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연주시차 (4)
* * *
도시에서 사람들 사이에 최고라 여겨지는 민간군사기업은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요인경호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나이트테일 기사단’.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고 알려진 ‘세컨더리 비트’다.
데런 벨츠는 그런 세컨더리 비트의 제1팀장이면서, 2번째로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주주이기도 했다.
“데런.”
창문 너머를 통해 도시의 풍경을 내려다보던 데런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잭 벨츠. 데런의 형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잭의 앞에는 사장의 직함이 적혀있는 명패가 놓여져 있었다.
데런은 하나뿐인 자신의 핏줄을 바라보며 물었다.
“듣고 있어.”
“저번 일은 기억하고 있나?”
“마탑 말이야?”
“그래. 그 노괴가 부탁한거 말이다.”
잭의 말을 들은 데런은 이전의 일을 떠올렸다.
콧대가 높기로 소문난 마탑이 직접 세컨더리 비트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것도 도시에서 가장 저명한 마법사, 위대한 지성의 이름을 빌어서 말이다.
위대한 지성 본인의 실력만 생각하더라도 어지간한 용병들은 우습게 여길 것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들의 도움을 원하고 있다니, 데런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마탑에서 직접 도움을 요청할 정도면, 아무래도 만만한 상대는 아닐거아냐.”
“그렇겠지.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여자의 말이니까.”
“그래서 조사해봤어. 그 결사라는 녀석들에 대해서.”
수년전부터 그 윤곽이 드러난 정체불명의 조직.
정확한 이름은 알고 있지 못했지만, 마탑의 의뢰덕분에 그 문제 역시 해결되었다.
결사. 녀석들은 상당한 숫자의 수배범들이 연결되어 만들어진 범죄조직이다.
단순히 이익을 노리기보다는 무언가의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벌이는 행동 대부분은 수많은 사망자들을 만들어내고는 했다.
“결과는 어땠지?”
“특급수배범들이 어느정도 엮여있는 것 같아.”
“특급 수배범이라…….”
“결사가 그들의 도주를 돕고 있는거겠지.”
데런의 말을 들은 잭이 자신의 턱을 어루만졌다.
데런은 그 모습에 하나뿐인 형제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세컨더리비트의 사장, 잭 벨츠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턱을 만지는 버릇이 있었다.
대부분은 회사의 손해와 직결된 상황이었다.
“치안대의 반응은 어떻지?”
“치안대에서 선제조치를 취하는 일은 없을거야. 그랬다간 마탑의 위상도 떨어질테니까.”
“이러면… 자칫하다간 본전도 못건지게 생겼군. 고민을 좀 해봐야겠어.”
“그럼 어떻게 하자고? 거절하려고?”
“그랬다간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고 비아냥거리겠지. 그러니까 더 문제인거다.”
이 도시에선 얕잡혀보여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사방에 하이에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야만적인 도시다.
그것은 수없이 많은 싸움들을 직접 헤쳐나온 데런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도망치고 싶다고 도망칠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세컨더리 비트가 최고의 자리에 계속 남아있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확실히 특급이 골치아픈 녀석들이긴 해.”
치안대는 상당한 피해를 각오해야하는 장기 수배범들을 특급수배범으로 분류하고 있다.
수많은 현상금이 특급수배범에게 걸려있음에도, 대부분의 현상금 사냥꾼들은 특급수배범을 쫓지 않는다.
치안대도 쉽사리 잡아내지 못하는 상대다.
제아무리 유명한 현상금 사냥꾼이라도 토벌에 나서면 상당한 피해를 감안해야만 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못건드릴 수준은 아니지.”
“데런.”
데런의 호승심 넘치는 발언에 잭이 난감한 얼굴을 했다.
세컨더리 비트의 검귀, 데런 벨츠의 명성이야 이 바닥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
그렇다고 리스크가 큰 장소에 동생을 직접 보내기도 내키지 않는 것이 잭의 본심이었다.
“뭐, 피할 수 없다면 내가 직접 가는 수밖에.”
“……많이는 못내어준다.”
“괜찮아. 내가 도망치는 날이 마탑이 문닫는 날일테니까.”
데런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검을 두드렸다.
철컥.
데런의 허리춤에 매여있던 두터운 검집이 흔들렸다.
그의 검은 레서트 인더스트리에서 주문제작한 특별한 물건이었다.
“나는 너를 믿고 있지만… 너무 방심하지는 마라.”
“그럴리가. 나는 언제나 신중할 뿐이야.”
동생의 안위를 걱정하는 잭의 말에, 데런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향했다.
세컨더리 비트의 사무실은 중심지구의 고층건물에 위치해있다.
사장실 안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언제나 비슷한 모습이었다.
개미만큼 작아진 사람들. 그 사이를 지나가는 차량들.
그리고 무수한 인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사고들.
아래의 풍경을 내려다보던 데런은 입가에서 웃음기를 거두며 잭에게 말했다.
“남을 물었으면 본인이 물릴 각오도 해야지.”
* * * * * *
스피넬과의 만남이 있던 다음 날.
시넬은 감기기운이 어느정도 잦아든 것인지, 더 이상 기침을 하지 않게 되었다.
별 아픈 기색 없이 평소와 마찬가지로 까망이를 찾아가 쓰다듬을 뿐이었다.
그리고 소파에서 잠을 청했던 내 허리가 뻐근해졌다.
“몸은 괜찮나?”
“이제 다 나았어요.”
“그래, 알았다.”
검성은 아픈 동료에 대한 배려였던 모양인지, 건강음료세트를 한 박스 가져왔다.
물론 시넬은 한 모금 먹어보고 맛없다며 다시는 손을 대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허리가 뻐근한 내가 대신 먹어치우기로 했다.
뚜껑을 따서 하나를 마셔보고 있으면, 어째서 시넬이 먹는 것을 포기했는지 알 수 있었다.
건강음료라 예상은 했지만 너무 건강한 맛이었다.
“오늘은 멀쩡한 모양이네.”
까망이와 노는 시넬의 모습을 본 검성이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사온 음료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냉장고에 있던 콜라를 꺼내 마시고 있었다.
검성의 태도를 보건데 무슨 맛인지 알고서 사온 것 같다.
나는 그런 검성의 모습에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왜 그러지? 경호를 못하는게 아쉽나?”
“그런건 아니야. 어차피 지금은 내가 어디에 필요한지 알았으니까.”
“잘 아는 모양이군. 너는 경호보다 다른 곳에 어울린다.”
조용히 움직인다면 검성의 마법만큼 위협적인 것도 많지 않다.
그렇다고 검성이 조용히 움직이는 일은 없을테지만 말이다.
적어도 그녀가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한은 그럴 것이다.
그게 유엘이 생각하는 검성의 모습이니까.
“그런데, 오늘은 외출하시나요?”
쓰다듬던 까망이를 끌어안은 시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 나가야 하는 용건이라.
사무실에서 최근에 쫓고 있는 수배범은 없다.
그럼에도 오늘은 잠시 시간을 내어 밖에 나가봐야만 했다.
어제 스피넬이 찾아왔던 것이 그 이유였다.
근처의 적당한 곳에서 정체를 숨길만한 물건을 찾을 생각이었다.
“조금 있다가, 쇼핑을 하러 나갈 생각이다.”
“쇼핑에 가는건가요.”
“그래. 백화점이나 블랙마켓은 아니지만 말이야.”
“흐음, 그런 장소 이외에도 쇼핑할만한 곳이 있어?”
“찾아보면 하나쯤은 괜찮은 물건이 나올거다.”
확실히 물건이야 백화점이나 블랙마켓이 낫다.
하지만 그런 곳에는 감시카메라가 촘촘하게 박혀 있는 편이었다.
물건의 출처를 추적당하고 싶은 생각이 아니라면야, 적당히 괜찮은 장소를 고를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도시 최고의 장물아비인 제임스의 고물상 같은 곳 말이다.
“이틀 뒤에는 너희 둘에게 휴가를 주지.”
그리고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작전의 결행일까지는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결행일에는 시넬과 검성에게 휴가를 주어 떼어낼 생각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였는지, 시넬과 검성 모두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휴가?”
“갑자기 휴가를 주는거야?”
굳이 그녀들에게 휴가를 주는 이유는 하나였다.
이번 작전에는 시넬이나 검성이 동행할 수 없다.
정체를 들키면 안된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걸 제외하고서라도 작전이 너무 위험했다.
계승자의 지시로 이루어지는 대규모 작전이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결사의 간부들이 찾아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동안 제법 고생하지 않았나. 하루쯤은 줘도 상관없겠지.”
“얼마 전에는 월급 주기 싫다면서.”
“그거야 그때 일이고, 최근에 너는 상당한 활약을 보이고 있다. 검성이라는 이름이 퍼지는 날도 멀지는 않아보이는군.”
“그, 그래?”
하나도 아니고 결사의 간부가 여럿이나 나올 것이다.
그들을 상대로 시넬이나 검성이 통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가능한 내가 스피넬의 곁에 붙어있는 것이 최선이었다.
시넬과 검성은 이런 곳에서 잃어도 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번 작전의 리스크는 오로지 나 혼자서 짊어져야만 했다.
“그리고 시넬은…….”
“싫어요.”
“…….”
그런데 시넬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휴가가 싫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멍하니 시넬을 바라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