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연주시차 (1)
* * *
아무것도 없는 옥상.
고요한 밤하늘을 홀로 올려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내 옆자리에 시넬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슬슬 계절이 바뀌어가기 시작한 것일까.
추워진 날씨에 희뿌연 입김이 나오기 시작한다.
“뭘 보고 계신건가요.”
혼자 있다고 해서 별 대단한 일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씩은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가 있다.
주변에 나부끼는 서늘한 바람.
그리고 무수한 별이 반짝이는 광활한 밤하늘.
그것들을 친구삼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도,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하늘을 보고 있었다.”
“밤하늘 구경인가요?”
“그래. 생각보다 별이 잘 보이는군.”
하늘 역시 생각보다는 맑았다.
흔히 도시의 하늘은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도시라고 해도 외곽지역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옥상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별이 꽤나 많이 보였다.
하기야, 딱히 시설이라고 부를만한 것도 없는 변두리다.
화려한 중심지구와 이곳이 완전히 같은 곳이라 여기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사장님은… 별을 좋아하나요?”
손에 든 따뜻한 코코아를 홀짝이면서, 시넬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을 담아 반짝이는 잿빛 눈동자를 지켜보며, 머릿속으로 시넬의 질문을 되뇌여본다.
나는 별을 좋아하고 있는가.
고민해봐도 잘은 모르겠다.
지금 이 시간은 별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싫어하지는 않을거라 생각한다.
“글쎄. 좋아하냐 싫어하냐를 따지자면, 좋아하는 편에 더 가깝겠군.”
“애매한 대답이네요.”
“세상 모든게 다 그렇지. 옳고 그름, 흑과 백으로 완벽하게 구분되는게 얼마나 되겠나.”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만 보아도 그렇다.
도시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절름발이 브루노조차, 누군가에게는 상냥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했던 것처럼 말이다.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결론은 그리 많지 않다.
굳이 모든 일에 흑백을 가릴 필요도 없고 말이다.
나는 그런 어중간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저는 좋아해요.”
그러나 시넬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무수한 숫자의 별들이 시넬의 손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밤하늘이 아름다워서?”
“그런 이유도 있겠네요.”
“아무래도 정답이 아닌 모양이군.”
“정답에 가까웠을지도 몰라요.”
그녀를 따라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본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별들은 도시의 어디에서든 볼 수 있지만, 그 누구의 손에도 쥐어지지는 않는다.
시넬의 생각은 잘 모른다.
하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기분이 되었다.
“어려운 문제군. 넘어가도록 하지.”
“안맞추시는 건가요.”
“굳이 맞출 필요가 있나. 고민하는 것도 여흥일텐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코코아를 쥔 시넬의 머리가 기울어졌다.
차가워진 오른쪽 어깨에 시넬의 잿빛 머리카락이 맞닿았다.
언젠가의 아침이 그러했듯이, 익숙한 샴푸향이 바람을 타고 은은하게 퍼져나온다.
몽환적인 하늘 아래 오직 둘만이 남아있다.
멀리서 본다면 상당히 낭만적인 풍경일거라고 생각한다.
시넬이 쓰고 있는 고글에 어깨가 짓눌려 아프다는 사실만 빼면 말이다.
튀어나올 것 같은 비명을 가슴속에 억누른 채로, 나는 아직까지 건물에 남아있는 시넬에게 물었다.
“그런데 시넬.”
“네.”
“퇴근은 안하나.”
“퇴근……?”
최근에 월급을 받은 시넬이다.
그녀에게 지급한 액수가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었으니, 원한다면 집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 질문을 받은 시넬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는 모습이었다.
“이제 집세를 낼 돈은 있을텐데.”
“퇴근해야 되는거였나요.”
“그럼, 언제까지고 같이 지낼 생각이었나.”
어느새인가 자연스럽게 침대에 침투하기 시작했다지만, 내가 그녀에게 허락한 공간은 어디까지나 소파뿐이다.
월급이 들어왔으면 괜찮은 집을 구해보는게 당연했다.
애초에 사무실 자체가 사람이 오래 살만한 곳이 아니다.
가능하다면 시넬이 보다 나은 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도 조금은 있었다.
“새 단검을 주문했어요.”
“……?”
“이번에는 더 비싼 단검이에요.”
집에 대한 질문을 들은 시넬의 입에서는 두서없게도 단검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슬슬 무엇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딘가 많이 익숙한 레퍼토리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는 하나의 결말로 귀결되고는 했다.
“얼마나 남았지?”
“100크레딧이 남았어요.”
“……100크레딧.”
“네.”
100크레딧으로는 멀쩡한 월세를 구할 수 없다.
오히려 식비마저 극한까지 아껴 생활해야만 한다.
시넬은 처음부터 나갈 생각이 전혀 없던 모양이다.
어느덧 자연스럽게 숙식제공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는 솔직히 네 생각을 잘 모르겠다.”
“저는 알고 있어요.”
“그렇겠지. 아주 잘 알고 있겠지.”
문제는 본인 혼자만이 알고 있을거라는 점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뭐, 본인에게도 나름 계획이 있지 않겠는가.
숙식 무제한 제공 퍼시발 스미스같은거 말이다.
나는 손을 뻗어 자신에게 기댄 시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이번달 역시 시넬과 함께 제법 소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겠지 싶었다.
* * * * * *
다음날. 시넬은 감기에 걸렸다.
범죄자와의 싸움에는 능숙한 모양이지만, 감기와의 싸움은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아침부터 계속 미열과 함께 기침을 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어제 옥상에서 함께 별을 보았던 것이 원인으로 보였다.
심한 수준까지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감기에 걸린 사람이 찬바람을 쐬어 좋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한가지 결단을 내렸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네가 내 호위를 맡는거다.”
“호위…….”
시넬은 사무실 안에서 쉬도록 하고서, 검성에게 자신의 호위를 맡긴 것이다.
용병생활을 하던 검성이니만큼 그렇게 낯선 일은 아니다.
다만 내 지시를 받은 검성은 8구역에 따라오는 내내 탐탁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 불만이라도 있는 것일까.
나는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문제라도 있나?”
“흐음, 문제는 없지만 말이야. 왠지 내가 대체품이 된 기분인걸.”
시넬의 대신이라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거라면 간단한 해결방법이 있었다.
“그 유명한 검성의 호위라니, 뒤가 든든한 기분이군.”
“어……?”
“사실 나도 한번쯤은 검성에게 경호를 받아보고 싶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도? 어쩔 수가 없겠네.”
검성은 그제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단순히 전투의 상성만 따져보자면, 검성쪽이 시넬보다 우위에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넬을 호위로 채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헤이스트 마법이 윈드커터보다는 호위에 있어 적합하기 때문이었다.
전투를 치르다보면 나를 노리고 들어오는 공격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한 불의의 일격에 대응하는 측면에 있어서, 검성보다는 시넬쪽의 반응이 더 빠른 편이었다.
실제로도 시넬의 재빠른 움직임에 몇차례 도움을 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퍼시발, 하나 궁금한게 있는데.”
번잡하던 길목을 지나쳐 골목에 접어들자, 뒤에서 따라오던 검성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상황에서 검성이 할만한 질문이라.
일에 대한 내용 이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나는 그녀에게 질문의 내용을 되물었다.
“뭐가 궁금하지?”
“헤이스트를 쓰고 있으면 감기도 빨리 낫는거야?”
“…….”
듣고보니 나도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헤이스트 마법은 사용자의 시간을 느리게 만든다.
마법이 걸린 채로 하루를 생활한다고 하면, 다른 사람의 이틀과 같은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회복에 있어서도 같은 효과를 가질 것인가.
내 생각에는 그럴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아마도 그럴 것 같군.”
“아마도라니, 천하의 암흑상인도 모르는게 있구나.”
“유엘. 나는 어딘가의 대학교수가 아니다.”
“그래?”
검성과 시덥잖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깊숙한 곳에 접어들자, 골목의 모퉁이 너머로부터 인기척이 느껴졌다.
담배연기가 흩날리는 좁아터진 골목길.
거기에 있는 것은 한 무리의 남자들이었다.
각목이나 쇠파이프. 혹은 야구 방망이.
저마다 각양각색의 무기를 들고 있는 남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덩치가 큰 남자가 무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거, 낯선 사람들이구만.”
조직간의 항쟁이 아닌 이상에야, 대낮부터 무기를 꺼내고 움직이는 단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저런 행위도 이런 으슥한 길에서나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경단인가.”
“오, 우리를 알고 있는거냐?”
뒷골목 자경단.
그럴싸한 이름으로 불리고는 있지만, 사실상 외지인의 돈을 뜯어내는 강도들에 불과했다.
8구역은 도시 전체중에서 가장 치안이 파탄난 곳이다.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는 것도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다.
모순적이게도 가급적 조용히 일처리를 끝내려고 한 것에 대한 수고로움이었다.
“지나가고 싶은데. 얌전히 비켜줬으면 좋겠군.”
“우리 손님이 지나가야한다? 당연히 비켜드려야지.”
“그럼 지나가도록 하지.”
“그 전에 통행료는 내야겠지만 말이야!”
그럼 그렇지. 순순히 보내줄 리가 없다.
자경단의 악명이 괜히 높은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말을 마친 남자가 쇠파이프를 든 채, 나를 향해 커다란 손을 뻗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자가 뻗은 손이 내 어깨를 붙잡으려던 순간.
철컥.
짧은 금속의 마찰음과 함께 바람이 휘날렸다.
“검성류.”
검의 손잡이를 붙잡은 검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직후, 남자가 들고있던 쇠파이프가 반으로 갈라져 떨어져내렸다.
퉁.
바닥에 떨어지는 반쪽짜리 파이프의 충돌음.
고요해진 골목의 한가운데에서, 모두의 시선이 검을 잡은 검성에게로 향했다.
“일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