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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55화 (55/156)

〈 55화 〉 연주시차 (5)

* * *

“결국은 옷을 잔뜩 샀네요.”

쇼핑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어둑해진 길을 둘이서 걸어가고 있으면, 내 손에 들려있는 쇼핑백들을 본 시넬이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오늘은 제법 옷을 많이 샀다.

개중에는 평소에 입기 위한 옷도 있고, 결행일을 위해 준비한 일회용 옷도 있었다.

대부분은 근처에 위치한 노상들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옷이 별로 없었으니까 말이다.”

“지금 입은 옷도 잘어울려요.”

“그러냐.”

입고 있는 옷이 잘 어울린다라.

머리에 고글을 올리고 있는 시넬의 패션센스를 생각해보면, 그리 믿을만한 칭찬은 아닌 것 같다.

물론 그녀의 어긋난 미적감각을 감안하더라도, 봐줄만한 면이 있기는 했다.

일단은 원판이 귀여운 편이지 않은가.

뭘 입혀도 어느정도는 통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총은 왜 사신건가요?”

쇼핑백을 바라보던 시넬의 시선이 이번에는 내 품으로 향했다.

시넬과 함께 옷을 사기 전, 나는 제임스의 고물상에 들려 총을 한자루 더 구입했다.

기존에 쓰던 물건과 비슷한 구조의 권총이었다.

“여분이 필요해서 샀다.”

“여분인가요.”

“그래. 여분이다.”

기존에 있는 총 역시 아직까지 잘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발사한 탄환에는 강선에 의한 탄흔이 남는 법이다.

앞으로 얼마나 정체를 숨기고 움직일지도 모르는데, 아무런 생각 없이 같은 총기를 들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물며 몇번이고 우리와 같이 움직였던 어셔와 네이는 치안대 소속이 아니던가.

그들에게 걸려 활동의 흔적을 추격당할 가능성을 생각하면, 이런 조치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하기야, 저도 여분을 샀으니까요.”

시넬이 자신의 단검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물건과는 다르게, 외견부터가 세련되보이는 물건이었다.

시넬의 말로는 자신의 월급 대부분을 부은 단검이라고 했다.

최고로 꼽히는 장비를 사려면 시넬의 월급으로도 부족하겠지만, 실전에서 사용하는 장비 치고는 고급이라고 말할 수 있을 터다.

“마음에 드나?”

“멋있는 물건이에요.”

“멋이라. 음, 그렇군.”

“네. 보여드릴게요.”

휘릭. 허공에서 움직인 시넬의 손에 뽑혀나온 단검이 들려있었다.

날카로운 단검이 눈앞에서 빛나고 있다.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단순히 새로운 장난감을 내보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위험하니까 장난은 그만두도록.”

“네.”

착. 뽑혀나왔던 단검이 다시 검집에 돌아갔다.

시넬은 정리한 단검을 다시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헤이스트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굉장히 날렵한 동작이었다.

오랜 기간을 범죄자 사냥에 돌아다녀서 그런지는 몰라도, 단검을 뽑는 동작부터가 단련되어있는 느낌이다.

가끔씩 잊고 살았던 잔혹한 사냥꾼의 면모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시넬.”

“네, 사장님.”

“휴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생각이 없나?”

단검을 집어넣은 시넬에게 아침의 질문을 다시 꺼냈다.

시넬에게 따로 지시를 내리고 움직여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믿을 수 있는 동료에게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선택은 그녀의 몫이다.

“괜찮아요.”

그리고 시넬의 대답은 아까와 똑같았다.

굳이 휴가를 줄 필요는 없다.

하루종일 나와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떨어질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하루종일 일하면 힘들텐데.”

“즐거우니까요. 아직은 상관없어요.”

“…….”

“그리고 제가 없으면 사장님이 위험하잖아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뭐, 정 안되면 사실대로 말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어두워져가는 붉은 하늘에 보름달이 떠올라있었다.

* * * * * *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옥상.

나는 옥상으로 향하는 출입구의 벽에 기대어 전화를 하고 있었다.

통화를 거는 상대는 여태껏 거래해온 익숙한 인물이다.

브라이언 레일. 암흑가의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상인.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간단한 부탁을 전할 생각이었다.

귓가에 댄 스피커 너머로 신호음이 울리다가, 이내 브라이언에게 통화가 연결되었다.

­ “무슨 일이야? 이번에도 급한 정보야?”

브라이언의 목소리가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왔다.

늦은 저녁이다. 맥주라도 마시고 있던 것인지, 무언가를 들이키는 목소리가 함께 들렸다.

“브라이언. 부탁이 하나 있다.”

­ “부탁? 무슨 부탁인데?”

부탁이라는 말을 듣자 브라이언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얼마 전에도 프로그램을 만들어줄 사람을 브라이언에게 부탁한 적이 있었다.

보나마나 시덥잖은 부탁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안타깝지만 이번에도 그의 예상대로 시덥잖은 부탁이 맞았다.

“가스마스크 하나만 조용히 구해줬으면 좋겠군.”

­ “이봐 고객님, 몇번이고 말하지만 나는 심부름 꾼이 아니야.”

나는 얼굴을 가릴 가스마스크를 그에게 부탁했다.

브라이언은 내 부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농담조에 가까운 불만을 나에게 토로해왔다.

시시한 일에 불만을 가진다고 해도 방법은 있다.

나는 지금 브라이언이 원할만한 것을 마이크에 대고 불러주었다.

“천 크레딧.”

­ “하지만 오늘은 심부름이 하고 싶구만.”

뚝. 브라이언의 확답을 듣고서 전화를 끊었다.

오늘 시넬과의 쇼핑에서 입을 옷을 구해두었다.

브라이언을 통해 얼굴을 가릴 마스크도 구하게 되었으니, 결행일의 복장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남은 것은 당일의 계획을 정리하는 것뿐이었다.

“오늘도 옥상에 계시네요.”

덜컥.

옥상문이 열리면서 시넬이 옥상에 들어섰다.

감기에 걸렸던 지난 밤으로부터 교훈을 얻은 것인지, 이번에는 점퍼의 지퍼를 단단하게 잠궈둔 채였다.

시넬은 당당하게 내 옆으로 다가와 자리를 잡았다.

“까망이는?”

“까망이는 자고 있어요.”

“감기에 걸리지 않게 조심해라.”

“그럴거에요. 더는, 짐이 되지 않을테니까요.”

아무래도 앓아누웠던 일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약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해도, 내가 시넬 자체를 짐이라고 여긴 적은 없었다.

짐이 된다면 오히려 내 쪽이 더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은 전투력부터가 상당히 차이나는 편이었으니 말이다.

“시넬.”

“네.”

“너는 짐이 아니다.”

“…….”

“그리고 나는 동료를 버리지 않아.”

내 말을 들은 시넬의 표정이 애매한 모습으로 변했다.

잔잔한 수면과도 같던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에 파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감정적인 시넬의 얼굴을 보는 것은 얼마만일까.

상당히 의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음에 나올 그녀의 말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장님.”

“그래.”

“어제, 스피넬과 만났나요?”

시넬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뜻밖의 질문이었다.

간밤에 스피넬과 내가 대화를 나누었던 것을, 시넬이 자신의 귀로 직접 엿들었던 모양이었다.

굳이 들킬만한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시넬의 말에 순순히 수긍했다.

“……만났다. 대화도 제법 나누었던 것 같군.”

“그럼, 스피넬과 함께 하기로 결정한건가요.”

나는 그제서야 왜 그녀가 짐이라는 말을 꺼냈는지 이해했다.

휴가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시넬은 지금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번 작전은 그렇겠지. 그 이후는 전부 스피넬이 하기에 달린 일이다.”

내가 시넬 대신에 스피넬을 선택하고, 그녀 자신을 내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것이 간밤에 엿들었던 대화에서 시넬이 도출해낸 결론이었다.

애초부터 방향이 잘못된 걱정이다.

시넬의 생각을 애써 부정하려는 찰나, 시넬이 자신의 이야기에 살을 덧붙여왔다.

“사장님은… 지금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거죠?”

“왜 그렇게 생각하지?”

“쭉 옆에서 지켜봐왔으니까요. 분명 무언가를 쫓고 있는 것 같았어요.”

이곳에 오고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시넬과 함께 제법 많은 싸움을 치뤘다.

그중에는 치안대와 협력해 함께 싸웠던 사건도 존재했다.

지금까지의 사건들을 보며 시넬은 짐작한 것이다.

내가 이 도시의 뒷편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시넬.”

“네.”

모든 것을 처음부터 털어놓을 수는 없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말을 꺼내야 하는 것일까.

머릿속에서 넘쳐나는 말들을 하나씩 줄여나가기 시작한다.

변명이나 위로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 도시에는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려고 한다.”

“……거대한 전쟁.”

“무수한 영웅이 죽어나가고, 그와 같은 숫자의 악당이 쓰러지겠지.”

“그런가요.”

전쟁도시. 작품의 이름에 걸맞게 이 도시는 세력간의 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이름을 날리던 영웅들이 죽어나간다.

결사라는 미증유의 재해를 상대로 도시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결사란 그런 곳이다.

그것은 일종의 재해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나긴 전쟁속에서, 주인공인 어셔 헤이즈는 상처뿐인 결말을 손에 넣는다.

“나는 그 치열한 전쟁의 끝에서 살아남고 싶다.”

너희와 함께.

뒤에 덧붙여진 말에 시넬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너희라는 말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시넬은 내가 가진 정보를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정보상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그녀에게 계속해서 결과를 보여왔으니까.

“상대가 결사라는 곳인가요?”

“잘 알고 있군.”

“그럼, 스피넬은 앞으로 위험해지겠네요.”

그렇기에 나는 스피넬에게 몇가지 거짓말을 했다.

그녀를 구해내기 위해서.

추후에 스피넬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감당해야 하는 것은 보다 나중의 일이다.

지금은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는게 우선이었다.

“그렇겠지.”

“스피넬을 위해서인가요?”

“아니. 너를 위해서다.”

겨울바람에 차갑게 변해버린 난간에 기대어선다.

등을 스쳐지나가는 바람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시넬의 시선이 눈에 들어왔다.

반짝이는 하늘. 그 아래에서 나부끼는 잿빛 머리카락.

보면 볼수록 마법과도 같은 자매들이다.

“저를 위해서…….”

“네가 원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녀를 구해주기로 했다.”

“위험할거에요.”

“위험하겠지. 결사란 그런 곳이니까.”

분명 수많은 위험이 다가올거라 생각한다.

짧은 이야기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던가.

이것은 도시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만 하는 숙명이었다.

어쩌면 얼마 뒤에 있을 작전에서도 몇차례고 생명의 위협을 겪을지도 모른다.

“농담이 아니에요. 스피넬은 정말로 강해요. 그리고… 그녀의 동료들도 강할거에요.”

6서클의 마법사. 그리고 7서클의 마법사.

상상만 해도 아득해지는 숫자들이다.

시넬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위험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 세계에 마법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이 세계의 마법은 옛날 이야기의 전설같은 것이 아니다.

기적을 만들어내는 마법은 실재하고, 그것은 마법사의 손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나는 그런 마법사들 중 하나였다.

“시넬. 시넬 클로버블룸.”

“네, 사장님.”

“나는 마법사다.”

“…….”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환하게 빛나는 달빛 아래에서, 무수히 반짝이는 별빛이 보였다.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반짝임으로 가득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전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던 광활한 하늘이, 지금은 조금이나마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 마법을 보여주마.”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래를 향해 계속해서 걸음을 내딛는다.

수천광년 앞에서 빛나고 있을 반짝임을, 끝내 자신의 손으로 붙잡기 위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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