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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27화 (27/156)

〈 27화 〉 미로 (6)

* * *

터벅, 터벅.

니콜라스가 있을 금고실을 향해 걸어가는 길.

캘빈이 쓰러진 앞에는 콘크리트 벽이 드물었기에, 이전처럼 블링크를 자주 사용하며 벽을 넘어다닐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어셔는 아직 한차례의 전투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이유로 그를 대신해 선두에 서서 걸어가던 나에게, 내 뒤에 있던 어셔가 말을 걸어왔다.

“이봐, 암흑상인.”

“거의 다 왔다. 조금 있으면 금고실이…….”

“아니.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무슨 이야기가 궁금한거지?”

무언가를 고민하는 어셔의 모습에 내가 걸음을 멈춰세우고 물었다.

니콜라스를 상대하는데 있어서 어셔가 상성상의 우위에 있다고는 하지만, 막상 마주했을때 까다로운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책을 원하는 것이라면 직전과 마찬가지로 머릿속에 세워둔 계획을 반복해서 설명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셔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정 반대의 내용이었다.

“아까 전의 싸움에서, 갑자기 녀석이 미쳐 날뛰기 시작하더군.”

“…….”

“원래부터 이상한 녀석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분명 네가 무언가 손을 쓴거겠지.”

“글쎄. 상처에 연막이 들어갔으니, 아파서 그랬을 수도 있지.”

도대체 무슨 용건인가 했더니, 캘빈과의 싸움을 복기하던 도중 마음에 걸렸던 점이 있던 모양이다.

어셔의 곁에는 항상 붙어있는 믿음직스러운 조언자가 있다.

이제와서 전투중의 일을 묻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캘빈을 뒤흔든 것은 내 텔레파시였다.

만약 시넬이 나에게 그에 대해 물어본다면, 사실대로 대답해주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정보다.

하지만 질문을 던진 사람이 어셔라는게 문제였다.

지금은 어셔와 같은 편으로 싸우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자신에 대한 정보의 노출은 최소한으로 줄일 필요가 있었다.

“처음에 했던 말은 취소하지. 네 마법은 미래를 보는게 아닌 모양이군.”

“그럼 뭐지?”

“적의 감각을 교란시키는 부류일거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네가 가지고 있는 그 지식은… 어디서 나온건지 감히 추측조차 못하겠군.”

“그러냐.”

어셔는 그 작은 힌트만으로도 정답에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여전히 내 정보의 출처에 대해서는 짐작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하기야,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옆에 있는 사람이 책속에 빙의했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어셔가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는 내 시큰둥한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서,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네가 정말로 세상의 온갖 정보를 알고있는 대단한 사람이라면, 나는 너에게 하나 묻고싶은게 있다.”

“나는 정보상인이다. 알려주는 정보에 공짜는 없어.”

“대가는 어떻게든 지불하겠다.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네가 시키는 일을 한 번 하도록 하지.”

어셔가 찾는 정보라면 어떤 내용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분명 자신의 여동생을 죽인 범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어셔가 도시 한가운데에서 학살을 벌이고서, 치안대의 사냥개가 되어 연명하고 있는 것은 전부 여동생의 일 때문이었다.

가족의 모습을 한 망령이 어셔의 곁을 항상 떠돌고 있다.

그가 복수에 집착하는 것도 당연했다.

“대가는 돈으로만 받는다.”

“그리 어려운 정보는 아닐거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라도…….”

“그럼 자유의 몸이 된 이후에 모아오던가.”

“……그러지.”

어셔의 부탁을 일축하자 그는 입을 다물었다.

세상에는 알고 있더라도 쉽게 입밖으로 꺼낼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상대를 파멸로 몰고가는 내용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전쟁도시에는 아직까지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었다.

주인공인 어셔 헤이즈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서는 안된다.

“그 이야기는 제쳐두고, 아까 말해둔 계획은 기억하고 있겠지?”

나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며 어셔에게 말했다.

어셔 본인에 대한 정보를 내 입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니콜라스에 대한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늘어놓을 수 있었다.

어셔는 이전에 나눈 작전내용을 상기시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벽이 올라오면 뒤쪽으로 블링크를 쓰라던 것 말이군.”

“그래. 망설이지 말고 바로 사용해라.”

“기억하고 있다.”

니콜라스의 전법은 여러모로 특이한 편이다.

그 전법은 수직으로밖에 벽을 세울 수 없는 마법의 특성에 기인하는데, 어셔가 함께라면 돌파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마법사들간의 싸움은 마법간의 상성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어셔의 경우 니콜라스와 상성이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대부분의 문제는 벽을 넘지 못하는데서 발생하니까 말이다.

“흐음.”

니콜라스에 대해 떠올리며 이동하는 것도 잠시.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다시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달칵, 달칵.

귀를 기울여보자 무언가를 격하게 흔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앞에 누군가 있는 것 같다.”

옆에 있는 어셔가 내는 소리는 아니다.

우리 외의 누군가가 이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다리를 움직였다.

“이게 왜 안열리냐.”

다른 벽들보다 너비가 좁은 콘크리트 벽의 너머.

누가봐도 수상쩍은 벽의 모퉁이를 돌고 나아가면, 그곳에서 금속상자를 뒤흔드는 남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긴 머리를 뒤로 묶은 남자의 인상착의는 소설속에서 보았던 니콜라스의 모습과 일치했다.

축성가 니콜라스. 우리가 그토록 찾던 인물과 마주한 것이다.

“…….”

상자를 뒤흔들던 니콜라스는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바로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든 니콜라스와 그를 바라보던 어셔의 눈이 마주쳤다.

길게 이야기할 틈은 없었다.

니콜라스는 우리의 모습을 확인하기 무섭게 품속에서 수류탄을 꺼내어 들었다.

상황판단이 지나치게 빠른 녀석이었다.

“못볼거라도 본 얼굴이군.”

“[스톤 월].”

픽.

안전핀을 뽑아 수류탄을 내던진 니콜라스의 앞에 벽이 솟아올랐다.

벽은 우리와 니콜라스 사이를 나누듯이 빠르게 자리잡았다.

앞과 뒤 전부가 콘크리트 벽에 막힌 상황.

수류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어셔는 이전에 일러두었던 대로 블링크를 사용했다.

“[블링크].”

콰광!

전이한 콘크리트 벽 너머로 폭음이 울려퍼졌다.

전이의 여파와 폭음이 뒤섞여 이전보다 강한 흔들림을 만들어낸다.

잠시동안 벽에 기대어 비틀거리던 나는 다시 균형을 잡았다.

회복에 너무 오랜시간을 사용하면 니콜라스를 놓칠 가능성이 있었다.

“시간이 없다. 다시 이동해.”

어셔가 다시 블링크를 사용했다.

우리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세웠던 벽을 지워버린 것인지, 니콜라스가 수류탄의 흔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나타난 우리의 모습에 놀라서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나와 어셔를 번갈아보던 니콜라스가 이를 악물었다.

“이런…….”

“빨리 저 녀석을 쫓아가!”

“[블링크].”

주위를 둘러보던 니콜라스는 이내 유리창이 있는 방향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를 뒤쫓던 어셔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어셔는 니콜라스의 뒤로 전이해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렇게 뒤로 이동한 어셔의 손길이 니콜라스의 머리를 붙잡으려는 찰나, 어셔가 밟고 있던 지면이 움직였다.

“[스톤 월].”

어셔의 몸을 천장에 들이받을 기세로 솟아오르는 기둥의 모습.

조금만 늦더라도 천장과 충돌한 기둥이 어셔의 몸을 짓뭉개버릴 것이다.

움직이는 바닥을 확인한 어셔가 황급히 기둥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다시 블링크를 사용해 니콜라스에게 달라붙었다.

“상자를 먼저 노려! 내용물이 우선이다!”

“그럴 생각이다. [블링크].”

니콜라스의 바로 뒤에 달라붙은 어셔가 상자를 붙잡았다.

니콜라스는 어셔를 뿌리치기 위해 계속 벽을 세우면서도, 상자를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상대는 공간을 들고 이동하는 어셔 헤이즈다.

어셔는 상자에 닿은 채로 제자리를 향해 블링크를 사용했다.

달리던 어셔가 니콜라스의 손이 달린 상자를 들고 자리에 정지했다.

“끄윽, 내 손이……!”

아무리 비싼 물건이라도 목숨보다는 못한 모양일까.

니콜라스는 잘려나간 손목을 붙잡은 채로 계속해서 달려나갔다.

그에 어셔가 뒤에서 따라오던 나에게 상자를 집어던졌다.

“암흑상인. 물건을 받아라.”

“알았으니 놓치기 전에 잡아!”

“그럴 생각이다. 목도 같이 받아가도록 하지.”

“으윽… 너 같으면, 그냥 주겠냐! [스톤 월]!”

전력으로 달려나가던 니콜라스는 어느새 유리창의 앞까지 도달해있었다.

니콜라스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로 유리창을 향해 그대로 달려들었다.

와장창. 창틀 밑으로 벽이 솟아올랐다 사라지며 창문이 깨져나갔다.

깨져나간 창문 너머로 돌격한 니콜라스의 아래에 길게 솟아오른 돌기둥 발판이 있었다.

“어셔! 계속 추격해라! 블링크를 사용하면 낙하 속도를 제어하는게 가능하다!”

“…….”

니콜라스는 창틀을 뛰어넘어 돌기둥 위에 착지했다.

돌기둥은 니콜라스가 올라타기 무섭게 높이를 줄이며 아래를 향해 움직였다.

그 모습이 마치 돌로 만든 엘리베이터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셔는 가만히 서서 내려가는 니콜라스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셔 헤이즈?”

“끝났다.”

“……벌써 끝났다고?”

내 말을 들은 어셔는 대답 대신 깨져버린 유리창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조용히 창틀을 밟고 올라섰다.

그 직후 건조한 목소리가 주변에 묵직하게 울려퍼졌다.

­ “경고. 제한범위를 이탈하지 마십시오. 감시관과의 거리가 지나치게 멀어지는 경우 기폭장치가 작동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나갔다간 어셔의 머리가 사라질 상황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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