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용병 (4)
* * *
“검성?”
몸을 덮은 커다란 케이프. 허리춤에 매여있는 기계식의 검집.
마지막으로 어둠속에서도 선명하게 반짝이는 황금색의 눈동자.
이야기 속 검성의 모습이 눈앞에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손에는 부러진 검 한자루가 들려있었다.
“나를 알고 있는거야?”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에 검성이 나를 보며 물었다.
목숨을 건 사투에 친숙한 이들이라면 검성을 아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돌려주었다.
“검성정도라면 크로스 네트워크를 떼어놓아도 제법 유명한 편이겠지.”
“좋아. 나를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 선심 써줄게.”
“선심?”
세상 누구보다도 명예욕에 진심인 검성이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소문을 듣자마자 조금 기분이 풀린 것인지, 마치 자비를 베풀어준다는 모습을 보였다.
검성이 쓰는 선심이라.
벌써부터 어떤 제안인지 머리에 그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쫓고있던 수배범을 봤잖아?”
“베거스 말인가.”
“지금은 그 녀석을 잡는게 급하니까, 쫓는걸 도와준다면 반정도는 너희 둘에게 나누어줘도 괜찮아.”
베거스를 잡으면 현상금의 절반을 나누어주겠다.
그게 검성의 제안이었다.
대충 들어도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녀가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야 뻔했다.
“우리 둘이 5할을 나누어먹으라는 말인가?”
“맞아.”
“사람은 셋인데 왜 비율이 그렇게 되지?”
“불만이 있으면 직접 내 검술을 체험해봐도 좋아.”
서로간에 사냥감이 겹치면 벌어지는 일은 두가지 중 하나다.
하나가 양보하거나, 둘이 싸우거나.
요컨데 현상금 사냥꾼들간의 기싸움이었다.
나는 검성이 들고 있던 부러진 검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별 우스운 소리를 다 들어보겠군.”
“……뭐어?”
“윈드커터로 검술인 척 해봤자, 그걸 못알아보는 사람이…… 읍읍!”
타다다다닥.
순식간에 달려온 검성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내 입을 누른 검성의 가느다란 손가락 때문에, 입밖으로 무어라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입을 막은 검성은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고선 나에게 외쳤다.
“누, 누가 그런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거야?”
“읍……!”
“어디서 그런 헛소문을 들었어! 빨리 말해!”
“…….”
입을 틀어막고 있는데 어떻게 대답을 한다는 말인가.
나는 얌전히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입을 가로막고 있는 손바닥을 가리켰다.
검성은 입을 막은 손과 시넬을 조용히 번갈아보다가, 다시 손을 떼어놓고서 뒤로 물러섰다.
“이제 됐지? 대체 누구한테 들은거야……?”
후우. 입을 막던 손이 사라지자 숨이 트였다.
나름 과격한 움직임이기는 했지만, 그다지 심각한 상황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짧게 숨을 고른 나는 검성에게 간단한 자기소개를 들려주었다.
“나는 정보상인이다.”
“정보상인?”
“그래. 도시의 굵직한 정보들은 거의 알고있는 편이다.”
“그러면…….”
“너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독자적으로 수집한 정보다. 다른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해들은게 아니란 이야기지.”
“그, 그렇구나아.”
“궁금하던 이야기가 풀렸나?”
“……다시 말하지만 나는 진짜 검객이야. 계속해서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면 너를 죽이게 될지도 몰라.”
검성의 부러진 검이 나를 겨누었다.
검이 부러지고 쫓던 범죄자가 도망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일단은 컨셉이 들키지 않은게 다행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검성을 상대로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도시의 용병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자기 자신의 무력만을 믿고서 난폭하게 굴었던 여자다.
베거스의 현상금과 더불어 둘 사이의 관계에서도 우위에 서지 않으면 기분이 편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검성의 금빛 눈동자를 마주한 채로, 내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한가지 알려주었다.
“검성.”
“응.”
“나는 소문을 퍼뜨리는데 일가견이 있다.”
“……응?”
내 말을 들은 검성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사람들에게 소문을 퍼뜨리는데 일가견이 있다니.
그게 뭐 어쨌느냐 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너에 대한 진실을 퍼뜨리면 어떻게 될거라고 생각하지?”
“설마.”
“나는 일류의 정보상인이다. 내가 노력하기에 따라 너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검객이 될 수도, 단순히 검을 차고 다니는 정신나간 여자가 될 수도 있다.”
검성은 자신의 평판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이다.
내가 검성에 대한 이야기를 전파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이를 저지하려고 할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검성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지금 나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겠다는 말이야?”
“물론이다.”
“그러다가 네가 죽을 수도 있는데도?”
“그럼 검성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살인귀라는 소문도 같이 퍼져나가겠군.”
대화를 나눌수록 검성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는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그녀의 뒤에 있는 시넬의 표정도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의 대화에 쐐기를 박듯이, 눈앞의 소녀에게 잔인한 선택지를 내밀었다.
“계속해서 헛소리를 늘어놓는다면 크로스 네트워크 전체에 너에 대한 진실을 까발려주지.”
“그, 그건……!”
“하지만 얌전히 현상범을 잡는 것을 도와준다면, 이번건의 현상금을 가져가는 것만으로 봐주도록 하겠다.”
“아으…….”
“어떻게 할거냐, 검성.”
검성의 눈동자가 자신의 검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불세출의 검객이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무사히 지킬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눈앞의 돈을 노릴 것인가.
명예욕과 금전. 둘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선택지였다.
그리고 나는 검성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의 이미지를 선택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 예상이 무색하게도, 검성은 부러진 검을 내 눈앞에서 흔들며 달라붙었다.
“하지만… 내 검이 녀석에게 부러졌어!”
“…….”
“내 검은! 내 검의 원수는 어떻게 하라는거야!”
그 이야기를 듣자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춤에 있는 검집으로 시선이 갔다.
스펠홀더. 방출형의 마법을 가진 마법사가 출력을 제어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비의 일종이다.
검성이 차고다니는 검은 일종의 스펠홀더로서 기능하는 물건이었다.
마법의 본질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위력이나 정밀도 정도는 조정해줄 수 있는 물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 그러지? 스펠홀더라면 다른 걸로도…….”
“전대 검성이었던 할아버지가 나에게 물려준,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야.”
“…….”
“이게 없으면 이제 검성이 아니야…….”
의외로 숨겨진 사연이 있는 물건이었던 모양이다.
너는 원래 검성이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지만, 일단 그런 생각은 머릿속에만 놔두기로 했다.
필요로 하는 마법사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펠홀더는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비싼 물건이었다.
특이한 형태로 제작된 스펠홀더라면 수리 난이도가 더욱 까다로울 것이다.
적어도 크로스 네트워크에서 용병생활을 전전하는 검성이 쉽게 고칠 수 있는 수준의 물건은 아닐 확률이 높았다.
“검성. 한가지 물어보도록 하지.”
“뭐가 궁금한데.”
“그 검을 고치는 방법은 알고 있나?”
“아마 블랙마켓의 기술자들에게 가면…….”
“블랙마켓 녀석들을 믿을 수는 있고? 아니, 그 전에 고칠 돈은 있는지 궁금하군.”
“윽…….”
부러진 검. 막대한 수리비용. 뛰어난 기술자.
검성의 말을 듣고 있자니 베거스의 현상금 이상으로 이득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지금은 베거스의 현상금이 문제가 아니었다.
잘만 하면 눈앞의 용병을 싸게 부려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검성에게 주어진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계산하기 시작했다.
윌슨 엘데어.
그는 내가 이전에 구해주었던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연구원이다.
윌슨이라면 검성의 스펠홀더를 고치는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검성, 너에게 제안을 하나 하도록 하지.”
계산을 끝낸 나는 앞에 있던 검성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울분을 토하던 검성이 멍하니 내 손을 바라보았다.
“제안?”
“1년 단위의 용병계약이다.”
“갑자기 왜 용병계약 이야기가 나오는거야?”
“네가 가진 검의 수리를 전력으로 돕겠다. 현상금은 힘들지만 베거스를 마무리 짓는 것도 너에게 양보하겠다 약속하지.”
“검을 고치는걸 도와주는거야?”
검을 고쳐주겠다는 말에 검성의 눈빛이 변했다.
어디까지고 검에 진심인 그녀였다.
“레서트 인더스트리에 아는 사람이 하나 있다.”
“……레서트 인더스트리.”
“그 사람에게 부탁해 검의 수리를 돕겠다.”
“정말?”
“거기에 더해 계약기간동안 매달 소정의 월급을 지급하겠다. 계약을 받아들이겠나?”
레서트 인더스트리.
계약기간은 고작 1년이지만, 2년 정도는 데리고 있을 자신이 있었다.
그정도 기간이면 아마 대부분의 굵직한 사건은 지나가있을 것이다.
나는 망설이는 검성의 머리에 비장한 배경음악을 틀어주었다.
흠칫하던 검성은 이내 들려오는 음악에 순응하여 침을 삼키다가, 손을 뻗어 내 손을 마주잡았다.
“검을 고칠 수만 있다면… 1년정도야 상관없어.”
“좋아. 돌아가면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지.”
“……그럼 새로운 직장동료가 생긴건가요?”
우리 둘의 대화를 듣던 시넬이 고개를 내밀어왔다.
갑작스럽게 체결된 계약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시넬이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빠르게 해결해야 하는 일이 존재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넬에게 들고 있던 가방 하나를 던져주었다.
“시넬. 이제 슬슬 시간이 없다.”
“이건 뭔가요?”
“베거스를 잡기 위해 준비해온 물건이다. 그걸로 녀석의 발을 묶어놓도록.”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