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진리규명 (5)
* * *
이전과 같이 파도가 몰아치는 백사장.
걸음을 내딛으면 모래가 패이고, 걸음을 멈추면 파도가 밀려온다.
신비와 모순으로 가득찬 이 자그마한 공간은 꿈이라기엔 지나치게 생생한 것이었다.
백사장을 가르듯이 앞을 향해 발을 내딛다보면, 이제는 익숙한 모습의 검은 물체를 마주할 수 있었다.
“…….”
비현실적으로 잘려나간 세계의 경계선.
그보다 조금 앞에 위치하고 있던 거대한 어둠이 나를 맞이했다.
기억에 남은 것은 이것으로 두번째지만, 실질적으로 그를 마주하는 것은 세번째다.
허공에 커다란 구멍을 낸 것처럼 떠올라있는 어둠의 아래에선 백사장의 모래들이 끊임없이 밀려나고 있었다.
“시답잖은 수작을 부렸구나.”
나를 마주한 어둠에게서 목소리가 울려퍼지며, 주변에 있던 모래들이 패여나갔다.
내가 기억을 유지한 채로 이곳을 빠져나갔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물론 신비의 대행자가 이 사실을 눈치채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스피넬이 내게 해주었던 귓속말중에는 들키더라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패널티라도 줄 생각인가?”
어떻게 보면 일종의 부정행위다.
그를 마주한 내가 패널티에 대해서 물으면, 긍정의 대답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상관없다. 그것마저도 시험으로 판단하고 있으니.”
“그거 다행이군.”
“그리고 너는 이미 시험에 대한 불이익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어진 대행자의 말에 나는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이미 시험에 대한 패널티를 짊어지고 있다.
대행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굳은 얼굴이 되어 눈앞의 심연을 바라보았다.
“내가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물론이다. 너에게는 이미 다른 이들보다 난해한 시험이 제시되고 있다.”
“대체 이유가 뭐지?”
“인간이 인간임을 결정짓는 기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설마…….”
짐작가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육체. 정신. 기억. 우리는 모든 것을 종합해 하나의 인간을 정의내린다.”
“내용물이 다르니까 문제라는건가.”
“너는 이전에 시험을 통과한 이와는 기억도 성격도 다르다. 하지만 네 마법에게선 여전히 같은 개체로서 인정받고 있지.”
나는 퍼시발 스미스이지만, 퍼시발 스미스가 아니다.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자체가 녀석들에게 있어서 상정외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가장 오래된 마법을 속이는 것까지는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법 그 자체가 영혼이 아닌 육체에 종속되어있다는 것이다.
대행자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시험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러니 ‘진리’는 너에 대한 시험 난이도의 상승을 요구했다.”
“어느정도까지 올라간거지?”
“네가 마주할 모든 시험이 한단계 상향조정된 상태다.”
“이번 시험은 5서클의 시험과 비슷한 난이도라고 보면 되나?”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무방할거다.”
생각해보면 시넬도 쉽게 통과했던게 4서클의 시험이다.
해결방법에 대해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있던게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마법사의 시험에 처음 도전하는 내가 5서클의 시험을 치르고 있었으니, 쉽게 해결하지 못하고 골머리를 썩고 있는 것도 당연했다.
“……어쩐지 뭔가 힘들더라니. 사기당하고 있었군.”
“그럼 포기하겠나?”
“아니. 신경쓰지 않아. 어차피 넘어서야만 하는 벽이니까.”
이 도전에 리스크는 없다.
실패하더라도 다음에 돌아오기까지의 간격을 기다려야 할 뿐이다.
리스크 없이 리턴만 돌아오는 시험에 응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대행자의 안에 있던 끝없는 어둠이 일렁이더니, 그 안에서 거대한 눈동자가 나를 마주하며 물었다.
“거짓된 마법사여. 시험에 도전하겠나.”
“도전한다.”
고개를 끄덕이자 눈앞의 어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끝을 모를 무저갱과도 같던 어둠이 사방으로 펼쳐지며, 이윽고 주변의 모든 빛이 흩어져나갔다.
번져나간 빛들이 반짝이는 혼자만의 우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분수를 깨닫게 만드는 불가해의 세계가 맥동했다.
그와 함께 시험의 개시를 알리듯이 목소리가 밀려들어왔다.
‘나를 져버린 세상이 밉다.’
‘대체 그깟 돈이 뭐라고 나한테.’
‘남김없이 전부 죽여버리고 싶어.’
‘왜 나는 안되는데? 왜 너만…….’
처음으로 들려온 것은 악의다.
사람은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시기하며, 질투한다.
날 것 그대로의 악의가 여과없이 자신의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또 실패했다.’
‘이것도 저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죽고 싶어졌어.’
다음으로 들려온 것은 절망이다.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 후회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우울한 목소리가 수차례 나를 스쳐지나갔다.
“……아.”
이윽고 사념의 격류가 몰아쳐왔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귀를 가득 채우고, 머릿속을 엉망으로 뒤섞어놓는다.
누군가는 거센 비명을 지른다.
다른 누군가는 절규하며 자신을 내려놓는다.
어지럽다. 그리고 혼란스럽다.
나를 스쳐지나가는 것들이 저마다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늘이 맑아.’
‘오늘의 날씨는 붉은 거울.’
‘아아……. 길게 늘어선 전선이 끊어지고는.’
이질적인 것에 닿아갈 수록, 점점 그 색에 물들어간다.
타인에게 동조해 혼탁해져가는 사고의 흐름은 원래의 방향성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자신이 아닌 것들이 자신의 안에서 기어다닌다.
형태를 가지지 못한 것들이 서로간에 뒤얽히고는, 이내 이해할 수 없는 다른 무언가로 변해간다.
‘푸른 하늘이 벌레에 뒤덮혀.’
‘비가 내리면 오늘도 안녕하신가요.’
‘검고 푸르고 빨갛고 검은.’
‘남김없이. 떨어지는 바람.’
이것은 더 이상 나의 의지가 아니다.
자아를 지탱하는 것은 기억인가, 아니면 생각인가.
타인으로부터 흘러들어온 것을 자신의 생각이라 부를 수 있는가.
사념의 폭풍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정신없이 휘둘리는 도중, 어렴풋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까망이 보고싶다.’
익숙한 목소리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희미하게 들려왔던 목소리에 의식을 집중하고 있으면, 그에 응답하듯이 다시 한 번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절름발이는 오늘도 바다를 걸어.’
‘내일은 뭘 먹을까.’
‘어려운 문제는 거울 속에 있다.’
‘신은 언제나 당신을 위해서…….’
시넬 클로버블룸.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난 동료의 목소리다.
순수하면서도 영악하고, 투박하면서도 선명하다.
피와 음모로 가득찬 이 도시에서 내가 처음으로 믿음을 가진 상대이기도 했다.
어두운 바다를 홀로 비추는 등대와도 같이, 흘러들어오는 목소리들 사이에서 시넬의 것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왜 나를 봐주지 않아?’
‘불이 켜지지 않아.’
‘이것도 저것도 전부 제멋대로야.’
‘사장님이 맛있는거 사줬으면 좋겠다.’
마음속에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
그렇기에 시넬을 만났다.
그리고 자신의 동료로 만들었다.
이름조차 남지 않았던 엑스트라들이 서로를 알게 되었다.
‘월급날은 얼마나 남은걸까.’
전쟁도시는 행복으로 가득찬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빼앗기며, 누군가는 복수를 쫓는다.
저마다의 목적이 피를 불러오고, 그렇게 만들어진 피는 다음의 희생양을 찾아 움직인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웃는 것이 허락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의 종막은 텁텁함으로 입안이 가득 찬 새드엔딩이다.
‘월급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비극으로 끝나는 이 이야기속에서, 우리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만났다.
그러니 아직은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이런 간단한 시험따위에 계속해서 패배해서야, 자신의 무력함을 모두에게 드러내보일 뿐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끝을 모르고 늘어선 검은 세계가 자신의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태초의 맹약에 따라 묻겠다. 너는 누구인가?”
시험의 해답을 요구하는 대행자의 목소리.
그것을 들어,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원래의 나는 퍼시발 스미스가 아니다.
단지 소설을 보던 독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대행자는 그것을 알면서도 나에게 물었다.
형식적인 문답을 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간단한 질문이면서도, 이방인이었던 나에게는 어려운 질문이다.
여태껏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던 상황이지만, 더 이상 미루어둘 수 없는 선택의 시간이 도래했다.
나는 누구인가.
과거의 자신이 진짜인 것인가, 지금의 자신이 진짜인 것인가.
이제는 거기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암흑상인… 그 이름을 얻기까지 분명 고생하셨겠지?’
눈을 돌리고 있던 이름 역시 마찬가지다.
위대한 이를 증명하는 것은 위대한 업적만이 아니다.
자신이 어느곳에 있던지. 자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간에.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가짐이다.
오직 확고한 믿음만이 바라고 있던 자신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자신을 향한 일종의 선언이었다.
“나는.”
나는.
시넬 클로버블룸의 고용주다.
암흑상인이라 칭송받는 위대한 정보상인이다.
이 세계의 끝을 유일하게 알고있는 자이다.
그리고 이 세계에 올바른 엔딩을 가져올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위대한 발자취를 걸어나가는 나의 이름은.
“퍼시발 스미스다.”
앞으로도 계속 퍼시발 스미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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