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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44화 (44/156)

〈 44화 〉 어둠속의 길잡이 (4)

* * *

짹. 짹.

살짝 몽롱한 정신에 새들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달갑지 않은 소음에 이마를 찌푸리며 눈꺼풀을 들어올리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창밖에서부터 내리쬐는 햇살이였다.

따스하다. 그러나 눈이 부시다.

그렇게 강렬한 아침의 햇살 아래에서, 시넬의 풍성한 잿빛 머리카락이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또 들어왔나.”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일까.

새근거리는 소리를 내며 잠을 자는 시넬의 모습이 보였다.

항상 착용하던 고글을 벗어놓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시넬의 얼굴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살며시 열린 복숭아색의 입술.

그 사이로 자그마한 숨결이 흘러나온다.

얌전히 눈을 감고 있는 시넬을 보고있자니, 자는 모습만은 확실히 귀여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얼핏 보면 이전에 보았던 스피넬의 모습이 겹쳐보이기도 한다.

둘의 성격이야 완전히 반대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확실히 자매는 자매인 모양이다.

하나는 도시를 뒤흔드는 비밀조직의 간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잠자는 나를 뒤흔드는 침대의 무법자다.

언제까지고 자는 모습을 지켜볼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이불을 걷었다.

“으응…….”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을 살짝 걷어내자, 옆에 있던 시넬이 더욱 품속으로 파고들어왔다.

동시에 나를 끌어안고 있던 시넬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이불에서 빼앗긴 열기를 되찾으려는 것인지, 나를 끌어안은 시넬은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문질러오기 시작했다.

시넬의 잿빛 머리카락이 눈앞에서 살랑이기 시작했다.

“자고 있는게 맞긴 한거냐?”

“하으음, 냐암…….”

흐트러진 머리카락에서 샴푸냄새가 흘러들어온다.

코를 찌르고 들어오는 향기는 자신이 사용하는 샴푸의 그것이었다.

세면용품정도는 스스로 사라고 이야기했건만, 여전히 내 물건들을 들고가서 쓰는 모양이었다.

시넬의 팔에 붙들린 채로 자는 모습을 보다가, 멍하니 손을 뻗어 시넬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의 감촉이 손끝을 타고 스쳐지나간다.

만질 때마다 풍성하게 쥐어지는 머리카락은 쓰다듬는 느낌이 제법 만족스러웠다.

“시넬. 슬슬 일어나라.”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움직여 시넬의 뺨을 짓눌렀다.

부드러운 피부가 손가락 모양으로 파고들어가면서, 시넬의 입술이 한쪽 방향으로 짓눌렸다.

굳게 감겨있던 눈꺼풀 역시 부자연스럽게 움찔거렸다.

수차례 작게 깜빡이던 눈꺼풀은 시간이 지나자 잿빛 눈동자를 밖으로 드러내었다.

“……사장님?”

“그래.”

“일어나신 건가요.”

나를 바라보던 시넬의 눈동자가 뺨에 얹어진 손바닥에 향했다.

깜빡. 깜빡.

갈곳을 잃은 투명한 눈동자가 잠시동안 방황했다.

손이 닿지 않은 그녀의 반대쪽 뺨이 조금 달아오른 것처럼 보이는 기분이었다.

“잠은 잘 잤나.”

“약간 졸리네요.”

“잘 잔 모양이군.”

“조금 더 자도 되나요.”

“아니. 일어나서 준비해둬라. 슬슬 검성이 올거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사무실에는 직원이 하나 더 있다.

검성의 일을 제외하더라도, 회사로 치면 슬슬 출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서 더 늦장을 부릴 시간이야 여유로운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것이었다.

나는 자신을 덮은 이불을 완전히 걷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네요.”

“그리고 침대에는 왜 자꾸 올라오는거지?”

“침대를 따뜻하게 해주려고 왔어요.”

“……뭐?”

“침대가 추워하길래 따뜻하게 만들었어요.”

아무래도 침대와 소통할 줄 아는 직원을 둔 모양이다.

새로운 침대를 구입하게 되면, 시넬을 데려가는 편이 좋을 것이다.

어떤게 더 좋은 침대인지 직접 물어보면 될테니 말이다.

역시나 여러모로 시넬다운 변명이었다.

“그런 마법도 있는 모양이군.”

아니, 어쩌면 침대가 거짓말을 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역시 침대는 전문가에게 맡기는게 가장 나아보인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세수나 하도록.”

“네, 사장님.”

침대 아래로 뛰어내린 시넬은 세면도구를 챙겨 밖을 향해 움직였다.

나풀거리는 잿빛 머리카락의 너머.

나는 시넬의 손에 들려있는 자신의 세면도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 * * * * *

레서트 인더스트리로 향하는 차량의 안.

심부름을 다녀온 시넬이 사온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옆자리에 있던 네이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전의 만남에서 나는 네이에게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협력을 받아올 것을 주문했다.

그 방식이 다소 불만이었던 것일까.

네이 테르도스는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약속했던대로 허락은 받아왔어.”

“꽤나 조용하게 일이 진행된 모양이군. 누구한테 부탁한거지?”

연이은 습격사건에 대해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협조를 받았다.

그럼에도 뉴스나 신문은 커녕 브라이언의 정보망에도 아무런 소식이 나돌지 않았다.

네이가 확실하게 일처리를 끝마쳤다는 증거였다.

“벨 바이어틴. 레서트의 회장인 빅스 바이어틴의 딸이야.”

“명문가끼리라 그런지 몰라도, 연결고리가 있는 모양이군.”

“나도 이런 목적으로 연락하기는 싫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뭐 있겠나. 결국은 전부 레서트와 도시의 평화를 위한 일인데.”

벨 바이어틴.

그녀는 회장인 빅스 바이어틴의 딸이면서, 도시 안에서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도시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기업활동 전반에는 벨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우리에게 협조를 약속했다는 것은, 사실상 레서트 내부의 장소 대부분에 접근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기밀이 존재하는 곳은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된 통제구역이다.

기밀들을 노리고 습격할 유글러스를 잡기 위해서는 표적으로부터 최대한 가까운 장소에 매복하고 있는 편이 좋았다.

“정말 거기에 오는게 맞는거지?”

“먼저 협조를 구해놓고서 의심하는건가?”

“그런게 아니야. 하지만 이런 짓까지 벌였는데도 범인이 오지 않았다간… 상상하기도 싫어지는걸.”

“범죄를 기다리는 치안대라니, 제법 볼만한 광경이군.”

내 농담을 들은 네이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눈을 가렸다.

그녀가 생각해도 우스운 이야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네이에게는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아벨 테르도스의 반발을 무릅쓰고서 그녀가 치안대에 들어왔던 소기의 목적.

그것을 위해서라도 네이는 도시에 도사리는 위협들을 가만히 놓아둘 수 없었다.

“역시, 정보상인이라는 작자들은 상대하기 힘들어.”

“크로스 네트워크의 천리안보다는 낫지 않나?”

“리만 말하는거야?”

“리만 캐버런트. 그런 이름이지.”

크로스 네트워크에 있는 정보상인의 정점, 리만 캐버런트.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네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리만은 얌전한 편이야. 쓸데없이 이야기가 길어지는거 빼고는.”

“그렇게 나온 이야기에서 수많은 정보가 빠져나가더라도 괜찮나?”

“신문기사에 나오던지, 정보상인의 입에서 새어나가던지. 원래 둘중에 하나였어. 치안대에 들어오고 나서는 좀 얌전해졌지만.”

“듣다보면 고충이 참 많군.”

“너무 잘난 가족을 둔 내 잘못이겠지.”

네이는 손을 뻗어 컵홀더에 있던 자신의 종이컵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빨대를 통해 한모금 음료를 빨아들였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어셔가 백미러를 통해 네이의 모습을 잠시 보더니, 이내 다시 앞쪽으로 시야를 향했다.

지금 차량의 운전을 맡고 있는 것은 어셔 헤이즈다.

그는 상당히 따분해보이는 얼굴로 레서트를 향해 차를 몰고 있었다.

“운전에도 조예가 있는 모양이야.”

“이게 그렇게나 의외인건가?”

“면허가 있어도 장롱면허일거라 생각했으니까.”

전쟁도시의 내용속에서 대부분의 운전은 네이가 담당한다.

그러니 이런식으로 어셔가 차를 몰고 있는 것은, 전작에서도 보지 못했던 제법 특별한 광경이었다.

하물며 어셔는 학살을 저지르고 높은 형량을 받은 중범죄자다.

면허를 가지고 있더라도 운전과는 상당히 오랫동안 거리를 두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여동생을 바래다 줄 목적으로 취득했다.”

“그런가. 제법 낭만적이군.”

“그런 이야기다.”

“그럼 도착할 때까지 고생하도록.”

“여동생에 대해서는 묻지 않나?”

백미러 너머로 어셔 헤이즈의 시선이 보였다.

물어보지 않아도 그의 여동생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어셔가 중심구역에서 사건을 일으키고, 지금 치안대의 사냥개로 일하고 있는 것도 여동생의 탓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굳이 거기에 대해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그 역시 어느정도 짐작은 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굳이 물을 생각은 없다.”

“여동생은 대단한 마법사였다. 미래가 촉망받는 아이였는데, 갑작스런 사고에 휘말려 죽어버렸지.”

“안타까운 일이야.”

어셔는 담담한 어투로 과거의 비극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이쪽을 힐끔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네이의 경우 어셔의 이야기가 익숙했던 것인지, 침울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어셔의 시선이 다시 거울을 통해 비추어졌다.

“전혀 놀라지도 않은 것 같군.”

“어느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으니…….”

“전부 알고 있었겠지. 그러니까 암흑상인이라 불리는 걸테고.”

“글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어셔의 말에는 가시가 박혀있었다.

우리의 대화가 끝나자 잠시간의 정적이 차 안을 맴돌았다.

하지만 고요한 상태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약간의 흔들림과 함께 앞으로 달리던 차가 멈춘 탓이다.

차를 멈춰세운 어셔는 핸들을 놓아둔 채로,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도착했다. 이제 내리도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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