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용병 (1)
* * *
결과적으로 시험은 통과했다.
시험을 마친 것으로 나는 4서클이 되었고, 이제 심장에서는 네개의 고리가 돌아가게 되었다.
물론 내가 4서클이 되었다고 해서, 이전보다 극적으로 강해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능력에 어느정도 변화가 생겼을 뿐이다.
우선 텔레파시의 범위와 출력이 기존의 50% 가까이 증가했다.
지금까지 텔레파시의 크기가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치의 반절정도였다고 한다면, 이제는 8할에 가까운 수치가 되었다.
이대로 서클이 오르고 출력이 그 한계까지 도달하는 경우, 범위내의 적이 외부의 소리를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사장님?”
거기에 추가적으로 지금 사무실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넬이 무슨 기분인지 알아낼 수 있게 되었다.
마법이 켜진 상태에서는 타인의 감정에 감응하게 된 것이다.
물론 느껴진다고 해도 구체적인 정보가 전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까지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점심 메뉴가 뭐인지 궁금해하고 있군.”
“헉. 독심술을 익히셨나요.”
“냐아.”
“…….”
방금 것은 능력과는 별개로 단순히 시넬의 생각을 때려맞췄을 뿐이다.
대부분은 기쁨이나 슬픔, 즐거움, 안타까움과 같은 대략적인 감정의 편린이었다.
이것 역시 서클이 올라가며 마법이 변화한다면 서로간에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화할 것이다.
가만히 앉아 나를 지켜보던 시넬은 까망이를 끌어안은 채로 말했다.
“사장님. 뭔가 조금 변한 것 같아요.”
“4서클이 되었다.”
“4서클……. 그럼 기쁜 일이네요.”
“아직 멀었다. 이제서야 출발선에 다가섰을 뿐이지.”
겸손따위가 아니다.
도시에는 실제로 수많은 괴물들이 우글거린다.
4서클이라고 해봤자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면 자주 맞닥뜨리는 수준에 불과했다.
게다가 전투계통도 아닌 4서클의 마법 하나만으로는 전투에 있어서 한계가 명확했다.
시넬의 언니인 스피넬만 하더라도 6서클의 대마법사가 아니던가.
작품의 후반부쯤에 가면 하나하나가 규격에서 벗어난 거물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자신이 6서클에 올라갈 수 있을거라는 확신은 없지만, 가능한 스스로를 단련하며 부하들과 팀워크를 맞추어나갈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넬은 꿋꿋하게 자신의 말을 관철해왔다.
“그래도, 서클이 오른 건 기쁜 일이네요.”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럼 기쁜 일이에요.”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군.”
내가 기뻐한다는 부분이 중요한 모양이다.
잘 모르겠지만 기뻐해야 할 것 같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나를 바라보던 시넬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맞아요. 기쁜 일이에요.”
“…….”
“기쁜 일이에요?”
기대와 흥미.
그런 원초적인 감정들이 나를 마주한 시넬로부터 전해져왔다.
이쯤 되면 무엇을 원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시넬이 기대하고 있을만한거야 하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 기쁜 일이 있으면 맛있는걸 먹어야겠지.”
“저도 기뻐요.”
가끔씩은 자신의 성장을 기념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그렇다면 무얼 먹는게 좋을까.
나는 어떤 메뉴가 괜찮을지 고민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차피 오늘은 현상범에 대한 정보를 받기 위해 브라이언의 사무실에 찾아갈 생각이었다.
브라이언이 정보상을 연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겸사겸사 개업선물을 좀 챙겨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해산물이 좀 끌리는군.”
“해산물인가요.”
그리고 고민 끝에 해산물을 오늘의 메뉴로 결정했다.
쉽게 먹는거보단 기왕이면 좀 비싼 메뉴들로 챙겨볼 생각이었다.
* * * * * *
“개업선물이라더니, 기대했던 것보다 꽤 화려하잖아.”
“나름 신경좀 썼지.”
7구역의 구석에 위치한 브라이언의 사무실.
구석이라고 해도 우리 사무실보다는 목이 좋은 사무실의 안에서, 나와 브라이언이 테이블을 두고 마주보고 있었다.
둘의 사이에 길게 늘어선 테이블에는 해산물 요리들이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중이었다.
그의 말대로 화려하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브라이언은 근처에 놓여있던 집게발을 하나 집어들고서 내게 물었다.
“……이거 정말 내가 먹어도 괜찮은거야?”
“물론이다. 혹시 갑각류는 싫어하나?”
“랍스터를 상대로 그럴리가. 옆에 있는 이건 킹크랩인데?”
“그래. 만족했으면 좋겠군.”
끄덕. 고개를 움직인 브라이언이 살을 빼내어 입에 집어넣었다.
먹기 편하게 손질되어 나온 부위들이다.
굳이 번거로운 짓을 해가며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었다.
나 역시 차려진 만찬을 즐기며 옆자리에 있는 시넬을 바라보았다.
“맛있네요.”
헤이스트라도 사용한 것처럼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는 시넬이었다.
시넬의 앞에는 깔끔하게 해체되어있는 껍데기가 어느새 수북하게 쌓여 산을 이루고 있었다.
시넬은 내가 게다리를 든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게 신경쓰였는지, 조그마한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였다.
“사장님은 많이 안드시나요?”
“먹고 있다.”
“넹.”
내 대답을 들은 시넬이 다시 해산물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눈앞의 브라이언에게 시선을 향했다.
빈말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열심히 골라먹고는 있지만, 시넬처럼 열중해서 먹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이곳에 온 이유가 단순히 밥을 먹기 위해서는 아니었던만큼, 나는 게를 먹으면서 브라이언에게 물었다.
“그러고보니 전에 맡겼던건 어떻게 됐지?”
“전투방식이 근접전투에 가까운 수배범들 목록?”
“잘 기억하고 있군.”
“당연히 고객님이 시키는대로 조사좀 해봤지. 특급 녀석들은 위험하기도 하고, 정보도 별로 없어서 뺐지만 말이야.”
“추천하는 녀석들이라도 있나?”
“일단은 1급에서 하나, 2급에서 하나.”
1급 수배범이라.
상황에 따라 살짝 위험할 수도 있는 선택지다.
위험 없이는 얻을 수 있는 것도 적다지만, 일단은 상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서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이름이 뭐지?”
“1급 수배범은 거석의 베거스. 마법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방어력이 높은 편이라 치안대가 성가셔하지.”
거석이라는 이명부터가 방어와 상당한 연관이 있어보인다.
브라이언이 덧붙인 설명으로 생각해보건데, 탄환이나 칼날에 대한 데미지를 적게 받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전혀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은 아닐테니, 공략방법만 잘 생각한다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두번째는 뭐지?”
“도굴꾼 테디어스. 디그(Dig) 마법을 쓰는데 말은 근접전투지만… 흉악범도 아닌데다가 치안대 입장에서도 추격하기 골치아파서 방치하는 케이스야. 거석보다는 이쪽이 쉬울걸.”
도굴꾼과 거석이라.
둘 다 원작에서는 크게 언급되지 않았던 인물들이다.
당연하게도 악명만 비교해보자면 전자보다는 1급 수배범인 후자가 더 위험해보인다.
그러나 내 마음은 거석을 잡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어느정도는 난이도를 감수하더라도 변수가 적은 편을 더 선호한다.
하물며 이 세상은 게임같은게 아니다.
단순히 상성만으로 모든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기에, 창출가능한 변수가 많은 마법은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거석의 베거스. 녀석으로 하지.”
“아무래도 도굴꾼이 낫지 않아?”
“치안대도 추격을 힘들어하는 녀석이다. 걸려있는 몸값을 생각하면 괜히 쫓아서 힘을 뺄 필요는 없어보이는군.”
디그라는 마법 자체만 생각해도 꽤나 성가신 사용법이 많아보인다.
잘만 사용한다면 시가전에 국한해서는 거석보다 위협적인 마법이 될 것이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하더라도 완성되어있는 건물의 아래에 디그 마법을 사용한다는 방법이 있었다.
건물을 지탱하던 부분의 흙이 일거에 사라진다면, 튼튼하던 건물이 기울어지게 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멀쩡한 길을 망가뜨리는 것도 문제겠지만, 괜히 치안대에서 추격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말을 들은 브라이언은 그에 수긍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알았어. 일단은 베거스에 대해서 먼저 설명해야겠네.”
“들어보도록 하지.”
“거석의 베거스. 녀석은 스톤스킨이라는 마법을 사용하는 4서클의 마법사야.”
“……스톤스킨이라.”
“아까 말했듯이 마법의 랭크 자체는 높지 않지만, 어지간한 총칼이 몸에 안박히는게 문제지.”
어찌보면 폭주전차라 불리던 캘빈과 비슷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캘빈은 풀플레이트의 방어력에 더해,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은 신체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단단한 콘크리트 벽을 일격에 부숴버릴만한 근력이다.
방어력과 공격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한 존재였다.
단순히 경도가 올라가는 마법이라고 한다면, 캘빈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를 것이다.
아무래도 1급 수배범 중에서는 난이도가 낮은 편으로 보였다.
“공격력 자체는 별 볼일 없겠군.”
“그거야 그렇지.”
“녀석에게 걸린 현상금은 얼마나 되지?”
“치안대 기준으로 3만 5천 크레딧. 그러고보니 검성도 녀석을 쫓는다는 얘기가 있던데.”
검성.
전쟁도시 속에서 몇차례나 등장했던 인물이었다.
브라이언의 입에서 익숙한 사람의 이야기가 튀어나오자, 나는 반사적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검성?”
“그래. 그 유명한 ‘자칭 검성’말이야.
“그렇다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냉병기를 이용한 전투에 특화된 마법사는 많이 있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 검성이라는 이름을 칭하는 이는 하나뿐이다.
묵직한 검을 매고 다니며 범죄자들을 도륙하는 용병 겸 현상금 사냥꾼.
검성이라는 이명을 자칭하면서도, 검이라고는 조금도 사용할 줄 모르는 극한의 컨셉주의자.
그게 바로 검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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