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어둠속의 길잡이 (2)
* * *
“단순히 그쪽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야. 애초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이상 간과할 수 없기도 하고.”
“그래서?”
“알고 있는 정보가 있으면 공유해줬으면 좋겠어.”
네이가 쫓고 있는 범인이 누구인가.
거기에 대해서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길잡이 유글러스.
‘패스 월’을 사용하는 5서클의 마법사다.
그는 특급 수배범인 ‘유령군단’의 직속부하이면서, 결사에 몸을 담고 있는 자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대답을 들려주기 전에, 뭐 하나 물어봐도 되나?”
“뭐가 궁금한데?”
“치안대에서도 수사에 나서는 인력이 있을텐데. 왜 굳이 나를 찾아온거지?”
정보를 알려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아무 정보나 넘겨주는 것도 어리석은 행위였다.
결국 이야기의 대부분을 이끌어나가는 사람은 주인공이다.
그 누구도 어셔 헤이즈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게 비록 앞으로 벌어질 이야기들의 대부분을 알고 있는 나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하물며 지금의 나는 결사의 간부 중 하나, 스피넬 클로버블룸에게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유를 모른 채 사건속으로 말려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건…….”
“대답하기 어려운 이야기인가?”
톡. 톡. 톡.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고민하던 네이의 시선이 갈곳을 잃은 채 잠시동안 방황했다.
그녀는 자신의 옆에 선 어셔를 잠깐동안 바라보다가, 이내 그를 흘겨보며 팔로 어셔의 코트를 두드렸다.
“아, 정말 어쩔 수가 없네. 어셔, 전부 네 탓이야.”
“네이. 어차피 외부에 조력자 하나정도는 필요한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치안대가 내부의 일을 밖에 말해서 어쩌자는거야.”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네 생각만큼 길지 않다. 흔적을 찾아냈을 때 조금이라도 밝혀내는게 상책일거다.”
한숨소리와 함께 네이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태도를 보건데 쉽사리 외부에 꺼낼 수 있던 이야기는 아닌 모양이었다.
네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한 모습을 보인 채로, 치안대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치안대의 정보를 넘겨주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만, 협조를 구하려는건 우리쪽이니까 어쩔 수 없네.”
“나를 휘말리게 할 심산이군.”
“맞는 말이야. 우스운 이야기겠지만, 치안대 내부에서 마찰이 좀 생겼거든.”
“치안대 내부에 문제가 있다고?”
치안대의 수장은 네이의 오빠이자 도시의 상임위원인 아벨 테르도스가 차지하고 있다.
테르도스의 위광을 떼어놓고 보아도, 네이는 치안대 안에서 충분히 위협적인 낙하산이다.
어지간한 일로는 치안대가 네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치안대쪽에서 마찰이 생겼다는 네이의 이야기는 쉽게 받아들일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이상할 정도로 상부에서 사건에 의욕이 없어.”
“하루에 치안대에 들어가는 사건의 숫자를 감안하면, 이번 사건에 관심이 없는게 이상한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정도에서 그치면 이런 말도 안할거야. 감식결과는 늦게 나오지, 지원 요청은 듣지도 않지. 작정하고 이번 일을 무시하고 있잖아.”
“생각보다 수상한 냄새가 많이 나는군.”
“이러다가는 사건이 묻혀버려도 이상할게 없단 말이야.”
“테르도스 가문의 아가씨가 움직여도 그렇단 말이지?”
내가 읽었던 전쟁도시의 내용 속에서, 치안대 내부의 사정은 자세하게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지금 그녀의 수사가 방해받고 있는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벨 테르도스의 정체. 그리고 아벨과 네이의 관계.
이 두가지를 생각해보면 그리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은 아니었다.
줄곧 네이의 옆에 서있던 어셔가 대화의 전면으로 나서며, 그녀의 이야기를 거들어왔다.
“그래. 네이가 움직여도 반응하지 않더군.”
“어디서 움직인건지 짐작하고 있는 모양인데.”
“아마도 네이의 가족, 아벨 쪽과 연관이 있을거다.”
“그래서 나에게 왔다? 어차피 치안대 안에서는 도움을 받는데에 한계가 있으니까?”
“그런 의미다.”
작품속에서는 나오지 않던 내용을 어셔의 입으로부터 직접 듣게되었다.
결사와 관련된 수사를 치안대의 상부가 방해하고 있다.
그것이 지금까지 어셔와 네이, 단 둘이서만 길잡이 유글러스를 쫓아야 했던 이유였다.
지금의 치안대는 온전히 믿을 수 없다.
그렇기에 이들은 큰 결심을 하고서 나에게 찾아왔다.
단순히 유글러스에 대한 정보만을 얻기 위해서 나를 찾아온 것은 아닐 것이다.
필요로 하는 건 아마도 그 이상의 것이었다.
“범인에 대한 정보만을 원하는게 아니라, 용의자를 잡는데에도 어느정도의 협력을 원하는 모양이군.”
유글러스를 체포하는데 도움을 줄 것.
그것이 어셔 헤이즈가 우리에게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현상금 사냥꾼도 겸하고 있지 않나.”
“실력에 있어서 신뢰할 수는 있고?”
“녀석은 도주에 특화된 마법을 가지고 있다. 어설프게 숫자를 늘려서 들킬 바에야, 적당히 포위할 수 있는 수준이 나을거다.”
패스 월 마법.
이 마법을 사용한 마법사는 벽과 지형지물을 무시한 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어찌 보면 별 위험할 것 없는 마법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좁아터진 도시는 사방이 벽과 장애물로 가득차있다.
길잡이라 불리는 유글러스는 시가전에 한해서 그 누구보다 뛰어난 기동성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였다.
아무리 블링크를 사용하는 어셔라고 하더라도, 건물 안에서 그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나치게 사람이 많아봐야 유글러스가 먼저 눈치채고 도망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거기에 대해선 동의하는 바지만 말이야.”
“다행이군.”
나는 잔을 들어 자신의 앞에 있던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이번 사건은 결사의 흔적이 어셔에게 드러나게 되는 계기다.
그렇기에 가급적이면 끼어들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네이 측에서 이런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면, 내가 나서지 않는 편이 나에 대한 의심을 부추길 것이다.
의뢰비용만 적절하다면 얌전히 받아들이는 편이 나았다.
“그렇다면 비용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우리쪽에서도 사람을 움직이는 일이라면…….”
“비용을 따로 지불할 생각은 없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예상치 못한 어셔의 대답에 나는 흥미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협력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말로 나를 움직일 생각인 것인가.
그에 대한 해답은 금세 되돌아왔다.
“대신 이번 사건은 네가 수배범을 잡았다는 이야기로 마무리짓도록 하지.”
“현상금을 넘기겠다는 건가.”
“그게 치안대와 네이에게 있어서, 그리고 너희에게 있어서도 가장 깔끔한 방법이다.”
앞선 사건들에 대해 치안대는 수사를 확대하는 대신, 유글러스에게 추가로 현상금을 걸어놓았다.
어느덧 그에게 걸린 현상금의 액수는 1급 수배범의 평균과 견줄만한 수준이었다.
의뢰 비용 대신에 유글러스의 현상금을 전부 우리에게 건네주겠다.
어셔 자신이 유글러스의 체포에 함께 하면서도, 그에 대한 지분을 포기하겠다는 이야기였다.
“확실히, 수배범을 잡아온 일로 치안대 내부에서 문제삼을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
“어느쪽이던지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거다.”
우리는 유글러스에 대한 현상금을 받을 수 있고, 어셔와 네이는 치안대에 들키지 않고 수사를 할 수 있다.
어느쪽도 이득이 되는 윈윈 전략이다.
제안만 놓고보면 그리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충분히 받아들일만한 가치가 있었다.
“간단한 정보부터 이야기하지. 녀석의 이름은 길잡이 유글러스. ‘패스 월’ 마법을 쓰는 5서클의 마법사다.”
“암흑상인. 우리와의 거래를 받아들이는 건가?”
“단, 녀석을 잡기 전에 먼저 처리할 절차가 있다.”
내가 아는 것은 단순히 녀석의 마법이나 이름뿐만이 아니다.
나는 녀석의 다음 행선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니 유글러스를 온전히 잡아들이기 위해서는, 작전에 앞서 누군가와 연락을 취해둘 필요가 있었다.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네이가 나에게 물었다.
“절차라니, 뭐야?”
“지금까지의 습격은 전부 레서트 인더스트리를 공략하기 위한 예행연습에 불과하지.”
“그럼, 설마…….”
“레서트의 미스릴 처리 기술. 그게 녀석들이 원하는 목표다. 그러니 레서트에 미리 연락을 취해놓는게 좋을거다.”
유글러스를 잡는 것은 레서트의 부지 안에서의 일이 될 것이다.
당연히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레서트와의 사전협의가 필요하다.
유글러스의 목적에 대한 정보에 네이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대놓고 움직이면… 범인에게 들켜버릴거야.”
“그러니 개인적인 인맥으로 조용히 밀어넣으란거지.”
“내가? 나는 치안대인데?”
“너 말고 누가 있지?”
“…….”
네이의 눈동자가 어셔를 향해 움직였다.
“잡기 싫나?”
“……알았어, 해볼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