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연주시차 (2)
* * *
검의 손잡이를 붙잡은 검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직후, 남자가 들고있던 쇠파이프가 반으로 갈라져 떨어져내렸다.
퉁.
바닥에 떨어지는 반쪽짜리 파이프의 충돌음.
고요해진 골목의 한가운데에서, 모두의 시선이 검을 잡은 검성에게로 향했다.
“일섬.”
“……!”
남자는 나를 향해 뻗던 손을 멈춰세웠다.
발검자세를 취한 검성을 제외하고서, 골목에 있는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검성의 실력행사를 보자마자 이해한 것이다.
잘못 움직였다간 순식간에 검성에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검성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손은 떼는게 좋아. 죽고 싶은게 아니라면.”
“……아, 알겠다.”
검성의 협박에 남자의 손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반쪽이 되어버린 쇠파이프는 이미 스스로의 손에서 놓아버린지 오래였다.
검성이 발하는 참격은 은밀하면서 빠르다.
쇠파이프가 아니라 손이 베이더라도 남자가 할말은 없을 것이었다.
나는 검성의 이미지도 조금 세워줄 겸, 그녀를 위해 텔레파시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여전히 실력이 녹슬지 않았군, 검성.”
“검성이라면… 그 유명한 도시 최강의 검객?”
“뭐야? 저 사람이 그 검성이라고?”
“……검이 움직이는게 보이지도 않았어.”
이야기를 들은 무리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검성이 위대한 지성만큼이나 유명한 인물은 아니라지만, 어쩌다가 한 번 정도는 들어봤어도 이상할게 없는 이름이었다.
검성은 눈을 둥그렇게 뜬 채 잠시 놀란 모습을 보이다가도, 이내 상황을 이해하고는 만족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도시의 누구보다 자신의 명예에 집착하는 검성이다.
주변에서 본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여기 있는 잔챙이들 처리정도야 어렵지 않으니까.”
“알아들었으면 꺼져라. 길이 좁군.”
타다닥. 타다다닥.
앞을 막고 있던 남자들이 재빠르게 도망쳤다.
8구역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지금 눈앞에서 도망가는 자경단에게 있어서도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게 되는 것은,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잔인한 면모 때문이었다.
앞을 가로막던 자경단이 전부 눈앞에서 사라지자, 나는 다시 골목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퍼시발, 여기에는 무슨 일로 온거야?”
“맡길 일이 있어서 찾아왔다.”
“맡길 일? 여기에 그럴만한 사람이 있어?”
“조용히 처리하기에는 괜찮은 곳이지.”
내가 가진 마법이 그러하듯이, 이번 일 역시 가능하면 다른 사람이 모르게 처리하는 편이 좋았다.
눈에 띄게 행동해봤자 리만이나 잭슨같은 정보상인에게 소문이 넘어갈 뿐이다.
그러기 위해 브라이언에게 사람을 소개받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복잡했던 골목을 한바퀴 더 돌아나가면, 너저분한 철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인 모양이군.”
쿵. 쿵.
큰 소리가 나도록 세게 문을 두드렸다.
커다란 기계갑옷도 존재하는 시대에 초인종 대신 노크라니, 꽤나 구시대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크를 하고 일분 가량이 흘렀을까.
삐걱거리는 경첩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렸다.
“무슨 용건입니까?”
철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칠게 난 수염이 돋보이는 장년의 남자였다.
브라이언에 따르면 남자의 이름은 고드.
명성은 별로 없지만 일처리는 확실한 해커라고 한다.
그는 나와 검성을 힐끗 번갈아보더니, 이내 우리에게 용건을 물어왔다.
“일을 맡기러왔다.”
“누구 소개로 온겁니까?”
“브라이언 레일.”
“그 인간도 오래 못살겠군. 일단 들어오십시오.”
브라이언의 이름을 들은 고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이고는, 이내 안쪽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철문의 안쪽에는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이 있었다.
빛이 통하지 않아 어두컴컴한 통로를 천장에 매달린 불안정한 조명등이 비추고 있었다.
음침하다. 오래 있을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고드를 따라 지하실로 내려가자, 몇대인가 벽에 매달려 있는 모니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드는 그 앞에 놓여 있던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직접 찾아오신걸 보니 장비도 함께 가져온 모양입니다.”
“잘 알고 있군.”
“그래서, 뭘 어떻게 하길 원합니까?”
나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전화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내가 기존에 사용하던 물건은 아니다.
고드에게 의뢰하기 위해 새로 구입한 물건이었다.
고드는 내가 꺼낸 휴대전화에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들었다.
“거기에 프로그램 하나를 만들어 넣어줬으면 좋겠군.”
“어떤 프로그램입니까?”
“입력한 번호로 전화를 거는 프로그램이다.”
“그거야, 그냥 전화 프로그램 아닙니까?”
“물론 신호는 가지 않지만, 연결된 것처럼 화면이 출력되어야 한다.”
“아.”
고드는 그제서야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것을 어디에 사용할지는 묻지 않았다.
이곳은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장소이고, 고드는 보안에 있어 철저한 사람이었다.
“……?”
다만 고드를 대신해 검성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통화가 걸리지 않는 전화 프로그램을 어디에 쓸 것인가.
거기에 대해 고민하는 검성의 고개가 갸우뚱거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그녀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는 일은 없었다.
* * * * * *
용무를 마친 이후, 검성이 퇴근한 저녁.
나는 사무실에 남아 홀로 시넬을 지켜보고 있었다.
돌아온 뒤에도 한참을 콜록이던 시넬은 이제서야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물론 잠에 든 시넬이 누워있는 곳은 간이침대였다.
사무실에 하나밖에 없는 침대를 빼앗겼으니, 오늘은 내가 소파에서 잠을 청하게 할 것 같다.
“……여러모로 애를 먹이는 부하구만.”
시넬을 처음 마주했을 당시는, 단순히 싸울 수 있는 부하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이름을 날리는 용병들을 고용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그렇기에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가능성이 있는 유망주를 영입하려고 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그러나 실상을 알고보니 완전히 제멋대로인 부하였다.
갈곳이 없다면서 억지로 사무실에 엉겨붙었다.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침대에 숨어들어왔다.
사람이 어디로 튀어갈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다.
그런데도 지금은 자신의 삶에 너무나도 깊게 파고들었다.
“…….”
이제와서 거리를 두기에는 너무나도 늦어버린 것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들여놓았던 부하가, 이제는 잃어버려선 안되는 존재가 되었다.
시넬이 없는 사무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우스운 일이다.
약점을 줄이려다가 오히려 약점이 늘어나고 말았다.
띠리리링.
짙은 상념에 잠겨 시넬을 바라보고 있으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의 벨소리가 울렸다.
휴대전화를 꺼내 발신인을 확인했다.
등록되어있지 않은 번호다. 내가 전화를 받는 것이 처음이라는 소리다.
나는 곧장 통화버튼을 누르고 휴대전화를 귀에 가져갔다.
“무슨 용건이지.”
“나야. 시넬은 잘 있어?”
“마천루… 아니, 스피넬 클로버블룸인가.”
스피커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익숙한 것이었다.
스피넬 클로버블룸. 시넬의 언니다.
스피넬과 대화를 나누었던 적은 꽤 있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그녀의 전화번호가 없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스피넬이 사무실에 쳐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잘 기억하고 있네. 혹시 시간 있어?”
“없는 시간조차 만들어내길 원하는거 아닌가?”
“좋은 마음가짐이야. 그럼 옥상으로 올라왔으면 좋겠어.”
“옥상이라고?”
스피넬의 용건은 간단했다.
나보고 당장 옥상으로 올라오라는 것이었다.
평소같으면 사무실에 무작정 들어왔을 스피넬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굳이 옥상으로 올라오라는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무언가 이유가 있어보였다.
“응. 그리고 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이지?”
“아무런 동행인 없이, 너 혼자만 올라와야 해.”
“……그렇게 하지.”
툭. 통화가 끊겼다.
나는 누워있는 시넬을 잠시동안 바라보다가, 이내 옷걸이에 걸려있던 코트를 꺼내입고 사무실을 나섰다.
슬슬 밤바람이 차가운 계절이다.
가볍게 입었다간 시넬처럼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터벅, 터벅.
아무도 없는 계단을 혼자서 올라간다.
공허한 층계속에서 자신의 발걸음 소리만이 메아리쳤다.
어두컴컴한 층계를 전부 올라 끝에 도착하면, 옥상으로 향하는 두터운 철문이 자신을 맞이했다.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아 테두리가 녹슬어버린 문이다.
나는 끼익거리는 마찰음을 들으며 철문을 열어젖혔다.
그 직후, 옥상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선명한 밤하늘이 자신의 눈에 들어왔다.
“안녕, 암흑상인.”
찬란한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
잿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마녀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공중에 부유하고 있는 스피넬의 아래에는 푹신해보이는 쿠션 하나가 깔려있는 채였다.
아름다운 밤하늘과 날아다니는 잿빛 소녀.
얼핏 보면 한폭의 동화같은 풍경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 다시 만나서 반갑군.”
“시넬은 잘 지내고 있는거야?”
“감기에 걸려서 쉬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네. 언니한테 왔으면 간호해줬을텐데.”
스피넬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러나 스피넬이 고작해야 시넬의 안부따위를 묻기 위해 나를 불러낸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직설적으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무슨 용건이지?”
“이전에 우리가 했던 거래, 기억하고 있어?”
“그래. 기억하고 있다.”
서클을 올리기 위한 시험을 치르던 당시, 나는 스피넬에게 시험에 대한 정보를 하나 구매했다.
신비의 대행자를 상대로 기억을 잃지 않는 방법이 그것이었다.
그럼에도 당시의 스피넬은 나에게 정보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나중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받겠다는 것이 그녀의 이야기였다.
“오늘은 그 대가를 받으러 왔어.”
그리고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
스피넬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지불을 유예했던 비용을 받아가기 위해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