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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53화 (53/156)

〈 53화 〉 연주시차 (3)

* * *

“오늘은 그 대가를 받으러 왔어.”

그리고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

스피넬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지불을 유예했던 비용을 받아가기 위해서.

“대가라… 무엇을 원하고 있지?”

정보상인을 상대로 돈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정보를 원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녀가 궁금한 것이 자신이 아는 내용이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대답해줄 의향이 있다.

옥상에 사뿐히 내려앉은 스피넬은 한손으로 쿠션을 붙잡으며 물었다.

“위대한 지성에 대해 알고 있어?”

“위대한 지성……. 세리나 에델비트를 말하는건가.”

스피넬이 꺼낸 화두는 위대한 지성에 대해서였다.

위대한 지성. 마탑을 이끄는 오래된 마법사다.

그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이 도시 전체를 통틀어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스피넬의 질문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내가 읽었던 ‘전쟁도시’의 내용속에서, 세리나 에델비트는 결사의 손에 쓰러졌기 때문이다.

“응. 위대한 지성을 죽일 생각이야.”

“그런가. 계승자의 입장에서도 그녀가 거슬리겠지.”

“알고 있던거야?”

“도시 안에서도 얼마 안되는 변수니까. 정체가 드러날 가능성을 차단하고 싶은거다.”

위대한 지성이 작중에서 퇴장한 이유는 하나였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마법들은 계승자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데 있어 지나치게 위협적이다.

자신의 정체가 외부에 노출되어선 곤란한 계승자의 입장에서, 위대한 지성은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제거해야하는 적이었다.

게다가 위대한 지성의 제거를 겸해, 결사의 실력행사를 모두에게 내보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계승자의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보다도 잘 알고 있네. 그럼 길게 말할 필요는 없겠는걸.”

“무얼 말이지?”

“따라와서 도왔으면 좋겠어. 이번 작전.”

“…….”

스피넬의 요구는 예상보다 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직접 따라가서 작전을 도와달라.

단순히 정보만을 넘기는 것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작전을 보고 조율하길 원하는 것이다.

사무실에 앉아 정보를 말하는 것과는 리스크가 다르다.

나는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생각해?”

위대한 지성의 죽음은 어차피 이루어질 일이다.

원작에서 결사의 손에 최후를 맞이한데다가, 그녀가 사라지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물건도 있다.

내가 굳이 나서서 막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을 방관하는 것과, 내가 따라가 작전을 지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게다가 이번 작전에는 스피넬 이외에도 결사의 다른 간부들이 따라올 가능성이 높았다.

“결행일은 언제지?”

“3일 후에 마탑을 습격할거야.”

“……몇가지 조건이 있다.”

스피넬의 시선을 받고 있는 이상, 그녀의 제안은 내가 거절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약속 없이 그냥 따라갈 수는 없다.

결사의 간부라는 이들은 하나같이 내가 신뢰하기 어려운 이들이다.

언제 그 자리에서 내 뒤통수를 노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들을 이끌고있는 계승자마저 간부들을 온전하게 믿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것이 눈앞의 스피넬인데, 적어도 그녀만큼은 자신의 아군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무슨 조건인데?”

“하나. 자리에는 변장을 하고 가겠다.”

첫번째 조건. 내 정체를 노출시키지 말 것.

이것은 음지에 애매하게 걸친 채로 영업을 하고 있는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네이나 어셔와 안면을 트고 있는 사이라고 해서, 그것이 치안대가 내 범죄를 무마해준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능한 정체의 노출을 피할 필요가 있었다.

목소리의 경우에는 어렵지 않게 속이는 것이 가능한만큼, 얼굴만 드러나지 않도록 가리면 될 일이었다.

“흐음. 정체가 특정되는게 무서운거구나. 알았어.”

“둘. 너만은 내 편이 되어라.”

“……무슨 이야기야?”

두번째 조건을 들은 스피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편이 되라니, 맥락에 맞지 않는 이야기처럼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은 반드시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이야기였다.

나를 위해서도. 스피넬을 위해서도.

그리고 그녀의 뒤를 쫓는 시넬을 위해서도 말이다.

“간단한 이야기다. 절대 배신하지 마라.”

“당연하잖아. 그게 중요한 조건이야?”

“이번 작전만을 말하는게 아니다. 지금부터, 그리고 앞으로도… 너만큼은 나를 배신하지 마라.”

“조금 멋있는 말이기는 한데, 이유는 설명해줬으면 좋겠는걸.”

고개를 내려 스피넬과 눈을 마주친다.

시넬을 닮은 잿빛 눈동자가 별을 담아 반짝이고 있었다.

시넬에게 스피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 나는 계속 그녀에 대한 판단을 고민해왔다.

그러니 이것은 오랫동안 내가 고민해 내린 결론이었다.

“결사의 녀석들은 믿을 수 없다.”

“그렇구나. 뭐어, 이해는 할 수 있어.”

“결사만이 아니다. 이 도시의 인간들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는 녀석들뿐이다.”

“그래서?”

“그럼에도 나는 너를 믿겠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너도 나를 믿어라.”

납득할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상호간의 절대적인 신뢰는 결코 일방적인 요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스피넬에게 일방적인 제안을 강요했다.

누가 보아도 어리석은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바보같은 이야기네.”

“그래. 바보같은 이야기지. 그래도 받아들여라.”

“내가 왜?”

“그래야 내가 너를 구해줄테니까.”

“……무엇으로부터.”

무엇으로부터?

그야 당연히 정해져있지 않은가.

눈앞의 소녀를 옥죄어 올 운명으로부터다.

무질서한 혼돈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에게 용서받지 못한 악당의 말로는 정해져있다.

스피넬 클로버블룸.

마천루의 마법사는 어셔 헤이즈의 손에죽는다.

“나는 단편적이나마 미래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미래의 너는 죽는다.”

미래를 바꾼다. 그리고 그녀를 구한다.

지금부터 꺼내는 이야기는, 그 거대한 계획의 서막이었다.

* * * * * *

지이잉.

눈을 가리던 기계가 작동을 멈추고 나서야, 노파는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전보다 가벼워진 몸을 움직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노파의 시선이 향한 맞은 편에는 동일한 기계를 착용한 사람의 형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고목과 같이 비쩍 말라비틀어진 형체는 이제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힘들어보이는 상태였다.

다만 그 모습에서 하나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 형상의 주인이 어린아이였다는 점이다.

“탑주님, 몸은 어떠십니까.”

“끌끌. 아직은 괜찮다.”

그녀에게 있어 이제는 익숙해진 광경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녀가 느끼기에,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이었다.

고차원적인 마법도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막을 수 없다. 그리고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러한 길을 선택했다.

구차하고 추악한 발악을 통해서라도 억지로 생을 붙들고 있는 것이었다.

마탑의 주인, 세리나 에델비트는 이내 자신을 부축하려는 손길을 피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일러두었던 것은 어떻게 되었느냐.”

얼마 전, 세리나는 불온한 움직임을 예지했다.

도시 전체를 위협하는 거대한 세력이 그녀를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여태껏 위대한 지성을 향한 위협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느끼기에, 이번에 찾아온 위협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세리나의 이야기를 들은 비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대답을 들려주었다.

“세컨더리 비트쪽에 연락을 취해두었습니다.”

“이번에는 좀 힘들게다. 마음의 준비를 해두거라.”

“기대하시던 나이트테일만큼은 아니겠지만, 세컨더리 비트라면 실력은 확실할겁니다.”

비서의 대답을 들은 세리나는 혀를 찼다.

세컨더리 비트는 그녀도 익히 들어보았던 회사지만, 세리나가 생각하기에 썩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그녀가 숙적이라고 여기고 있는 계승자는 하나같이 규격외의 괴물들을 기르고 있다.

아무래도 세리나 스스로가 조금 더 철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추잡한 방법으로 참 오래도 연명하는구나.”

“신경쓰실 필요 없습니다. 저런 꼬맹이보다 탑주님의 안위가 더 중요합니다.”

“변명할 필요는 없다. 결사의 녀석들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도 않았을게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 전.

세리나 에델비트는 온 세상을 어둠에 몰아넣을 거대한 악의를 확인했다.

결사. 제국의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수수께끼의 조직.

그것은 세리나가 태어나기도 전에 결성되었으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채로 제국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사에 대해 세리나가 알고 있던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결사의 구성원이 제국의 전복을 꾀하고 있다는 것과, 계승자라고 불리는 수장이 결사를 이끌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특히… 이번 대의 계승자가 아니었다면 말이야.”

10년. 혹은 그보다 조금 더 이전.

그 시점을 기해 세리나가 알고 있던 결사의 계승자가 바뀌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법은 제국의 파멸을 예언했다.

새로운 계승자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그때부터 세리나는 죽는 것을 완전히 포기했다.

세간으로부터 지탄받는 것을 무릅쓰고서라도, 그녀 자신의 손으로 결사를 끝내는 것을 선택했다.

그것이 위대한 지성에게 주어진 삶의 방식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탑주님. 마탑의 식구들이 탑주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래, 너희를 믿고 있느니라.”

세리나 자신이 일생동안 이루어 놓은 것은 많았다.

수많은 군중이 그녀의 위대함을 칭송했다.

수많은 학자가 그녀의 현명함을 예찬했다.

그럼에도 미련을 남기고 있는 것은, 스스로가 죽어야 할 자리를 찾아 헤메고 있기 때문이다.

그 위대한 업적이 허명으로 돌아갈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믿고, 있느니라.”

적어도 그녀 자신이 생각하기에, 세리나 에델비트는 결코 현자같은게 아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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