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용병 (3)
* * *
철컥.
짧은 마찰음과 함께 검성의 검집에서 검이 빠져나왔다.
“절계(?).”
검성의 검이 뽑혀나오는 것과 동시에 주변의 공간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위. 아래. 왼쪽. 오른쪽.
피할 공간을 남겨두지 않은 채로 무형의 참격들이 베거스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사방에서 자신을 압박해오는 참격을 본 베거스는 곧장 자세를 낮추었다.
“피할 수 없나.”
어느쪽도 참격으로 가득차있다.
무리하게 피하려다가 날아오는 참격을 전부 맞느니, 차라리 일점돌파를 택하는 것이 효율적인 선택지였다.
안면까지 가드를 들어올리며 날아오는 참격에 정면으로 돌파를 시도하는 베거스였다.
카각! 카가가가각!
단단해진 팔의 표면에 바람의 참격이 틀어박히며, 가드를 세우고 있던 그의 팔이 살짝 패여나갔다.
치명적인 피해는 면했다고 하지만, 패여나간 피부의 통증탓에 입술을 깨문 베거스가 돌진을 이어나갔다.
“큭……!”
검성은 원거리에서의 공격수단을 가지고 있다.
상대와 계속해서 거리를 벌리고 있다가는, 베거스가 일방적으로 검성에게 당하는 구도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베거스는 검성의 다음 공격까지 몸으로 받아낼 각오를 하며 달렸다.
거리를 좁히는 베거스의 모습에 검성은 다시 발도자세를 취하며 검을 뽑아들었다.
나긋한 목소리와 함께 검집에서 검이 조금 뽑혀나왔다.
“검성류 일섬.”
철컥.
검이 납도되는 것과 동시에 다시 베거스를 향해 참격이 날아왔다.
직전의 연속베기를 난사하는 것은 검성으로서도 무리였던 탓에, 베거스를 노리고 날아오는 참격은 하나뿐이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멀리서 날아오는 참격의 궤적이 베거스의 눈에 비치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몸을 비틀어 검성의 일격을 피해내고서, 검성의 지근거리까지 순식간에 달라붙었다.
“어디, 그 검술실력을 목도해보겠다!”
“생각보다… 많이 단단하네…….”
앞으로 달려오는 베거스의 모습에 검성이 완전히 검을 뽑아들었다.
이전의 공격처럼 검이 보이지 않을정도는 아니지만, 베거스가 보기에도 충분히 빠른 발도술이었다.
검성은 그렇게 뽑아든 검을 들고서 살짝 위로 뛰어오르더니, 이내 바람을 타고 후방으로 밀려났다.
허공을 뛰어 수미터를 뒤로 이동하는 검성을 추격하며 베거스가 포효했다.
“검성! 도망가는건가!”
“그럴리가 없잖아.”
검성이 허공에 검을 난잡하게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공간이 일그러지며 검기다발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최후의 발악이라도 되는 것처럼 날아오는 검기들.
그것을 전부 피해낼 자신이 없었던 베거스는 안면을 가린채로 다시 검성을 향해 달렸다.
카각! 카가각!
이전보다 더 커다란 상처들이 경화된 베거스의 팔에 새겨졌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내달린 베거스와 검성의 거리가 어느새 검이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좁혀져있었다.
“도망치지 말고 내 주먹을 받아봐라!”
팔을 휘두르면 상대에게 주먹이 닿을만한 거리.
자신의 간격을 확보한 베거스가 주먹을 들어 검성을 노렸다.
묵직한 주먹에 힘이 실리며 더욱 단단해진다.
베거스가 강화된 주먹을 휘두르려는 찰나, 검성이 검을 들어올려 베거스의 공격을 가로막으려 시도했다.
바위와 같은 단단함을 지니게 된 강펀치가 검성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윽……!”
카앙!
베거스의 일격을 받아낸 검성의 검이 크게 떨리며 쩌렁쩌렁한 충돌음을 사방에 퍼뜨렸다.
검성은 공격을 막은 반동을 완전히 흘려내지 못한 것인지, 몇걸음 뒤로 물러나며 한쪽 눈을 찡그렸다.
하지만 빈틈을 보이며 물러나는 적을 가만히 놔둘 베거스가 아니었다.
베거스는 거리를 유지한 채로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왜 그러지, 검성! 진짜 검술이 뭔지 내게 보여봐라!”
카앙! 깡! 카아앙!
베거스의 주먹이 내려꽂힐 때마다 공격을 막아내는 검성의 검이 비명을 질렀다.
검성은 어떻게든 베거스의 흐름에서 벗어나려 노력했지만, 오랜 싸움으로 정련된 베거스의 연격은 빈틈을 찾아내기가 힘들었다.
검성으로서는 방어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게 몇번이고 베거스의 공격을 방어하는 도중, 검성의 검에 금이가기 시작했다.
“검이……!”
쩌적. 쩌저적.
누적되는 피해를 버텨내지 못하고 검이 피로감을 토해낸 것이다.
어떤 명검이라고 하더라도 그 내구도는 무한하지 않다.
바위로 강하게 내려친다면 필연적으로 균열이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쩌적. 쩌저저저적.
갈라지기 시작한 검신은 수차례 더 베거스의 공격을 허용하더니, 이내 손잡이에 짧은 흔적만을 남긴 채로 완전히 부러져버렸다.
“검성! 검이 없어졌구나. 이제 어떻게 공격할건가!”
검이 부러지는 것을 본 검성의 눈동자가 커졌다.
베거스의 공격보다는 검의 상태에 집중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검성의 검이 사라진 틈을 노리고서, 크게 웃은 베거스가 그 사이로 주먹을 내질러왔다.
파앙!
공기를 터뜨리는 강한 소리.
강한 파공성을 동반하며 날아오는 베거스의 주먹에 검성이 이를 악물었다.
베거스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 * * * * *
13구역의 골목길.
머리가 함몰된 채 쓰러진 남자를 앞에 두고서, 나는 곧바로 상대에 대한 판단을 내렸다.
쓰러진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다.
베거스는 멀리 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아직 이 근처에 있을 것 같군.”
쓰러져있는 남자의 상태는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지만, 곧장 흔적을 찾아낸 것만은 만족스러운 수확이었다.
그것도 브라이언의 사무실을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다.
전부 브라이언이 준 정보 덕분이었다.
그가 현상범들을 추천하는 것에는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었던 것이다.
비교적 최근의 행방을 알고 있으며, 범죄의 다음 타겟이 어느정도 예측 가능한 수배범일것.
아무래도 그 조건에 부합하는게 베거스였던 모양이다.
“사장님.”
“그래. 듣고 있다.”
“그런데 추격자가 따로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옆에서 참상의 흔적을 지켜보던 시넬이 나에게 물었다.
그녀의 말대로다.
브라이언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검성이 베거스의 뒤를 쫓고있다고 이야기했다.
보통은 현상금 사냥꾼들간에 사냥감이 겹치는 경우, 서로 물리적인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가 잦은 편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검성이라면 그렇게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검성 말인가? 검성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검성. 그녀는 크로스 네트워크 소속의 용병 마법사다.
상상 이상의 자기애를 자랑하는 나르시스트이면서, 모든 행동원리가 검객이라는 역할에 매여있는 극한의 컨셉주의자이기도 했다.
검성이라는 이명 역시 단순히 그녀가 자칭한 것에 불과했다.
그런 그녀에게는 듣기만 하면 치를 떠는 마법의 단어가 하나 존재하고 있었다.
그 약점을 잘만 활용한다면 검성에게 사냥감을 빼앗길 일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검성이 유명한 사람인가요?”
“자칭 검성으로 유명하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자신을 검성이라 부른다고 이야기하고는 했다.”
“검성이면 검을 잘쓰는 사람이겠네요.”
“검술이라고는 하나도 모른다. 아, 그래도 잘하는게 있기는 했군. 검을 들고 방어하는 것 하나만은 잘한다.”
“아…….”
이야기를 듣고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는 시넬이었다.
그 무표정하던 시넬이 저런 얼굴도 할 수 있다니 의외의 일이었다.
시넬이 보기에는 단지 마법을 쓰고서 검을 휘두르는 시늉을 하는 이상한 사람일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정보를 잘 숨겼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실상을 보자면 비효율의 극치에 가까웠다.
그녀는 1서클 시절부터 무영창 마법을 터득한 불세출의 천재다.
일찍이 윈드커터를 전조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된 이후, 그것을 이용해 검객 행세를 하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텔레파시로 마법의 사용을 은폐하는 나와는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어쩌면 검이 없을 때가 가장 강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거 이외에는 대부분…….”
검성에 대해 설명하던 나는 이질적인 기척을 느끼고 말을 끊었다.
거칠어진 숨소리. 전력으로 달리는 발걸음.
멀리서부터 급하게 뛰어오는 사람의 기척이 미약하게나마 귓가에 전해져오고 있었다.
“사장님?”
“시넬.”
“네, 저도 확인했어요.”
시넬이 허벅지에 있던 단검을 뽑아들고 경계태세를 취했다.
우리를 향해 다가오던 발소리가 점점 커져오더니, 이내 골목 너머에서부터 누군가의 모습이 나타났다.
쾅, 쾅, 쾅, 콰앙.
온몸이 돌처럼 경화된 채로 부리나케 달려가는 상처투성이의 남자가 하나.
나는 이전에 보았던 사진의 모습을 떠올리고서, 곧바로 총을 꺼내들어 남자에게 겨누었다.
거석의 베거스. 스톤스킨을 사용하는 4서클의 마법사.
우리가 쫓던 1급 수배범이었다.
탕! 타앙!
다급하게 격발한 탄환이 녀석을 향해 날아갔다.
베거스를 노리고 쏘아낸 대부분의 탄환이 빗나갔지만, 그나마 명중한 탄환 하나마저도 경화된 피부에 부딪혀 튕겨나갔다.
확인목적으로 격발했던 탄환은 사전에 브라이언이 경고했던대로 조그마한 흠집밖에 내지 못했다.
나는 원거리에서 녀석을 제지할 수단이 없음을 깨닫고서, 재빨리 시넬에게 명령을 내렸다.
“시넬! 녀석을 쫓아가!”
“알았어요. [헤이스트].”
명령을 들은 시넬이 곧바로 헤이스트를 사용했다.
그 직후 가속한 시넬이 베거스를 쫓아가려는 찰나, 베거스가 나왔던 골목에서 소녀 하나가 뒤따라나왔다.
다급하게 걸음을 멈춘 소녀의 검은 머리카락이 허공에 휘날렸다.
눈을 돌려 베거스를 쫓던 소녀는 우리를 발견하고서는, 이내 허공을 향해 검을 한차례 휘둘렀다.
카각!
시넬이 내딛으려던 한걸음 앞에 커다란 경계선이 그어졌다.
“……물러서. 녀석은 내가 쫓던 사냥감이야.”
“검성?”
몸을 덮은 커다란 케이프. 허리춤에 매여있는 기계식의 검집.
마지막으로 어둠속에서도 선명하게 반짝이는 황금색의 눈동자.
이야기 속 검성의 모습이 눈앞에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손에는 부러진 검 한자루가 들려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