹시나 이들이 없을 때 캘빈과 마주치는 것보다는 안전하기도 하고 말이다.
오히려 네이를 대신해 정보를 아는 내가 동행하는 만큼, 시간이 단축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정을 내린 나는 혀를 차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이 벽은 어떻게 지나갈거지? 블링크로 벽을 떼어낼 생각이냐?”
“그런 비효율적인 짓을 뭐하러 하지? 너와 내가 이 벽을 넘어가면 그만이다.”
“뭐?”
“내 수준에서 데려갈 수 있는 인원은 사람 하나가 한계다. 따라오는건 너 하나로 족해.”
‘전쟁도시’ 내에서야 어셔가 네이를 데리고 건너갔기에 모르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블링크로 데려갈 수 있는 인원은 1명이 한계인 모양이다.
함께할 수 있는 인원이 하나밖에 없다면 그 대상은 당연히 정해져있었다.
내가 시넬과 함께 벽을 넘어가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래, 그렇게 하지. 시넬.”
“네, 사장님.”
“여기서 저 아가씨나 지키고 있어라.”
“네?”
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시넬에게 건네주었다.
시넬은 눈을 깜빡이며 내가 준 가방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것을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어셔 역시 자신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네이에게 다가갔다.
네이의 바로 앞에 멈춰선 그는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네이. 제한을 풀어라.”
“알았어. 전부 푸는걸 원하는거야?”
“저 녀석이 5서클이라고 말하더군. 그 편이 나을거다.”
“코드 E172. 특수감시관 네이 테르도스의 이름으로 4단계 제한 해제를 요청한다.”
“권한 확인. 승인되었습니다. 해당 임시조치는 3시간동안 유지됩니다.”
치익. 철컥.
금속의 마찰음과 함께 사방에 밀도높은 마력이 휘몰아친다.
감시대상이 사용하는 마법의 출력을 1서클까지 끌어내리던 억제장치가 효력을 잃었다.
5서클의 마법사, 어셔 헤이즈가 진정한 힘을 되찾은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