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미로 (4)
* * *
“뭐하는 녀석들이냐.”
말끔한 얼굴의 청년과 그 뒤에 선 양복차림의 남자 하나.
시넬과 함께 마주했던 이들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나이트테일 기사단. 혼란의 시대에 기사를 자칭하는 남자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나이트테일 기사단인가.”
“정체를 물었을텐데.”
경호원은 물러서지 않고 그 눈동자를 이쪽으로 향했다.
정체불명의 습격자에 의해 백화점 전체가 마비되어있는 상황이다.
서로가 처음 만난 상대를 의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셔는 상대에 대한 판단을 빠르게 마친 것인지, 주머니에서 수첩 하나를 꺼내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제7특수기동대 소속의 어셔 헤이즈다. 현재 감시관의 허가를 받아 자율행동중이다.”
치안대가 발행한 기동대원 전용의 수첩이다.
경호원은 어셔가 내민 수첩을 확인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어셔의 손에 들려있는 수첩을 잠시동안 바라보더니, 이내 김빠진 표정을 지으며 다시 뒤로 물러섰다.
“치안대의 사냥개였나. 그냥 지나가라.”
“하나만 묻지. 수상한 녀석들을 만난적이 있나.”
“없다. 치안대의 용건이 있을텐데, 빨리 꺼지도록.”
치안대 내에서도 사냥개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애초에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형기 대신에 범죄자 사냥에 나서는 이들이다.
상대가 나이트테일 기사단의 일원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의 입장에서 사냥개를 바라보는 시선이 결코 고울리가 없었다.
거친 가시가 뒤섞여있는 그의 한마디에, 어셔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래. 그렇게 하지.”
“…….”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셔의 얼굴에 미묘한 균열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지금의 어셔는 함부로 마찰을 일으킬 수 없다.
목에 치안대의 억제장치를 차고 있을 뿐더러, 그가 지금 짊어지고 있는 것은 네이 테르도스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자니 가슴속에 무언가 얹힌 느낌이 들었다.
지금의 상황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암흑상인. 이쪽은 아닌 모양이다. 가던 길이나 마저 가지.”
어셔의 말을 들었음에도, 나는 그를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이 도시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그리고 상대는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해 있는 나이트테일 기사단 소속의 강자다.
하지만 그게 내가 가만히 있을 이유는 되지 못했다.
이 위험한 도시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나 역시 끊임없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움직이는 도시가 언젠가 내 숨통을 조여오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 무시당한 채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
“그쪽은 혹시 뭐 본거 없나?”
나는 어셔의 어깨를 붙잡고 그 앞으로 나서면서, 눈앞에 있던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창문에 기대고 있던 청년이 놀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옆에서 청년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살기어린 눈동자가 내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너는 뭐지? 부사장님에게 함부로 말을 붙이지마라.”
“그러는 너는 뭐지? 너야말로 나님에게 함부로 말을 붙이지 마라.”
“뭐……?”
경호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당혹감에 물들었다.
인상을 찌푸린 그가 무언가 말을 꺼내려는 도중, 그의 옆에 있던 청년이 손을 흔들었다.
손을 움직인 청년은 미소를 지으며 경호원에게 말했다.
“하하… 됐어, 반. 보고있자니 재미있는데 뭘.”
“하지만, 부사장님…….”
“아쉽게도 누군가를 본 기억은 없네. 도움이 못되서 미안해.”
“그런가. 협조에 감사하도록 하지.”
청년은 그가 반이라고 부른 남자와는 다르게, 유순한 태도로 내 대화를 받아주었다.
반이라는 이름의 경호원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게 분명 청년의 지시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청년이 보여준 것은 다소 의외의 모습이었다.
그는 손을 내저어 경호원을 불러나게 만들고는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당신,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이 왜 궁금하지?”
“기억해둘만한 사람이다 싶어서.”
기억해둘만한 사람이라.
좋은 의미일수도 있고, 나쁜 의미일수도 있다.
어느쪽이던간에 이름을 대는 것을 사양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흔쾌히 청년에게 통성명을 늘어놓았다.
“퍼시발 스미스. 정보상인이다.”
“암흑상인 퍼시발 스미스라. 좋아. 나는 리건 헤러넌츠. 헤러넌츠 은행의 부사장 중 하나야.”
청년의 정체.
그것은 바로 헤러넌츠 은행의 부사장이었다.
리건의 정체에 놀란 내가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는 것도 잠시, 근처에 있던 창문에서 커다란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왔다.
귓가를 울리는 소리에 나와 어셔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창밖으로 향했다.
반투명한 백화점의 유리 너머로 헬기가 하나 떠올라있었다.
“마침 도착한 모양이네. 만나서 반가웠어.”
“……탈출하려는 생각이군.”
“퍼시발 스미스랬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봤으면 좋겠네.”
나는 그제서야 리건이 왜 창문을 보며 서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다.
누군가는 백화점에 갇힌 채 치안대의 구조를 기다리고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리건 헤러넌츠는 후자였다.
* * * * * *
금고실이 있는 층을 향해 움직이는 엘리베이터의 안.
굳게 닫힌 엘리베이터의 창문 너머로, 조명이 발하는 다채로운 빛이 차례차례 새어들어온다.
어셔 헤이즈는 우수에 찬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다가 나를 불렀다.
“암흑상인.”
“다시 말하지만, 나는 퍼시발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군. 그건 제쳐두고서, 아까는 왜 나섰던거지?”
“뭘 말하려는거냐.”
“은행의 부사장 말이다. 너 정도 되는 정보상인이라면 정체가 뭔지 알고 있었을텐데, 왜 굳이 밉보일지도 모르는 행동을 한거지?”
무언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어셔였다.
나는 단지 작중의 전개를 알고 있는 사람일 뿐이지, 세상 사람들 전부를 꿰고 있는 인명록같은게 아니다.
그냥 리건이라는 사람이 어디 잘사는 집 도련님정도 되겠거니 생각했을 뿐이었다.
실제로도 어느정도 들어맞는 추측이었고 말이다.
그러나 그 내막을 자세히 늘어놓기도 어려웠던 탓에, 나는 되는대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변덕이다.”
“재미있는 변덕이군.”
“왜. 마음에 안들었나?”
“아니. 나쁘지 않았다.”
피식. 어셔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지잉. 짧은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누군가와 심도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만큼 엘리베이터의 이동시간은 길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어셔는 발걸음 소리를 죽인 채 금고실을 향해 앞장서기 시작했다.
“……이 방향이 맞나?”
끄덕.
자그맣게 들려오는 어셔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이 층에는, 미스릴을 보관하고 있는 특수한 금고실이 존재한다.
큰 소리를 내면서 움직였다간 미스릴을 노리고 움직이는 캘빈 일행에게 이쪽의 위치를 발각당할 수 있었다.
이전보다는 조심스럽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벽의 숫자가 적어보이는군.”
“……확실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바라보자, 다른 층보다 눈에 들어오는 콘크리트 벽의 숫자가 적었다.
바닥에 떨어진 탄피들과 핏자국 역시 눈에 띄었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흔적이었다.
전투의 흔적을 더듬어가다 보면, 분명 멀지 않은 곳에서 습격자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터였다.
“가까이 붙어라. 벽을 넘어가겠다.”
길게 이어지던 핏자국은 콘크리트 벽에 가로막힌 채로 끝났다.
조용한 발걸음으로 벽에 달라붙은 어셔는 벽에 귀를 가져다댔다.
톡, 톡.
어셔의 주먹이 가볍게 벽을 두드린 직후, 그가 손을 움직이며 나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지.”
“[블링크].”
벽에 붙은 어셔가 손으로 나를 붙잡았다.
그 직후 시야가 번지며 어지러움이 전신에 퍼져나갔다.
아무래도 같은 현상을 수차례 반복해서 겪다보니, 블링크의 후유증에도 어느정도 적응한 것일까.
머리를 뒤흔들던 멀미가 이전보다 조금 더 빠르게 가라앉았다.
숨을 가다듬으며 앞을 바라보면 사방에 번져있는 핏자국이 보였다.
“왠 쥐새끼들이 찾아왔군.”
“……캘빈.”
사나운 목소리가 벽에 부딪혀 메아리친다.
정상적으로 돌아온 시야속에선 육중한 풀플레이트 갑옷을 입고 있는 거구의 남자가 우리를 가로막고 서있었다.
우리가 쫓고 있는 백화점 습격사건의 범인, 폭주전차 캘빈이었다.
나도 모르게 캘빈의 이름을 입밖으로 내자, 캘빈이 투구 너머로 흉흉한 눈동자를 내비치며 말했다.
“나를 알고 있나?”
“그 정신나간 갑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하나말고 더 있으려고.”
“하기야, 그렇군.”
나는 품속에 손을 집어넣어 권총을 꺼냈다.
철컥. 안전장치가 풀린 권총의 묵직한 감각이 손바닥을 휘감았다.
내 권총을 마주한 캘빈은 나에게 달려들기 위한 자세를 취했다.
물론 녀석의 두터운 풀플레이트 갑옷이 상대라면, 내가 가진 권총으로는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없었다.
당연히 전투는 내 옆에 있는 어셔가 대신해서 치뤄야만 했다.
“무슨 목적으로 여기를 습격했지?”
“그걸 내가 말해줄 것…….”
“[블링크].”
어셔는 코트의 소매를 걷어넘기며 캘빈에게 물었다.
그에 캘빈이 무어라 대답하려는 찰나, 어셔가 블링크를 사용해 캘빈의 위로 이동했다.
순식간에 사라진 어셔의 모습에 당황한 캘빈이 분주히 눈을 움직여 어셔를 찾았다.
“같잖은 짓을……!”
캘빈의 위로 전이한 어셔가 곧장 아래를 향해 낙하하며 손을 뻗었다.
어셔의 손이 노리는 곳은 캘빈의 머리였다.
주위를 돌아보던 캘빈은 금세 무언가를 눈치채고서 고개를 들어올렸고, 이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어셔의 손바닥을 마주했다.
하지만 캘빈 역시 수많은 전투경험으로 다져진 일류의 용병이었다.
그는 말도 안되는 반응속도로 팔을 휘둘러 어셔를 밀어내고자 했다.
그 순간, 다시 어셔의 모습이 사라지며 내 옆으로 돌아왔다.
“머리를 노렸는데, 아쉽군.”
터엉.
묵직한 소리와 함께 두터운 건틀릿이 땅에 떨어졌다.
에어리어 바인드.
공간을 붙잡아 전이하는 어셔의 전투기술이 펼쳐진 것이다.
캘빈은 떨어져나간 팔의 단면을 붙잡은 채로 어셔를 노려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