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43화 (43/156)

〈 43화 〉 어둠속의 길잡이 (3)

* * *

사무실을 찾아왔던 어셔와 네이가 사라진 직후.

벽에 기대어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검성은 비어버린 반대편 의자에 마주앉았다.

의자에 앉은 검성의 검이 바닥에 걸려, 비스듬한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검성은 묶여있던 검을 풀어 무릎에 올려놓고선, 반짝이는 금빛 눈동자를 나에게 향했다.

“퍼시발. 치안대에도 인맥이 있던거야?”

오늘 마주한 네이 일행을 보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 악명높은 치안대원들이 직접 정보상인을 찾아와 수사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다.

얼핏 봐서는 쉽게 납득할만한 광경은 아니었다.

“인맥이라……. 손님이라고 보는게 맞을거다.”

“그래도, 여차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인맥으로 삼아두면 나쁘지 않은 이들이기는 하지.”

하기야, 돌이켜보면 이곳에 온 이후 제법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도시의 어둠에 숨어있는 결사의 간부.

유력가문 소속의 치안대원 아가씨.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유능한 연구원.

많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는 범죄조직의 보스.

직접 뒷세계의 정보를 수집해오는 정보상인까지.

어느새인가 처음과는 다르게 건실한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퍼시발은 대단하구나.”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보란 꽤 괜찮은 호신수단이지.”

“괜히 암흑상인이라 불리는게 아닌 것 같아.”

“…….”

“나도 진정한 검성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겠네.”

검성의 손이 무릎에 놓인 기계식의 검집을 어루만졌다.

진정한 검성이 되기 위해서라.

사실은 그런 그녀를 위해 준비한 일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망가진 검의 수리를 명목으로 너무 오랫동안 일을 쉬고 있었다.

나는 근처에 놓여있던 서류봉투 하나를 챙겨, 그것을 검성에게 내밀었다.

“받아둬라.”

“이건 뭐야?”

서류봉투를 받은 검성이 안에 들어있던 서류를 꺼냈다.

그녀가 받은 것은 내가 브라이언에게 부탁해 받아놓은 2급 수배범들의 자료였다.

검성의 전투 스타일과 상성이 맞지 않는 적은 최대한 배제하고, 전투에 있어 크게 변수가 없을만한 적들을 추려놓은 것이었다.

“네가 잡아와야 할 수배범들에 대한 자료.”

“……수배범?”

“2급 수배범으로 추려놨다. 너 혼자 잡는데에는 문제가 없을거다.”

나와 검성사이에 맺은 계약에는 기간제한이 있다.

쓸모있는 전력인 검성을 하루종일 놀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쉬는 시간에 나가서 자잘한 현상금이라도 벌어오는게 이득이었다.

수배범들의 신상명세를 받은 검성은 잠시동안 그것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보고 나가서 수배범을 잡아오라는 거야?”

“처음 맡아보는 일은 아닐텐데. 뭔가 문제라도 있나?”

“아까는 분명히 유글러스라는 이름의 수배범을 잡으러간다고 하지 않았어?”

“작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레서트와 협의도 되지 않은 일을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지.”

작전은 레서트 인더스트리 내부에서 결행해야만 한다.

유글러스가 출현할 장소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었다.

검성은 무엇인가 실망스러운 모양인지, 한숨을 내쉬며 검집을 바닥에 세웠다.

“그렇구나. 상상했던거랑 조금 다르네.”

“무슨 일을 할거라고 생각했지?”

“악명 높은 범죄자를 검성과 그 동료들이 물리치는거?”

“너는 혼자서도 충분히 싸울 수 있는 전력이다. 1급 이상의 수배범을 잡는게 아니라면야, 굳이 묶여서 움직일 이유는 없다.”

끄덕.

내 말에 수긍한 검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시로 떼어놓았던 검 역시 다시 등에 매어두었다.

“알았어. 일하면 되는거잖아.”

“열심히 하도록. 그동안 나도 검성의 평판을 올릴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도록 하지.”

“정말이지?”

평판이라는 말을 듣기 무섭게 검성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정말인지 이해하기 쉬운 사람이었다.

검과 명예. 이 두 단어만이 검성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시무룩해진 그녀를 달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 암흑상인의 명예에 걸고 약속하지.”

“알았어. 나도 열심히… 윽, 눈부셔…….”

검성은 대답하던 도중 팔을 들어 자신의 눈을 가렸다.

그녀의 왼쪽에서 갑작스럽게 강렬한 광채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려 빛이 나타난 방향을 바라보면, 녹색 고글을 쓰고 있는 까망이의 모습이 보였다.

번쩍. 번쩍.

머리 위에서 발광하는 고글은 누가 보아도 시넬의 것이었다.

“으음…….”

시넬은 고글을 씌운 까망이를 끌어안은 채로 구석에서 과자를 집어먹고 있었다.

고글에서 빛이 나온다는 말은 익히 들었다만, 그걸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고글을 쓰고 있는 까망이를 가리키며 시넬에게 물었다.

“……시넬, 그건 뭐지?”

“변신 까망이에요.”

“냐아.”

“대단하군…….”

까망이는 눈가를 덮은 고글에서 빛을 내뿜으며 허공에 팔을 휘젓고 있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 가슴속에서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몇번을 생각해도 그녀는 정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 * * * * *

리버 스칼렛.

그는 8구역에 ‘스칼렛 앤 볼즈’라는 이름의 무기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기술자다.

리버는 과거 레서트 인더스트리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던 경험이 있는 뒷골목의 베테랑이었다.

현재는 외부로 유통되는 조잡한 부품들을 가공하고, 직접 그럴싸한 형태의 무기들로 완성해 판매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가격에 비해 준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던 탓에, 스칼렛 앤 볼즈는 8구역 안에서도 항상 잘나가는 가게 중 하나였다.

“쯧. 야밤에 다시 오기는 싫었는데.”

8구역은 외곽지구에서도 치안이 심각한 곳들 중 하나였다.

그 망가진 치안이 스칼렛 앤 볼즈의 매상을 담당해주는 가장 든든한 아군이지만, 밤의 길거리는 결코 피아를 가리는 법이 없었다.

그의 뒤에서 총을 들고 서있는 듬직한 경호원이 없었더라면, 리버가 어두컴컴한 시각에 밖으로 나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달칵, 달칵.

뻑뻑한 철문에 열쇠를 밀어넣은 리버가 힘차게 열쇠를 돌렸다.

금속의 마찰음이 울려퍼지며 문의 잠금장치가 해제되었다.

“더럽게 시끄럽군.”

그가 이전에 일하던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경우, 대부분의 시설에 전자식 잠금장치를 채택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던 당시와 비교하면 상당히 구시대적인 방법이었다.

물론 돈이야 회사에서 일하던 때보다도 훨씬 많이 벌고 있지만 말이다.

사실 레서트 인더스트리까지 갈 필요도 없이, 중심지구의 가게들만 보아도 전자식 잠금장치를 사용하는 곳이 더 많았다.

리버 역시 ‘스칼렛 앤 볼즈’가 8구역에 위치하지만 않았더라면 진작에 최신의 것으로 바꿔달았을 것이다.

“들어오고나서 문 잠궈라. 좀도둑들이 기어들어올지도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터벅, 터벅.

리버의 발걸음 소리가 적막한 복도에 울려퍼졌다.

천장에서 깜빡이는 조명이 복도를 지나가는 리버의 앞길을 밝혀주었다.

몇개인가의 방을 지나쳐 건물 깊숙히 들어간 리버는, 연구실이라고 적혀있는 방을 향해 들어갔다.

리버의 옆에 있던 경호원 역시 문을 잠궈놓은 후에 연구실 안으로 뒤따라왔다.

“어디에 놨더라. 분명 책상에 있었던 것 같은데.”

어두컴컴한 저녁에 리버가 ‘스칼렛 앤 볼즈’에 찾아온 이유.

그것은 연구실에 두고 온 자료가 급하게 필요해졌기 때문이었다.

어지간해서는 다음 날 처리하려고 했겠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상대였던만큼 그럴 수는 없었다.

리버는 책상 위에 있던 서류들을 헤집으며 목표로 하던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도와드릴까요?”

“됐어. 나 혼자서 충분해.”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연구실 안을 가득채웠다.

하나 하나 종이를 넘기며 원하는 자료를 찾아보던 리버는 서류함에 꽂혀있던 파일 하나에 시선이 향했다.

그는 손을 뻗어 그것을 살펴보았고, 이내 리버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필요한 서류를 찾은 그는 곧장 경호원을 부르려고 했다.

세간에 흉흉한 소문이 도는 마당에, 굳이 늦게까지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은 없었다.

“끄윽……!”

하지만 고개를 돌린 그가 마주한 것은, 목을 붙잡은 채 바닥에 쓰러져있는 경호원의 모습이었다.

목을 붙잡은 경호원의 손바닥 너머로부터 세차게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쓰러진 경호원의 모습에 당황한 리버는 허리춤에 있던 홀스터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경호원의 근처에 있을 습격자를 눈으로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 이게 무슨…….”

그러나 습격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공격한 사람은 없다. 단지 쓰러진 사람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말도 안되는 상황에 당황한 리버가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벽에서 튀어나온 손이 리버의 목에 날카로운 단검을 겨누었다.

“쉿. 허튼 짓을 벌였다가는 상당히 재밌어질거야.”

벽 너머에서 뻗어진 손이 리버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다.

마법.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이었다.

목에 겨누어진 칼날에 리버는 어쩔 수 없이 양손을 들어올렸다.

“최근에 외곽구역의 가게들이 습격당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 범인이 찾아온 모양이군.”

“알고 있으면 혼자 다니지 말았어야지.”

“…….”

“아, 혼자가 아니었지? 이거 미안한데.”

가로막혀있던 벽 너머에서 청년이 웃으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모자를 쓰고 있는 청년의 소매에는 붉은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누가 리버의 뒤에 있던 경호원을 쓰러뜨렸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리버는 단검을 든 청년과 시선을 마주하면서 물었다.

“무슨 목적이냐. 내가 가진 무기들을 탐내는거냐?”

블랙마켓의 기술자들이 괴한에게 습격당했다.

그런 소문을 수차례 들어왔던 리버였다.

눈앞의 청년이 찾아온 이유도 아마 리버의 자신의 장비들을 노린 것이라는게 리버의 추측이었다.

그러나 청년은 그런 리버의 추측을 간단히 부정했다.

“지금까지야 그런 이유였는데, 당신의 경우에는 좀 달라.”

“내 경우에는 다르다고?”

“당신은 레서트 인더스트리 출신의 엘리트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냐.”

“내가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건축물 도면이 필요하거든. 혹시 구하는 방법 알고 있어?”

청년의 단검이 전등빛을 받아 날카롭게 번뜩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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