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사명 (1)
* * *
“여전히 외진 곳에 있는 건물이구만. 뭐, 내용물이야 여기가 더 넓지만 말이야.”
가방을 들고 찾아온 브라이언이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그가 사무실에 찾아온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그에게 주문한 물건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건은 잘 가져왔나?”
“물론이야. 수고는 좀 들었지만, 수고비를 생각하면 뭐.”
지난 날, 나는 브라이언에게 가스마스크 하나를 주문했다.
단순히 가스마스크가 필요하다면 내가 구입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굳이 브라이언에게 심부름을 맡긴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은밀히 손에 넣을 수 있는 가스마스크가 필요했다.
은밀히. 다시 말해 거래과정이 추적당해서는 안됐다.
이것은 유령군단이 가면을 착용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착용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내용물은 나중에 확인해보지.”
“어차피 이 바닥에서 신용빼면 남는거 없잖아.”
“신뢰의 표시라고 봐주면 좋겠군.”
브라이언이 자신의 가방을 나에게 내밀었다.
상자의 크기로 보건데 그다지 커다란 물건은 아닌 것 같다.
가방을 받은 나는 그에게 돈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심부름 비용으로 약속했던 1000 크레딧이었다.
“당분간 식비걱정은 없겠구만.”
촤르륵.
들어있는 금액을 세어본 브라이언이 돈봉투를 품에 넣었다.
마스크의 가격을 생각해도 남는 장사다.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는거야 당연한 일이었다.
“식비는 아끼는 편이라 들었는데.”
“나야 대부분은 햄버거로 때우니까. 고객님이야말로 직원 식비로 제법 나간다고 들었어.”
“그런 편이지.”
자연스럽게 시선이 시넬에게로 돌아갔다.
시넬은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것인지, 까망이를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가려지지 않은 고글이 까망이의 뒤에서 반짝였다.
“……모르는척 하면 되나?”
“글쎄. 알아서 하는게 나을거다.”
“참 어려운 아가씨야.”
“나도 아직 익숙해지지 못했으니까. 당연한 일이겠지.”
이미 수차례 사무실에 들러보았던 브라이언이다.
우리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강 이해하고 있었다.
애초에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이니만큼, 소식에 빠르기도 하고 말이다.
“그나저나, 요새 심상치않은 소문이 들고 있던데.”
“그 소문은 무료인가?”
정보상인을 상대로는 철저하게 하는 편이 좋다.
정보료를 추궁하자 브라이언이 학을 때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 바닥에서야 제법 유명한 소문이니까. 무료로 줘도 상관은 없어.”
“무슨 소문이지?”
“세컨더리 비트의 움직임이 수상쩍은 모양이야. 아마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어.”
“세컨더리 비트라… 가능성이 있군.”
세컨더리 비트.
그곳은 도시에서 최대규모로 꼽히는 민간군사기업이다.
수많은 용병들이 세컨더리 비트에 소속되어있으며, 그 수준 또한 결코 낮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 세컨더리 비트가 대규모로 움직인다고 한다면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어느정도 짐작가는 바가 있어서인지, 그들의 준동이 썩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혹시 우리 암흑상인님은 짐작가는 곳이 있나?”
“나를 상대로 정보를 캐려는건가?”
“그렇게 깐깐하게 굴지 말고.”
“글쎄. 돈이 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
혹시나 결사의 움직임이 새어나갔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상대가 결사인 이상에야, 세컨더리 비트라도 억누르는데 한계가 있을테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내 예상은 스스로의 머릿속에 박아두는 편이 좋았다.
결사에 대한 정보는 함부로 취급할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비단 나만이 아니라 브라이언마저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재미없는 반응이구만.”
“세컨더리 비트의 검귀부터가 재미있는 인물은 아니지.”
“검귀야 늘 그랬고. 그만큼 싸움에만 심취한 인간도 없다니까.”
“어찌되었든 이쪽과 관련해서 더 해줄 이야기는 없다. 얽혀봐야 골치만 아프니까 사리는 편이 좋을거다.”
브라이언은 어깨를 으쓱이며 테이블에 놓인 쿠키를 집어들었다.
쿠키는 검성의 추천으로 구매한 것이었다.
커피와 먹으면 상당히 잘 어울리는 물건이었다.
까득. 과자가 부숴지는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퍼졌다.
“암흑상인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나같은 영세업자야 얌전히 사려야지.”
“브라이언. 당신에겐 돈이 최우선 아니었나?”
“돈도 좋지만 사람한테는 호기심이란게 있어서. 이쪽 일이 나한테 잘맞는 이유기도 해.”
호기심이 사람을 망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이 도시에는 그렇게 사라진 인물이 제법 많기도 하고 말이다.
“일전에 너에게 소개받았던 해커. 이름이 고드였던가? 그 인간이 그러더군. 오래는 못살겠다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군.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대화내용을 곱씹던 브라이언이 피식 웃었다.
하기야, 암흑가에서 매일 줄타기를 하는 브라이언이다.
죽음에 대한 각오는 이미 오래전부터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 * * * * *
제7특별기동대.
그곳은 통제의 여지가 보이는 중범죄자를 이용해, 다른 범죄자를 잡아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감시관과 페어를 이루어 범죄자를 소탕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이야기이지만, 실질적인 보상 없이 범죄자를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치안대는 제7특별기동대에게 1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잡아들인 범죄자 형량의 1할만큼을 감형해주겠다.
하나같이 평균적인 형량이 수십년에 달하는 중범죄자들이다.
자유의 가능성이 눈앞에 보이는데 마다하는 이는 드물었다.
비록 그것을 이행하는 중에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역겹군.”
코드 E172. 어셔 헤이즈는 그런 제7특별기동대에 소속된 기동대원들 중 하나였다.
3구역의 인간도살자.
치안대 내에서도 악명이 높은 범죄자였던 그였으나, 제7특별기동대에 몸을 담은 이후로는 비교적 소문이 잠잠해진 편이었다.
터벅, 터벅.
앞을 향해 걸어가던 어셔는 인상을 찌푸리며 바닥에 늘어진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눈을 뜰 수 없는 남자의 얼굴은 어셔에게 있어서도 익숙한 것이었다.
“가끔씩 보던 아저씨네. 코드 E133이랬나?”
가느다란 여성의 목소리에 어셔가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반투명한 소녀 하나가 어셔의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어셔는 자신의 여동생, 리엘 헤이즈의 망령에게 잠시 시선을 보내다가, 이내 다시 바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름대로 성실한 녀석이었다.”
“그래봤자 범죄자잖아?”
“과오에 대한 변명까지는 못해주겠군. 그래도, 녀석의 노력마저 폄하할 생각은 없다.”
바닥에 있는 것은 어셔와 같은 기동대원 중 하나였던 인물이었다.
적어도 몇시간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몇시간 전에 모든 형기를 감형받고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
목에 걸려있던 구속장치가 해제된 채, 치안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어셔의 눈으로 분명히 확인했던 기억이 있었다.
“일말의 가능성에 기대해봤다만, 역시나 전혀 다를 것 없는 인간들이군.”
토사구팽.
사냥이 끝난 사냥개는 삶아 죽이는게 당연한 일이다.
처음부터 어셔에게 자유가 주어질 가능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어셔는 이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도망가자, 어셔.”
“…….”
“기회를 봐서 그 여자를 협박하는거야. 그렇게 구속장치를 해제하는거고.”
“그럴 필요는 없다. 이미 각오는 했으니.”
치안대의 인간들은 믿을 수 없다.
그것이 진작부터 어셔의 머릿속에 들어있던 생각이었다.
어셔 자신을 챙겨주는 순진한 아가씨야 좀 예외이긴 하다만, 애초부터 범죄자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향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어셔가 자진해서 들어온 이유는 하나였다.
눈앞에 보이는 망령, 리엘 헤이즈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정말 죽으려는거야?”
어셔에게 얼굴을 들이민 리엘이 물었다.
어셔는 그녀를 통과해 지나치면서, 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꺼내 한개비를 입에 물었다.
티잉. 어셔의 라이터가 청명한 소리를 내며 불꽃이 피어올랐다.
“함께 있는 편이 더 좋지 않나.”
“나는 어셔가 죽기를 바라는게 아니야.”
“후우. 그럼 네가 살아나면 되겠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어셔가 웃었다.
하나뿐인 혈육과의 대화는 언제나 이런식이었다.
서로간에 우스갯소리를 늘어놓다가 결국 어셔가 웃으면서 끝을 맺는다.
변하지 않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얼마 안되는 과거의 버릇이었다.
“그러라고 마법을 준게 아니란말이야.”
“네가 준게 아니다. 내가 뺏은거지.”
“……어셔.”
“죽이거나, 혹은 죽거나. 둘밖에 없는 도시에 미련이 뭐가 있겠나.”
그러나 과거와 다른 것이 있다면, 어셔의 여동생인 리엘은 더 이상 웃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어셔는 리엘을 놓지 않았다.
거짓투성이의 망령에 얽매여 살면서, 미래를 대신해 과거만을 바라보고 걸어나간다.
어셔 스스로가 살아있는 망령이 되어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후우. 한숨이 뒤섞인 담배연기가 뒷골목을 가득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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