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용병 (5)
* * *
스톤스킨.
피부를 경화시키는 이 마법은 사용자에게 바위와도 같은 단단함을 가지게 해준다.
사용자의 수준에 따라 그 강도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일단은 능력을 사용한 공격보다는 방어쪽에 적합한 능력이었다.
따라서 공격은 오로지 마법사 자신의 무술이나 무기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거석이라 불리는 베거스가 전투에서 주로 사용하는 수단은 그가 익힌 격투술이다.
적에게 가까이 접근해 바위같은 주먹을 빠르고 강하게 내지른다.
그것이 베거스가 가지고 있는 강점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굳이 방어를 뚫을 필요는 없지.”
확실히 방어력 자체는 총알이 박히지 않을 정도로 높다.
단단해진 몸 역시 베거스가 익힌 체술과 만나 상당한 위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강해진 주먹이 타격에 좋을지는 몰라도, 질긴 물건을 잘라낼만한 절삭력은 부족할 것이다.
베거스의 방어를 뚫고 유효한 데미지를 입힐 수 없다면, 그를 제압해 위협적이지 않은 상태로 만들면 그만이었다.
나는 그것을 위해 질긴 그물을 준비했다.
헤이스트 마법을 가지고 있는 시넬의 속도는 베거스보다 빠르다.
단검으로 유효한 피해를 입힐 수는 없을지라도, 시넬이 베거스를 상대로 공격을 허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가 가진 속도를 이용한다면 그물을 던져 베거스를 묶어내는 일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었다.
“……더럽고 치졸한 방법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지금 눈앞의 베거스였다.
단단하게 경화된 몸을 그물들이 뒤덮고 있는 채로, 그 속에서 베거스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베거스는 자신의 단단한 주먹으로 어떻게든 그물을 찢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화력이 부족한 베거스가 겨우 주먹질로 저 그물을 찢어낼 수 있을리가 없었다.
내 뒤에 서있는 검성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정말로 잡아놨구나…….”
“왜. 불신하고 있었나?”
“오늘 처음 본 사람이니까. 기껏해야 몰아넣는데 도움을 주는게 한계일거라 생각했어.”
얼떨결에 계약을 받아들인 검성이지만, 나를 아직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와의 계약은 어느정도 협박조로 이루어진 것이었으니까.
눈앞의 광경은 계약을 이행하기 위한 첫번째 단추였다.
나는 그물속에 갇혀있는 베거스를 바라보면서 검성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거지?”
“어떻게 하다니?”
“직접 자신의 손으로 끝내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정말… 그래도 되는거야?”
“물론이다. 신입의 실력을 확인해보고 싶은 것도 있으니, 기왕이면 화려하게 저질러줬으면 한다.”
“알았어.”
철컥.
부러진 검이 기계식 검집에서 뽑혀나왔다.
짧은 검을 치켜든 검성은 그것을 들고 베거스를 향해 걸어나갔다.
화력에 특화되어있는 능력이니만큼,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가는 시넬이 위험해질 것이다.
“시넬. 휘말릴 위험이 있다. 뒤로 물러나라.”
“네. 알겠어요.”
내 지시를 들은 시넬은 그물망을 놓은 채로 뒤를 향해 물러섰다.
이제 자리에 남은 것은 그물에 잡힌 베거스와, 그를 마주하고 있는 검성 뿐이었다.
검성을 마주한 베거스는 불쾌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붙잡고 있던 그물망을 끊어내려는 듯이, 경화된 손가락으로 거칠게 줄을 비볐다.
“검객을 자칭하는 사기꾼이 다시 왔구나.”
“누가 사기꾼이라는 거야.”
“자신의 기술을 믿지도 않고, 무에도 뜻이 없는 무인을 사기꾼이 아니면 뭐라 부르겠나.”
“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중요한 것은 휘두르는 형태가 아니야. 거기에 담겨있는 의미 그 자체가 중요한거야.”
자세를 잡은 검성의 검에 바람이 휘몰아쳤다.
주변의 공기가 조금씩 떨려나가며, 베거스를 마주한 검성의 눈이 결의와 같은 것으로 물들었다.
터벅. 휘몰아치는 바람을 견뎌내기 위해 검성이 한걸음 내딛었다.
한계까지 쥐어짜낸 것처럼 보이는 출력이 부러진 검을 뒤흔들었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정신을 차리는 편이 좋다. 네 검은 이미 나에게 부러지지 않았나.”
“진정한 검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거야.”
“진정한 검이라고?”
“마음속에 있는 그 검에 대고서, 나는 선대 검성의 이름을 지켜내겠다고 맹세했어.”
“선대 검성……?”
“비록 형태가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그 뜻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상… 나는 계속 검성이야.”
흔들리던 검 끝이 일순간 고요해졌다.
그리고 그 직후, 검성의 목소리가 나지막히 울려퍼졌다.
“검성류 폭룡승천.”
콰과과과과!
부러진 검으로부터 폭풍이 뻗어나가며 주변을 휩쓸었다.
검성은 아래에서부터 그것을 휘두르면서 베거스를 허공으로 띄워올렸다.
폭풍의 궤적에 휘말린 베거스의 몸이 그물망과 함께 점차 부유하기 시작했다.
“크으으윽, 설마……!”
“낙하시키는게 목적이군.”
강대한 폭풍속에서 베거스가 이를 악물었다.
베거스를 하늘로 띄워올리는 검성의 의도를 이해한 것이다.
더 이상 그 자신의 방어력에만 의존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대화를 나누는 도중부터 한계까지 경화를 거듭한 것인지, 베거스의 피부가 이질적인 형상으로 변해있었다.
“검성류. 비기.”
거듭된 폭풍의 영향으로 제법 높이 떠오른 베거스.
그를 지켜보던 검성이 들고 있던 검을 검집에 밀어넣었다.
철컥.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모습을 감춘다.
밑에서 불어오던 폭풍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베거스의 몸이 지상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베거스의 모습을 바라보며 검성이 다시 검을 붙잡았다.
“절계(?).”
카각. 카각. 카각. 카가가각.
낙하하는 베거스의 두터운 피부를 날카로운 바람들이 순차적으로 갉아내었다.
세상을 베어낸다는 이름에 걸맞게, 검성의 공격은 주변의 빛을 일그러뜨리며 화려하게 내려꽂혔다.
일섬. 그리고 다시 일섬.
치명적인 부분을 막아내려는 베거스의 방어를 무시하고서, 한차례 베어낸 자리를 다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은 부분은 심각하게 패여나가 내구성이 의심스러운 상태에 이르렀다.
“검성, 부끄럽지도 않느냐!”
“이제 죽어.”
지상을 바라보며 포효하는 베거스를 내버려 둔 채로, 검성은 몸을 돌려 나를 향해 걸어돌아왔다.
지면을 향해 가까워질수록 베거스의 낙하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발악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시간이었다.
추락하기 직전에 마지막을 직감한 베거스는 눈을 감았고,
콰아앙!
이내 지면과 충돌하는 것으로 산산히 조각나 부서졌다.
“…….”
한순간의 충돌. 그리고 그 여파로 만들어진 수많은 바위조각들.
이제 거석이라 불리던 베거스의 흔적이라고는 파편이 되어버린 바위조각밖에 없다.
거대한 바위는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단단함을 장기로 삼던 마법사로서는 너무나 허무한 최후였다.
“부서졌어요.”
“그렇군.”
“단순히 이상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었네요.”
“크로스 네트워크에서도 인정받던 용병이니까.”
검객의 틀을 유지한 채로 크로스 네트워크에서 활약하던 검성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실력 하나만은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시넬의 말에 얌전히 수긍하고 있으면, 어느새 전투를 마친 검성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터벅. 터벅.
살짝 뽑아냈던 검을 검집에 수납한 검성은 내 앞에서 멈춰섰다.
머리카락 너머로 찬란하게 빛나는 금색의 눈동자가 나를 마주했다.
“……어땠어.”
“훌륭했다.”
“그렇구나.”
신입으로서의 평가를 말해달라고 하는줄 알았는데, 아직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검성이었다.
이런 칭찬으로는 검성을 만족시키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렇다면 어떤 말을 꺼내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던 나는 그녀가 전투중에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말했다.
“훌륭했다. 진짜 검성이 떠오를 정도로 말이다.”
“진짜 검성…….”
“물론, 아직은 조금 멀었겠지만.”
“그, 그래. 아직 멀었을거야.”
“그래도 정진하면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
검성은 이제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어보였다.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동료가 생겼다.
그녀의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되고 싶은 자신으로 있기 위해서, 언제나 연기를 하고 있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테니까.
다만 내 옆에 자리한 시넬만은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시넬의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사장님?”
“수고했다, 시넬.”
“저는 그물만 던졌어요.”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저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나요.”
“그래. 나를 지키는 것도, 움직이는 상대에게 그물을 던지는 것도. 전부 너에게 적합한 일이었다.”
뻗은 손으로 시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복합적인 기동성이라면 몰라도, 단순한 속도면에서 시넬보다 빠른 이는 이 도시에 거의 없었다.
이번 계획도 처음부터 시넬의 움직임을 상정해두고 만들었다.
완전히 빈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비밀이 있었네요.”
“그런 비밀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폭신한 머리카락의 감촉이 손끝에서 전해져왔다.
이제야 겨우 나와 함께 격류를 헤쳐나갈 두명의 동료를 모았다.
계획하고 있던 세력까지는 아직 걸어갈 길이 멀었다.
그럼에도 벌써부터 든든한 기분이었다.
누구나 아는 특출난 이는 없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동료들이었다.
완벽한 사람만이 완벽한 결말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흩날리는 머리를 헤집는 손길속에서,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본 시넬이 입을 열었다.
“……저는 돈 많이 받아야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