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사명 (2)
* * *
시간이 흘러 어느덧 작전의 결행일이 되었다.
평소같았으면 북적거렸을 오후의 사무실은 텅 비어있는 채였다.
이전에 상의했던 이야기대로, 시넬과 검성이 각자의 휴가를 즐기러 간 것이다.
적막한 사무실 안에서 나는 홀로 작전에 나설 준비를 했다.
“흠.”
시장에서 구입한 후드점퍼를 입고, 그 위에 하관을 가리는 가스마스크를 장착했다.
그 상태로 거울을 보자 어딘가 세기말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이 되어있었다.
뒤집어 쓴 후드가 눈을 가리고, 가스마스크가 얼굴을 가린다.
이런 복장이라면 쉽게 정체가 특정되는 일은 없을거라 생각한다.
“아, 아…….”
텔레파시를 사용해 밖에서 낼 목소리도 조정해본다.
원래의 목소리를 낼 수 없으니, 텔레파시를 이용해 대신 이야기를 전할 생각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성능 좋은 음성변조기처럼 느껴질 것이다.
텔레파시가 가지고 있는 강점들 중 하나였다.
“무기도 바꿔야겠지.”
마지막으로 따로 구입해두었던 무기 역시 챙겨둔다.
아쉽게도 애용하던 연막탄은 이번 작전에서 사용할 수 없다.
앞으로도 익명으로만 활동할 생각이 아니라면, 자주 사용하는 방식을 내보이는 것은 좋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서클을 올린 채 움직일 수 있다면 좋을테지만 말이다.
“5서클이라…….”
서클을 쉽게 올릴 수 없는 이유는 많이 있다.
다만 내 경우에는 다른 이들보다 특수한 경우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내 시련은 서클보다 한단계 위로 상향조정되어있다.
신비의 대행자가 했던 이야기다.
그의 말대로 시련의 난이도가 높아졌다면, 내가 5서클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6서클의 시련을 통과해야만 한다.
6서클. 즉, 대마법사가 되기 위한 시련이다.
“…….”
6서클에 도달한 마법사는 세계로부터 사명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6서클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명을 이행해야만 한다.
자신의 마음에 무엇보다 솔직해진 채로, 스스로가 진심으로 원하는 일을 벌이는 것.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자신만의 결심을 세계로부터 사명이라 인정받는 것.
그것만이 이 세계의 마법사가 6서클에 다다르는 길이었다.
사람마다 사명도 다르고 방향도 다르다.
이전까지의 모든 시련을 순조롭게 뛰어넘었음에도, 6서클에 도달하지 못한 이들은 무수히 많았다.
“아직은 먼 일이겠지.”
철컥.
잠금장치를 확인한 권총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작전을 위한 준비는 충분히 해두었다.
이제부터는 실전의 영역이었다.
짐승의 아가리에 자신의 발로 걸어들어갈 때가 된 것이다.
* * * * * *
"도착했구나, 암흑상인.”
철근이 한가득 쌓여있는 건물의 옥상.
후드를 뒤집어 쓴 채 허공에 떠올라있는 스피넬이 나를 반겼다.
스피넬이 떠올라있는 옥상의 뒤로는 마탑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고 있었다.
어째서 약속장소가 이곳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인원은 여기 있는 사람이 전부인가?”
“목소리가……. 흐음, 상관없으려나. 인원은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야.”
“그렇군.”
스피넬의 옆으로 가면을 쓴 괴한 하나와 중년 남자가 보였다.
그들의 정체가 누구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가면을 쓴 괴한의 정체는 결사의 간부이자 특급 수배범인 ‘유령군단’일 것이다.
유령군단이 움직였다면 눈에 보이는 인원이 얼마 되지 않는 이유도 이해가 갔다.
군단을 표방하는 만큼 이들의 숫자는 많은 편이니까.
“이 녀석은 누구지?”
난간에 기대어있던 중년의 남자가 물었다.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는 남자는 빛이 바랜 머리카락을 올백으로 넘기고 있었다.
눈앞의 남자 역시 정체를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마찬가지로 결사의 간부인 ‘변신술사’다.
결사의 간부가 셋이나 모여있는 만큼, 추가적인 지원은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전력들이 동원됐다면 원작에서 위대한 지성이 맥없이 죽어버린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전에 이야기했던 암흑상인이야.”
“암흑상인? 이 녀석은 왜 부른거냐?”
“이번 작전을 도와줄 사람이니까.”
“흥.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군.”
코웃음을 친 변신술사가 나를 노려보았다.
날카로운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며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 그 직후, 거대한 압박감이 전신에 전해져오기 시작했다.
프레셔. 대마법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아무래도 나를 시험해볼 생각으로 보였다.
“불만이 있나?”
“불만이 없을 수가 없지. 뭣도 모를 녀석을 내가 받아줄 이유는 없으니까.”
“착각도 잘 하는군. 받아달라고 한 적 없다.”
“그러면 뭐지?”
“내가 이번 작전을 지휘한다. 너희가 따라오도록.”
이런 녀석들을 상대로 지휘권을 쉽게 가져올 수 있을 리가 없다.
원래대로라면 그냥 조용히 뒤따라가는게 베스트지만, 그런 방식은 스피넬이 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프레셔를 뚫고 나가며 변신술사의 앞을 향해 걸어나갔다.
가스마스크에 가려 표정이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런 내 말을 들은 변신술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냐, 너. 지금 죽고 싶은거냐?”
흉흉한 목소리가 옥상에 울려퍼진다.
죽여버린다는 그의 말은 결코 농담같은 것이 아니었다.
결사의 간부라는 녀석들은 수틀리면 사람을 죽이는 것에 익숙해져있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대답을 잘못했다간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사지에 들어왔다는 생각이야 하고 있었지만, 칼날 위를 걸어다니는 느낌이었다.
“자신은 있나?”
“지금 스피넬을 믿고 이러는거냐? 저 여자가 네 목숨까지 보장해주지는 않을거다.”
“세컨더리 비트가 움직였다고 들었다.”
“……뭐?”
“나 없이 위대한 지성을 죽일 자신이 있나?”
당연히 있을거다.
솔직히 말해서 이 작전에는 내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
어차피 위대한 지성이 죽을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찾아왔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변신술사는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나와 이들의 사이에는 가지고 있는 정보량의 차이가 있다.
효율적인 작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무리해서 먼곳을 돌아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재기불능의 손해를 입어봤자 결사는 그를 보호해주지 않을테니 말이다.
“하. 어이가 없군.”
“얌전히 따라와라. 금고 위치부터 위대한 지성의 사무실까지 알아서 안내해줄테니.”
“너, 대체 뭘 원해서 여기에 온거냐?”
내가 원하는 것은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따위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곧이 곧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고로 원하는게 없는 녀석만큼 수상한 사람은 없다.
돈이든 정보든 무언가 원하는 것을 말해야만 했다.
기왕이면 이들과 겹치지 않는 방향으로 말이다.
“돈은 너희끼리 알아서 하도록. 그것보다는 마탑의 기밀문서들에 관심이 좀 가는군.”
“정보상인이랬나? 하기야 정보에 관심이 넘칠만 하겠어.”
“그리고 나는 스피넬과의 거래에 따라 이곳에 찾아온거다. 불만이 있으면 그녀에게 말하도록.”
그제서야 변신술사의 시선이 스피넬에게로 향했다.
스피넬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드 아래로 천진난만한 잿빛 눈동자가 엿보였다.
“편하게 끝내면 좋잖아? 돈도 따로 안들고.”
“뭘로 이런 녀석을 끌어낸거냐?”
“정보상인을 부르려면 정보를 팔아야지. 내가 아는 이야기를 좀 알려줬어.”
“결사의 정보를 팔아넘긴건 아니겠지?”
“그거야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을걸? 굵직한 정보에 대해서는 꿰고 있는 모양이니까.”
이번에는 변신술사 대신 유령군단이 관심을 가졌다.
유령군단 전체를 대변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남자, ‘사령관’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주변에 쌓여있는 철근과 나를 번갈아보며 나에게 흥미를 보였다.
“그거 참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결사에 대해서 그렇게나 많이 알고있습니까?”
“그게 재미있나?”
“저도 결사에 대해 모르는게 참 많아서 말이죠.”
“당연히 많겠지. 대역이 아는게 많으면 이상하지 않나.”
철컥.
관자놀이에서 서늘한 감각이 전해져왔다.
자신의 머리를 향해 총구가 겨누어진 것이다.
어느새인가 자신의 옆에 나타난 유령군단의 일원이 나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비밀을 폭로했더니 아무래도 꽤나 강하게 나갈 모양이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군요.”
“재미있는 짓을 벌이는군.”
“제대로 즐겨주시니 저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시선을 돌려 스피넬을 바라보면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뭐하러 이렇게 신경전을 벌이냐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결사의 간부들과 만나는 시점에서 어느정도의 기싸움은 예견된 일이었다.
휘릭. 스피넬이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의 은빛 칼날이 날아갔다.
사령관의 목덜미 부근에서 멈춰선 스피넬의 칼날이 제자리에서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만해. 이제.”
“무슨 짓입니까, 스피넬?”
“내가 데려온 손님이야. 너무 무례한 행동을 봐줄 생각은 없어.”
“지금 유령군단 전체와 적대하겠다는 뜻입니까?”
“싸운다면 너보다 네 주인이 먼저 죽게될거야.”
힐끗.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고개를 돌리던 사령관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내 옆에 있던 부하를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물러나도 좋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