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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26화 (26/156)

〈 26화 〉 미로 (5)

* * *

“머리를 노렸는데, 아쉽군.”

터엉.

묵직한 소리와 함께 두터운 건틀릿이 땅에 떨어졌다.

에어리어 바인드.

공간을 붙잡아 전이하는 어셔의 전투기술이 펼쳐진 것이다.

캘빈은 떨어져나간 팔의 단면을 붙잡은 채로 어셔를 노려보았다.

“크흐… 재미있는 마법을 가졌구나.”

“재미있는 마법?”

“아니, 재미있게 쓴다고 해야 하겠군.”

극한의 정신력으로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 것인지, 캘빈은 입술을 깨문 채 충혈된 눈동자를 움직이는 중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거동하는 것조차 힘들만한 상처다.

하지만 캘빈은 그것을 넘어서 과격한 방식으로 지혈을 하는 기행을 보여주었다.

콰악!

반대쪽의 건틀릿으로 잘려나간 단면을 붙잡아 뭉개버린 것이다.

어셔는 그런 캘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캘빈이 주먹을 움직인 틈을 타 블링크를 사용했다.

“[블링크].”

“두 번 당할 것 같냐!”

옆에 있던 어셔의 모습이 사라지는 동시에, 어셔가 새롭게 나타난 자리를 향해 캘빈이 팔을 휘둘러왔다.

블링크를 사용하고 나서 다음 블링크를 사용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간격이 존재한다.

어셔처럼 특수한 방식으로 마법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그 틈이 블링크의 원본보다 배는 긴 편이었다.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짧은 시간은 어셔가 모든 공격에 취약해지는 순간이었다.

“……뒤로 빠져라.”

어셔를 향해 휘둘러지는 캘빈의 팔을 보고서, 나는 캘빈에게 겨누고 있던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탕!

격발음과 함께 어셔가 몸을 뒤로 젖혔다.

당연하지만 쏘아낸 탄환은 캘빈의 갑옷에 맞고 튕겨나갔다.

하지만 캘빈을 상대로 잠시의 틈을 만들어내기에는 충분했다.

가까스로 캘빈의 주먹을 피해낸 어셔는 다시 블링크를 사용해 내 옆으로 되돌아왔다.

“빚을 졌군.”

“……나중에 갚아라.”

“네이가 허락한다면 말이야. [블링크].”

말을 마친 어셔가 다시 블링크를 사용했다.

블링크를 이용한 전투가 가장 위협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최초의 공격이다.

반응속도가 빠른 상대가 이후에 경계하기 시작한다면, 어셔로서도 긴장하면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캘빈은 힘도 힘이지만 남들보다 재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크흐…….”

팔에서 올라오는 고통을 완전히 참아낼 수는 없던 모양인지, 캘빈이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 틈을 타 어셔가 캘빈의 옆으로 이동하지만, 하나 남은 팔을 빠른 속도로 휘두르는 캘빈의 모습에 다시 뒤로 물러섰다.

캘빈은 사각으로 이동하는 어셔의 기습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까처럼 쉽게 기습을 성공시킬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어셔는 코트 안쪽의 홀스터에서 권총을 꺼내들고는, 캘빈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블링크].”

권총을 든 어셔가 블링크로 거리를 벌리며 총탄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탕! 탕! 탕!

갑옷의 이음새를 노리며 총탄을 쏘고, 캘빈이 달려오기 시작하면 곧장 반대편으로 전이한다.

다양한 방향에서 총탄을 쏘아내는 어셔의 모습은 일종의 신기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캘빈의 갑옷은 총탄으로 뚫기에는 지나치게 단단했다.

마무리를 지을 방법은 결국 블링크 뿐이다.

틈이 필요했다.

캘빈과 접촉한 채로 블링크를 사용할 수 있는 확실한 틈이 말이다.

“촐랑촐랑 잘도 도망다니는군.”

“잡고 싶나?”

“아, 그래! 당연히 엄청 잡고 싶지!”

어셔와의 술래잡기에 슬슬 짜증을 느낀 것인지, 그를 쫓던 캘빈이 이번에는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나를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잡기 힘든 어셔 대신에 나를 먼저 처리할 모양이었다.

캘빈과 내가 정면으로 승부해서는 이쪽이 이길 확률이 적었다.

이 싸움을 받아줄 이유는 없었다.

나는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서는, 허리춤에 매달려있던 자그마한 연막탄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와 동시에 눈을 움직여 어셔의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어셔는 캘빈으로부터 나를 지키려는 생각이었는지, 우리가 넘어왔던 콘크리트 벽과 가까운 쪽으로 전이한 상태였다.

달칵. 안전핀을 뽑은 연막탄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 “그곳에서 움직이지 마라. 내가 거기로 가지.”

“……뭐?”

치이이익.

연막탄에서 연막이 퍼져나오기 시작한 직후, 나는 근처에 있던 콘크리트 벽을 향해 달렸다.

사방을 둘러싼 콘크리트 벽에 의해 공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공간이다.

빠져나갈 공간이 없는 연막이 우리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똑같이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움직임을 식별할 수단은 소리뿐이다.

나는 콘크리트 벽에 가까이 달라붙으면서 캘빈을 향해 텔레파시를 사용했다.

­ “나는 여기에 있다.”

­ “나는 여기에 있다.”

­ “나는 여기에 있다.”

­ “나는 여기에 있다.”

­ 탕! 타앙!

방향을 교란할 목적으로 사방에 목소리를 퍼뜨린다.

다양한 방향으로 소리를 흩어서 전달하고 있지만, 내가 있는 방향과 반대쪽에 더욱 비중을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녀석이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도대체 몇명이 있는거냐!”

­ “나는 여기에 있다.”

­ “나는 여기에 있다.”

­ “나는 여기에 있다.”

­ “나는 여기에 있다.”

­ “나는 여기에 있다.”

­ 탕! 탕! 탕! 탕!

쾅! 콰앙!

근처의 장애물들을 향해 주먹이라도 휘두르는 것인지 거친 충돌음이 들려왔다.

나는 그 틈을 타 벽에 붙어있던 어셔에게로 다가갔다.

연막속에 있어 모습을 완전히 식별할 수는 없었지만, 그 윤곽만큼은 어렴풋이 보이고 있었다.

“어셔 헤이즈. 나를 데리고 벽 너머로 전이해라.”

“무슨 생각이지?”

“작전이 생각났다. 빨리 전이해.”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어셔가 나를 붙잡았다.

“[블링크].”

나와 어셔는 주위를 둘러싸던 연막과 함께 한순간에 벽 너머로 전이해왔다.

전이 이후 약간의 울렁임이 속을 뒤집는다.

벽의 뒤에서는 여전히 캘빈이 난동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 무엇인가 깨지고 터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벽에 기대어 흐트러진 숨을 돌리고 있자, 홀스터에 권총을 되돌린 어셔가 나에게 물었다.

“암흑상인, 어떻게 할 생각이지?”

“옆으로 떨어져라. 시선을 끌거다.”

“시선을 끈다고?”

시선을 끈다고 해서 무리하게 녀석의 앞에 나설 생각은 없었다.

단순하게 이쪽이 위치상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 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아마 저 녀석이 이쪽으로 오려면, 무조건 이 벽을 부숴야만 하겠지.”

“그렇다면…….”

“내가 틈을 만들테니, 그 사이에 녀석의 머리를 잡아라.”

고개를 끄덕인 어셔가 나에게서 적당한 수준의 거리를 벌렸다.

어셔가 물러난 것을 확인한 나는 하늘을 향해 총구를 들어올렸다.

타앙!

울려퍼지는 격발음을 텔레파시로 증폭해 쏘아보내면서, 권총을 격발한 자리에서 몇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직후 벽에 균열이 일어나며, 금속의 팔이 벽면을 뚫고 빠져나왔다.

“쥐새끼들, 여기에 있었구나!”

캘빈의 흉흉한 눈빛이 벽 너머에서 나를 노려보았다.

눈에서 귀기가 피어오르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섬뜩한 시선이었다.

나는 환영인사를 대신해 들고 있던 권총을 조용히 그에게 겨누었다.

그와 동시에 연막속에서 튀어나온 어셔의 손이 캘빈의 머리를 붙잡았다.

어느새 연막 안으로 블링크를 사용해 들어간 어셔가 캘빈의 뒤를 잡아낸 것이다.

“……[블링크].”

쿠웅!

머리를 붙잡고 있던 어셔의 손이 사라지면서, 캘빈의 거대한 몸체가 바닥에 허물어졌다.

흉흉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던 캘빈의 머리는 어셔의 손에 들려있는 채였다.

투구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결코 가벼운 무게는 아닐 것이다.

텅. 데구르르.

들고 있던 것을 바닥에 내던진 어셔는 손을 털며 나에게 다가왔다.

성가신 적이 하나 사라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소 홀가분한 것처럼 보이는 표정이었다.

“제법이군. 정보상인치고 마법사와의 교전에도 능숙한 모양이야.”

“별거 아닌 일이다. 아직 적이 하나 남아있으니 긴장을 늦추지 마라.”

상대는 2인조의 팀이다.

남아있는 한 명을 잡기 전까지, 이 일은 완전히 끝난게 아니었다.

그에 어셔가 쓰러진 캘빈의 모습을 보며 나에게 물었다.

“나머지 하나는 어떤 녀석이지.”

어셔의 질문에 나는 상대의 신상명세를 떠올렸다.

축성가 니콜라스.

시설물 장악에 탁월한 마법을 가진 녀석이다.

단순 전투에 있어서는 그보다 캘빈쪽이 낫겠지만, 집단과의 움직임을 상정한다면 니콜라스 쪽이 더 효과적이었다.

녀석들이 이렇게 대담한 작전을 시행할 수 있었던 것도,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을 매꿔주기 때문이었다.

“스톤 월 마법. 그걸 사용해 벽을 만들어내는 녀석이다.”

“스톤 월 마법이라. 이 벽을 만들어낸 범인인가.”

“그래. 블링크를 사용한다면 상대하기가 쉬울거다.”

벽을 만들어낸다면 블링크로 그것을 뛰어넘으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어셔는 원작에서 니콜라스를 놓쳤지만 말이다.

당연하게도 그 원인은 네이 테르도스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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