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진리규명 (3)
* * *
“잠시 밖에 나갔다 와도 되나요?”
따가운 햇살이 창문을 넘어들기 시작한 아침.
빵집에서 사온 샌드위치를 아침식사 삼아 베어먹고 있으면, 마찬가지로 샌드위치를 깨작이던 시넬이 물었다.
내가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어지간해서 사무실에 있던 시넬이다.
그런 시넬이 갑자기 홀로 밖에 나간다고 하니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갔다가 온다고?”
“네.”
“밖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까망이가 퇴원하는 날이라서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던가.
동물병원에 입원해 시넬의 지갑을 열심히 비워가던 까망이다.
이제서야 동물병원에서 나온다니, 시넬의 지출이 조금은 줄어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고양이 밥 준다고 쓰는 돈은 줄어들지 않겠지만 말이다.
“기쁜 날이겠군.”
“드디어 까망이를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까망이는 어디서 키울 생각이지.”
“…….”
시넬의 눈이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사무실을 한바퀴 쭉 둘러보고는, 시넬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나에게서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안하무인의 성격이다.
그런 성격에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뭐, 사무실에 고양이 하나정도 있으면 분위기도 살겠지.”
“감사합니다.”
“밥 주고 관리하는 일은 네가 다 해야겠지만.”
“그러네요. 그런 일은 당연히 제가 해야겠죠.”
벌써부터 기대에 가득 차있는 시넬의 모습을 보니, 도저히 거절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을 포기하고 데려오는 고양이가 아닌가.
엄연히 말하자면 집은 그 전부터 날아가는 중이었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게 하고, 시넬. 너 몇서클이었지?”
고양이의 일은 양보하고서, 지금 당장 중요한 일은 마법쪽이었다.
4서클이 되면 어느정도 출력의 향상을 기대해볼 수 있다.
초기 단계에서는 사용처가 애매한 마법들이 많이 있지만, 그마저도 6서클에 도달하면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가치를 발한다.
내가 가진 텔레파시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마법이라도 6서클까지만 성장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전투적인 측면에서 활용이 가능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6서클에 도달하는 것이 전제지만 말이다.
결코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그러니 우선은 가능한 빨리 4서클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도 시험을 통과할 필요가 있었다.
“마법말인가요?”
“물론 마법 이야기다.”
“흐음. 4서클이네요.”
시넬은 4서클의 헤이스트 유저다.
시넬에게 주어졌던 시험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4서클의 시험을 통과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4서클이 되었는가.
그 점에 대해서 알아두면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4서클이라.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4서클에 넘어간거지?”
“제가 4서클에 올라갔던 방법말이죠.”
“그래.”
“잘 모르겠어요.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서요.”
고개를 갸우뚱하던 시넬이 다시 샌드위치를 베어물었다.
시험에 대한 기억은 꿈에서 벗어나는 순간 지워진다.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다른 마법사에게 묻는다고 해도,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내가 아는 것은 어셔가 6서클의 시험에 통과한 방법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하. 골치 아픈 문제군.”
한숨을 내쉬고는 남은 샌드위치를 입에 집어넣었다.
아삭. 아삭.
샌드위치 사이에 들어간 양상추가 씹히며 계란과 뒤섞인다.
그럭저럭 먹을만한 맛이라고 생각한다.
자주 사먹을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럼, 이만 다녀올게요.”
어느새 샌드위치를 전부 비운 시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고글을 머리에 썼다.
밖에 나갈때면 언제나 시넬이 머리에서 떼어놓지 않는 물건이다.
오늘도 머리 위에서 햇빛을 반사하는 시넬의 고글을 보자, 문득 매일 고글을 챙기는 것도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글, 매번 쓰고다니면 힘들지 않나?”
“이건 비밀인데… 사실 야간투시 기능이 있어요.”
시넬이 자신의 고글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야간투시 기능이라.
생각보다는 실용적인 물건이었다.
지금이 어두운 밤이었다고 한다면 말이다.
“지금은 낮인데.”
“누르면 고글에서 불빛도 나와요.”
“……대단하군.”
나는 반짝이는 고글을 쓴 시넬을 얌전히 배웅했다.
다시 생각해봐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취향이었다.
* * * * * *
시넬과 둘이 보냈던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서일까.
혼자 있는 시간은 제법 무료했다.
커피 한 잔. 쿠키 하나.
그리고 커다란 TV를 가득 채운 아침의 뉴스.
이것들이 시넬이 없는 시간을 때우는 나의 동료였다.
손에 들린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서 테이블에 내려놓으면, 때마침 문이 열리며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암흑상인의 사무실이구나.”
“…….”
손님이라고는 있을 리 없는 이 사무실에 손님이 찾아왔다.
고개를 돌려 문을 살펴보면, 잿빛 머리카락의 소녀가 그곳에 서있었다.
익숙한 머리색이지만 시넬이 아니다.
안으로 들어온 스피넬은 나를 쓱 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못볼거라도 본 표정이네.”
“벌써부터 찾아올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이상할게 있어? 이 도시에 내가 못갈곳은 없는걸.”
그렇게 말한 스피넬이 내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유분방한 모습의 소녀지만, 그 정체는 치안대가 쫓고 있는 특급수배범이다.
그녀의 허벅지에 매여 있는 케이스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갔다.
스피넬이 주력으로 사용하는 칼날들이 들어있는 곳이다.
레서트 인더스트리에서 주문제작한 스피넬의 칼날은, 어지간한 무기로는 흠집조차 내기 힘들었다.
“그렇겠지. 누가 마천루의 마법사를 상대로 막아서겠나.”
“잘 알고있네.”
테이블에 놓여있던 쿠키가 허공에 떠오르더니, 이내 스피넬의 손바닥에 안착했다.
스피넬의 마법인 레비테이션은 서클의 성장을 거듭해, 어느덧 염동에 가까운 특성을 갖게 되었다.
단순히 물건을 날리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공격이 된다.
그것이 스피넬 클로버블룸이 도시에서도 손에 꼽히는 특급수배범으로 남게 된 배경이었다.
“그래서, 이곳에는 무슨 일로 찾아왔지?”
나는 눈앞에서 쿠키를 깨작이는 스피넬을 보며 물었다.
의자에 앉은 태도는 심히 건방져보이지만, 먹는 모습만은 제법 시넬과 닮은 것 같다.
내 질문을 들은 스피넬은 손가락을 뻗어 시넬의 가방을 가리켰다.
“소식을 들었거든.”
“소식?”
“여동생이 집이 없어서 방황한다는 소식.”
“시넬을 보기 위해 찾아왔나. 시넬이라면 안타깝게도 동물병원에 간 참이다.”
그러자 스피넬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유는 아니야. 그냥 사는 곳을 보고싶기도 했고, 같이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조사해봤어.”
“그래서, 확인은 잘했나?”
“암흑상인 퍼시발 스미스. 다른 곳에서 정보상인으로 이름을 떨치다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거기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던걸.”
내가 암흑상인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어디를 찾아보더라도 관련된 정보가 있을 리가 없다.
내 정보력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모양이지만, 그 부분만큼은 스피넬의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생각보다 나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아본 모양이었다.
“상세한 정보라는건 원래 얻기 힘든 법이다.”
“그래?”
“깊게 파고드려고 할수록, 상대방의 신뢰를 잃어버리기 쉬우니까.”
“수상한 사람이면서 말은 잘하네. [레비테이션].”
쿠키를 마저 해치운 스피넬이 손을 움직였다.
구석에 있던 냉장고의 문이 열리면서, 그 안에 있던 콜라 하나가 스피넬의 손으로 날아왔다.
콜라캔을 손으로 낚아챈 스피넬은 캔을 따서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스피넬의 모습을 보며 한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저렇게 보여도 스피넬은 일단 6서클의 대마법사다.
그녀에게 시험에 대한 것을 물어본다면, 무언가 의미있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스피넬 클로버블룸. 괜찮으면 하나 물어보도록 하지.”
“스피넬이라 불러도 괜찮아. 정보상인이라도 궁금한게 있는 모양이네.”
“남들보다 많은 것을 궁금해하기에 정보가 모이는 법이다.”
“알았어. 뭐가 궁금한데?”
“서클의 성장에 대해 무언가 아는게 있나?”
내 질문을 들은 스피넬이 손가락으로 무릎을 가볍게 두드렸다.
잿빛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나를 훑고 지나갔다.
그 직후 스피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당신, 지금 시험을 치르고 있구나.”
“눈치 챈 모양이군.”
갑작스럽게 서클에 대해 물어봤으니, 눈치채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스피넬이 눈을 감고 잠시 상념에 잠겼다.
일분. 혹은 그보다 약간 짧은 시간.
조용히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스피넬은 다시 눈을 뜨고서 나에게 말했다.
“거래를 하자, 암흑상인.”
“거래?”
“그곳에 대한 기억을 지키는 방법을 알려줄게. 대신 내가 원하는 정보를 넘겨.”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