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34화 (34/156)

〈 34화 〉 용병 (2)

* * *

도시의 무법자들 중 하나인 베거스를 칭하는 말은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을 꼽자면 역시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13구역 지하결투장의 전설’이 바로 그것이다.

1급 수배범, 거석(巨?) 베거스.

그는 지하결투장에서 무패를 자랑하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몸을 단단하게 만드는 베거스의 스톤스킨 마법. 그리고 천재라고 부르기에 전혀 아깝지 않은 천부적인 격투실력.

그 두가지가 만나 만들어낸 파괴적인 전투능력에 마주한 적들은 예외없이 전부 무너져내렸다.

베거스는 목숨을 걸고 벌이는 지하결투장의 일대일 승부에서 전승을 거두었고, 결국에는 그의 석상이 지하결투장의 한가운데에 세워질 정도였다.

‘허무하다.’

하지만 찬란하던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권다툼에 휘말린 지하결투장은 어느 순간 13구역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굳건한 그의 모습을 그려내던 석상 역시 산산조각난 채로 사라졌다.

집을 가득채웠던 황금은 여전히 그에게 남아있었으나, 결투장이 사라진 이후로 베거스의 마음은 항상 공허했다.

돈이 있다. 그럼에도 마음껏 생사투를 벌일 수 없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만이 그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그는 이미 결투에 중독되어 있던 것이다.

‘그래도 싸우는 것은 멈출 수 없다.’

결국 그가 택한 것은 혼자만의 결투를 이어가는 것이었다.

베거스는 온 도시를 돌아다니며 곳곳에 숨어있을 강자들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만나는 상대마다 막대한 황금을 걸고서 결투를 벌였다.

물론 베거스와의 결투에서 진 패자들은 전부 죽었다.

승자만이 살아남는다.

그것이 그가 평생을 싸워온 지하결투장의 규율이었으니까.

“사, 살려줘…….”

“결투에서 지지 않았나.”

지금 베거스의 눈앞에서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자는 베거스가 전재산을 걸고 내민 결투를 받아들였고, 그 결투에서 꼴사납게 패배했다.

자신과 강함을 겨루었던 상대가 누구던간에 베거스는 살려서 보낼 생각이 없었다.

벽에 기대어있는 남자를 앞에 두고서 베거스가 주먹을 들어올렸다.

“내가, 내가 너무 욕심부렸어. 살려만 주면…….”

“변명이 구차하다.”

“커헉……!”

파각!

베거스의 주먹이 남자의 머리에 틀어박혔다.

스톤스킨에 의해 강화되어 바위와 같은 강도로 변한 주먹이다.

베거스가 자비없이 휘두른 주먹에 충돌한 남자가 침묵했다.

그렇게 고개를 숙인 남자가 더 이상 입을 열게되는 일은 없었다.

결투에서 진 패배자의 최후였다.

“시시한 녀석이었다.”

마법을 해제한 베거스가 손바닥을 털어내며 말했다.

근처에서 유명한 용병이라기에 싸움 실력을 확인해보기 위해 찾아왔더니, 그의 예상보다도 훨씬 싸우는 맛이 없었다.

오히려 이전에 그를 쫓던 치안대원 쪽이 더 치열했을 정도였다.

이래서야 베거스가 상대와 목숨을 걸고 싸우기 위해 먼곳까지 찾아온 이유가 없었다.

“이번에도 다른 녀석을 찾아봐야 하는건가.”

보다 강한 상대.

그것만이 베거스의 안에서 끓어오르는 투쟁심을 잠재울 수 있었다.

베거스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검은 가방을 다시 들어올렸다.

금괴가 들어있는 묵직한 그의 가방은 물욕에 찌들어있는 용병이나 범죄자들을 꾀어내는 미끼였다.

이 가방안에 가득찬 황금을 보고도 자신과의 결투를 거절하는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투를 거절하는 이에게는 황금 대신 베거스의 돌주먹을 선물할 뿐이었다.

터벅, 터벅.

가방을 챙긴 베거스는 어둠이 들어선 골목속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목표물이었던 남자와의 결투는 베거스의 승리로 끝났다.

결투가 끝난 이상 그가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베거스의 발이 복잡하게 뻗은 외곽지구의 골목길을 걸었다.

미로와도 같이 뻗어있는 도시의 뒷골목은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있어서 상당히 불친절한 장소였다.

찢어진 전단지. 깨진 네온사인. 바닥을 굴러다니는 담배꽁초.

칙칙한 골목의 풍경이 베거스의 시야를 스쳐지나간다.

여러차례 모퉁이를 돌아 익숙하지 않은 길에 접어들었을 즈음, 그는 무언가를 느끼고 발을 멈춰세웠다.

“…….”

오랜시간 치안대와 현상금 사냥꾼의 추격에 시달려온 베거스는 남들보다 민감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 베거스의 감각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위화감을 느낀 베거스가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벽에 기대어 선 채 베거스를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계식의 검집을 등에 매고 있는 소녀의 금빛 눈동자가 어둠속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죽기 싫으면 가만히 있는게 좋을거야.”

“너는 누구지?”

“검성. 주변에선 그런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

“몇차례 들어본 기억이 있다. 분명 이 도시에서 신기에 가까운 검기를 익히고 있는 검객이 있다고 하던가.”

베거스가 전해들은 검성의 일화는 실로 경이로운 것이었다.

일생동안 검을 수련해온 불세출의 검객은 자신의 영역안에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베어버릴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이 베거스가 알고 있는 검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평생 무를 닦아왔다고 주장하는 검은 머리카락의 소녀는 자신을 검성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하지만 베거스의 눈에 비치는 소녀의 모습은, 서로의 무를 논하기에는 지나치게 연륜이 부족해보이는 모습이었다.

“……듣는 귀는 제법 있는 모양이야.”

“생각보다 어려보이는 모습이군. 어쩌면, 소문으로 돌던 내용이 과장되었는지도 모르겠어.”

“그럼 직접 확인해봐도 좋아.”

철컥.

여린 손가락이 허리춤에 매인 검을 붙잡았다.

검집의 일부를 가리고 있던 검성의 짙은 케이프가 허공에 펄럭였다.

금빛 눈동자의 소녀는 과연 어떤 검술을 보여주려는 것인가.

앞으로 이어질 전투를 고대하고 있던 베거스가 마력을 끌어올리며 눈을 깜빡이는 찰나.

“검성류 오연섬격.”

카가가가각!

앞머리를 스쳐지나가는 바람과 함께 검성의 검이 검집에서 살짝 뽑혀져 나왔다.

눈을 감고 있던 것은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베거스는 검성의 검이 움직이는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베거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바닥에는 어느새 다섯 갈래의 상흔이 자리잡고 있었다.

“……검을 휘두르는게 보이지 않았다.”

“그게 검성이니까.”

“확실히, 어린 나이에 성취가 제법이군.”

잠시 눈을 깜빡인 것은 확실히 베거스의 실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전에 검성이 보여준 공격은 베거스가 인지하지도 못할만큼 빠른 속도였다.

한 번 휘둘러 다섯의 흔적을 새겨내는 검격.

이것은 총화기가 불을 뿜는 시대에서 낭만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베거스의 칭찬을 들은 소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검의 손잡이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하는데.”

“무슨 제안이지?”

“얌전히 나를 따라서 치안대에 가던가, 아니면 돌조각으로 분리되서 가던가. 어떤걸 원하고 있어?”

“죽기 싫으면 따라오라는건가.”

“맞아. 굳이 저항하지 않는 녀석을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확실히 눈앞의 검성이 보여준 일격은 강했다.

그러나 고작 그것만으로 베거스가 싸움을 포기하기에는, 그의 안에 있는 투쟁심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모처럼 상대방이 먼저 걸어온 싸움이지 않은가.

베거스가 그것을 거절할만한 이유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전자는 별로 내키지 않는군. 하지만 나를 쓰러뜨릴 수 있다면, 후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투광이라더니 확실히 싸움에 미쳐있는 것 같아.”

“나는 싸우기 위해 태어났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세웠고, 이기기 위해 무를 갈고 닦았다.”

“그래서?”

“내 한몸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그 끝을 알아보기 전까지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스톤스킨.

피부를 돌과 같이 만들어주는 베거스의 마법이 모습을 드러냈다.

잿빛으로 물든 피부를 내보인 채로, 베거스가 검성에게 달려들기 위한 자세를 잡았다.

그런 베거스의 모습을 지켜보던 검성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알았어. 그냥 죽여줄게.”

“경지에 이른 검술이라. 기대해보도록 하지.”

“검성류. 비기.”

발도를 위한 자세를 잡은 검성.

그녀의 준비태세를 포착한 베거스가 가드를 올리고 달려들었다.

검성은 달려드는 베거스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조용히 검을 움직일 뿐이었다.

철컥.

짧은 마찰음과 함께 검성의 검집에서 검이 빠져나왔다.

“절계(?).”

검성의 검이 뽑혀나오는 것과 동시에 주변의 공간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위. 아래. 왼쪽. 오른쪽.

피할 공간을 남겨두지 않은 채로 무형의 참격들이 베거스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사방에서 자신을 압박해오는 참격을 본 베거스는 곧장 자세를 낮추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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