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29화 (29/156)

〈 29화 〉 진리규명 (2)

* * *

고요하고, 적막하다.

혼자만이 존재하는 세계.

일렁이는 공간속에서 어두운 밤하늘이 빛나고 있었다.

짙은 어둠을 뚫고 빛나는 별의 반짝임이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한참동안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던 나는 이내 이것이 자신의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이 도시에는 저런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한차례도 도시 밖으로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가짜이기에 비로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풍경이다.

이번에는 시선을 아래로 내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시선을 내리자 끊임없이 파도가 몰아치는 해안가가 보였다.

“바다구나.”

저벅, 저벅.

모래를 밟은 채로 혼자만이 남은 바닷가를 거닌다.

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새하얀 백사장에 발자국에 새겨지고, 다가오는 파도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진다.

어두운 저녁하늘에 하얀 바닷가가 보인다.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모순된 풍경이다.

자각몽의 안에서 목적지 없이 무작정 앞을 향해 걷다보면, 나는 새하얀 백사장과 대비되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

검다. 그리고 짙다.

모든 빛을 삼키는 무저갱과도 같은 어둠이 허공에 떠올라있다.

자연스럽게 그 앞에서 발길을 멈춰세웠다.

그리고는 허공에 떠오른 어둠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그 순간, 자신의 머릿속에 강렬한 목소리가 찾아왔다.

­ “어리석은 자여. 마법이란 무엇인가.”

눈앞의 어둠속에서 퍼져나오는 목소리.

입이 달려있지 않음에도 들리는 목소리는 마치 자신의 텔레파시를 마주하는 것만 같았다.

앞을 향해 뻗어나가던 손을 멈춰세우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법?”

­ “이루어질 수 없는게 이루어지게 만드는 힘. 그것은 세계를 역행하는 기적이며, 모든 인간들이 찾아해매던 불변의 진리와도 같다.”

“당신은…….”

­ “나는 신비의 대행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마법이며, 거짓된 마법사들을 이끄는 맹약의 수호자다.”

신비의 대행자라.

그런 이름은 책에서조차 보았던 기억이 없었다.

그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만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 “인간이여. 넘쳐나는 신비속에서 자신을 지킬 용기가 있나?”

나는 지금 새로운 경지에 오를 자격을 시험받고 있는 것이다.

전쟁도시의 작품 내용 전체로 보았을 때, 4서클 마법사의 비중은 결코 적은 편이 아니었다.

어셔의 경우 시작부터 5서클이었기에 정확한 조건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4서클로 넘어가기 위한 시험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눈앞의 어둠을 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차피 마주해야하는 시험이라면…….”

이 세계의 마법이란 기본적으로 자기관조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진정한 자신을 정립해나가는 과정이다.

당연히 사람마다 주어지는 시험의 내용도 달랐다.

절대적인 정답지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직접 고민하고 고뇌한 끝에, 올바른 대답을 내리는 것만이 그 과정이었다.

“도전해보겠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서 어둠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눈앞의 어둠이 커져 자신을 집어삼켰다.

끝을 모르는 어둠속에서 옅은 빛이 주변을 스쳐지나간다.

사방을 뒤덮은 어둠.

그 속에서는 하늘도, 대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몸을 지탱하던 균형감각을 완전히 잃었음에도 나는 넘어지지 않았다.

꿈속이기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그게 아니면 이런 일이 가능하기에 꿈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모를 일이다.

­ “강한 기적은 필연적으로 강한 반동을 만들어낸다.”

­ “이것은 그러한 신비의 흐름속에서, 그것을 휘두르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시험이다.”

대행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목소리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소년. 어린아이. 여성. 노인.

각양각색의 음색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떠들어대고 있었다.

누군가는 즐거웠던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누군가는 연인과의 안타까운 이별을 이야기한다.

‘오늘은 즐거웠지.’

‘그 사람은 왜 나를 버린걸까.’

이야기하는 주체마다 각자의 주제가 다르다.

슬픔. 기쁨. 분노. 절망.

희노애락의 감정이 한마디의 짧은 목소리에 담겨있었다.

수없이 들려오는 목소리 속에서, 나는 대행자의 목소리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없으면 회사가 돌아갈 것 같아?’

‘뭘 바라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 죽여버릴거야.’

‘왜 그런 짓을 해버린거지?’

‘내일은 피자가 먹고싶네요.’

‘가난은 싫어.’

압도적인 밀도의 정보.

들려오는 목소리에 자신의 사고가 따라가기 시작한다.

스스로의 생각을 통제할 수 없다.

사고의 흐름이 일방적으로 휩쓸려가고 있었다.

고삐가 풀린 채로 폭주한 머릿속은 이내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 “태초의 맹약에 따라 묻겠다. 너는 누구인가?”

감정의 격류에 뒤섞인 채, 대행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뒤따라오는 목소리의 파도에 금세 휩쓸려 사라졌다.

질문의 내용은 더 이상 떠올릴 수조차 없게 되었다.

끊임없이 메아리치는 사념의 흐름속에서, 나는 자신의 목소리를 입밖으로 꺼내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끝까지 내뱉지 못한 짧은 한마디.

그것이 내가 마주했던 꿈의 마지막이었다.

* * * * * *

“하아, 하…….”

거칠어진 숨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무거운 눈동자를 움직여 곧장 주위를 확인했다.

불이 꺼져있는 탓에 아직은 어둠에 잠겨있는 사무실.

그 한구석에 놓인 간이침대 위에서, 시넬이 자신의 옆에 웅크린 채 잠을 자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

지금은 꿈이 아니다.

나는 꿈에서 깨어난 채로, 자신의 사무실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자신이 꿈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분명히 자신이 시험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이해하고 있지만, 정확한 시험의 내용은 기억할 수 없다.

꿈이라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제아무리 꿈의 내용이라고 해도, 일어난 직후에는 어느정도 머릿속에 남아있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지금의 나는 꿈의 내용을 조금도 떠올릴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 인위적으로 기억을 막아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

휴대전화에 손을 뻗어 시간을 확인해본다.

새벽 5시 30분.

해가 떠오르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마법사의 시험은 깊은 잠에 들어갈 때마다 되돌아온다.

오늘의 시험을 다시 치르기 위해서는, 재차 밤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사장님?”

시간을 보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고 있으면, 옆에서 잠을 자던 시넬이 몸을 일으켜 나를 바라보았다.

어둠에 잠긴 잿빛 눈동자가 멍하니 자신을 보고 있다.

움직이는 내 기척을 느끼고 시넬이 잠에서 깨어난 모양이었다.

잠옷 대신 입은 커다란 티셔츠가 어깨까지 내려온 시넬을 쳐다보다가, 결국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다시 협탁에 되돌려놓았다.

“아직 더 자도 괜찮은 시간이다.”

“하아암. 그런가요.”

털썩.

시넬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다시 침대에 누웠다.

나는 그런 시넬을 잠시동안 지켜보다가, 이내 침대를 벗어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많은 상념들이 자신의 안에서 피어나고 흐트러지기를 반복한다.

아직 완전히 잠이 깨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차가운 물로 머리를 식힌다면 조금 더 냉정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터벅. 터벅. 터벅.

수건을 챙겨 화장실을 향해 걸어간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복도에 자신의 발자국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끼익. 문을 열고 조용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을 인식한 화장실의 불이 켜졌다.

불이 켜진 화장실을 돌아보던 나는 곧장 티셔츠를 벗고 세면대의 물을 틀었다.

“윽…….”

차가운 물이 손에 닿자 반사적으로 몸이 뒤로 물러났다.

심장고동과 함께 혈류가 빠르게 순환하며, 잠에 들었던 정신이 순식간에 깨어났다.

살짝 손을 가져다대어 물의 온도에 적응하다가, 이내 손으로 물을 받아 얼굴을 씻어내리기 시작한다.

평소보다 빨리 일어나 이른 새벽부터 세수를 하고 있다니.

결코 익숙한 풍경은 아니었다.

“곧 있으면 4서클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4서클이 되는 조건을 충족했다.

그 조건이라고 하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시험에 불려간다는 사실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험의 내용을 모르는 채 재시험에 임해야한다는 점은 생각보다 치명적이었다.

4서클을 넘어갈 기회는 영원하지 않다.

어쩌면 꿈속에 존재하고 있는 순간만큼은 시험에 대한 기억을 유지할 수 있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마법사도 아무나 못해먹겠군.”

마법사가 6서클의 다다르면 사명이라 부르는 것을 받는다.

거기에 예외는 없다.

사명이란 마법사 자신의 안에 내재되어있는 인생의 방향성이다.

사명은 마법사 자신의 성격에 가장 적합한 것이 주어지며, 그 행적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사명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 전까지 치뤄지는 일련의 시험은 전부 사명을 받기까지의 과정이라고 보는게 합당했다.

“……이런 몸을 가지고 마법사라는게 웃기기는 해.”

거울속에 비치는 자신의 몸을 바라본다.

퍼시발 스미스. 그는 보잘 것 없는 마법을 가진 엑스트라지만, 그 몸뚱아리만큼은 제법 괜찮았다.

과하지 않을만한 수준의 탄탄한 근육이 전신에 자리잡고 있다.

마법보다는 격렬한 육탄전에 어울려보이는 몸이다.

물론 이 세계의 마법사는 총격이나 근접전투를 동반하는 일이 잦다.

물리 마법사가 표준이 된 세상이라.

동심따위는 진작에 내던져버린 냉혹한 세계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