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사명 (3)
* * *
“지금 유령군단 전체와 적대하겠다는 뜻입니까?”
“싸운다면 너보다 네 주인이 먼저 죽게될거야.”
힐끗.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고개를 돌리던 사령관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내 옆에 있던 부하를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물러나도 좋습니다.”
“…….”
관자놀이에서 느껴지던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총구를 겨누고 있던 가면의 괴한 역시 모습을 감추었다.
유령군단이 가지고 있는 ‘인비지블’ 마법의 힘이었다.
서로간의 신경전이 끝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후. 밖으로 새어나올 것 같은 한숨을 억지로 참아내고서, 나는 그제서야 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는 대충 정리된 것 같군.”
“그런 것 같네.”
자신의 손으로 칼날을 되돌린 스피넬이 그것을 케이스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다루기 힘든 맹수같은 인간들이다.
자주 만나다가는 내가 지쳐서 쓰러지는게 먼저일 것 같았다.
“이제 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어디 그 대단한 작전에 대해서 들어보지.”
팔짱을 낀 채 난간에 기대어 선 변신술사로부터 비아냥거림이 들려왔다.
나는 그것을 무시한 채로, 근처에 있던 철근들을 바라보았다.
여기에 있는 철근들은 내가 스피넬에게 요청했던 물건들이다.
대인을 상대할 때는 칼날을 사용하는 편이 좋겠지만, 구조물이 상대라면 아무래도 이야기가 달랐다.
보다 중량이 있는 물건들을 사용하는게 효과적이었다.
“마탑을 중심으로 일정반경 안에는 결계가 존재한다.”
“응. 알고 있어.”
“해당 결계는 마탑의 주인, 위대한 지성의 승인을 받은 자만이 통과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저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결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결국 결계를 때려부수기만 하면 된다는 거잖아?”
끄덕.
스피넬의 말에 크게 틀린점은 없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화려하게 나갈 수밖에 없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작전을 끝내기까지의 시간이었다.
일은 확실하고 크게 벌여야 하겠지만, 대규모로 편성된 치안대가 오기 전까지는 끝내고 빠져나가야 했다.
치안대에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변장을 하고 왔지만, 가장 최선은 그냥 치안대와 마주하지 않는 것이었다.
“빠른 진입을 위해서는 가능한 화력을 쏟아붓는 편이 좋을거다. 변신술사, 너도 처음에 결계를 공격하는 편이 좋겠군.”
“……그렇게 하지.”
“다음은 저층에 내려올 세컨더리 비트의 상대다.”
“핵심 전력은 위대한 지성을 지키고 있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는 사령관이 물어왔다.
물론 보통이라면 가장 중요한 대상 옆에 많은 병력을 배치할 것이다.
하지만 습격을 받는 대상이 마탑 전체다.
위대한 지성 개인이 어느정도 일신의 무력을 가지고 있는 이상, 마탑 내부의 인원들에 대한 안전도 생각해야만 했다.
이쪽의 목적이 제압이 아닌 사살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유령군단과 변신술사가 1층에 먼저 진입한다.”
“우리가 먼저 진입하라고?”
“최대한 화려하게 난동을 피우면 된다. 특급이 둘이나 있으면 검귀도 어쩔 수 없이 내려가겠지.”
세컨더리 비트는 대마법사전을 상정한 고도의 장비를 갖추고 있는 기업이다.
그 점을 생각한다면, 유령군단과 변신술사를 같이 내려보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들은 상층부에 진입할 전력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벌어줄 필요가 있었다.
“검귀라… 그렇게 하죠.”
“지하 1층에 금고실이 있다. 여유가 있으면 내려가보도록.”
내려갈 사람이라고 해봐야 유령군단밖에 없다.
대부분은 위에서 전투를 치르느라 추가로 할애할 시간이 없을테니까 말이다.
사령관 역시 눈치를 챈 모양인지 잠시 허공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방향만 보더라도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저 방향으로 총을 쏜다면, 유령군단의 본체를 쉽게 죽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주머니에 들어있는 권총을 어루만졌다.
결국 언젠가는 전부 우리의 적이 될 녀석들이다.
흔치 않은 기회인데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
“하층부로 이목이 쏠리면 나와 함께 진입한다.”
스피넬의 경우에는 나와 함께 위대한 지성을 상대할 계획이다.
위대한 지성이 위치한 곳은 12층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이다.
아무런 방해 없이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결국 스피넬의 도움이 필수불가결했다.
작전이 끝난 이후 마탑에서 빠져나올 때도 마찬가지다.
스피넬의 레비테이션을 이용하면 지상까지 빠르게 도달할 수 있었다.
스피넬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중에서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작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마력배분을 조절할 요량으로 보였다.
“작전이 끝난 이후에는 유령군단의 마법으로 빠져나간다. 가능한 치안대와 엮이기 전에 끝내는게 목표다.”
“거기까지 알고 있었습니까.”
“모두에게 숨길 수 있는 비밀은 없는 법이지.”
“뭐, 깔끔한 작전이긴 하군요.”
그야 당연한 반응이었다.
가장 돈이 될만한 금고쪽을 암묵적으로 본인쪽에 맡겼으니까.
추후에 변신술사와 어떤 이야기가 오고갈지는 모르겠지만, 그 부분은 내가 상관할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변신술사 역시 금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크게 불만은 없어보였다.
같은 작전임에도 각자 다른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집단에 사명감같은 것을 바라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스피넬을 제외한다면 결사의 대의에 공감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별 불만이 없으면 바로 작전을 시작하지.”
“그렇게 할까나.”
스피넬의 작은 발소리가 옥상에 울려퍼졌다.
그녀는 구석에 한가득 쌓여있는 철근더미를 향해 걸어갔다.
내가 스피넬에게 요청해 이곳에 모아둔 물건들이다.
철근들은 전부 마탑의 결계를 공략하는데 사용될 예정이다.
“[레비테이션].”
철근을 향해 손을 뻗은 스피넬이 마력을 움직였다.
레비테이션. 모든 물체를 부유시키는 그녀의 마법이 그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난잡하게 쌓여있던 철근들이 하나씩 공중에 떠올랐다.
무게부터가 무거운 탓에 그 움직임이 평소보다 둔해보였다.
“최대한 위로 올리도록.”
“알았어.”
“결계와 충돌해 튕겨나가는 직후 다시 마법을 걸어라.”
“응.”
묵직한 철근들이 스피넬의 손짓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5층. 10층. 15층. 20층.
순차적으로 고도를 높이던 철근들은 어느덧 마탑의 높이를 뛰어넘었다.
그럼에도 철근들은 위로 솟아오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높게. 보다 더 높게. 스피넬의 마력이 허용하는 한계까지 움직여야만 한다.
이윽고 시야에 보이던 철근들이 눈에 띄게 작아졌을 즈음, 철근을 움직이고 있던 스피넬이 말했다.
“슬슬 한계야.”
“마법을 풀어라.”
철근들은 허공에 잠시동안 멈춰서있다가, 이내 빠른 속도로 지상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수직으로 내려꽂히는 철근의 기세는 멀리서 보기에도 상당히 위력적이었다.
그렇게 낙하하던 철근이 마탑의 옥상과 가까워졌을 즈음, 움직이던 철근의 궤도에 변화가 생겨났다.
쾅! 콰앙! 쾅! 콰아아앙!
마탑의 주위에 반투명한 장벽이 실체화되어 낙하하던 철근과 충돌한 것이다.
귀가 먹먹해질 것만 같은 굉음이 수차례 울려퍼지고, 결계와 충돌한 철근들이 사방으로 튕겨나왔다.
“생각보다 제법 단단한걸. [레비테이션].”
허공에 튕겨나간 철근들을 스피넬의 마법이 다시 붙잡았다.
철근이 내려꽂혔던 결계의 충돌지점에서는 거대한 파문이 일어나고 있었다.
스피넬의 공격이 결계를 상대로 유효한 타격을 입힌 것이다.
앞으로 수차례 더 공격이 이어진다면 결계에도 균열이 일어날 것처럼 보였다.
방금 전의 공격을 다시 한차례 반복할 생각인지, 스피넬이 철근들을 다시 허공으로 띄워올렸다.
“이봐. 거기 정보상인.”
“무슨 일이지?”
스피넬의 공격이 이루어진 직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변신술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어깨와 목을 움직이면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전투를 보고있자니 몸이 달아오른 모양이었다.
“몸이 근질거리는데 바로 참전하면 되나?”
“철근에 맞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우스운 이야기를 다 들어보겠군. 상관없다면 간다.”
“조심하는 편이 좋을거다.”
마음같아서는 철근에 맞아 골로가면 좋겠지만 말이다.
6서클의 대마법사가 머저리도 아니고 여기서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없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듯이, 변신술사는 옥상에서 아래를 향해 뛰어내렸다.
“[스펠 오버로드 : 폴리모프].”
스펠 오버로드.
주문의 출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대마법사의 전유물이다.
스펠 오버로드를 사용한 마법은 마력을 지나치게 잡아먹는 대신, 기존의 마법보다 한단계 강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마법의 위용을 증명하듯이, 옥상 아래로 떨어졌던 변신술사가 다른 모습이 되어 하늘로 솟구쳤다.
크르르르르.
펄럭.
거대한 날개가 움직이며 육중한 동체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허공에 떠오른 그 모습은, 처음 마주함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익숙한 외형이었다.
전신을 뒤덮은 푸른 색의 비늘.
세로로 쭉 찢어진 날카로운 금색의 동공.
허공에 날갯짓하는 푸른 빛의 피막 날개.
전설속에서만 존재하던 푸른 색의 드래곤이 현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 *