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어둠속의 길잡이 (7)
* * *
벽의 너머에서 만들어진 총성이 울려퍼지며, 유글러스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후방의 적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숨어들었던 방향의 반대로 그의 신체가 움직이면서, 고개를 돌린 유글러스의 팔 일부가 밖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타앙!
나는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끄악!”
고막을 울리는 폭음.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탄환이 유글러스의 팔을 꿰뚫었다.
유글러스는 기습적인 사격에 전혀 반응하지 못한 채, 총탄에 의한 부상을 허용하고 말았다.
상처로부터 새어나온 피가 벽면을 타고 흘러내린다.
“시넬!”
“움직일게요.”
총에 맞은 팔을 감싸안은 유글러스의 모습에, 나는 곧장 시넬에게 지시를 내렸다.
유글러스는 마법을 사용한 변칙적인 근접전투를 즐기는 스타일이다.
아무리 마법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공격은 유글러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움직여야만 할 터.
팔에 입은 총상으로 인해 그의 전투력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단검을 뽑아든 시넬은 빠르게 가속하며 유글러스에게 달라붙었다.
“빌어먹을 녀석들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시넬의 단검이 유글러스에게 휘둘러졌다.
헤이스트의 효과를 받아 움직임조차 제대로 잡아내기 힘든 일격.
간신히 뒤를 돌아본 유글러스가 힘겹게 팔을 들어올렸다.
채앵!
허공에서 단검이 부딪히며 청명한 쇳소리가 울려퍼졌다.
잿빛 머리카락을 휘날린 시넬은 다시 한 번 단검을 움직였다.
“으윽……!”
자세가 불안정한 상태로 공격을 받아냈기 때문일까.
공격의 여파를 완전히 흘려내지 못한 유글러스가 벽의 너머를 향해 넘어지기 시작했다.
유글러스가 완전히 벽 속으로 들어간다면, 우리로서는 그를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지게 된다.
그가 사라지기 전에 어떻게든 피해를 입혀야만 했다.
시넬은 가능한 빠르게 다음 일격을 휘둘렀으나, 애석하게도 남아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편이었다.
“…….”
카가가가각!
시넬의 단검이 아무것도 없는 벽을 긁으며 멈춰섰다.
고통에 신음하던 유글러스가 벽 너머로 모습을 감춘 것이다.
목표물을 잃어버린 단검은 두터운 벽에 작은 흠집을 만들어냈을 뿐이었다.
사라진 유글러스의 모습에 시넬이 멍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장님?”
“쫓아갈테니 준비해라.”
“네.”
유글러스에게 총상을 입혔다고는 하지만, 아쉽게도 그를 제압할 수준까지는 되지 못했다.
이렇게 된 이상 유글러스와 추격전을 벌일 필요가 있었다.
나는 곧장 문을 열고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지금까지의 교전을 통해 레서트 인더스트리 전체가 함정이라는 사실은 이미 눈치챘을 터다.
거기에 부상까지 얻게 된 녀석이 도주를 선택할테니, 레서트 인더스트리를 빠져나가기 전에 붙잡을 필요가 있었다.
“적이 도주했다. 1층으로 합류하도록.”
뒤따라온 시넬을 확인하며 이어셋을 통해 연락을 넣었다.
1층으로 내려올 것을 요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어셋에서 검성의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퍼시발, 지금 1층으로 합류하라고?”
“그래.”
“내려가면 되는거야? 알겠어.”
“그렇게 하지.”
검성과 어셔로부터 차례대로 답변이 도착했다.
유글러스가 밖으로 도망가는 것을 선택했다면, 굳이 건물의 위로 올라갈 필요가 없었다.
고층으로 올라가봤자 나가지 못하고 포위당할 뿐이다.
동료들의 답변을 확인한 나는 유글러스가 있던 방으로 향했다.
굳게 닫힌 문의 너머, 미약한 신음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문이 잠겨있어요.”
“이걸로 가능한건지 모르겠군.”
열어줄 사람이 오는 것을 기다릴 시간은 없다.
나는 문의 손잡이를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흔히 도어 브리칭이라고 부르는, 무기를 이용해 문을 여는 행위를 흉내내어볼 생각이었다.
타앙!
들고 있던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묵직한 금속의 충돌음과 함께 총탄에 맞은 손잡이가 찌그러졌다.
“……실패한 것 같아요.”
“알고 있다. 차라리 유도를 하는게 낫겠군.”
문을 살펴본 시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총을 맞은 문은 손잡이가 살짝 망가지기만 했을 뿐, 여전히 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역시 눈으로 보고 따라한다고 쉽게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문을 뚫고 지나갈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선택하는게 나았다.
“침입자가 이 안에 있다. 문을 열어라.”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시늉을 하며 마법을 사용했다.
문을 열고 지나갈 수는 없으니, 유글러스를 밖으로 끌어내는게 답이었다.
“문을 열어!”
“열쇠를 준비하도록.”
“나머지 인원은 반대쪽을 맡아라.”
“알겠습니다!”
마법을 사용한 직후, 우리는 건물의 바깥을 향해 빠르게 달려나갔다.
포위당하기 전에 밖으로 빠져나갈 유글러스를 잡기 위해서였다.
만약을 대비해 바깥에 사람을 불러두기는 했지만, 그래도 변수는 확실히 줄여두는 편이 좋았다.
이어셋을 통해 유글러스가 움직이는 경로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글러스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지?”
“마력신호 하나가 중앙동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어.”
“확인했다.”
네이의 통신에 답을 돌려주고선, 자동문의 옆에 위치한 개문 버튼을 눌렀다.
중앙동의 자동문이 열리며 바깥의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흐린 조명만이 비추고 있는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부지.
텅 비어버린 도로 위를 유글러스가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걸려들었군.”
유글러스의 앞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확인한 나는 걸음을 멈춰세웠다.
사람의 기척이 있다.
조명 아래 보이는 희미한 인형이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발을 멈춰세운 시넬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사장님이 부른 사람인가요?”
“혹시나 자료를 손에 넣었을 가능성도 있으니, 도망가지 못하도록 확실한 인물을 끌어들였다.”
“확실한 인물… 인건가요.”
“적어도 이 레서트 안에서는 말이지.”
휘이이이잉.
차가운 바람과 함께 검성 역시 옆자리에 합류했다.
펄럭이는 케이프의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옥상에서부터 뛰어내린 모양이었다.
4층에서 옥상까지는 뛰어서 움직였던 모양인지 검성의 뺨이 살짝 달아올라있었다.
바닥에 내려앉은 검성은 망토를 펄럭이던 바람을 흩어버리고선 나에게 질문해왔다.
“침입자는? 침입자는 어디에 있어?”
“저기에 있다.”
“……사람이 하나 더 있잖아?”
손가락으로 가리킨 너머를 바라본 검성이 입을 다물었다.
갑작스럽게 조용해진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숨을 헐떡이며 전력으로 질주하던 유글러스 역시 자리에 멈춰섰다.
원인은 하나였다.
유글러스가 멈춰선 곳보다 조금 더 멀리서부터, 알 수 없는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저건 뭔가요?”
“갑옷이다. 아니, 갑옷을 입은 기사라고 하는게 정확하겠군.”
쿵. 쿵. 쿵. 쿵.
세련된 디자인의 갑주가 묵직한 발걸음소리를 퍼뜨렸다.
뇌광을 휘감으며 앞으로 걸어나가는 검은색의 풀플레이트 아머.
얼굴을 가린 바이저에는 안광과도 같이 번뜩이는 빛이 눈을 대신해 자리하고 있다.
간헐적으로 주변에 스파크를 튀기는 그 모습은 마치 전설속의 기사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느긋한 발걸음으로 유글러스의 근처까지 걸어나온 기사가 입을 열었다.
“나는 섬광기사, 헤리오 나이트라인.”
콰르릉! 콰릉!
헤리오의 근처에 몇갈래의 뇌전이 내리쳤다.
다리를 멈추고 숨을 가다듬던 유글러스가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가 발을 내딛으려던 자리에 거뭇한 그을음이 번져있었다.
마치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라도 되는 것마냥, 흐릿한 검은 선이 헤리오와 유글러스의 사이에 그어진 것이다.
“레서트의 적을 섬멸하러 왔다.”
세간에서 그를 이르길, 섬광기사.
체인 라이트닝의 마법을 터득한 5서클의 마법사.
그리고 나이트테일 기사단의 모든 이들이 존경하는 간부.
그것이 이 시대의 진정한 기사라고 불리는 남자의 정체였다.
“……섬광기사라고? 나이트테일 기사단의 간부?”
“나에 대해 알고 있는건가.”
맹렬한 기계음을 흘려가는 갑옷의 너머로부터, 헤리오의 목소리가 밖으로 퍼져나온다.
헤리오의 정체를 들은 유글러스는 얼굴을 찌푸리며 팔을 붙잡았다.
총상을 입은 팔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헤리오를 향해 물었다.
“나이트테일 기사단이 왜 여기에 있지?”
“그게 아가씨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레서트의 아가씨? 설마 이 함정을 준비한 사람이…….”
“그건 나다. 거기에 있는 기사의 주인님이 아니라.”
내 목소리를 들은 유글러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분노에 가득찬 유글러스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그는 잘근거리며 입술을 곱씹다가, 이내 단검을 들며 나를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네가 모든걸 주도했다고?”
“그래. 네 목에 걸려있는 돈이 제법 많아서 말이지.”
“……그렇단 말이지. 좋아. 너는 꼭 내 손으로 죽인다. [패스 월]!”
감정이 실린 한마디. 그 직후에 유글러스가 몸을 움직였다.
마법의 효과를 받은 유글러스의 신형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다.
유글러스가 사라진 근처에는 구조물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지형을 보건데 ‘패스 월’ 마법을 사용해 아래로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살해예고를 한 유글러스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시넬은 단검을 들어올린 채로 주위의 바닥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위험해요.”
“아니, 괜찮을거다.”
나는 시넬의 걱정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윌슨에게 부탁해 헤리오를 부른 이유는 단순히 그가 강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면에 숨은 유글러스에게 타격을 입힐 수단이 우리에게 부재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내가 유글러스의 경고에도 자신만만한 이유였다.
내가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우리의 앞에 서있던 헤리오가 검을 들어올렸다.
검신의 중심이 비어있는 검은 유글러스가 흘린 핏자국을 향해 겨누어져 있었다.
치직. 치지직.
갈라져있는 검의 사이로 커다란 스파크가 튀었다.
“최대 출력, 발사.”
모든 것이 고요해진 짧은 정적.
고요함 속에서 헤리오의 목소리만이 고고하게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 직후, 들어올린 검에서부터 푸른 뇌격이 뻗어나갔다.
콰과과과과광!
헤리오가 내지른 번개의 일격은 바닥에 흩뿌려진 붉은 핏줄기를 타고서 거세게 내달렸다.
날카로운 번개와 피를 흘리는 마법사.
그 끝에 도달할 결말이 어떠한 가에 대해선, 이 자리의 누구도 이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