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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24화 (24/156)

〈 24화 〉 미로 (3)

* * *

“정말 여기가 맞아?”

축성가 니콜라스.

벽을 세우는 마법 덕분에 축성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그는, 자신의 옆에 풀플레이트 차림으로 서있는 캘빈을 보며 말했다.

보기만 해도 답답해지는 풀플레이트는 문헌속의 기사들이 입던 갑옷과는 그 두께부터가 달랐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어지간한 총알로는 뚫는 것조차 불가능해보이는 두께다.

그렇기에 오직 스트렝스 마법을 가지고 있는 캘빈만이 입고 움직이는게 가능한 물건이었다.

다만 저 단순무식한 갑옷이 시야를 가리고 다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경험상 캘빈에게는 상당한 길치 기질이 있었다.

“또 의심이라도 하는 모양이군.”

“의심하지 않는 편이 이상하잖아. 네가 방향을 틀린 횟수가 이미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났어.”

“……그건 네가 주변에 벽을 쳐놔서 그런거다.”

“그 벽이 있는 덕분에 네가 안전하게 다니는거야.”

짧은 한숨을 내쉰 캘빈이 강하게 철문을 후려쳤다.

쾅!

캘빈의 주먹이 철문에 틀어박히며,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철문이 우그러진 모습으로 나가떨어졌다.

캘빈이 날려버린 문의 너머에 있던 것은 총을 들고 서있는 보안요원들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니콜라스는 뒤로 물러서며 캘빈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잘도 찾은 모양이야.”

“내가 맞다고 했을텐데.”

“아, 그래. 네가 맞았어. 드디어 안틀리다니, 너무 대단한데.”

“동료를 좀 믿는편이 좋을거다.”

서로간에 시덥잖은 불평을 늘어놓는 캘빈과 니콜라스지만, 보안요원들이 그들을 기다려주는 일은 없었다.

탕! 탕! 타앙!

보안요원들의 총구가 연달아 불을 뿜었다.

수많은 탄환들이 캘빈을 노리고 날아들고 있었음에도, 캘빈은 그것을 무시한 채로 달려들기 위한 자세를 잡았다.

깡. 까앙.

금속간의 날카로운 충돌음이 터져나오며 캘빈의 갑옷에 맞은 탄환들이 찌그러지고 빗겨나갔다.

보안요원들이 쏘아낸 탄환들이 캘빈의 두터운 갑옷을 뚫지 못하고 튕겨나간 것이다.

“총알이……?”

“사격을 멈추지마라!”

당황한 보안요원들은 재차 총격을 가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진 사격에도 불구하고, 총구를 떠난 탄환들이 유효한 피해를 입히는 일은 없었다.

폭주전차. 그것이 이 도시에서 캘빈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것은 전차의 장갑을 연상시킬 정도로 단단한 그의 갑옷 때문이기도 하고, 두려움을 모르고 돌진하는 캘빈의 전투방식 때문이기도 했다.

쏟아지는 탄환을 막아내던 캘빈이 이내 숨을 들이키고서 웅크리던 몸을 내던졌다.

유연하게 만들어진 갑옷의 관절부위가 부하를 받으며, 캘빈의 몸이 대포와도 같이 쏘아져나갔다.

쿠웅!

깨져나간 바닥타일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것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날아간 캘빈의 몸이 보안요원과 마주했다.

주변에 울려퍼지는 묵직한 충돌음.

캘빈과 부딪힌 보안요원이 뭉개지며 비명을 토했다.

“커헉!”

순식간에 한 명을 쓰러뜨린 캘빈이 시선을 옮겼다.

주변에 있던 보안요원 하나가 다급히 방아쇠를 당기려 했지만, 캘빈의 손이 총구를 잡는 것이 더 빨랐다.

우득. 우드득.

두꺼운 건틀릿에 잡힌 총열이 엿가락처럼 휘어버린다.

당황한 보안요원은 들고 있던 소총과 캘빈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 캘빈의 주먹이 꽂혔다.

“…….”

새롭게 침묵한 보안요원을 뒤로한 채로, 캘빈이 다른 사냥감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보안요원들의 얼굴은 어느새 두려움에 젖어 있었다.

상대가 마법사라고 해도 몸에 총알정도는 박히기 마련이다.

자신의 공격이 조금도 통하지 않는 상대에 대해 이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쾅! 콰앙!

캘빈의 묵직한 주먹이 수차례 더 활약한 이후에야,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니콜라스가 그의 옆으로 돌아왔다.

“정리는 됐어?”

“전부 끝냈다. 생각보다 싱겁군.”

“아주 성대하게도 저질러주셨어.”

캘빈의 주변에는 어느덧 한손으로 세기 힘든 숫자의 보안요원들이 곤죽이 되어 쓰러져 있었다.

5서클의 스트렝스 마법으로 강화된 그의 근력은 철판마저 맨손으로 찢어발기는 수준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단 일격만 허용해도 치명상이었다.

캘빈은 갑옷에 달라붙은 피를 긁어내면서 니콜라스를 바라보았다.

“준비운동도 안되는 녀석들이다.”

“그렇겠지. 그렇다고 치안대를 우습게 보지는 마. 녀석들은 전문적인 장비를 갖추고 찾아오는 사냥꾼들이거든.”

“알고 있다.”

3구역은 도시의 외곽지구와 치안대의 질부터가 다른 곳이었다.

스스로의 힘을 과신하고 오만한 판단을 내렸다가는 금방이라도 철창신세를 지게 될 수 있었다.

이미 수많은 범죄자들이 치안대의 손에 처형당한 것을 지켜본 니콜라스였다.

그 사실을 상기시켜주기 위해 캘빈에게 경고한 그는 금고실에 접근하기 위해 앞으로 걸어나갔다.

“좋아. 그럼 들어갈까.”

“……잠깐.”

니콜라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니콜라스의 뒤를 따라 걸어가던 캘빈이 발걸음을 멈춰세우고 뒤를 돌아보았다.

수상쩍은 캘빈의 모습에 니콜라스가 문에 기대며 그에게 물었다.

“캘빈. 또 무슨 일인데 그래?”

“쫓아오는 녀석들이 있군.”

“쫓아오는 녀석들?”

“숫자는 그리 많아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의 뒤를 쫓아오는 추격자.

그리고 적은 숫자.

캘빈의 정보를 들은 니콜라스는 머릿속에서 결론을 내렸다.

치안대. 현상금 사냥꾼. 보안요원.

어느쪽이든 소수의 인원이 자신들을 막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캘빈. 직접 정리하고 올거냐?”

“금방 처리하고 돌아오도록 하지.”

“괜히 방심하다가 죽지마라. 너만한 동료는 다시 구하기도 힘드니까.”

“쓸데없는 걱정이다.”

걱정하는 니콜라스의 말을 가볍게 넘기고서, 캘빈이 앞을 가로막은 콘크리트 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묵직한 풀플레이트의 발걸음소리가 백화점에 울려퍼졌다.

니콜라스는 그런 캘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금고실에 시선을 돌렸다.

* * * * * *

어셔가 목에 걸려있던 억제장치를 정지시킨 직후, 나는 그와 함께 우리를 가로막던 첫번째 벽을 넘어섰다.

두꺼운 벽을 블링크로 단번에 넘어서자 미약한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블링크를 사용하기 전과 그 이후의 평형감에는 괴리가 있다.

그 미세하게 어긋난 감각이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지러운 정도가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벽을 넘는 사이사이에 적당한 휴식 정도는 필요해보였다.

연달아 블링크를 사용하고도 멀쩡한 어셔가 대단해보일 지경이었다.

“어셔 헤이즈.”

어지러움이 잦아들자, 나는 벽을 넘어선 직후부터 계속해서 주위를 살펴보던 어셔의 이름을 불렀다.

그에 어셔가 탐색을 멈추고서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유야 뻔했다.

여기에 있는 어셔 자신은 물론이고, 그와 함께하던 네이 역시 어셔의 풀네임을 거론한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어셔의 이름 전체를 알고있으니 놀란 것이다.

“……내 이름도 알고 있었나.”

“나는 퍼시발 스미스다. 잘 부탁하지.”

“네이도 그렇고, 내 이름도 용케 알아냈군. 치안대의 뒷조사를 하는 취미라도 있는건가.”

“그런 취미는 없다. 다만, 이 도시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들은 간단하게 알아둘 뿐이지.”

내 말에 헛웃음을 지은 어셔가 물었다.

“내가 이 도시에서 중요하다고?”

“테르도스 가문의 아가씨를 옆에서 지키는 입장일텐데.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할 셈인가보지?”

“제법 그럴싸한 변명이군. 그래, 그렇다고 쳐두지.”

“변명이 아니라 사실이 그런거다.”

완전히 빈말은 아니었다.

네이 테르도스는 이 도시에서 상류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녀는 그런 신분으로 치안대에 들어와 마음껏 활개를 치는 중이었다.

어셔가 다른 사냥개에 비해 편의를 보장받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지?”

“우선은 안내판이나 찾아봐야겠지.”

“안내판?”

“엘리베이터가 멀쩡하면 그걸 타고 내려가는게 나을테니까.”

니콜라스가 만들어낸 콘크리트 벽들은 백화점의 내부에 임의의 구획들을 만들어내었다.

각각의 벽들이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사람이 백화점 내의 통행에 제약을 받는다.

그럼에도 그가 굳이 백화점의 엘리베이터를 망가뜨렸을까.

아무래도 그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층으로 이동해야 하는건가?”

“금고실에 미스릴 소재의 장신구가 있다. 습격자들이 노리는 곳은 그곳일 가능성이 높아.”

“이젠 금고실의 위치까지 알고 있는 모양이군.”

“그래. 거기까지 안내해주지.”

“그런 정보는 극비일텐데, 대체 어떻게 손에 넣은거지?”

여전히 예리한 질문을 하는 어셔였다.

나는 태연함을 가장한 채로 그의 질문에 망설임없이 답했다.

“한낱 도둑들마저 알고 있는 정보다. 내가 알고 있는게 그렇게나 이상한 일인가?”

“끝까지 말은 번지르르한 녀석이군.”

“그런게 일류 장사치의 필수 덕목이지.”

“……다시 벽을 넘어설거다. 준비해라.”

터벅, 터벅.

그렇게 말한 어셔가 맞은 편의 콘크리트 벽으로 향했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벽에 가까이 다가섰다.

뒤따라온 내가 어셔의 옆에 도착하자, 어셔는 내 어깨를 붙잡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블링크].”

나를 붙잡은 어셔가 마법을 사용하는 것과 동시에, 다시 한차례 시야가 뒤바뀌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그마한 울렁임이 자신의 안을 뒤흔들었다.

나는 짧게 숨을 고르며 몸을 진정시켰다.

흔들리던 시야가 제자리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두 사람의 인형이 눈앞에 나타났다.

“뭐하는 녀석들이냐.”

말끔한 얼굴의 청년과 그 뒤에 선 양복차림의 남자 하나.

시넬과 함께 마주했던 이들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나이트테일 기사단. 혼란의 시대에 기사를 자칭하는 남자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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