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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39화 (39/156)

〈 39화 〉 레서트 인더스트리 (2)

* * *

몸을 지지하는 지팡이를 땅에 짚고서, 가만히 선 채 주변의 모든 것을 양단하던 괴물.

그에 대한 원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산더미처럼 있을 것이다.

“일단 이 글귀는 지워내도록 하죠.”

“어떻게 지울 생각이지?”

“어차피 금속부분은 다시 사용하기 어려우니, 레이저로 글자부분을 뭉개서 폐기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지.”

모르는게 약이라고 하던가.

때로는 퍼져나가지 않는 편이 좋은 정보들도 있다.

내가 어셔 헤이즈에게 사건의 전말을 알리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을 경우야말로 내가 움직일 차례였다.

“여러모로 신세를 지고 있군.”

“아닙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도시에는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법이죠.”

“일이 해결되면 한턱 쏘도록 하지.”

“글자는 지웠습니다. 이제 내부를 봐야겠군요.”

윌슨은 글자가 음각되어있던 부분들에 새로운 모양을 덧새겼다.

무엇인가 음각되었다는 사실은 이전과 비슷하지만, 글자의 생김새만은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후에는 그것을 모아 한군데에 정리하고선, 나머지 부품들을 어떤 장치에 집어넣었다.

지이잉.

거친 기계음과 함께 붉은 광선이 분해된 손잡이를 훑고 지나갔다.

광선이 지나간 부분의 투영도가 장치에 출력되면서, 여러가지 글자들이 화면에 덧붙여졌다.

지잉. 지이잉.

화면을 살펴본 윌슨이 장치를 몇차례 더 조작하더니, 이내 안에서 손잡이를 다시 빼내었다.

“부품들은 대부분 살아있습니다. 고치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것 같네요.”

“다행이군.”

“문제는 이 검신인데, 금속을 가공해 검을 만드는 일은 제가 직접하기 힘들어서요.”

“그러면…….”

“제가 아는 사람이 있으니, 그쪽에 부탁하죠.”

윌슨의 말에 나는 수긍했다.

주변에 놓인 설비를 둘러보더라도, 금속성형이 가능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말대로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나을 것이다.

윌슨은 근처에 있던 공구들을 꺼내 남아있던 부품들을 조금 더 손보았다.

“근처에 있는 다른 시설로 향할겁니다. 도시에는 아직 냉병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이 검의 주인처럼 말이지.”

“하하, 그렇네요.”

“갑자기 찾아가도 문제는 없나?”

“별 문제 없을겁니다. 제 부탁은 제법 잘 들어주는 친구라서요.”

어느정도 마무리 작업이 끝난 것인지, 윌슨이 가방 하나를 열어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안에 집어넣었다.

철컥.

가방의 잠금장치가 잠기며 푸른 불이 들어왔다.

이제는 망가졌던 검신을 새로 만들어내기 위해 이동할 차례였다.

* * * * * *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부지. 그 어딘가에 위치한 금속공방.

들어오기만 해도 열기가 느껴지는 이곳은, 공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규모 생산보다는 주문제작에 특화되어 있는 곳이었다.

스피넬이 가지고 있던 단검들 역시 이곳에서 생산된 물건이다.

그런 공방 한구석에 위치한 테이블에서, 윌슨은 케리라는 이름의 기술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런 규격의 검을 만들어달라고?”

윌슨이 종이에 적은 그림과 숫자들을 바라본 케리가 손가락으로 종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케리는 연구복을 입은 윌슨과는 대비되도록, 두터운 장갑을 낀 채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케리의 말에 윌슨은 옆에 있던 종이를 하나 더 꺼내놓았다.

“내부에는 다음과 같은 마력회로를 새겨줬으면 합니다. 검이 다 만들어지면 마력회로에 코팅액을 부을 생각입니다.”

“뭐, 어렵지는 않아. 근데 이걸 어디에 쓰려고?”

“신제품 연구중이라서요.”

“이걸 신제품으로 내놓는다고 해서… 팔릴지는 잘 모르겠다. 선물용이면 차라리 모르겠네.”

케리도 어느정도 눈치를 채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는 모양새였다.

자신과 친하다던 윌슨의 말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케리는 책상 위에 놓여있던 종이들을 접어 자신의 품속에 집어넣었다.

어쩌면 검성에게 말해두었던 것보다 훨씬 더 괜찮은 물건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오래 걸릴 것 같나요?”

“별로 오래는 안걸리겠지. 내일쯤에 찾으러 오면 될거야.”

“생각보다 빨리 나오는 모양이군요.”

“옛날이었으면 한세월 걸렸겠지. 그것도 지금이니까 가능한거야.”

설계도를 정리한 케리는 밀린 일을 처리하기 위해 발을 움직였다.

수리를 위한 준비는 대부분 다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늦어봐야 이번주 안으로 검이 나올테니, 이제는 완성만 기다리면 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짐을 정리하려는 도중, 뒤에서 공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있다더니 사실이었군.”

터벅, 터벅.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건장한 체격의 남자 하나가 공방 안으로 들어왔다.

금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의 오른쪽 어깨에는 날개를 꿰뚫은 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나이트테일 기사단. 그 구성원을 상징하는 증표였다.

윌슨은 그를 알고 있던 것인지, 반갑게 남자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요, 헤리오.”

“윌슨. 네 연구실에 찾아갔더니 이곳에 있다고 하더군. 갑옷의 수리를 맡기러 왔다. 그쪽은 선객인가?”

“이전에 샘플회수때 한차례 도움을 받았거든요. 견학도 겸해서 여기에 모셔왔죠.”

“생판 모르는 타인을 구해주는게 쉬운 일은 아닐텐데, 보기 드문 훌륭한 사람이군.”

헤리오라고 불린 남자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헤리오. 익숙한 이름이다.

나이트테일 기사단에 소속되어있는 헤리오라면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이쪽으로 다가온 헤리오는 앞에 있던 의자를 빼서는, 윌슨의 옆자리에 바로 자리를 잡았다.

셋밖에 없는 원형 테이블인만큼 내 바로 옆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런데 갑옷이 없으면 아가씨의 경호는 잠시 쉬는건가요?”

“토벌이 아니라면 저번에 만든 임시용으로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아가씨가 가만히 내버려두실 분이 아니지.”

섬광기사, 헤리오 나이트라인.

전쟁도시 내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는 5서클의 체인 라이트닝 유저면서, 나이트테일 기사단의 간부이기도 했다.

그가 가진 체인 라이트닝은 막대한 양의 전류를 범위 내에서 순환시킨다.

헤리오는 그것을 이용해 거대한 전력을 필요로하는 기계갑옷을 운용하고 있었다.

큼지막한 배터리를 추가로 들고 다닐 생각이 아니라면, 도시 안에서 오직 헤리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장비였다.

“이쪽은 헤리오 씨. 나이트테일 기사단의 일원이면서, 벨 아가씨의 경호를 맡고 있는 분입니다.”

헤리오의 말이 끝나자 윌슨이 나에게 그를 소개시켜주었다.

정보를 팔아먹는 정보상인과 자칭 기사라.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닌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눈앞의 헤리오라는 남자가 진정으로 기사라는 명칭에 어울린다는 점이었다.

그를 제외한 나이트테일 기사단의 멤버를 평가해보자면, 글쎄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나이트테일의 섬광기사군. 익히 들어봤다.”

“나이트테일 안에서도 진정한 기사라고 부르기에 걸맞으신 분이죠. 정말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윌슨, 과찬이다. 당신은 이름이 뭐지?”

“정보상인, 퍼시발 스미스.”

정보상인이라는 말에 헤리오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런 반응이 나올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어차피 정체를 꺼낼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상대는 레서트의 중역을 호위하는 인물이다.

도시에 넘쳐나는 정보책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거짓말을 해봤자 결국에는 들통나기 마련이었다.

“정보상인이라. 내부에 들어오는게 보기 좋은 직업은 아니군.”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내가 처리하는 정보는 죄다 마법사나 수배범에 대한 것들이라서 말이지.”

“윌슨을 구해준 사람이라면 믿어보도록 하지. 어차피 통제구역은 접근하지 못할테니까.”

헤리오는 그렇게 말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역시 공방에 오래 있을 이유는 없었기에, 헤리오를 따라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의 태도에 옆에 있던 윌슨만이 난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 아무런 악의는 없을테지만, 이 정보상인이라고 부르는 족속들은 태생부터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가지고 있는게 미래에 대한 정보밖에 없는데 말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헤리오는 열쇠를 하나 꺼내 윌슨에게 건넸다.

“윌슨. 잠금장치를 푸는데 필요한 열쇠다.”

“아… 알겠습니다. 어떤 기능에 문제가 생긴거죠?”

“내장 디스플레이가 가끔씩 버벅거리더군.”

“일단 상태를 살펴보고 연락을 드려야겠네요.”

“연락을 기다리도록 하지.”

공방의 문이 열리며 헤리오가 밖으로 빠져나갔다.

윌슨 역시 헤리오가 건넨 열쇠를 챙기고는, 공방을 빠져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윌슨을 뒤따라 공방 밖으로 걸어나가면서, 앞에서 걷고 있는 윌슨에게 물었다.

“윌슨. 하나 궁금한게 생겼군.”

“어떤게 궁금하신가요?”

“섬광기사가 자네에게 수리를 맡기던데. 뛰어난 공학자라면 레서트에 얼마든지 있지 않나?”

“아. 대단한 이유는 아니고, 헤리오의 갑옷을 제가 설계했거든요.”

나이트테일 기사단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헤리오다.

그런 헤리오의 갑옷을 설계한게 바로 윌슨이었다니.

모르고 있었지만 윌슨이 새삼 대단하게 보였다.

그제서야 나는 자신이 어떤 사람과 인연을 맺은 것인지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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